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읍사의 발원지를 찾아서 - ‘채수의례’와 ‘여인제례’ 현장에서 -
달하 노피곰 도드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하면 울음이 터져 저고리 앞섶을 흥건히 적실 것 같다.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내게로 전해 온 것일까. 정읍사 공원에 서 있는 망부석 동상 앞에서 발이 멈춰진 채 가슴이 먹먹해 온다.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여인의 마음이 마냥 졸아드나 보다. 정인을 그리워하며 여위어가는 여인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누군가를 그렇듯 애절하게 그리워하고 기다림에 지쳐 쓰러지는 아픔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정경이다. 그러다 한 줌 흙으로 사라져도 좋으리라. 한 세상 살아가면서 그런 사랑을 품어 볼 수 있다면…….
정읍사 달하 노피곰 도드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귀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全져재 너러신고요 어귀야 즌데를 드뎌올셰라 어귀야 아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귀야 내 가논데 졈그롤셰라 어귀야 어강드리 아느 다롱드리
<정읍사>는 백제 가요의 대표작이다. 『고려사』「악지」에는 5편(무등산, 지리산, 선운산, 방등산, 정읍사)의 백제가요 내용이 전하는데 그중 유일하게 이 노래만 『악학궤범』에 그 가사가 실렸다. 작자·연대 미상의 가요로 백제 시대부터 구전해온 민간전승의 가요이다. 한글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고대가요로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의 형식은 11행이지만 후렴을 뺀 기본 시행만으로 보면 3연 6구로 되어 있어 시조와 그 형식이 비슷하다. 그래서 <정읍사>가 시조 형식의 근원이라는 설도 있다.
달아 높이 돋으셔 / 머리곰 비취오시라 온 저자를 다니시는가 / 진데를 디딜세라 어디에 놓고 계시라 / 내 가는데 저물세라
1연은 달이 높이 떠서 멀리 비추어 남편의 귀갓길을 안전하게 보호해 달라는 소원으로 임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스러움이 간절하게 배어 있는 부분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왜 오래도록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지 몰라 애타는 안타까움과 남편의 안녕을 비는 소박한 여인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2연은 남편이 온 시장을 두루 돌아다니며 행상을 하다 행여나 궂은 곳을 디딜까 염려하는 마음이다. 여인은 남편의 귀환을 기원하면서 온갖 상상에 휩싸인다. 몸을 다친 것은 아닌지,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주색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이 나타난 부분이다. 그 안타까움의 가장 적나라한 표현이 바로 ‘즌대를 디디욜세라.’이다. ‘즌대(진 데, 진 곳)’는 ‘수렁 물(진흙 물)’이 고인 곳을 말한다.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혹시 궂은 곳(사창가)을 가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3연은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즉 해를 당해서 못 오거나 혹여 다른 여자가 생겨서 안 오는 건지,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어둡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내용이다. 이러다 서로의 마음이 변하고 가정이 깨어질까 염려가 되는 마음에 가진 것 다 버려도 좋으니 제발 몸만이라도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비는 기원이다.
이 정읍사는 우리 고장 정읍에서 발생한 가요이다. 유래를 보면 정읍현의 한 사람이 행상을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가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서 남편이 밤에 다니다가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면서 부른 노래라고 한다.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고 기다리다 지친 아내는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버렸다는 것. 기약없는 기다림이 얼마나 애타는 일인지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을 감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노래는『악학궤범』제5권 ‘무고(舞鼓)’에 우리말 노랫말이 자세한 춤의 절차와 함께 실려 있다. 『악학궤범』의 연행절차에 따르면 열여섯 명의 악사가 반주하고 여덟 명의 기생이 북을 치며 춤을 추는 걸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 시대부터 대궐 안의 잔치 때에 벌이던 춤과 노래이다. 그러다 조선 중종 대에 이르러 음란한 노래라고 하여 궁중가악에서는 제외되었다고 한다. 지금 정읍사공원에는 망부상과 함께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 앞면엔 여인의 모습 아래
전통음악 수제천과 현대감각에 맞춰 개작한 <정읍사> 악보가 새겨져 있고 뒷면엔 ‘정읍사 노래비 건립에 부쳐’라는 제목 아래 고 김동필
시인의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기다림의 미학’, 기다리다 지쳐 정신은 달빛 속으로 스며들어버렸을까. 허깨비 같은 육신만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돌이 되어버렸다는 아름다움이 참으로 아리게 전해온다. 오늘날은 어디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한순간 사랑하고 한순간 스러져버리는 현대식 사랑놀이가 그저 허무하다 못해 비참하게 비교될 뿐이다. 그곳을 들러보고 있노라면 내 고장이 이런 고전의 발원지라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그 발원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욕망에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정읍에서는 매년 10월에 정읍사문화제가 있는데, 이런저런 행사 가운데 정읍사 발원지에서의 ‘채수의례’와 망부사당에서의 ‘여인제례’가 있다. 행사 첫날, 정읍시 신정동 정해 마을에서 ‘채수의례’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이미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부산했다. 아직 남아 있는 시간 동안 그 동네의 분위기를 살펴보려고 잠시 동네를 기웃거렸다. 자그마한 동네에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듯, 행사장 외에는 맑은 가을 햇살에 듬뿍 젖은 고샅이 무척 한가로웠다. 이 고요한 마을의 역사가 그렇게 길다니. 비록 골목 구석구석에는 묵은 티끌들이 쌓여 허술한 듯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고전역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소중한 곳임은 틀림없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남으로 삼성산과 서로 입암산 그리고 동으로 내장산이 있어 마을의 지형이 배의 형국으로 되어 있단다. 그래서 가정에 우물을 파면 배의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배가 침몰한다는 논리에 따라 근래까지 가정에 우물이 없었으며 100여 가구의 대촌이었을 때에도 생활용수를 이 우물에 의존했으므로 큰 새암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라 한다. 이 우물은 수백 년 동안 생명수 역할을 해온 공동 우물이다.
