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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성지순례기
여행은 삶의 활력을 준다. 다양한 문화와 환경,그리고 역사적배경등은 흥미롭고 기대를 갖게 한다 .이번에는 중동의 요르단과 아랍에미레이트 그리고 오만을 다녀 보고자 계획하였다. 20여일 이상 소용될 것 같다 그런데 나를 알고 있는 주변분들은 걱정을 많이 한다 .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기사 걱정 할 만 하다.
70이 넘은 나이에 매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환자로서 편하게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배낭여행처럼 다닐 것이라는 것에 걱정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먼저 성서의 땅인 요르단을 가보려 한다. 그 다음은 아랍에미레이트 ,오만을 다녀 볼것이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요르단은 비자를 요구하는 국가이다. 비용도 8만원이 넘는다 . 요르단에는 모든 유적지에 입장료는 자국인과 외국인을 엄격히 차별하여 어떤곳은 요르단 내국인에 비해 20배에서 50배정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 .
요르단은 요르단 패스라는 것이있다 . 요르단 패스에는 비자비와 함께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가 포함되는데 우리나라돈으로 약 16만원 정도인데 조건이 있다. 3일이상 요르단에 체류하는 자에게만 요르단 패스권을 발급하여 준다, 요르단 여행을 할 때 요르단패스권을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인천공항에서 요르단 암만까지
우리나라에서 요르단 암만으로 가는 직항노선이 없다. 아부다비나 두바이 아니면 유럽의 공항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나는 두바이에서 요르단 암만으로 가는 저가항공을이용하기로 하였다
출국하는 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나도 놀란 것이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 출국 절차를 갖으려 게이트를 가니 한 두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좋은 것도 있다. 70이 넘으면 경노우대라 하여 장애인이나 유아를 동반하는 부부들에게 제공하는 우선 출국절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덕분에 20분도 안 걸려 출국수속을 마칠 수 있다. 시간도 여유가 있기에 아들이 발급해준 공항라운지 사용카드를 가지고 라운지에 가서 여유있게 차도 마시고 출출한 허기를 달랠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두바이까지는 9시간정도 걸린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9시30분에 출발하니 두바이 공항에 현지시간으로 새벽 4시에 도착한다.
그런데 요르단으로 가는 항공은 8시 출발인데 공항이 다르다 .6시까지 샤르자 공항에 도착하여 입급수속을 마쳐야 한다 . 두바이에는 원래 샤르자 공항 하나만 있었는데 항공수요가 폭주하고 나라가 항공산업을 주산업으로 발전 시키다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두바이공항을 건설하였다
두바이공항이 주로 국제선이나 대형 항공기들이 운항하는 공항이라고 하면 샤르지에 공항은 우리나라 김포공항처럼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도 두바이 공항과 샤르지아 공항이 멀지 않다
샤르지아 공항에 도착하여 일찍 수속을 밟고 라운지에 가서 쉬면서 아침을 해결하려 했는데 통과를 시켜 주지 않는다 . 무슨 이유인지 말도 없다 , 알고 보니 내가 두바이 공항에 입국한 정보가 전산망에 뜨지 않으니 통과를 시켜 주지 않는 것이었다
두바이 공항은 두바이 자치주 소관이고 샤르자 공항은 샤르자 자치주 소관이라 때로는 정보교환이 원활하지 못할 때가 가끔식 있다고 하는데 하필이면 내가 재수없게 걸려든 것이다
두바이 공항은 세계인이 모이는 곳이나 샤르자 공항은 주로 내국인이나 인접 아랍권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둘러보니 동양인은 내가 유일하다
거의 한시간여 지체하여 겨우 항공기에 탑승할수 있었다
밤새 한잠도 못한데다 출국심사 지체로 인해 배도 고프고 피곤하다
