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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교회관 및 핵심교리 고찰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초대 교회의 교회관
Ⅲ. 초대 교회의 핵심교리
Ⅳ. 나가는 말
Ⅰ. 들어가는 말
초대 교회의 이야기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이 갖는 영향력을 느끼며, 그분의 인격과 삶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존 스토트의 말처럼, 우리가 그분의 이야기를 잘 알고, 우리 자신을 그분의 인격과 본보기와 가르침 앞에 드러낼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결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역시 그분의 영향력을 느끼고,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사 그분을 위해 살고 죽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게 하신다고 말하게 될 것(고후5:14)이 분명하다.1)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역사이며,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할 우리에게 주님이 친히 명하신 권고로서 아직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게 될’(요10:16) 것이기 때문이다.2)
여기에서 고찰하는 초대교회는 주님의 생애와 사역에서 나온 오순절을 기하여 세계에 선포된 교회를 중심으로,3) 본 소고는 역사의 중심되신 예수님께서 세우신 초대 교회의 교회관과 초대 교회에 나타난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가르침인 교리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교회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기독교와 이교도들의 가르친 것과의 사이에 근본적 차이점들은 무엇이었는지에 답하려한다.
Ⅱ. 초대 교회의 교회관
성경에 교회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인데 그 말은 헬라어의 “칼레오”(부르다, 소환하다)란 말에서 온 것이다. 세속문학에서는 “에클레시아”란 말은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는 좀 특별한 뜻으로 사용되었다. 세속문학에서는 폭동, 정치적 군중모임, 진탕 마시고 뛰노는 모임, 혹은 그 외의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모이는 모임 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는 기독교 신자들이 그리스도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 모임만을 지칭하여 에클레시아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성서를 번역할 때에 ‘회중’, ‘모임’ 등의 일반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였다.4)
신약성서는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을 하나님의 가족이요 성전이라고 하였고, 그리스도의 양떼요 신부라 하였으며, 소금 같고, 누룩 같고, 어부와 같고, 하나님의 진리에 지탱되는 성채와 같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설명하였다. 교회는 전 세계 믿는 자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사귐을 갖는 곳이며 각 개 교회는 거기서 파생된 광맥과 표본의 장소이다. 초대기독교 저자들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며, “새 이스라엘”이라고 하였다.5)
1. 그리스도의 몸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롬 12:5)이며 “그의 몸”(엡 1:23)이라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교회는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안의 생활을 풍성하게 맛보게 해 주는 곳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함께 소유한 사람들이며(롬 6:8), 부르심을 입어 다른 사람들이 축복받게 되기를 위해 계속해서 봉사하며 또 그를 위해 고난당하는 사람들이다(고전 12: 14 -26).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그대로 임하게 하기 위하여 함께 모인 사람들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설명함으로, 초대 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을 강조하였다(엡5:25).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모든 활동을 지도하시며 모든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교회가 예배하고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이다.6)
2. 새 이스라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성취시키시기 위함이라고 믿었다(마2:6; 눅1:68; 행5:31).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과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다고 생각하였다(고후3:6; 히7:22; 9:15).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새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실 때에 개인적 구원을 바탕으로 세우시는 것이지, 가족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교회는 모든 문화적 민족적 전통을 뛰어 넘는 영적인 나라이다.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그리스도께 맡김으로 하나님의 새 언약을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되고, 따라서 “새 이스라엘 나라”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마 8:11; 눅13:28-30; 롬4:9-25; 갈3-4; 히11-12).7)
3. 공통되는 특성
우리는 교회의 여러 특성 중에서 공통되는 일반적 특성을 신약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교회는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자기의 일을 수행하도록 맡기셨고, 이것이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교회에 대한 신약성서의 여러 설명에 의하면, 성령께서 교회에 힘을 주시고 나아갈 길을 지시해 주신다는 것이다. 교회의 교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공동으로 일을 하며 공동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능동적이며 살아 활동하는 존재이다. 교회는 이 세상일에 참여하기도 하며,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삶의 방법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또한 오늘 이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준다. 교회의 영적 통일성과 순수성은 이 세상의 증오 및 부패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모든 교회에는 그리스도께서 역사하고 계시는데 자기 몸의 지체가 되는 그 사람들 속에서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 그로 인하여 그들의 삶이 바로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삶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8)
Ⅲ. 초대 교회의 핵심교리
1.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을 자기와 사귐을 갖게 하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들을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셨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자기 자신들을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벧전1:21)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았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었다(롬5:1). 예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 “중생”함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3:5-6; 14:6). 초대교인들은 이 단순하면서도 놀라운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였다.9)