이렇듯 역사의 숨결이 묻어 있는 샘을 정읍의 상징우물로 길이 보존하고자 1994년에 복원사업을 하였고 2010년에는 <샘바다 우물 덮개>를 조성하였다. 이곳은 민족의 기운을 좌우하는 터로 우리나라 기맥을 유지 보전하여 기의 허실을 막아 국운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덮개를 조성하였다. 지금의 정읍은 백제 시대의 정촌현, 바로 이 정해 마을에서 비롯된 지명이라 한다. 정읍(井邑)이라는 곳의 정(井)은 우물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이 큰새암이 정읍의 이름을 낳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우물과 정읍사와는 또 어떤 관계가 있기에 그곳에서 ‘채수의례’가 있고 그 물로 망부사에서 ‘여인제례’를 올리는 것일까. 설화 속의
망부석이
있었던 곳은 정해마을에서 북쪽으로 십 리 떨어진 곳으로 현재 정읍시로 들어가는 아양 고개로 추정이 된다. 지금은 그곳에 정읍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즉 <정읍사> 설화는 이곳 샘 바다인 정해 마을에서 유래되었고 그곳 우물에서 사랑이 시작된 것이라 하여 해마다 그 우물을 길어 올리는 ‘채수의례’를 치르고 채수 된 물로 ‘여인제례’를 지내는 것이다.
‘채수의례’는 먼저 마을에서 제일 존경받은 웃어른이 우물에 예를 올린다. 그런 다음 선녀들이 정성스레 물을 길어 그릇에 담아 놓고 화려한 춤과 흥겨운 풍악을 울리며 잔치를 한다. 잔치가 끝난 다음엔 그 물을 망부사로 옮긴다. ‘여인제례’는 망부사로 옮겨 온 우물물로 정성스럽게 차를 다려 제사상에 올리는 예이다. 단정하고 정갈한 몸가짐으로 차를 다려 올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성스럽고 망부사 마당 한편에서 울려 퍼지는 ‘수제천’의 음률이 감미롭다.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악기는 주로 향피리, 대금, 소금, 해금, 아쟁이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느리고 장중한 음악으로 박자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아 서양음악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환상적인 음률이다. 지금도 국가의 대행사(대통령 취임식, 국빈만찬과 의례 등)와 국제적인 문화교류에서 반드시 연주되는 곡으로 알려졌고 외국인들에게도 명곡으로 인정받아 1970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음악제 전통음악 부분에서 최우수 곡으로 당선되었다.
선녀들의 옷차림이 나비 날개처럼 얄싸하고 호화롭다. 그 먼 시대의 사람들이 정말 저처럼 화려했을까에 대해 조금은 의심스러우면서도 화려한 의식에 빠져들었다. 잠시 동안 그들과 함께 백제인이 되어 호흡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바람직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국문학도이기에 더욱 크게 느꼈던 뿌듯함이었으리라. 정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용호저수지(용산지)에는 ‘정읍사 여인봉’ 조망대가 있다. 그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여인봉의 형상은 누워있는 여인의 이마, 코, 입, 목 가슴 모습이 뚜렷하다. 주민은 누워 북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 여인 형상이 1,300년 전 사랑하는 남편과의 영원한 사랑을 소망하는 백제가요 <정읍사> 여인이 환생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일설에는 깊고 간절한 사랑에 감동한 하늘이 그 사랑을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노령산맥 줄기인 여인의 고향 정읍 내장산 자락에 여인의 형상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정읍사 여인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연인들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전해 듣고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