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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폐셜 16회 '영상복원 - 해상왕국 고려의 군함' (1999.03.20.)
20부 : 영상복원 - 해상왕국 고려의 군함
영상복원 - 해상왕국 고려의 군함
방송일: 19990320 조회수 : 2647번 읽음
동영상 : 줄거리:
역사스페셜 (제 20 회) 99년 3월 20일(토) 방송
[영상복원 - 해상왕국 고려의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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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O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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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오프닝]
MC 1S 고려는 아직까지 많은 부분에서 베일에 싸여있는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유물 유적은 물론 역사서적도 풍부하지 못한 편이어서 고려를 속속들이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고려가 백제 ,가야 ,발해 ,통일신라의 장보고를 잇는 우리 역사상 마지막 해상왕국
이었다는 점입니다.
고려가 해상왕국이었다는 그 단적인 증거는 바 로 고려의 군함입니다.고려에는 우리가 상상 하지 못할 정도로
위력적인 군함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 라가 그 고려의 군함을 영상복원해 보려합니다.
몽고원정 그림 나오고 자 이그림을 보시죠.
이것은 고려와 몽고 연합군이 일본 원정을 떠 났을때의 전투상황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
13세기 당시 동아시아를 뒤흔들었던 이 국제전 쟁속에 고려 군함에 대한 단서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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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1](나레이션)
거리 트래킹 7 (자막 뜨고)
700년 전의 전쟁을 일본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
특파원 걸어 가고 13
일본에서도 당시의 기록은 무척 희귀한 편이라고 한다.
마침 사이타마현 박물관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박물관 내부 팬 9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된 것은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유물의 복사본이었다.
줌인 그림 8 (2초 후)
'몽골습래회사'.바로 여기에 고려몽고연합군의 일본 원정이 담겨 있다.
말탄 무사들 8
그림은 당시 연합군에 맞서 싸웠던 한 일본인 무사의 활약상을 커다란
무사 타이트 3 줄거리로 삼고 있다.
무사 타이트 3 (보고)
활쏘는 손에서
얼굴 8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물체는
말머리 3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돼 있었다.
무사들 3 (보고)
그림 풀샷 7 이 그림을 통해 700년전의 상황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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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우찌 유꼬 인터뷰 당시에 사용되었던 갑옷,무기,배 등의 모습을
참전했던 사람이 화가에게 전달하여 그리게 했기 때문에 틀린 부분이야 있겠지만 상당히 정 확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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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17 (4-5초 후)
고려 몽고연합군의 일본 원정은 모두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제 1차 원정이 있었던 때는 127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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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 줌아웃 배풀샷 13 (2-3초 후에)
9백척의 전함과 2만 8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여몽연합군은 큐슈 하카다 항구에 상륙한다.
공격하는 몽고군
그림 6 이곳에서 그야말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데,몽고군에서
일본무사 10 강력한 무기와 전투력의 우세로 연합군은 일본 무사들을 물리치고 대승을 거둔다.
피흘리는 일본무사 6 무사들의 처참한 패배로 일본의 방어선이 무너지자,
글씨 팬 몽고군 풀샷 9 그 기세를 몰아 연합군은 큐슈 일대를 휩쓸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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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군 틸다운 고려군 16 단 하루만의 공격으로 대승을 거둔 연합군
은 다음날 철수하는데,제1차 원정은 일종의 무력시위였던 것이다.그러나 이 전쟁은 일본
을 두렴움 속으로 몰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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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루 훑고 16 (3-4초후)
그 이듬해, 일본은 고려 몽고 연합군이 다시 침 략해 올 것에 대비하여 돌로 방루를 쌓는다.
그래서 그 이름도 몽고방루다.
그림의 방루 팬 11 현재는 방루의 일부만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당시 이 방루의 길이는 20킬로미터에 이르렀다 고 한다.이 그림에서도 그 몽고방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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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 책 6 그런데 유목민족인 몽고가 어떻게 바다를 건너
일본 핀 조명 줌인 6 일본 원정을 할 수 있었을까?
중국의 기록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글씨 나오고 고려는 3만 5천명을 동원하여 불과 4개월만에
9백척의 전선을 만들었다.대선 3백척,중형선 3백척,보급선 3백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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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반도 트래킹 14 (3초후)
그때 군함을 만든 곳은 지금의 변산반도로
기록되어 있다.이 해안의 어디쯤일까?
