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관 신부의 나가사키 순례기 11 . 운젠지옥 온천
다음날 아침, 서둘러 7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했습니다. 순례여정 중 하이라이트의 날이기에 일찍 출발한 것입니다.
시마바라 반도의 해안을 구불구불 지나면서 아침성무일도를 바치다보니 어느 듯 험준한 산간 도로를 오르게 됩니다.
운젠 지옥온천 계곡을 오르는 것입니다. 군데군데 조금씩 살짝 얼어붙은 빙판이 오르막 커브 길에 나타납니다. 전날 저녁에 한국으로 전화해서 친지에게 한국 날씨를 알아본즉, 서울의 기온이 섭씨 영하12도이고 충청도 서해안엔 폭설이 내렸답니다.
한국보다 위도 상 훨씬 남쪽인 규슈 지방이지만 산허리엔 간간히 눈이 쌓여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대설(大雪)입니다.
대설추위가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일본에도 그 여파가 미친 것 같습니다. 운젠 산길 울창한 숲 사이사이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조금씩 보이는 뿌연 하늘에서 겨울 해는 아무런 기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 험준한 산이 품고 있는 사연
버스로 오르는 산길, 이 산길은 끌려 올라가던 옛적의 순교자들이 산모퉁이마다에서 귀를 잘리는 고문을 당한 능욕과 고난의 길입니다.
운젠 지옥온천 계곡까지 오르는 동안 순교자들은 이미 손가락 발가락 두 개씩 잘려서 양손과 양발의 손가락 발가락 세 개씩으로 짐승 취급을 당했답니다.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니 손가락 발가락이 짐승과 같아야 한다.”면서 끌려오다가 혹시라도 도망치면 즉시 알아 볼 수 있도록 귀를 잘렸답니다.
짐승의 형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놓고 ‘절지단(切支丹)’이라는 글자를 이마에 인두로 지져 새겼답니다. 그런 ‘절지단’을 일본말로 ‘기리시단’이라 읽는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뜻이 아니라 손과 발이 짐승의 것처럼 되었다는 뜻이랍니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시기에는 그렇게까지 잔인한 고문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여기 일본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그렇듯 야만적인 고문을 당했습니다.
여기 일본에서는 과거에 어찌하여 그리 야만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괴롭혔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신자들을 단번에 죽이지 않고, 고통의 시간을 최대로 늘려가면서 조롱하다가 죽이던 그 야만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일본 순교성인들 중 우치보리 바오로 성인이 계십니다.
‘시마바라 아마쿠사의 난’ 후에 체포된 분입니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성인의 아들을 끌어다 놓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아들 손가락을 몇 개나 잘라줄까?” 아버지로서 차라리 자신의 손가락이 잘려나가야 덜 괴롭겠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들을 묶어 바다 속에 집어던지자 파도 위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치보리 성인은 아들의 수장되는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인의 의연함을 바라보던 군중 가운데 이미 천주교를 그만두겠다고 배교했던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천주교를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박해자들이 격분하여 우치보리와 그 회개한 신자들을 끌고 간 곳이 운젠(雲仙)이었습니다.
■ 운젠 지옥온천
운젠의 노천온천 계곡을 일컬어 오늘날 ‘운젠 지옥온천’이라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구덩이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오는 뜨거운 온천물이 계곡에 철철 흘러내리는데 그걸 많은 호텔에서 송수관으로 끌어갑니다.
호텔이 오늘날처럼 많이 생기기 전에는 큰 냇물처럼 뜨거운 물이 흐르면서 떠오르는 수증기가 구름처럼 하늘에 퍼지는 것이었지요. 가히 지옥 계곡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계곡 아래의 수많은 호텔마다 연결된 파이프로 온천수를 끌어가는 바람에 냇물 형상의 뜨거운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여기저기 큰 바위 사이의 구덩이에서 폭발소리를 내면서 물과 수증기를 뿜어내는 형상은 땅속 지옥의 구멍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지옥 구덩이 형상의 뜨거운 물 소용돌이 속에다가 천주교 신자들의 몸을 거꾸로 담그면서 배교를 강요했습니다.
그것도 풍덩 집어넣어 단번에 죽도록 하지 않고 귀가 잘린 머리를 반쯤 넣었다가 꺼냈다가 조금 더 깊숙이 넣기를 반복하며 상처투성이의 온몸이 다 익혀 죽을 때까지 오랜 시간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렇게 바오로 우치보리 성인과 또한 함께 잡혀온 신자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분들 후에도 끊임없이 천주교 신자들이 잡혀와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그 신자들을 절벽 위 바위 위에서 밧줄로 묶어 거꾸로 그 지옥 구덩이에 담그면서 죽이던 곳에 나가사키 대교구가 자그마한 돌 십자가와 기념비를 세워 순교 터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곳 기념비에는 그렇게 순교한 분들 중 신원이 밝혀져 전해지는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이름들의 주인공들은 시복식 시성식을 통하여 기억되는 분들입니다만, 이름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의 수는 더욱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 순례자들이 운젠의 그 지옥온천 계곡에 도착하던 시간은 이른 아침나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또는 추운 겨울이어서인지 우리의 순례자들 외에는 방문객들이 없었습니다.
낮 시간에는 많은 방문객들로 지옥온천이 소란스럽습니다만, 우리 순례자들 방문 시간에는 한가로운 분위기로 순교터 기념비 앞에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의 믿음’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이 많을 때에는 계곡 입구와 출구에서 아줌마들이 그 온천계곡 구덩이에서 직접 삶은 계란을 판매합니다만, 이번의 우리 순례자들은 그 아줌마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계곡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물소리가 들리지만, 순례자들이 걷는 탐방로에는 군데군데 얼음과 눈들이 쌓여있어서 조심조심 운젠지옥을 빠져 나와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다시 내려오는 산길의 버스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옛적 순교자들은 지옥을 빠져나가 하늘에 오른 분들이건만, 오늘 우리 순례자들은 지옥을 빠져나와서 세상에 돌아가고 있다고…!
자료: 대전교구 윤종관.가브리엘 신부
해미 성지조성, 하부내포성지[서짓골,도앙골,삽티]조성 담당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