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고깔모자의 나라, 키르기즈스탄
3-3-1)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3-3-2) 천산 기슭에 살아 숨쉬는 <마나스 설화>
3-3-3) 다시, 길은 소그드 지방으로 이어지고
-----------------------------------------------
3-3-1)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 천산을 등에 지고 있는 비슈케크 시내
<!--[if !vml]-->
<!--[endif]-->
▼ 비슈케크의 무게중심, 알라뚜 광장에서 고깔모자 칼팍축제가 열리고 있다
<!--[if !vml]-->
<!--[endif]-->
▼ 정월 초하루 ‘나로즈’ 세시풍속으로 길가에 음식을 차려놓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빨간 우모의 고깔모자를 쓴 필자
<!--[if !vml]-->
<!--[endif]-->
토크목에서 키르기즈의 수도 비슈케크는 지척이다. 천산북로의 주요통로이다. 비슈케크는 몇 년 동안 매년 오다시피 하던 곳이라 그런지 마치 친척집에 놀러 온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만나는 사람들과 “아쌀러무 알레이쿰” 하고 인사를 주고 받는다. 자주 들렸던 게스트하우스에 배낭을 던져놓고 바로 거리에 나가 카페에 들려 가볍게 맥주로 갈증을 달랜다. 이슬람권에서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중국의 대도시나 중앙아시아 일부 나라의 변화의 물결은 도도하기 그지없다. 이제 우리가 추월당할 일만 남은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비슈케크 거리를 거닐다보면 시내 어디서도 천산산맥의 흰 능선을 바라볼 수 있다. 인구도 1백만 명 정도로 도시 자체가 그리 크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것이 마음에 드는 곳이다. 비슈케크는 키르기즈스탄의 수도로 구러시아 시절에는 후룬제(Frunze)라고 부르다가 독립하면서 비슈케크로 개명하였다. 이 이름은 ‘말 젖을 발효시키기 위한 효소’를 뜻한다니 수도 이름 치고는 좀 거시기한 이름이다.
내가 이곳을 가끔 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파미르고원을 가기 위한 필수경유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날 타지크행 비자와 파미르하이웨이 허가증을 받으러 타지크영사관에 들렸다. 비자 담당자가 바뀌었는지, 이전처럼 까다롭게 굴지도 않고, 더구나 웃돈도 요구하지 않았다. 급하다가 하니 조금 비싼 급행비자와 ‘파미르허가증’에 도장을 쾅쾅 찍어준다. 그리고는 일주일에 2번 있다는 두산베행 티켓을 끊는 여행사까지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참, 이 나라가 마음에 드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얼마 전부터 우리와 비자면제가 발효되었다는 사실이다. 중앙아시아 5개국의 비자정책은 악명 높기로 유명하였었는데, 그걸 키르기즈가 앞장서서 규제를 푼 것이다. 덕분에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니 아주 잘 된 일이다.
<!--[if !vml]-->
<!--[endif]-->
키르기즈스탄(Kyrgyzstan)은 어떤 나라인가? 그리고 우리 한민족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가? 우리에게는 ‘꼬갈모자의 나라’로, 그리고 아름다운 이식쿨호수가 있는 산악국가라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천산산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나라는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국토의 80% 이상이 해발 1천500m 이상이고 3천m 이상도 40%나 된다니 그렇게 불릴 만도 하다.
현재 이 나라를 탄생시킨 산파는 구러시아였다. 1991년 중앙아시아의 옛 ‘돌궐족의 땅(Turkestan)’을 5개로 분리시키면서 이들에게는 ’키르기즈(Kyrgyz)민족의 국가‘ 라고 명명하여 주었다. 그러니까 이 이름만으로는 단일민족의 보수적 혈통주의적 국가로 연상하지만, 사실 키르기즈계 이외에 타지크계, 우즈벡계과 러시아계, 몽골계 등 무려 120여개 여러 소수민족이 혼합되어 살고 있어서 단일민족과는 거리가 멀어서 이들 다양한 민족들이 다양한 언어와 풍속 습관, 문화와 전통을 지닌 채 서로의 역사, 사회, 문화, 언어의 조화와 융합을 모색하는 복잡다단한 나라인 셈이다.