마을 풀샷 8 전북 부안군 구진마을. 이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조선소가 있었다는 흔적이 발견 되었다.
피디님 할배랑 말씀 8 (2-3초후 )
이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통나무가 하나 버려 져 있다.
통나무 팬 12 일제시대인 1930년대,뻘을 개간하기 위해 흙을
파냈더니 그 속에서 이런 통나무가 셀수도 없 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표피 타이트 6 처음 발견됐을 때 나무의 크기도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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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 할아버지 인터뷰 아름드리 같은데 썩은 부분을 벗겨내고도 이것 보다 훨씬 컸다.
(이런게 몇 개나 나왔죠?)수도 없이 나왔다.썩은 것도 있고 ..
(뻘 속에서요?)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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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님과 할아버지 8 도대체 이 통나무는 어디에 사용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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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 풋샷 4 통나무들이 발견된 바로 그 뻘이다.
CG 통나무 우리의 전통적인 배는 이렇게 통나무받침대 위에서 만들어졌다.
배가 완성되면 굴리듯이 밀어서 바다로 운반했던 것이다.
이렇게 배를 받치고 있는 통나무들을 바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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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원경 팬 14 (2-3초 후)
바탕이 발견된 것은 이곳에 조선소가 있다는 증거였다. 바로 이곳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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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 할아버지 인터뷰 노인들 얘기로는 여기가 (수군)진터라서
이런게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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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인터뷰 최근까지도 곰소에서 배를 만들었다.
옛날 그 전통적인 배는 여기서 다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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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올라가는 피디 8 (3-4초 뒤에)
조선소가 있었던 자리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마을 뒷산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했다.
나무들 16 6.25 이후 심은 것들이라 수령이 4-50년 밖에
안됐는데도 제법 아름드리였다.무엇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줄기는 배를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재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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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인터뷰 이규보가 서른두살 때 여기 벌목 책임자로 왔 었는데 변산의 나무가 어떻게 좋던지 나라의
창고나 다름 없었다 그런 기록이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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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뻘 16 그러다면 이곳은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춘 조선소 자리가 분명했다.
아마도 고려인들은 이 곳에서 군함을 만들며 일본 원정을 준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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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정 배 그림 7 1281년 제 2차 원정에서도 고려에서 만든 900척의 배가 동원된다.
쓰러진 몽고군 13 그런데 이 원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 어난다. 여몽연합군이 대참패를 당한 것이다.
일본군 타이트 5 몽골습래의 그림에도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화살맞는 몽고군 10 실제로 당시 여몽연합군을 물리친 주역은 일본 군이 아니라 신의바람이라 불리는
카미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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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원사 4 당시 상황을 묘사한 원사의 기록에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자막 나오고 "원나라 전선들은 모두 돌풍에 깨어졌으나 고려의 배는 대부분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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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줌인 물레 8 신의 바람 ,카미가제에도 끄덕 없었다는 고려의 배,고려의 군함은 과연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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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2]
그림 뒤에 있고
MC 그림 가리키며 이 그림 속의 배가 고려인들이 만든 바로 그 군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려인들이 3-4개월만에 900척의 크고 작은 배를 만들었고, 그 배가 카미카제에도 부서지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은 역사 기록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서가 생기고 그렇다면 고려인들은 짧은 시간안에 무척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얘긴데요.
고려사 책 빼고 고려사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원정에 앞서 배를 만드는 책임자였던
김방경이란 사람이 한 말입니다.
옆에 글씨 생긴다.
"중국식으로 만들면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먼저 전라도에서 우리식으로 배를 만들겠다"
우리식으로 배를 만든다...
과연 우리식이란 어떤 것일까요?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럼 지금부터 고려의 군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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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2]
길 트래킹 4 (보고)
작업실로 들어가고 7 고려의 군함은 어떤 모습일까?
이원식 선생 보이고 10 취재팀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작업실을
찾았다. 평생을 우리배 연구에 바쳐온
망치로 치는 이선생 8 이원식 선생.지금 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이 배가 우리의 전통적인 목선이다.
