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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매 33부 -
현숙이 이모를 따라, 아니 이모에게 이끌려 간 곳은 학교 근처의 중국집이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며 난 어제 박혜숙 선생님과 함께 왔던 곳임을 알았다.
"이 집이 제일 맛있단다. 들어가자"
중국집 안으로 들어서자 출입문 옆에서 턱을 괴고 앉아 부채질을 하던 주인아저씨가 연이와 나를 알아본다.
"아이고, 또 왔나?"
무뚝뚝한 얼굴로 이모를 따라 빈자리를 찾는 내 옆으로 연이가 머리카락을 발목까지 늘어뜨리며 평소보다 더 허리를 숙여 주인아저씨를 향해 인사 한다.
"안녕하세요?"
"오냐, 오늘은 아빠 엄마랑 같이 안 왔나보네?"
아저씨는 어제 함께 왔던 뿔테안경 남자와 박혜숙 선생님을 아빠, 엄마로 알고 있나보다. 아저씨의 오해가 참말이 되면 좋겠지만.
"니들 언제 여기 왔었니?"
연이를 의자에 앉히며 이모가 내게 묻는다.
지금은 이모가 어떤 것을 물어도 입을 열기가 싫다. 마스크 위로 보였던 엄마의 뿌연 눈동자만이 눈에 아른거린다.
자신보다 다리가 긴 의자에 앉아 닿지도 않는 바닥을 향해 발장구를 하던 연이가 신이난 목소리로 나를 대신해 대답한다.
"우리 어저께, 선생님이랑 왔었어요"
연이는 엄마가 무엇을 하려했는지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만일 이모가 없었다면 난 종규를 패 줄때 보다 더 심하게 연이를 때렸을 것이다.
주인아저씨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엽차를 마시던 이모가 한 손 끝으로 연이의 이마를 가볍게 민다.
"아주, 니들 잘 얻어먹고 다닌다?"
잠시 후, 탁자 위로 자장면 새 그릇이 올려 진다.
연이는 신이 나는지 의자를 달그락거리며 자장면이 놓이는 것을 히죽거리며 바라보고 있다.
"와! 이모, 나 이거 지금 먹어도 돼요?"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쥔 연이의 작은 손이 우스꽝스럽다. 손가락만큼이나 굵은 나무젓가락을 행여 놓칠세라 다섯 손가락으로 꼭 움켜쥐고 이모의 말이 떨어지면 금세라도 자장면 그릇으로 달려들 태세다.
"그럼, 먹으라고 있는 걸 안 먹냐, 이 년아?"
이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이는 젓가락을 쥔 손에 자장이 묻을 만큼 면을 길게 늘어뜨리며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연이의 입가가 금세 자장으로 범벅이 된다.
"천천히 먹어 이 년아, 누가 안 뺏어 먹어"
이모의 잔소리에 연이는 잠시 이모를 향해 곁눈질을 하지만 먹는 것을 늦추지는 않는다.
젓가락도 집지 않고 멍하니 탁자 위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이모는 나무젓가락을 갈라 내 앞에 놓아 준다.
"너도 어서 먹어"
탁자 위에 놓인 젓가락을 본 채 만 채하며 몸이 굳어 버린 듯 탁자 위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내게 이모가 이번에는 손수 젓가락을 집어 들고는 내 손에 쥐어 준다.
"식기 전에 얼른 먹어 현아"
손에 들려진 나무젓가락이 무겁게 느껴진다. 이모의 애정 어린 말도 지금은 전부 귀찮기만 하다.
"먹기 싫어요"
느닷없는 내 행동에 이모는 잠시 당황한 듯 놀란 표정을 짓더니 젓가락이 쥐어진 내 손을 잔뜩 힘을 실어 쥐고 자장면 그릇으로 옮긴다.
"얼은 먹으라니까 이 새끼야!"
이모의 짜증 섞인 외침에 난 손에 쥔 젓가락을 탁자 위로 던져 버렸다.
그런 내 모습에 연이는 나무젓가락에 걸쳐진 면을 입에 문채로 이모와 나를 번갈아 보고 이모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잠깐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의자를 당겨 앉고 앞에 놓인 자장면을 먹기 시작한다.
그릇에 담긴 자장면을 반쯤 비운 이모가 탁자 위에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탁자 가운데 놓인 흰 종이를 집어 들고 입가를 닦는다.
