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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주도 여행,정착 길라잡이 원문보기 글쓴이: 블루오션
중문에서 서귀포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삼매봉은 서귀포의 구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아담한 높이의 봉우리입니다.
외돌개와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바다풍경은 입을 다물 수 없는 곳이며 제주올레 7코스가 지나가는 곳으로
그 봉우리 동쪽으로 서귀포문화예술회관을 짓는 공사현장이 있고,
그 옆으로 외돌개와 서귀포항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기당미술관으로 올라가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삼매봉 안자락에 위치한 기당미술관은 도심과 조금 떨어져 있고 순수미술의 전시 기획과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초청을 받은 변시지 화백의 그림이 상설로 전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미술관입니다.
그 이유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중적인 기획 프로그램과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 등의
지속가능한 컨텐츠의 부재가 아닌가 합니다.
미술관이 워낙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인상이 있다 보니 미술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일단 진입로 아래의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2층 높이의 동그란 건물 형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기당미술관은 마치 작은 오름처럼 아담한 원형이 여럿 모여 있는 형상이어서 한 바퀴 도는 내내 원형을 만날 수 있습니다.
먼저 동쪽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보니 2층 높이의 원통형을 제대로 볼 수 있는데 제주석과 유리를 적절히 섞어놓아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은 묘한 쾌감마저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건축물을 본다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작은 미술관 크기로 수장고나 자료실이 부족해서 그런지 창문 안으로 보이는 정리되지 않은 내부의 모습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이 정도의 건축물에 이 정도의 내부 공간에 이 정도의 외부환경이라면 카페로 이용해도 충분하리라고 생각됩니다. 미술관에 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미술관에 오는 길이 훨씬 가볍지 않을까요? 더욱이 미술관을 한바퀴 도는 길이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으니 미술관에 와서 가벼운 산책과 함께 향기로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합니다.
뒤로 더 돌아가보면 나타나는 서측면에서는 원통형 세 개가 나란히 있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최근 지어지는 건축물 대부분이 직선적이기 때문에 기당미술관처럼 원형의 모양을 가진 건축물이나 특히 이렇게 세 개의 원형이 있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데 그 모습이 주변 나무들과 어울리며 신비롭게 보입니다. 그런데 미술관 뒤편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일까요? 무덤덤하게 서 있는 에어컨 실외기가 신비감을 깨고 있어 아쉽군요.
서측면에서 인상적인 모습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주에서 건축을 할 때 건축가들이 늘 고민하는 부분이 제주다움이라는 것입니다. 제주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제주에서 나는 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제주석은 화산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현무암입니다. 구멍이 많고 검은 색을 띠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구멍이 많다보니 다른 돌보다 가볍고 독특한 형태와 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햇빛이 비치지 않는 북측면에서는 습기 때문에 이끼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이끼가 끼는 것에 대해 안좋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건축물이 자연에 가까워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건축물 외관의 미적 요소로 사용해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제주석은 무르기 때문에 큰 판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작은 네모 조각을 만들어 시멘트 모르타르로 콘크리트에 바로 붙이는 습식공법으로 공사를 했습니다. 시멘트 모르타르를 이용하려면 물을 사용해야 하는 데 물을 사용한다 해서 습식공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멘트 모르타르로 붙일 때는 하얀 가루가 물과 함께 흘러나와 검은 제주석을 하얗게 물들여 보기 흉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백화현상이라고 하는데 제주석을 습식공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물을 사용하지 않고 제주석을 콘크리트벽에 철물로 부착하는 건식공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당미술관은 오래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기 때문에 습식으로 제주석을 붙였는데 하나는 거친 네모난 제주석을 가지런히 붙인 것이고 또 하나는 주변에 있는 규격화되지 않은 막돌을 잘라 붙였습니다. 거기에 콘크리트의 매끈한 면이 대비되면서 제주석의 거칠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잘 살려냈습니다. 이런 모습이 제주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미술관 입구 방향에서는 미술관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없어 지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데
뒤로 돌아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니 멋드러진 지붕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친 제주석을 기본으로 물갈기한 제주석을 띠로 두르고 콘크리트 노출면에 하얀 페인트를 칠한 벽면은
그야말로 제주석을 가장 잘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원뿔 모양의 지붕에는 제주석을 얹어 놓았는데 막쌓은 어두운 제주석에 시멘트벽돌로 띠를 둘러
반구의 천창 중심으로 집중되도록 섬세한 디테일로 연출한 것은 그야말로 감동이었습니다.