내기 탄 항공은 저가 항공이라 기내식도 없다고 하니 어쩔수 없이 버텨애 하는데 혹시나 저혈당쇼크라도 올까 걱정이다
나같은 중증 당뇨환자는 저혈당 쇼크에 항상 대비해야 하기에 그때를 대비하여 음료수나 사탕등을 준비하고 다녀야 하는데 다행히도 쇼크는 오지 않았다
암만 공항에 도착하니 요르단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경이다
숙소를 찾아가야 한다 , 다행히도 숙소에 미리 픽업을 부탁하였기에 나를 기다리는 택시기사를 만나 숙소로 갈 수 있었다
요르단도 공항이 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암만에는 유명한 유적지가 많다. 아직도 남아있는 로마시대 야외음악당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 나는 다윗왕의 부하 장군 우리아가 전사했다는 라파성을 들려 보고 싶었는데 기사가 내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 그래서 혹시나 하고 암만의 요새, 요새산이라고 하는 암만 시타텔을 가자 하니 그말을 알아 듣고 거기는 가려면 요금을 더 주어야 한다고 한다 . 요르단 현지 화폐가 없어 달러를 보여주며 얼마면 되느냐고 하니 10달러 짜리를 가져간다 , 어쩔수 없다 . 암만이라는 도시는 평지가 아니다, 얼마 가지 않아 택시기사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옛날의 석주가 보이고 계단들이 보이는 유적이다
내려서 보니 특별히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충실했던 우리아장군이 다윗왕과 상간녀인 자기 아내 밧세바에 의해 억울하게 여기서 전사했다고 하니 마음이 짠하다
숙소는 호텔이 아닌 일반숙소를 에어엔비를 통하여 이미 예약하였다. 요르단에서 혼자 여행하는 것을 무리가 될 것 같아 떠나기전 아들한테 혹시나 요르단성지 순례객들이 많이 찾는 에어엔비 숙소를 부탁하니 폴란드성지 순례팀들이 많이 찾는 에어앤비숙소를 예약하여 주었고 이미 함께 여행할 사람들과도 약속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나도 그때 알게 된 것은 캐돌릭에서는 요르단내에 5대성지를 지정하고 실제로 많은 카돌릭 신자들은 5대성지를 순례한다, 그런데 폴란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찾아 온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숙소는 5층정도인데 아버지와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객실의 규모가 다양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숙소는 2룸에 소파에서 혼자서도 잘수 있는 거실이 있는데 우리나라 25평 아파트와 비슷한 사이즈이다.
나는 거기서 60대부부와 50대 혼자온 남성분과 함께 다니기로 하고 RV카를 렌트하기로 하였다 , 렌트비가 5일에 거의 80여만원인데 여기에는 우리가 행여나 사고라고 나면 보상받는 약간은 비싼 보험을 포함한 금액이다. 폴란드에서 온 50대가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고 한다
그 친구는 동구권이나 여러나라를 다녀 본 경험이 있기에 그리하기로 하였다.
저녁을 해결하려 근처의 마트등을 다녀 보니 다행히도 비자카드는 통용이 된다
제라쉬와 움카이스, 안자라 교회
에어엔비 숙소를 이용하면 한가지 불편한 것은 아침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요르단에서는 아침에 문을 여는 식당이나 마켓을 찾아보기 힘들다
폴란드에서 오신 분들이 아침에 샌드위치 같은 것을 준비하기에 함께 아침을 나눌수 있었다 . 오늘은 제라쉬와 움카이스, 안자라교회를 가보려 한다
암만의 북쪽에 있는 제라쉬는 중동의 폼페이라는 유적도시이다
BC 3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식민도시로 건설되어 로마시대에는 로마 10대 위성도시가운데 하나로 번창을 하였다 1.2세기가 최고의 번성기였다 . 그러다 600년경 아랍제국에 의해 쇠퇴하다 지진으로 매몰되어 있다가 근세에 와서 발굴된 도시이다
실크로드의 향신로 무역의 거점도시로 성경에서 말하는 거라사 지방에 세워진 도시이다 .현재 제라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유적이 도시내에 위치하여 발굴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모래속에 묻혀 있다보니 그래도 유물들의 보전상태가 좋은 편이다. 상당히 넓은 지역에 음악당이나 신전, 경기장 ,아고라 등등 나름대로 잘보전되어 있다
현재 25%정도만 발굴되었다고 한다.