"현아"
이름을 부르는 이모가 낯설다.
"현아!"
이모가 날 계속 불러대는 것이 너무나 귀찮고 짜증스럽다.
"왜요?"
"너, 이러고 있으면 엄마가 얼마나 속상하겠니?"
이모의 말에 난 신경질적으로 탁자 위에 놓인 자장면 그릇을 주먹으로 툭 친다. 하마터면 그릇이 탁자 밑으로 떨어질 뻔 했다.
"엄마가 뭐가 속상해? 우리 놔두고 먼저 죽으려고 했는데"
평소 같으면 금방이라도 내 뺨을 후려 쳤을 이모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훅’ 길게 한숨을 내 쉬고는 아무 말 없이 새 젓가락을 집어 들고 다시 내 손에 쥐어 준다.
"네 엄마 오늘 생일인데, 너 까지 그러면 미역국 한 그릇 맘 편히 끓여 먹지 못한 엄마가 얼마나 더 속이 상하겠니?"
이어지는 이모의 말에 난 젓가락을 집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화가 나고 모든 게 짜증스럽지만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정말로 엄마가 어디론가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자장면을 입 안으로 밀어 넣던 연이가 묻는다.
"오빠, 엄마도 생일 있어?"
현숙이 이모도 나도 연이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꾸역꾸역 입 안에 담는 자장면은 어제 박혜숙 선생님과 먹었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맛을 하고 있다. 목젖을 타고 넘는 자장면이 자꾸만 멈춰 서는 듯 숨이 막힌다.
결국, 몇 가락을 입에 담고는 다시 젓가락을 가지런히 탁자 위에 내려놓는다.
연이가 아직 다 비우지 않은 내 자장면 그릇을 바라본다. 벌써 한 그릇을 다 비운 모양이다.
그런 연이를 보던 현숙이 이모가 내 앞에 놓인 그릇을 당겨 들고 그릇에 담긴 자장면을 연이의 그릇에 덜어준다.
"자, 너라도 많이 먹어라"
연이는 잠깐 내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든다.
중국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이렇게 멀게 느껴진 적이 없다. 쉬지 않고 달리면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인데.
연이의 손을 잡고 걷는 이모의 뒤를 난 누군가가 버린 요구르트 병을 툭툭 차며 따른다. 중국집에서 들었던 이모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어느새 전자오락실 앞을 지나고 있다. 지금은 오락실 철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모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현아, 오락 한판하고 갈래?"
플라스틱 요구르트 병을 발로 힘껏 밟아 땅에 짓이기고 있는 나를 대신해 먼저 대답한 건 연이다.
"이모, 나 오락 할 줄 알아요"
"네깟 년이 무슨 오락을 해?"
"나 잘 하는데, 웅..."
"네가 뭘 잘해 이 년아?"
연이의 머리를 툭 치며 이모는 내게 다시 말을 걸어온다.
"현이 오락 좋아 하잖아. 한 판씩 하고 집에 가자, 응?"
이모의 말에 난 요구르트 병을 오락실 철문을 향해 힘껏 걷어차고는 이모와 연이를 뒤로하고 있는 힘껏 달린다.
역전약국에 들러 쌀가게 아저씨에게서 받은 돈으로 마스크 두 개를 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진 돈으로 이것 말고는 엄마에게 생일 선물로 사 줄 게 마땅치가 않다.
집으로 돌아와 다락에 오르자 엄마는 마루에 엎드린 채 걸레질을 하고 있다. 발소리를 들었는지 엄마는 잠시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걸레질을 한다.
천천히 다가가 엄마가 잡은 걸레 앞에 마스크 두개를 내려놓는다.
"엄마, 생일 선물이야"
엄마는 걸레질을 멈추고 내가 놓아둔 마스크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연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왔어?"
내게 말을 하면서도 엄마는 여전히 마룻바닥을 보고 있다.
"그냥, 엄마는 밥 먹었어요?"
마스크를 집어 주머니에 넣은 엄마는 내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다시 걸레를 집어 든다.
한참 걸레질을 하던 엄마가 세수대아에 걸레를 던져 넣으며 말한다.
"연이는 같이 안 왔어?"
엄마는 내가 준 선물이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사 주었는데 엄마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연이를 찾는다.
엄마 걱정을 하느라 자장면도 안 먹었는데 엄마는 내가 내민 선물을 보고 웃지도 않는다.