2. 바른 교리를 가르침
로마의 이방 종교는 교리라기보다는 의식이었다. 로마의 예배자들은 종교의식을 집행할 때에 그 의식을 잘 이해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얼마만큼 잘 수행하느냐 하는 점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한편 초대교인들은 신앙과 행위 두 가지 모두를 다같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할지니라”(요4:23)는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10)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신앙의 표현들 간의 본질적 차이를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제사나 지식을 찾는 것에 의존하는 계약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기독교적인 주장에서 그 차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을 예배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때문에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은 성장할 수 있다(고전3:2-3; 히5:12-14).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런 능력이 없었다. 그리스-로마 신들은 종족이나 도시를 보호하고 개인에게 영혼 불멸을 줄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매일매일 생활할 수 있는 삶의 지침은 주지 못하였다. 사람들이 철학으로 관심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11)
1) 하나님에 대한 교리
주요 종교는 그 어느 것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우주를 다스리고 있으며, 그 전능하신 존재에 대해서는 그가 하신 일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종교들은 그 전능하신 존재를 바람과 비와 같은 자연의 힘과 관련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자연을 보고 하나님의 진리를 안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완전하게 보여주시는 분이시라고 믿었다(골2:9).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했던 것이며,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교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바탕으로 해서 수립되었다.12)
① 삼위일체 하나님: 많은 학자들은 삼위일체 교리야말로 하나님께 대한 기독교의 견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믿고 있다. 초대 교인들은 하나님은 삼위가 계신데-성부, 성자, 성령- 이 삼위가 하나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각각 소유하고 있는데, 완전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사도시대 기독교인들은 삼위일체의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했었는데, 이를 여러 성경구절들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은 “저로(그리스도)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고 말함으로 우리와 삼위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신약성서에는 이러한 말씀이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는 애굽, 그리스, 그리고 바벨론 사람들과 같은 이교도들의 가르침들과는 전혀 다른 가르침이었다. 또한 희랍의 추상적 철학들과도 전혀 성격을 달리한다. 이러한 사상들은-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간에-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는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설 속에 나오는 변덕 많은 영웅 같은 존재가 아니시며 비인격적인 “세력”도 아니시기 때문이다(고전 1:9).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인격적인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시며, 삼위로서 자기들에게 오신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래도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13)
② 아버지이신 하나님14)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버지시며 너희들의 아버지”이시라고 가르쳐주셨다(요20:17).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아버지들이 자기들의 자식들을 돌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을 개별적으로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께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친밀히 말씀하셨고, 또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모든 만물”을 주셨다고 하셨다(마11:27).
예수님께서는 설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자신(예수님)을 자기들의 삶 속에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요17:27)해주시었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들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극히 세밀한 것까지도 다 보살펴주신다고 말씀하셨다(마6:28-3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아버지는 거룩하신 분이시며, 성령께서도 아버지와 똑같이 거룩하신 분이시며 거룩하게 행하신다(요15:23-26)고 가르쳐 주셨다. 헬라와 로마신화에 나오는 성격이 급하고 부도덕한 신들과는 달리, 참된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다(눅18:19). 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하시려 이 땅에 내려오시었다. 그가 하늘로서 내려오신 것은 자기 뜻을 행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땅에 이루려 하심이었다. 그는 죄로 인하여 죽어가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이 땅에 임하게 하신 분이시며,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거룩한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요6:38-40). 그러기에 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생활과 동떨어진 곳에 따로 계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들의 고통을 함께 당하시고 자기 자녀들을 구하시기 위하여 사망 권세에 자신을 맡기시기까지 하시었다(요15:9-14).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친밀하신 사랑을 강조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시었다. 그는 죄의 고통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찾아 나셨으며, 그들을 찾아 구원해 주시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자기의 죽음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인류를 죄의 사슬에서 구하려 하셨다. 제자 중 한 사람이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말렸을 때에 그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16:23)고 그를 책망하시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 주시었다(사53장). 예수님께서는 또한 유대인들이 하나님 주위에 두러 쳐 놓았던 유대 국수주의의 장벽을 헐어 버리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과 모든 민족과 인류에게 똑같이 베푸셨다. 그는 “세계 모든 족속들”에게 자기 제자들을 보내시며 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라고 하시었다(막16:15). 초대교인들은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먼저 유대인에게 그리고 또한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다(롬1:16).