입장하여보니 사람들이 많지 않다. 동양인은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안내문을 살피면 다녀보는데 그당시에 제라쉬가 얼마나 활발한 도시인가를 유물을 통해 알수 있다
로마의 거점도시이니 상당수의 로마관리와 가족, 로마군대도 주둔하였을 것이고 저들을 대상활발한 교역이 이뤄졌을 것이다 , 바로 성서에서 나오는 귀신들인 사람대신 수천마리의 돼지떼 이야기가 나오는 지역이 이곳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돼지 고기를 먹지 않아 아마도 수천마리의 돼지떼는 로마군인들에 납품하기위해 키워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천천히 제라쉬를 돌아본다음 시리아의 근접지역인 움까이스를 가려했다
그런데 시리아 사태로 인하여 출입이 어려울수 있다는 관광안내소의 말을 들었기에 그러면 드라이브삼아 한번 북쪽지역을 살표보자 했다
혹시나 가다가 시리아 난민촌이 있다면 거기도 잠깐 들려보자 했는데 UN이나 요르단 보안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 움까이스에는 로마유적으로 석주등 유물이 많아 남아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조망할수 있는 지역이다 .성서에는 거라사 지방으로 돼지를 많이 사육하던 지역이기도 하다
비슷한 농촌지역을 드라이브하고 돌아오면서 안자라교회를 방문하였다
나는 너무 피곤하여 잠은 잔탓에 눈을 떠보니 작은 교회에 도착하여 있었다. 차량이 여러대 보이고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나는 안자라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몰랐는데 폴란드사람들은 성모상앞에서 진지하게 기도를 한다 . 안자라교회는 로마교황청 지정 요르단 5대성지중 하나인데 예수님이 제자들과 갈릴리지역 데가 볼리를 여행하다 쉬셨던 동굴에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많은 순례객이 찾아오는 것은 2010년 안자라교회에 성모상에서 피눈물을 흘린 기적이 있었고 이는 공식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오고 성모상께 기도한다고 하는데 나는 성모상을 향해 기도하는 것이 어색하다
마다바와 텔 마르 일리아스
아침 일직 마다바로 향했다
이곳은 암만에서 남서쪽으로 30K에 위치한 지역으로 느보산이 가깝다
마다바는 모자이크 교회가 유적으로 많이 남아있고 특이하게도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기독신자이다
기독신자가 많은 이유에 대하여는 1880년경 마다바 남쪽에 위치한 케략지역에서 기독교신자와 이슬람신자가의 충돌이 있었다 . 숫적으로 열세인 기독인들에게 정부당국은 현재의 마다바에서 옮겨와 살도록 하였는데 그때 2천명이 넘는 기독신자들이 마다바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부 당국은 기독신자들에게 정착하여 사는 것에 대하여는 간섭하지 않겠지만 새로운 교회건립을 허가 하지 않았다
기독신자들은 예전에 이곳에 많은 교회가 있었음을 알았기에 교회터에 교회를 지으려고 교회터를 발굴하였다 그런데 발굴된 교회터에 모자이크 유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교회는 목잘린 세례요한의 석상이 있는 세례요한의 교회 .동정녀 마리아 교회 등등
그러나 가장 널리 알려진 교회는 성죠지 교회이다
여기도 캐돌릭은 요르단 5대 성지가운데 하나로 지정하고 많은 순례객들이 방문한다
성죠지교회가 유명한 것은 교회터에 남겨진 모자이크 지도이다
많이 파손되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지도를 통하여 그당시의 지리적 상황들을 자세히 알수 있다 . 내가 일찍 방문하였음에도 단체순례객들이 선점하고 설명을 듣고 있었다
교회는 아직도 복원중이고 건물을 복구중이다
시골이지만 여기에는 관광객을 의식하였는지 쇼핑할수 있는가게들이 많이 보인다
오래된 도시라 도로가 구불구불하고 좁지만 나름대로 정취가 있다
이곳에는 화덕에 굽는 난이라는빵이 유명하다 하여 교회앞에 있는 제빵집에 들러보니 자기들은 난같은 빵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설탕이 많이 들어간 빵들을 내놓는다.