"쳇, 엄마는 내가 선물 하는데 좋아하지도 않네 뭐. 에이씨, 그 계집애 좀 있다 이모랑 같이 올 거야"
퉁명스럽게 내뱉은 내 말에도 엄마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평소 같았다면 벌써 걸레를 집어 들어 내게 던졌을 것이다.
엄마는 걸레가 담긴 세수대아를 들어 올리며 나무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엄마의 모습이 계단을 밟는 소리와 함께 낮아질 때 쯤 엄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엄마 좋아. 누가 준 생일 선물인데 엄마가 안 좋아?"
그런 엄마의 말에 언짢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든다.
"엄마, 정말 우리 놔두고 어디 멀리 가려고 그랬어?"
세수대아를 들고 다락을 내려가던 엄마가 멈칫한다.
"엄마, 정말 어디 가려고 그랬어?"
나무 계단을 반쯤 내려가던 엄마는 다시 다락에 올라 세수대아를 마루에 내려놓고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와 키를 맞춘다.
"엄마가 어딜 가 이 녀석아"
"근데, 왜 그랬어?"
내 물음에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던 엄마는 금세 다시 얼굴을 들어 내 눈을 천천히 훑어본다. 내 머리카락도 만지고 내 눈썹을 이리 저리 살펴도 보고, 내 눈동자와 마주치기도 하고, 거칠어진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짚기도 하고.
"우리 현이가, 엄마 말 잘 듣고, 말썽 안 피우고, 동생 잘 데리고 다니면 엄마는 아무데도 안가 이제"
아까처럼 엄마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지는 않지만 엄마의 눈동자는 몹시 흔들리고 있다.
"연이 왔니?"
현숙이 이모의 목소리다. 어느새 여인숙으로 돌아온 모양이다. 연이와 함께 있었으면서 이모는 여인숙 안에서 연이를 부르고 있다.
금세 다락에 오른 이모가 내게 묻는다.
“현아, 연이 안 왔어?”
"이모랑 같이 있었잖아요"
순간 이모의 두 눈이 몹시 커진다.
"연이 아직 안 왔어?"
"안 왔는데요?"
"어? 아까 오락실에서 오락하고 있다가 연이 안 보이길래 집에 먼저 갔나보다 하고 왔는데?"
이모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엄마가 부리나케 다락을 내려간다.
"아씨, 이모가 데리고 있었으면서"
이모에게 그렇게 쏘아붙이자 이모는 곧 엄마를 따라 나무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 외에는 다녀본 적이 없는 연이다.
다락을 내려와 집을 나서자 엄마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벌써 저만치 앞서 뛰고 있다. 엄마가 이렇게 달리기가 빠른지 처음 알았다.
한참을 달려서야 겨우 엄마를 따라 잡는다.
오락실 근처에 도착하자, 엄마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두리번거린다. 엄마가 내가 학교 가는 길에 들르는 오락실이 어디인지 알 턱이 없다.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엄마를 앞서 오락실로 향한다. 하루 종일 정말 많이 뛰었는데도 지금은 숨이 차오르질 않는다.
오락실 철문 앞에 도착해 여기라는 손짓을 하자 엄마는 쏜살같이 철문을 열고 들어가 오락실 안을 구석구석 살핀다. 이모도 엄마를 따라 오락실 안을 둘러보고 오락실 밖으로 나가 이리저리 둘러도 본다.
연이가 없는 것을 확인한 엄마가 금세 오락실을 나와 다시 여인숙 쪽으로 뛰어간다.
‘이 계집애, 어디 있는 거야? 이번에는 정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연이가 무척이나 밉다. 이번에는 엄마나 이모에게 혼이 나더라도 꼭 연이를 패줄 것이다.
여인숙으로 돌아와 다락에 오른 엄마는 연이가 보이지 않자 다시 밖으로 나와 동네가 떠나 갈 듯 연이를 부른다.
"연아"
이모와 나도 서로 시선을 나누고 이리저리 살피며 엄마를 따라 연이를 부른다.
"연아! 연아!"
몇 번을 그렇게 연이의 이름을 부르고서 엄마는 성큼성큼 파출소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땅에 커다란 발자국을 그리는 엄마의 버선발이 어느새 검게 변해 있다.
파출소 앞에 도착하자 마침 용희 아저씨가 두툼한 유리문을 열고 나오고 있다.