키르기즈의 어원은 ‘40개의 종족’ 이라는 의미인데, 키르기즈에서는 ‘40’이란 숫자를 많이 만날 수 있다. 행운과 행복을 가저다 주는 길수(吉數)이기에 모든 행위를 40개에 연관시키는 관습이 있다. 국기에도 40가지 색갈의 빛이 비치는 도안이 들어 있고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40일 만에 이슬람의 중요한 의식인 할례를 한다는 식이다. 그리고 키르기즈의 영웅서사시 <마나스>의 부하들도 40명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이처럼 40이란 숫자는 이들 민족의 삶을 지배한다. 아마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도 이런 의미에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각설하고, 키르기즈민족은 기원전 2천년 경 최초로 역사에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어머니의 강’이라는 에니세이강(Enesai)과 ‘많은 호수’의 의미라는 바이칼(Baikol)지역에 거주하다가 이동을 시작하여 얼지 않는 호수가 있는 이식쿨호수가에 이르러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이들이 머나먼 고향에서 스텝루트를 따라 오랜 세월동안 민족 대이동을 하던 고난의 세월은 키르기즈의 민족영웅 서사시 <마나스>에 그대로 담겨 있다.
이들의 민족이동의 루트는 우리 배달민족의 선조들인 환인(桓因)제국이 원 고향인 파미르고원 아래 이시쿨호수의 ‘샛별의 고향’이라는 초폰아타에서 동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바이칼호수를 거처 한반도로 내려온 경로와 반대 루트여서 흥미롭기 짝이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키르기즈 초원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 천혜의 호수, 이식쿨을 차지하고 있기에 호시탐탐 이곳을 노리는 유목민들의 침략을 받게 된다. 1세기 이후부터 흉노, 월지, 오손, 선비 등에게, 6세기에는 돌궐족에게, 7세기에는 당나라에게, 8세기에는 위구르족에게 침략을 받았지만, 9세기에는 위구르족를 몰아내고 처음으로 자기 민족만의 나라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그 뒤 다시 13세기경 몽골제국에 정복됐으며 17세기에는 청나라에게, 19세기에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구러시아가 분리될 때, 중앙아시아 독립연합국[CIS]의 5개국의 일원으로 1991년 8월에 감격스런 독립을 맞게 되면서 민주공화국으로써 발을 내딛고 시장경제와 비자철패 등의 개방정책을 펴고 있다.
키르기즈의 영웅서사시 <마나스(The Kyrgyz Epic Manas)> 등장하는 키르기즈 사람들의 옷차림 중 특이한 것은 온통 고깔모자를 썼다는 점이다. 이른바 ‘칼팍’이란 모자인데. 이 모자는 두개골을 뾰족하게 만든 편두(匾頭, cranial deformation풍속에 알맞은 모자로 보인다. 고대 키르기즈인들은 천손의 직계후손들이란 자긍심이 있는 민족들로 이 고깔모자는 하늘의 뜻을 계시 받을 수 있는 특수한 계급을 강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어린이가 태어나면 머리통을 눌러서 뾰족하게 만든다고 한다. 이 편두풍속은 고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흔히 풍속이지만, 흥미롭게도 특히 키르기즈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의 편두(褊頭)와 문신(文身) 풍속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곧 돌로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어서 천손의 자손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문헌이 편찬된 시점인 3세기 중반 무렵에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천산산맥 주위의 여러 민족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었는데, 특히 키르기즈 민족의 그것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어서 흥미롭다. 현장도 <카슈가르 조> 에서 이 편두풍속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자식을 낳으면 머리를 눌러서 평평하게 만드는 풍속이 있다. 용모는 추하고 비천하며 문신을 새기고 눈동자가 녹색이다.
▼ 편두형 머리에 알맞은 고깔모자를 쓰고 수렵행위를 하는 고대 이식쿨의 원주민을 묘사한 촐폰아타의 암각화. 이 ‘칼팍’이란 모자는 천손족임을 강조하는 모자로 지금도 키르기즈인들의 민속모이다.
<!--[if !vml]-->
<!--[endif]-->
▼ 편두형 두개골의 비교
<!--[if !vml]-->
<!--[endif]-->
▼ ‘고깔모자의 날’ 행사에 참석한 키르기즈 젊은이들
<!--[if !vml]-->
<!--[endif]--> <!--[if !vml]-->
<!--[endif]-->
▼ 꼬칼모자 칼팍을 쓴 고대 키르기즈인
▼ 편두풍속을 보여주는 두개골
<!--[if !vml]-->
<!--[endif]-->
첫댓글 칼팍을 보고 싶다.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