끌 타이트 2 고려 배의
나무배 팬 15 기본 구조도 이 목선처럼 바닥이 평평하고
배의 앞뒷면이 유선형이었다.그렇다면 고려에는 어떤 종류의 배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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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도경 표지 6 고려도경은 12세기에 고려를 방문했던
송나라 사신 서긍의 기행록이다.
책장 넘기고 4 서긍이 직접 보고 관찰한 사실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고려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줌인 주즙 14 거울과도 같은 책이다.이속에 고려의 배에 관한 기록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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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선 7 서긍이 본 고려의 배는 모두 네가지 순찰용 배인 순선과
관선 7 오늘날의 행정지도선에 해당하는 관선
송방 7 묵은 소나무로 튼튼하게 만든 커다란 송방
막선 7 강판 위에 장막으로 커다란 방을 만든 막선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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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줌아웃 7 우리의 기록인 고려사에는 또 다른 배 이름이 나온다.
대선과 과선 나오고 7 큰배인 대선과 창이 달린 과선 ,이것은 모두 군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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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실 팬 이원식 9 이원식 선생의 도움을 얻어 당야한 고려의 군함을 복원해 본다.
그리는 손 5 중요한 것은 고증된 사실을 토대로 정확한 설계도를 그리는 일이다.
고려과선 4 먼저 과선의 설계도가 완성됐다.
과선 설계도 풀샷 4 과선의 가장 큰 특징은
방패와 창달린 배 팬 13 배 난간에 달려있는 방패와 창이다.
과선은 실제 해전에서 사용돼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한 고려의 대표적인 군함이다.
일본 원정 그림 7 일본 원정그림에서도 방패가 달려있는 고려의 배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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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 (이원식 선생 설명) 현종이 즉위하자 과선 75척을 만들어서 박진명구 지금은 명주군 근처 거기에다가
정박하게 하고 동북해젹을 막는데 썼다.이것으로서 동북해적을 막았다.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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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는 사람들 5 완성된 과선의 설계도를 가지고 이번엔
설계도 틸업 모니터 8 그래픽 작업실을 찾았다.
얼굴 타이트 2 (보고)
모니터에 배 구조 14 그래픽으로 배한척을 지으려면 최소한 3천개의 선이 필요하다.
완벽한 곡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2-3만개의 선을 그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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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밑그림에 바닥생기고 8 고려의 배는 땟목처럼 통나무를 이어붙여 바닥을 만든다.평평한 바닥,
그래서 펑저선이라고도 한다.
앞 뒷판 생기고 6 배의 앞 뒷면 역시 평평하게 막는 것이 고려배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옆면 올리고 6 옆면은 두꺼운 판자 일곱쪽을 대어서 튼튼하게 세우고
가로 칸막이 3 배내부엔 가로막을 대서 배의 골격을 유지한다.
두 개의 돛대 생기고 4 돛대는 앞 뒤 두 개를 세우고
갑판 만들고 4 판자로 갑판을 씌운다.
닻물레 키 만들고 5 닻과 물레 그리고 키가 있었다.
물위에 떠있는 배 4 이런 기본 구조에 과선의 특징은 방패 창 생기고 13 배 난간에 방패와 창이 빈틈없이 꽂혀
있다는 것이다.(쉬고)
이것이 고려의 군함,과선이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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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 사료책들 6 그런데 일본의 기록속에 고려의 군함과 관련된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소우기 풀샷 5 [소우기]에 의하면 고려의 군함은
자막 나오고 6 배 앞면에 철로 뿔을 만들어 적의 배를 맞받아 부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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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넘기고 14 (2-3초)배 앞에 뿔이 달린배,이런 독특한 모양의 배가 사용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서양 배그림 3 고대 서양의 배에서 뿔이 달린 배를 발견할
배 앞에 달린 뿔 10 수 있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고려가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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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 이원식 2S 7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배에 뿔을 달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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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에 이원식 설명 이 앞에다가 아름드리 이상되는 큰 통나무 앞에다가 감투를 씌운다고 그러죠.쇠감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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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면 5 설계도를 만들어 과선에 뿔을 달아보기로 했다.
그래픽 배에 쇠달고 4 뿔이 윗부분에 위치하면 적의 배를 부수기가 어려울 것이다.