용희 아저씨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 부터 이 곳, 역전 파출소에 있었다고 한다. 가끔 나를 목마를 태워 동네를 돌기도 하고 용산역 광장에서 야구를 할 때면 치기 좋은 공을 던져 주기도 한다.
몇 달 전에는 우리 집에 찾아와 엄마에게 쌀 한 되와 밀가루 한 포를 건네주기도 했다.
용희 아저씨는 항상 웃는 얼굴로 보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아주 멋진 경찰아저씨다.
동네사람들 모두 용희 아저씨를 매우 칭찬하며 좋아한다. 주인 할머니는 그런 용희 아저씨를 순사양반이라 부른다.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용희 아저씨를 부른다.
"박 순경님?"
"아, 연이 엄마 안녕하세요? 별일 없으시죠?"
엄마는 용희 아저씨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다시 아저씨를 부른다.
"박 순경님, 혹시 우리 연이 못 보셨어요?"
"연이요?"
"네, 우리 연이 못 보셨어요?"
용희 아저씨는 초여름 햇볕이 따가운 듯 손바닥을 넓게 펴고 짙은 눈썹 가까이에 붙이며 길 건너 용산역을 둘러본다.
"가만있자. 아, 저기 있네요 연이"
용희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용희 아저씨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서는 연이가 큼지막한 포대를 끌며 횡단보도를 향해 뒷걸음질 치고 있다.
어느새 엄마는 굉음을 내며 지나는 차들을 본 채 만 채하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어찌나 정신없이 길을 건너는지 바로 옆으로 차들이 달리는 것도 보지 않는다.
그 순간.
“끽”
연이를 향해 달리는 엄마 옆으로 삼륜트럭 한 대가 급하게 멈춰 선다. 하마터면 삼륜트럭에 부딪힐 뻔 했다.
트럭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운전사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 씨팔. 차 좀 보고 다녀“
엄마는 운전사의 욕지거리도 들리지 않는가보다. 엄마의 눈은 오직 연이만을 향해있다.
화가 많이 났는지 운전사 아저씨가 씩씩거리며 엄마를 향해 다시 한 번 소리친다.
“죽어 싶어 환장 했네 여편네가. 에이 씨팔”
아저씨의 욕설과 함께 트럭이 다시 움직인다.
엄마의 뒤를 따르던 현숙이 이모가 내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트럭을 향해 소리친다.
"너나 사람 잘 보고 다녀, 이 새끼야“
서서히 움직이던 트럭이 다시 멈춰 서고 또 다시 고개를 내민 운전사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며 이모에게 소리친다.
"에라, 쌍년아“
그 소리에 이모가 다시 트럭을 향해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트럭은 급히 속도를 내며 순식간에 멀찍이 가버린다.
엄마는 연이를 보자마자 연이의 등을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려치고, 놀란 연이는 쥐고 있던 포대자루를 놓으며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얼마나 놀랐는지 연이는 '짝' 소리가 크게 날 만큼 등을 세게 얻어맞았는데도 두 눈만 크게 뜰 뿐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는다.
"너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엄마의 다그침이 이어지자 연이는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웅, 훙..."
"엄마 말 안 들려? 여기서 뭐 했어?"
연이의 얼굴은 벌써 검게 그을려 있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두 뺨에는 검은 줄기도 여러 개 그려져 있다.
"뭐 했냐니까? 대답 안 해?"
엄마의 거센 다그침이 계속되자 연이는 그제야 포대 앞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훙... 앙..."
"울긴 왜 울어? 엄마 말 안 들려?"
어찌나 크게 울어 대는지 연이는 뭔가 말을 하려 하는데도 중얼거림만 새 나온다.
"웅... 나..."
“뭐”
“웅... 나, 나... 엄... 하...”
"뭐라고?"
"나... 나, 엄마... 엄... 마... 생일... 엄마... 하드... 사 주려고..."
울먹이며 흐릿하게 내 뱉는 연이의 말에 엄마는 이내 무릎을 꿇고 연이를 끌어안는다.
"엄... 엄마, 잘... 잘 못 했어... 잘 못 했어...앙..."
엄마는 잠시 연이를 떼어내 연이의 두 볼을 닦아 주고는 다시 연이를 와락 끌어안고 이젠 연이 보다 더 큰 소리로 연이와 함께 울기 시작한다.
"아니야 연아, 엄마가... 엄마가 잘 못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