제가 기당미술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서귀포를 바라볼 수 있는 삼매봉 옆에 있어서
기당미술관 옆에만 서더라도 한라산과 서귀포 시내를 훤히 내다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삼매봉 꼭대기의 팔각정에서 보는 풍경이 훨씬 좋겠지만 미술관 마당의 조각들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예술적이기까지 합니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오솔길도 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도심 가까이에서 때묻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제주 특히 서귀포의 특권일 것입니다.
지금은 서귀포문화예술회관이 지어지고 있어 풍경이 별로이지만
서귀포의 문화예술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감내할 만 합니다.
기당미술관 내부로 들어서면 동그란 형태의 바깥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 대 전시실도 동그란 공간을 벽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그 벽 바깥을 경사로 올라가면 또다른 전시실이 나옵니다.
이동경로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그림을 만날 수 있으니 미술관으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바깥에서 기당미술관을 볼 때 원통 위에 원뿔을 얹어 놓은 형태인데 내부로 들어오더라도
벽과 지붕이라는 껍질을 벗겨놓으면 나올 듯한 알맹기 공간을 솔직하게 볼 수 있어 구조에 의해
공간이 정해지는 근대건축 이전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지어져 현대건축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앞선 시대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건축 특징을
잘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원활한 전시를 위해 조명 등을 설치하기 위해 원래는 없었을 목조 프래임을
지붕 하부에 설치함으로서 단순한 콘크리트면을 복잡하게 만들어 전시에 집중하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용이 가능할까요?
원래의 공간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기당미술관은 미술관으로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벽을 하얀 페인트로 칠하긴 했지만
완벽한 화이트큐브를 지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벽 높은 곳에 뚫린 창문과 중정에서 들어오는 햇살은 작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기당미술관에 여러번 방문한 경험으로 볼 때 작품에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건축가의 세심한 설계가 돗보이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쉬운 것은 미술관 전체가 물 흐르듯 작품 관람 동선이 이루어지도록 설계가 이루어졌지만
명예관장으로 계시는 변시지 화백의 그림을 독립적으로 보여줄 전시실을 만들기 위해
원래는 없었던 벽을 세워 공간을 구획했다는 것입니다.
변시지 화백은 서귀포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로서 개인적으로 선생님의 그림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화가의 작품에 손상이 가면 안되듯이 건축가의 건축에 변형을 가하는 것은 늘 안타깝습니다.
건축가에게 빛은 공간을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공조명이 등장한 이후에 햇빛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들고 경관조명 등으로 인위적인 조명이
나름 각광받고는 있지만 건물 안으로 스며드는 햇살과는 느낌이 전혀 틀립니다.
그래서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물 안에 햇살이 들어올 수 있게 다양한 방법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근대건축의 거장 중 한명인 르 꼬르뷔지에의 롱샹교회, 루이스 칸의 킴벨미술관,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 등의 건축물을 보면 선사시대에 인류가 가졌던 빛에 대한 경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당미술관에서도 빛을 실내에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천창과 고창을 만들었습니다.
천창은 지붕 위에 만들어진 창이고, 고창은 벽 윗부분에 만들어진 창을 이야기하는데
특별한 목적이 아니고는 잘 만들지 않는 창입니다.
하지만 굳이 천창과 고창을 설치하여 빛을 받아들이려고 하는데는 빛이 가진 성질을 통해
내부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제주적인 건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조심스럽게 기당미술관을 꼽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제주에서 나는 재료인 제주석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근의 삼매봉의 경관을 해치지 않고, 제주의 집처럼 높지 않으면서 아담하게
땅에 얹혀 있는 모습이 제주의 전통적인 건축방식입니다.
세 번째는 제주적 공간을 재해석해서 진입부와 함께 내부 중심공간을 마당으로 보고
또다른 원통형들을 제주건축의 특징인 안거리 밖거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이 모든 공간들이 위계 없는 민주적인 평면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모두 같이 살았던 수눌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는 높이를 통해 한라산을 통해 나타나는 오름(오름이 아닌 오르기의 오름입니다)의 현상을
자연스럽게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원형을 이용한 매스형태는 오름이라는 제주의 시각적 아이콘을 반영함으로서
지역성을 이야기하는 거의 대부분의 언어가 기당미술관에 녹아 있습니다.
기당미술관은 지역작가의 그림을 많이 보여주는 미술관으로서 제주의 미술과 제주의 건축을 감상하기에 충분합니다.
더욱이 인근 시공원에서는 아름다운 시를 바위에 새겨 놓아 천천히 시를 음미해볼 수도 있고,
다양한 공공미술작품들이 있어 예술을 즐기기에 좋은 곳입니다.
제주에는 아름다운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그림과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는 제주여행은 어떨까요?
<글/사진 이승택 이세환건축사사무소 소장, 문화도시공동체 쿠키 대표. 제주대 건축학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