생각보다 비싸고 너무 달게 만들어진 것들이라 조금만 사서 먹어 보았디
그래도 이 지역은 요르단내에서는 비옥한 곳으로 많은 곡식물들이 재배된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엘리아가 활동하였다는 텔 마르엘리아스(tell mar elias)언덕을 가보려 한다
가는 길은 평원보다는 산지가 많은데 산지 골짜기 마다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올리브 나무가 많이보인다 .성서에서 풍요롭다는 지역임에도 넒은 평야지대른 보이지 않는다 . 산은 높고 골짜기가 깊다, 그래도 이 지역은 이스라엘 12지파가운데 므낫세 갓 르우벤지파에게 주어졌던 지역이고 다윗왕이 암몬족속을 쳐서 이긴 곳이기도 하다. 요압왕이 크게 이긴 지역이지만 이런 산악지대에서 어떻게 싸웠을까 궁굼하다
그럼에도 이곳은 엘리아라는 유명한 선지자가가 태어나고 활동한 지역이기도 하다
텔 마르엘리아스(tell mar elias)는 엘리아의언덕이라고 뜻으로 엘리아 태어난 데셉이라고 추정되는 곳이다 . 암만에서도 1시간이 걸리는 곳이고 시골이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하는등 교통여건이 좋지 않다. 7세기 비잔틴시대에 만들어진 교회터가 남아 있다 ,교황청에서는 이곳을 2000년도에 공식 순례지로 인정하였다. 엘리아의 제자인 엘리사의 고향도 인근이다
엘리아가 바알선지자와 대결하여 이긴후에 아합왕이 죽이려 하자 숨어지내던 중 까마귀가 떡과 물고기를 물어다 주었다는 곳이 이 근처라고 한다
교회터인 산정상에서 바라보면 요단강도 보이고 가나안 지역도 보인다
특이한 것은 이곳에 곤돌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 대형버스가 다니기 힘든 협소한 도로가 있는 이런곳에 누가 찾아오고 곤돌라를 이용하겠는가 의하하게 생각할수 있지만 의외로 찾아오는 사람도 이용자도 많다고 한다
느보산과 베다니 , 사해
느보산은 예전에 한번 가본곳이지만 그때는 많은 관광객이 몰려 있어 대충보고 왔기에 이번기회에 차분하게 보려했다
아마도 요르단에서 내가 다녀본중에 가장 넓은 주자창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 곳이 아닌가 한다
1월은 요르단은 겨울에 해당하기에 관광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
아침일찍 느보산을 찾았다. 우리가 유일하다. 사람이 없으니 적막하기만 하다
느보산에서 바라보는 가나안 지역. 그리고 여기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모세를 생각하여 보았다. 지역에서 제일 높은 산 정상이라 하지만 정상같은 느낌은 없다. 다만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가나안 지역, 나는 성서에 가나안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어 무척이나 풍요로울곳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요르단에서는 가장 비옥한 지역이라 하는데 하기사 조금만 벗어나도 사막지대를 쉽게 만난다
교회안에 들어가 조용히 기도를 하면서 모세를 생각한다
나는 모세가 40여년이나 이스라엘을 이끌어오면서 후계자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 자연스럽게 자식에게 물려 준다 하여도 그 당시 상황에서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기 어려울 텐데 몸종출신인 여호수아를 선택하는 것을 보고 모세가 달리 보인다
아직도 모세는 무덤이 어디있는 줄 모른다. 고고학자들이 찾아보고자 하지만 찾을 수없다 . 아마도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창한 장례식과 무덤을 만들어 기억하고자 했을 것이다 .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도 자기존재를 각인시키려 했다 .그런데 모세의 무덤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모세가 혹시나 자기를 우상화할수도 있음을 예단하고 철저하게 자기의 죽음을 소박하게 처리하여 달라하지 않았을까 ?
느보산에서 보면 멀리 요단강이 보인다. 그래서 요단강이 있는 베댜니를 찾가가 보기로 하였다
베다니에는 에덴동산이라고 추정되는 요르단 강뚝의 베이산이 있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카인이 살았던 도피성도 그 근처일것이라 한다. 베다니지역은 예수님이 병자를 치유하고 예루살렘으로 떠나신 곳이기도 한다 그러나 제일 많이 찾는 곳은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예수의 세례터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전쟁으로 인해 발굴이 어렵다가 1994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1996년에 공식적으로 예수가 세레를 받은 곳으로 확인되었다. 나는 예전에 요르단에서 성지를 방문하고 이곳을 통하여 이스라엘로 간 기억이 있다
느보산은 고원같은 산지라고 하면 베다니는 평지이다 . 느보산에서 베다니까지는 한시간도 안걸리는 것 같다. 가까이 가니 요르단에서 보기 힘들게 도로가 4차선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검문소에서 베다니를 가겠다고 하니 가라고 한다. 그런데 검문소를 지나자 도로 양편에 거의 100M간격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서있다. 아마도 수 키로는 되는 것 같다. 드디어 베다니 출입지역에 도착하니 경찰과 무장한 군인들과 장갑차가 보인다. 경찰이 다가와 신분증을 요구하더니 모두에게 핸드폰을 켜라고 한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훍어보더니 돌려준다. 그러면서 이곳은 출입이 폐쇄 되었으니 돌아가라고 한다. 이유도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탓인 것 같다. 그런데 짜증이 나는 것은 도로 검문소에서는 그런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아 시간만 낭비한 것이다 그래서 그냥 사해가 멀지 않으니 그쪽을 드라이브 하기로 하였다
길가에는 고급호텔도 보이고 지역도 활기가 있어 보인다
사해에서 수영하기를 원하냐고 묻기에 나는 별로이다 하니 모두 자기들도 수영은 예전에 하여 보았기에 그냥 돌아가자 한다
마케루스와 롯의 동굴
여기도 5대성지중하나이다
사해가 내려다 보이는 풀하나 없는 700m위에서 세워진 헤롯궁전이 있었던 곳이다
나는 헤롯궁이 예루살렘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가 별궁이란다
세례요한이 투옥되고 헤롯에 의해 목잘려 죽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얼마나 불안했으면 이런 산꼭대기에 궁궐를 건설해야만 했을까?