아래로 옮기고 6 뿔의 위치는 배의 아래쪽이 아니었을까
적의 배 공격 7 뿔이 달린 고려의 군함은 이렇게 적의 배를 침몰 시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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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철갑지붕 7 조선시대의 무적군함 거북선.지붕에 쇠못을 꽂아둔 과선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돌진하는 거북선 6 또 적을 향해 과감하게 돌진하는 거북선의 앞머리에는 역시 고려의 군함에서처럼
거북선 팬 충돌 7 쇠뿔이 달려 있다.(보고)거북선의 원형은 바로 고려의 군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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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줌인 11 그렇다면 고려 군함의 실제크기는 얼마나 됐을까?고려사에는 태조 왕건이 군함중에서 가장
대선 글씨 5 큰 대선을 건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16보 글씨 8 대선의 크기는 각방 16보,각방 16보는 36.6미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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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재는 피디 9 (2-3초 보고)
이 운동장에 실제크기의 대선은 세운다면
어느정도를 차지할까?
선그리고 6 우선 운동장에 실제 크기대로 배의 모양을 만들고
아이들 서고 12 6학년 학생들을 그 위에 서게 했다.
250여명의 학생들이 대선의 형태를
완성시켜 나갔다.
아이들+그래픽 배 13 고려 대선의 크기는 이정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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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우 교수 인터뷰 고려는 초부터 큰 함선을 만들었는데 대체적으로 그 길이가 35미터가 넘는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원정할때 큰 배가 대체적으로 3천석에서 4천석을 실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는데 이것을 톤수로 계산하면 대개 250톤에서 280톤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그 뒤에
훨씬 뒤입니다만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할 적에 산타마리아 호가 약 그정도 됐다고 가정한다면 연대적
으로 수백년 앞서서 우리는 이미 그러한 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해상국가였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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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아이들 17 (3-4초 보고)이 거대한 군함이 완성된 것은
천년전이었다.당시 대선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배위에서 말을 달릴만했다고 했다.
아이들+배 10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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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3]
고려의 배 위에 유인촌 서있고 제가 타고 있는 이 배가 바로 고려의 군함입니다.
배 위에 올라와보니 마치 제가 해전에 출전한 고려시대의 장군이라도 된 듯한 기분인데요.
걸어가다 그런데 이 군함에는 몇가지 눈에 띄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대나무 펌프 앞에 서서 먼저 이것을 잘 보십시오. 길다란 대나무 막대에 손잡이가 달려 있는 이것은 대나무
펌프입니다.
왜 이런 대나무 펌프를 설치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볼까요. 아래를 보시죠.
틸다운 배 단면도 -------------------------------------
지금 보시는 것은 배의 단면도입니다.
대나무 펌프는 이렇게 배의 밑바닥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런데 배 바닥에 물이 고여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것은 고려인들의 조선술이나 방수기술이 모자라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고려배는 일부러 배 바닥에 틈을 두었습니다.
사이를 띄움으로써 오히려 충격이나 압력에 더 잘 견딜수 있도록 한 것이죠.
그리고 그 틈새로 올라오는 물을 빼내기 위해서 대나무 펌프를 설치했던 것입니다.
펌프 원리 CG 이 대나무 펌프의 원리는 피스톤의 원리와 같습니다.
손잡이를 밀면 가죽뚜껑이 열리면서 물이 위로 올라옵니다.
이상태에서 다시 손잡이를 당기면 물의 압력에 의해서 뚜껑이 닫히고 위로 올라왔던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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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유인촌 손잡이를 잡고 이렇게 배 위에서 손잡이를 밀었다 당겼다 하면 배 밑바닥에 고인물이 펌프 밖으로
나오고 이 물은 다시 배 난간에 설치된 고랑을 통해서 바다로 빠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무척 과학적이지 않습니까?
또 하나, 고려의 배가 높은 파도와 강풍에도 침몰하지 않았던 비결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비결도 이 배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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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밑바닥 보이고 (CG)
고려의 배는 처음 건조할 때 배 밑바닥에 이렇게 돌을 채워 놓습니다.
돌이 채워지고 이 돌은 높은 파도가 치고 강풍이 불어도 배가 심하게 기울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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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의 유인촌 만약에 배가 가벼웠다면 쉽게 침몰했을 것입니다.그러나 고려의 배는 돌을 이용해서 15도 정도
기울었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무게중심을 잘 잡아놓았던 것입니다.그래서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인촌 걸어가며 고려의 군함에서 또 한가지 눈여겨 볼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화포입니다.
