중국에서 온 풍수가 잡은 오봉산 명당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에 오봉산이 있다.
현재 의왕시청 뒷산으로 높이 205m이다.
원래 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오봉산(五峯山)이라고 불렀다가, 현재는 오봉산(五鳳山)이라고 한다.
또한 의왕시 왕곡동은 예전 청풍 김씨의 집성촌이었다.
이들 청풍김씨와 오봉산에 얽힌 설화가 전해진다.
옛날 중국의 한 풍수가 역적으로 몰려 조선으로 도망을 오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이 급하게 도망을 나와 많이 지친 지관이 현재 의왕시의 주막거리에 앉아 있었다.
이를 본 청풍김씨 한 사람이 굶주리고 헐벗은 그를 집으로 데려와 음식과 옷을 내주었다.
그리고는 집에 며칠간 묵게 하였다.
당시 청풍김씨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중국 풍수는 그 어머니의 병환을 살피더니 도저히 소생할 가망이 없다 여기고, 청풍김씨에게 “이제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으니, 당신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어머니의 묏자리를 잡아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중국에서 온 풍수는 청풍김씨와 함께 묏자리를 보러 나섰다.
풍수는 앞에 보이는 오봉산으로 가자고 하였다.
오봉산으로 향하던 중 앞서 가던 풍수가 어느 한 집 장독대가 명당자리라고 알려주었다.
아무리 명당자리지만 남의 집 장독대에다 어머니를 모실 수는 없었다.
청풍김씨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그 집 주인을 찾아가 부탁을 해 보았다.
집 주인은 화를 내며 청풍김씨를 내쫓았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집에 불이 나서 모두 탔다.
그리고 청풍김씨 어머니도 운명하였다.
청풍김씨는 불난 집 주인을 찾아가 합의를 해서 그 자리에 어머니 묘소를 쓰기로 하였다.
묘소를 쓰기 전날, 중국에서 온 풍수는 “땅을 파 광중을 만들 때, 펑퍼짐한 돌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 더 파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중국으로 돌아간다며 길을 떠났다.
다음 날, 어머니 장례를 치르려 하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더 파야지 너무 얕지 않아?”,
“아냐, 그만 파라고 했어. 여기 봐. 돌이 나왔잖아?”
청풍김씨가 가서 보니 중국에서 온 풍수의 말처럼 돌이 나왔다.
그런데 어머니를 모시기에는 너무 얕아 보였다.
그래서 작업을 멈추고 가족들과 함께 회의를 하였다.
그 때 청풍김씨 막내 동생이 광중을 지키고 있었다.
그 펑퍼짐한 돌을 내려다보다가 슬며시 광중으로 들어섰다.
펑퍼짐한 돌 위에 올라서 보니 약간 기우뚱 거렸다.
그래서 무심코 돌 한쪽 끝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너무 놀라서 다시 돌을 내리고 말았다.
그 때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돌 아래에는 옥동자 다섯이 앉았고, 그보다 키가 큰 옥동자가 다섯 옥동자에게 무엇인가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부서지는 소리는 다섯 옥동자보다 키가 큰 옥동자의 머리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가족들은 중국 풍수의 말 그대로 돌 위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하고 산소를 만들었다.
청풍김씨 막내 동생은 너무 무서워 산소를 다 만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중국으로 돌아간 풍수는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
“너는 너의 목숨을 구해준 집안을 역적이 되게 하였으니, 가서 산소를 옮기도록 하여라.”
풍수는 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너는 아직 멀었다. 그 자리에는 다섯 정승을 거느리고 역적모의 하는 또 하나의 옥동자가 있었느니라.”
중국 풍수는 다시 조선으로 건너와 청풍김씨를 찾았다.
그리고 청풍김씨 집을 들어서는 순간 자신이 잡아준 산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제의를 하였다.
그때 청풍김씨 막내가 어머니 산소 썼을 때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중국 풍수가 “그 부러진 것은 역적모의를 하던 옥동자의 목입니다. 이제 역적은 사라졌으니, 여섯 명의 정승이 나올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그 이후 청풍김씨 집안에는 육정승이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