나무와 풀도 자라지 않는 산꼭대기에다 궁전을 건설해야 했던 헤롯.
그러나 헤롯사후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들이 로마군을 피해 일부는 마사다로 일부는 이곳에 와서 항쟁을 하였다고 한다 .
로마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헤롯궁은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지금은 올라가서 보는 것은 어렵다. 일단은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더위에 걸어서 오르기란 무모해 보인다 .그대신 궁정이 잘보인 곳에서 조망하여 볼수 있다
근처의 골짜기에는 아주 유명한 온천이 있다. 피부병이 심했던 헤롯이 즐겨 찾았다는 온천도 인근이다 . 온천에는 5성급호텔이 있고 야외 온천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온다
차로는 10여분 걸릴 것 같지만 그래도 걸어가거나 낙타를 타고 가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삭막한 골짜기에 오아시스처럼 온천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하루 푹쉬면서 온천욕을 하고 싶은데 여유가 없다
마케루스에서 사해로 가는 길은 정말 환상이다 . 도로는 단선이기에 대형 버스는 다닐수 없다. 아마도 중형차도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야 다닐 수 도로이다 , 자칫 운행중 교행하게 되면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달리다 보니 내비가 작동이 안된다고 하면서 곤혹스러워한다.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국경지역에 전파를 교란하는 영향일 것 같다. 그러니 눈대중으로 달리다 보니 길이 없어진다, 그런데 멀리 농장이 보인다. 나무한구루 없는 지역에 건물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다행히도 건물앞에 젊은이가 있어 사해로 가고 싶은데 길을 잃었다고 하니 자기가 안내해줄테니 따라 오라고 한다. 그래서 그차를10분 따라가니 손짓으로 왼편으로 가면 된다고 하며 자기가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 . 너무 고마운 분이다.
여기는 다른지역과 달리 도로도 넓고 야채들을 경작하는 농장도 보인다 .특히 도로에 방지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어떤 곳은 신호등과 가로등도 보인다
사해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최고다. 가다보니 왼편언덕에 롯의 아내라 하는 소금기둥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사람처럼 보이니 롯의 아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한참을 가다보니 롯이 두딸과 함게 머믈럿다는 동굴입구표시가 니온다 .
소금기둥에서부터 20-30km 떨어진 것 같다
롯의 동굴을 차로 갈수 없고 오로지 걸어서 가야 한다 예전에는 셔틀버스가 다녔는데 요즘은 다니지 않는 다고 한다
올려다 보니 나는 자신이 없다. 요즘 거의 쉼도 없시 다녔더니 몸이 엉망인데 적어도 왕복 한시간은 걸린다고 하니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입구에 있는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박물관에서 인상적으로 본 것은 수천년전 죽은 모자의 시신이 미이라 형태로 보존되어 잇는 모습이다 . 바라보니 내마음이 짠하다
롯의 동굴을 다녀온 일행에게 물어보니 동굴에 생각보다 작고 볼것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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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와디럼 모세마라, 왕의 대로
페트라는 왕의 대로가 아닌 간선도로를 이용하여 갔다. 한시간 30분정도 걸린 것 같다 .