고려는 세계최초로 배에 화포를 설치한 나라입니다.
이렇게 당시로서는 신무기를 배에 설치하고 사용했기 때문에 고려의 군함은 위력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화포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다른 무기를 사용했겠죠, 과연 고려 군함은 어떤 무기들을 갖추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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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3]
길 트래킹 10 (4-5초 후)
고려의 군함에서 사용된 무기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 중앙대학 외경 5 일본 중앙대학을 찾았다.
이시이 교수+특파원 5 중앙대학의 이시이 교수에 의하면 1019년 일본
이시이 교수 1.S 6 의 고문서 속에 아주 특별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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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교수 인터뷰 일본 고기록의 소우기에 의하면 고려전함은 돌에 화약을 넣어서 적선을 부순다고 씌여
있습니다.
즉 입화석타라고 되어 있죠.중국에서도 송나라 후기에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려나 조선의 경우 고려 후기에야 비로소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불화자가 화약이라면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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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기 팬 12 1019년 그 당시 고려의 군함에서 사용된 무기는 과연 돌에 화약을 넣은 것일까?
이것이 사실이라면 역사는 다시 씌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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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그림 풀샷 7 일본원정 그림에서도 독특한 무기가 눈에 띈다.
화약 줌아웃 11 일본무사를 향해 공중에서 폭발하는 이 무기
화약이 폭발하며 파편이 튀는 폭발성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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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격진천뢰 13 우리역사상에는 비격진천뢰라는 무기가 있었다.
무쇠에 화약을 넣은 이 비격진천뢰는 선조때 만들어지고,임진왜란때에야 처음으로 사용됐다.
CG 비격진천뢰 폭파 18 그러나 비격진천뢰가 사용되기 그 훨씬 이전에
고려에서는 이미 그와 비슷한 화약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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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 쏘고 17 (4-5초 보고)
고려 군함에서 사용된 강력한 무기중에
적선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는 불화살도 있었다.(보고)
주화 글씨 8 당시 이무기는 날아 다니는 불화살이라 해서 주화라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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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화 팬 최두환중령 11 (2-3초후)
주화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역시 화포이다.
고려의 군함은 이 화포를 어디에 설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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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환 중령 인터뷰 함포를 배에다 적재한다는 것은 그만한 공간이 있어야겠죠.그만한 공간이 있는데
고려시대에는 갑판 한층만 있는 2층 구조의 배입니다.
바로 거기에 노를 젓고 포요원이 배치합니다.그 포요원이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이면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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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외형 7 고려의 배와는 달리 3층구조로 이루어진
거북선은 가운데 층에
내부의 포 7 화포를 설치했다.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화포를 발사할 수 있는 보다 안전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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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군함 포쏘고 12 비록 노출된 상태로 갑판에 설치되기는 했지만
고려는 이 화포를 이용해 1380년 진포해전에서 대승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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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 쏘고 10 (3-4초 보고)
당시로서 함포 사격은 그 어떤 무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포쏘고 뒤로 밀리고 8 그런데 화포를 배에 설치하고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조선술이 뒷받침 되어야
포쏘고 불길 6 한다. 화포를 발사하기 위한 배의 조건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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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팬 군함들 15 (3-4초 보고)
현대의 전투함정에도 함포가 설치되어 있다.
이 함정들도 분명 함포를 설치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광개토 대왕함 5 지난 98년 실전 배치된 광개토대왕함.
구조물 팬 포 15 (2-3초 보고)
언뜻 외형만 살펴봐도 함포 하나를 받치고 있는 구조물이 거대하다. 광개토대왕함의 함포는 사정거리 15킬로
미터.
포 6 이런 구축함을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10여개국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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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계 사무실 10 (2-3초 보고)
광개토왕함을 설계한 대우조선소 특수선 설계실을 찾았다.화포가 설치된 군함 한척을 설계
군함 설계도 2 하는데만 꼬박 2-3년이 걸린다.
설계도 포 4 움직이는 배에서 화포를 발사하도록 배를 만드
설계 작업 4 는 것은 그만큼 까다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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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인터뷰 구조적으로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될 점은 포 자체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구조여야 되고
포가 발사될 때에 포 후풍이라든가 ...포스 라든가 충격력이라든가 그런 것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구조여야
되겠습니다.
또한가지 중요한 것은 배의 방향과 포의 방향과 일치되도록 정렬을 맞추는 그런 부분들이 기본적으로 고려되야될
요소고 예전에 함선을 지었다 하더라도
그런점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형태든지 고려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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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쏘는 고려군함 9 이렇게 고려의 군함은 까다로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세계최초로 화포를 설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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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4]
MC 1S 지금까지 보신 것처럼 고려는
당시 동북아에서 가히 최고수준이라 할만한 군함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과학적이고 뛰어난 조선술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것뿐일까요?
고려가 이처럼 우수한 군함을 보유한데에는 분명 다른 배경이 있었을 것입니다.
왕건 초상화 내려온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바로 고려의 태조 왕건입니다.
초상화 옆에 글씨 나타난다. 그는 고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오르기 이전에 궁예의 부하였습니다.
백선장군 해군대장
그때 그의 직위는 백선장군 해군대장.
아마 왕건이 광야를 누비는 육군 장군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셨던 분도 많으셨을겁니다.
그러나 후삼국을 통일하고 새왕조를 건설한 왕건은 해군사령관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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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4]
나주시 부감 8 (8초 그냥 본다. 편안하게....)
피디 걸어 가고 13 (3-4초 보고)전남 나주시에는 왕건의 설화가 묻어있는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물 14 (보고)
주택가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샘물.
이 샘물도 천년전 이곳을 지나갔던 왕건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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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인터뷰 왕건수라고 부른다 (무슨 뜻입니까)옛날에 왕된 양반이 이물만 잡수셨다고 한다.
물뜨러 올 때 나팔을 불고 다른 사람들은 못마시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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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수 줌인 16 (2-3초 보고)
왜 샘물의 이름에까지 왕건의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 (쉬고)
이곳 나주는 고려 태조 왕건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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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팬 16 (팬 비석보이고)
나주 시청 앞에는 고려 왕후를 기리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비석 풀샷 4 이 비석의 주인공은 나주 오씨.
비명 틸다운 19 나주 지방, 호족세력의 딸이었던 그녀는 왕건의 부인이 되었고 후대인들에게는 장화왕후로
기억되고 있다. 장화왕후와 왕건사이에서 태아난 이가 고려의 두 번 째 왕,혜종이다.
비석 풀샷 4 장와황후와 왕건의 만남에도 유명한 설화가 있다.
버드나무에서 완사천 20 목이 마른 왕건이 샘물에 있던 처자에게 물을 청했더니 처자는 버드나무 잎을 띄워
물을 건넸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사람이 만났던 곳이 바로 이곳 완사천이다.
완사천 물 10 개성출신이었던 왕건, 그가 머나먼 남쪽 지역인 나주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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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달리고 30 왕건은 궁예에게 후백제를 공략하기 위한 방책으로 나주 상륙작전을 제안하다.그리고
909년 왕건은 수군을 이끌고 나주를 공격한다
이 해전에서의 승리는 그에게 집권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영산강 풀샷 6 왕건은 나주 공략을 위해 수로를 이용했다.
그 수로는 영산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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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인터뷰 영산강의 가장 큰 특징,다른 강과 비교되는 특징이 하류 부근이 굉장히 넓은 내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으로 보면 지중해같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그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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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CG 24 당시 수군을 이끌고 목포로 들어온 왕건은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로 올라갔다.
영산강의 내해에서 견훤의 수군과 부딪치지만 해전에 능한 왕건은 화공전법으로 승승장구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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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헬기 샷 12 (5-6초 보고)나주 상륙 작전에 성공한 왕건은
후백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킨다.
지붕 단청 17 (2-3초 보고)
왕건 또한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이곳에서 1년여를 머무는데 ,이로써 왕건은 나주를 완전히 장악한 셈이었다.
그런데 왕건은 나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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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14 일단 통일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후배제와 신라의 배후를 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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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교수 인터뷰 당시 후백제의 견훤은 오늘날 절강성 항주에 있었던 오월국과 직접 교섭을 했습니다.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고 말을 보내기도 하고 여러 가지 교역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왕건이 바로 서남해안을 공격한 것은 후백제가 가진 대외교섭력을 완전히 뺏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의 예가 있습니다.