삭막한 광야, 그런데도 가끔씩 마을이 보인다, 돌아보아도 농경지가 보이지 않는데 무었으로 먹고 살까 궁금하다. 요르단 도로는 방지턱이 많아 달리는데 신경을 써야 한다
폐트라는 예전에는 한적한 시골동네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도시화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요르단에서 고가도로를 보았고 가로등이 시내전체와 외곽도로까지 설치되어 있음을 보았다 .
곳곳에 호텔도 많다. 우리처럼 에어엔비를 통한 숙소도 잘 발달되어 있다
값싼 숙소라 그런지 주인은 보이지도 않고 난방시설도 안되어 있다
화장실의 세면대에도 온수는 겨우 겨우 나오니 샤워는 엄두도 낼수 없다 . 아마도 저렴한 숙소비탓인 것 같다.
그러나 밖에 나가니 식당도 마켓도 많이 보인다, 페트라는 평지에 있는 도시가아니라 계곡에 위치하다보니 높은 언덕에도 많은 집들이 보인다
우리는 폐트라를 돌아보고 오후에는 쉬기로 하였다
내일 와디럼 사막을 가야 하는데 오전 9시까지 여행사 사무실에 도착하여야 한다 폐트라에서 와디럼까지는 1시간이상 소요되고 아침일찍 가야 하기에 충분한 휴식을 갖고자 한 것이다 ,나는 며칠 여행에 무리가 왔는지 오한과 기침으로 컨디션이 엉망이다
오전에 폐트라를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예전에 다녀왔던 기억이 있고 몸도 피곤하기에 오후에 쉬었다가 야간에 다시들려보려는데 겨울이라 야간 개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와디럼 사막 투어
와디럼은 페트라에서도 1시간 30분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근처에 적당한 숙소가 없기에 폐트라에 숙소를 정했던 것이다. 폐트라에 9시까지 도착하여야 한다. 와디럼 사막투어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무난한 1박 3식 지프투어를 예약하였다 . 1인당 80불이다. 개조한 지프에 6-8명이 타고 사막을 투어하는 상품이다
9시에 도착하니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지프에 이미 4명이 타고 있다. 다들 유럽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다. 지프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데 바람으로 인해 춥지만 경관은 놀랍다
지프로 옮겨 다니면서 모래언덕을 올라가 보기도 하고 계곡을 탐방하기도 한다. 가끔식 보여지는 텐트가옥은 이곳에 살고 있는 베드윈들이라 하는데 아직도 5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 나오는 곳을 비롯하여 스토리가 있는 지역으로 안내 하는데 사막지역이 무척이나 넓고 오묘하다는 것이다
점심도 베드윈식으로 제공하는데 맛있다
하루종일 지프투어를 하고 숙소로 안내하는데 숙소는 그냥 천막처럼 생긴 것으로 난방시설을 고사하고 세면시설이나 화장실도 없다. 낮에도 화장실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가이드는 와디럼 사막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적당한곳에서 해결하라 한다,
숙소에는 다행히도 밣지는 않지만 전등도 있다.태양광으로 비축된 전기로 사용하는 전구이다 공동의 화장실이 있다고 하나 소변기등은 보여지지 않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샤워는커녕 세면도 적당히 하고 자야 할 것 같다
저녁은 현지 식으로 투어에 참가한 20여명 정도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각자가 알아서 먹을 만큼 가져가서 먹는 식인데 나는 맛있다
그런데 밤에 추우니 잠이 오지 않는다. 사막지역은 낮에는 더워도 밤이 되면 무척이나 춥다. 덮을 것을 더 달라하니 담뇨를 두서너장 가져다 주는데 그래도 춥다. 전화도 안되고 인테넷도 없는 문명에 잠시 떨어져 자연속에서 지내야 하는데 밤하늘의 별들이 그렇게 많고 반짝이는지 신비롭다
소변을 보려 한 밤중에 숙소를 나가니 낙타가 숙소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이곳을 아주 옛날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거쳐 갔다고 한다 . 난 하루도 불편해서 견디기 힘든 곳을 저들은 지나간 것이다. 먹을 것 , 마실 물도 없는 이곳을 어떻게 지나 갔을까? 그때를 상상하여 본다 . 최악의 환경과 싸우며 이곳을 지나 갔을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금 경이롭게 보인다. 그러면서 저들을 이끌었던 모세. 모세란 지도자와 그를 신뢰하고 따랐던 이스라엘 민족.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
이제는 요르단 순례를 마무리하고 돌아가야 한다. 요르단이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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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