후백제가 오월국으로 사신을 파견했는데요.그 사신이 바로 오늘날 전라남도 광주 앞바다에서 후고구려의
수군에게 납포됐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당시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두고 후백제와 왕건의 세력이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왕건으로 봐서는 한반도 서남해안의 해상세력을 제압하지 않고는 고려를 완벽하게 통일 국가로 만들
기가 어려웠던 것이죠.
그만큼 고대사회에서 해양력의 쟁패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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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헬기 샷 13 나주 정벌은 통일전쟁에 필요한 군량미 확보,
후백제의 포위공격,그리고 가장 중요한 제해권 장악을 위해서 꼭 필요한 지역이었다.
왕건은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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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줌인 세가 19 (2-3초 주고)
그렇게 왕건이 바다를 이용할 줄 알았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고려의 건국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왕건의 조상들은 대대로 해상무역세력으로 기록되어 있다.
책 넘기고 5 그런데 왕건의 조상중에 의문의 인물이 있다
당귀인 나오고 11 당귀인. 그저 당나라에서 온 귀한 사람이란 뜻이다.
왕건의 조상이라는 이 당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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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설 교수 인터뷰 당시에 시대상황이 많은 외국인이 고려의 상인이나 사절이나 개인이나 아주 많이 왕래
했다는 것 그리고 무역활동이 굉장히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그러한 내용이 거기에 내포가 돼 있습니다.그리고 할아버지가 무역활동을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을 했고
그걸 기반으로 해서 호족으로 등장하는 그런 내용이 거기에 암시가 돼 있습니다.
그런 것이 뭐 중국사람이었든 왕건의 조상의 한분이었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은 무역활동에 종사한 분이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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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달리고 12 (3-4초 보고)
해상호족세력이라는 왕건의 출신배경이 고려 왕조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
지도 틸업 한재수교수 10 한라대학교의 한재수 교수
건축사학을 연구하고 있는 한교수는 요즘 고지도 5 고려의 건국신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한재수 작업 4 한교수에 의하면 고려의 건국신화에는
모니터 지도 바뀌고 11 개성이 수도로 정해지는 과정이 드러나 있다고 한다. 개성은 고려의 건국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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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수 교수 인터뷰 왕건의 조상들을 신화를 보면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예성강이나 한강 또는 임진강 하구에
있는 마을들과 깊은 연관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해상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는 무대를 만들게 되고 결국은 한강 유역에 있는 수로를 장악하게
되면서 해상세력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또 해상력이라는 것은 내륙의 물자에 대한 수요가 없으면 수요공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개성이란 도시는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강하게 갖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개성은 해상과 내륙진출을 겸한 도시로서 의미를 갖게 되고 점차 강화를 중심으로 해서 들어오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거점으로 남해안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무역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이점을
통해서 개성은 부를 축적하게 되고 왕건은 새로운 해상군진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된다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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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줌인 개성부 18 개성은 왕건의 본거지이자 무역의 중심지
였다 당시 개성이 고려의 수도가 된 것은 당연 한 일이었을 것이다.그후 개성은 국제적인 무역 도시로 자리
잡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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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5]
유인촌 해상호족이었던 왕건은 철저하게 바다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왕건이 세운 고려는 해상왕국으로서 세력을 떨쳐 나갑니다.
유인촌 지도보며 . 자,제 뒤에 있는 이 지도는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개경에는 객관 이란 건물이 있었습니다.
유인촌 1.S 객관은 외국상인이나 여행자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호텔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멘트에 따라 집 튀어나오고 당시 개경에는 이런 객관으로 거란인을 위한 영은관과 인은관이 있었고,
여진인을 위한 영선관과 영은관이 있었고,
또 중국인이 머무는 순천관,홍위관,청주,충주,사점,이빈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록엔 없지만,
일본이나 다른 나라 사람을 위한 것도 더 있었을 것입니다.
MC 1.S 당시 객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
지만,고려도경을 쓴 서긍은 객관의 크기가 궁궐만했다고 전합니다.
이렇게 수도애 외국상인을 위한 커다란 호텔이 무려 10군데나 있었다는 것은 당시 개경에서 활발한 국
제무역이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여기, 고려의 국제 무역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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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R 5]
백련초 기록 팬 8 (2-3초)
일본의 역사서인 백련초는 10세기 초에 벌어진 한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자막 나오고 10 이 기록에 의하면 997년 고려는 일본에 3통의 서신을 보내 통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자막 나오고 10 그러나 일본은 고려의 요구를 거부하고 대마도와 큐슈지역의 방비를 강화한다.
지도 대마도 10 상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에 대해 고려는 큐슈지역을 침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이런 기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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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교수 인터뷰 큐슈의 태재부에서는 고려군이 병선 500척으로 침공하려는 정보가 있다고
일본 조정에 급보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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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지도 9 두건의 일본기록은 심상치 않은 당시 분위기를 전해준다.이 일련의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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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우 교수 인터뷰 고려 건국초부터 일본에 대해서 수교를 요청하는 사절을 여러차례 파견을 했지만은
일본은 거절을 해왔습니다.
이에 대해서 고려는 막강한 해상세력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에 문호개방을 요구하고 수교를 요청하는
무력시위를 했을것으로 생각이 되어지는데
이러한 사실은 구한말에 서구열강들이 우리나라에 문호개방을 요구하면서 무력시위를 했던 것과 같은 맥락
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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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5 고려는 건국초부터 대외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나라였다.
시 오르고 12 당시 국제무역항이었던 예성강을 바라보며
시인 이규보는 고려의 상선이 남만을 오갔다고
노래하고 있다.이는 당시의 교역국이 중국,일본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바다 4
자막 나오고 11 기록에 의하면 고려는 대식국,마팔국,섬라곡국,교지국과 교역을 했다.
이들나라는 지금의 어디일까?
지도 위치 표시 15 대식국은 지금의 아라비아 ,마팔국은 인도반도에 위치한 국가다.
섬라곡국은 지금의 태국,교지국은 지금의 베트남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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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교수 인터뷰 대식국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아라비아를 얘기하는데요.이상인은 남중국을 경유해서
고려로 왔거나 아니면 직접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중국에서 고려 상인과 만나기도 했는데요.
이런 사실들을 볼 때 고려의 선단들이 남중국밑으로 내려가서 교역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남해 지역에서도 고려이 해상활동이 있었습니다.예를 들게 되면은 일본열도라든가 오끼나와 지역과의
교섭도 있었습니다.이렇게 전반적으로 볼 때 고려의 해양활동은 매우 활발했던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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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항로 8 고려는 동북지역,일본,중국의 북부,중국의 납부,그리고 동남 아시아까지 폭넓은 항로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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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5 당시 교역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청동거울 두 개 9 이것은 고려의 청동거울이다.
당시 청동제품은 중요한 교역품 중의 하나 였다.
거울 타이트 5 (좀 보고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이 두 개의
배 타이트 4 거울 뒷면에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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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서 토기 7 이런 거울은 또 있었다.
공주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청동거울.
피디에서 청동거울 9 이 청동거울도 역시 뒷면에 바다와 배가 새겨져 있다.
왜 거울 뒤에 똑같이 배 그림을 그려넣은 것일까?
거울에서 배 나오고 12 고려는 교역상품으로 이와 같은 배문양의 거울을 대량으로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시 번창했던 해상무역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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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팬 8 해상무역은 고려에 풍요로움을 안겨주었다.
고려는 그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자막 나오고 16 (고려의 문화와 예악이 융성하고 상선들이 끊임없이 출입하여 날마다 귀중한 보화가 들어오니
중국으로부터는 도움받을 것이 없습니다.-문종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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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클로징]
유인촌 1.S 고려는 성능이 우수한 군함을 보유하고 바다를 장악했습니다.
그 힘을 통해 고려는 여러나라와 교역하면서 부를 축적해나갔고,국제적으로도 우세한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일본에게 포함외교를 펼칠 정도로 당시 고려는 강국이었던 것입니다.
고려청자와 같은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려는 우리역사상 마지막 해상왕국이었습니다.
원나라는 고려의 힘을 꺾기위해 바다를 통한 활동을 금지했고,조선왕조도 역시 바다를 꽁꽁 묶어두었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바다를 장악하느냐 못하느냐는 한나라의 국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이 고려의 군함은 당시 고려의 국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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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스크롤 +끝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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