2) 구속의 교리
하나님께서는 국가의 구원을 위해 역사하실 뿐 아니라 개인적인 구원을 위해서도 역사하신다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쳐주셨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세계에서 급진적이고 새로운 사상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개인 구원에 대한 교리이다.
① 창조주 하나님: 기독교의 구원론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된다. 이것마저도 예수님 당시에는 그리 공감을 받지 못하였다. 많은 희랍의 철학자들과 종교가들은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 이 악한 세상을 창조하셨을 리가 없다고 하였고, 이교도들은 가르치기를 악의 세력들은 세상을 타락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을 변형시켜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가르치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능동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시고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들었으나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하였다고 하였다(창3장). 희랍인들은 선과 악의 세력들이 이 세상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고 믿으며, 악이 선을 오염시켰고 선은 악이 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주장을 거부했다. 이 세상은 아직도 창조주에게 속해 있고 악의 세력들은 결국 패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쳤다. 악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그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다(롬2:3-10; 12:17-21).15)
② 타락한 인간: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새롭게 이해해야 된다고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이며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정을 회복시키시려 노력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요1:10-13; 엡2:19).
희랍신화에 보면 인간은 영과 육이 신비스런 방법으로 결합되어 있는 존재이며, 이 세상의 예측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사라져가는 존재이다. 올피우스 신화는 주장하기를 인간은 신과 같이 내적 본성이 있다고 했다. 플라톤은 영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사상을 철학에 적용하였다; 그는 인간에게는 신적 지성의 불꽃이 있으며 인간이 그의 지성과 그의 능력을 이성을 개발해 나가면 그는 더욱 신적인간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성서는 이러한 헬라의 인간관과는 대조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인간을 평가하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의 지성이 아니라 그의 도덕성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인간은 결코 하나님처럼 된다고 말할 수 없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 초대교인들은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 인간에게 손을 내미시고, 하나님과 거룩한 사귐을 나눌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권하신다(롬5:6-8)라고 믿고 있었다.
초대 교회의 설교자들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으나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져 버렸다고 밝히 말하였다. 아담으로부터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롬5:14)라고 하였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 15:45). 기독교인들은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것이 인류 역사에 있어 첫 번째 중요 사건이었다고 믿는다. 이 말은 인간이 타락한 존재가 되어 벼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이다.16)
③ 죄의 특성: 헬라와 로마의 저자들은 고대 세계의 부도덕성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죄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방종한 생활이 자기들 사회의 균형을 파괴한다고 두려워하였으나, 부도덕이 신을 노엽게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들 신화에 보면 신들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더 방종했고 이기적 욕심이 더 강했다.17)
예수님께서는 죄(요일3:4에서 죄는 불법이라고 규정)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악용하고 그의 길을 거역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며 그 결과는 심판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구속자)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8:24). 예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성령께서 세상을 정죄하시리니 “이는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 함이니라”(요16:9)고 하셨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여 죄를 범했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기 위치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
④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심: 구약성서의 제사장들은 동물을 희생제물로 잡아 제단에 그 피를 뿌림으로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피를 흘리는 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는 것”(마26:28)이라고 하셨다. 하나님 자신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 놓으셨다. 그리하여 죄가 갈라놓았던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를, 예수님께서 다리를 놓으신 것이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를 속하기 위한 마지막 희생제물이 되신 것이다. 사실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해 하나님의 순수한 희생제물이 되셨으니 초대교인들은 이것을 그들의 설교와 가르침 속에서 강조하였다(히10장).
⑤ 예수님의 부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십자가에서 끝난 것은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이었다. 그는 몇 주간을 제자들 중에 역사하시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니 하늘나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행7:56).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에 대하여 자기들이 어떻게 증거 하였는가 하는 것을 세상에 전하였다. 이것이 로마제국을 뒤흔들어 놓았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광신자들의 무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행17:6). 그러나 바울은 믿는 신자들에게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15:17-8)라고 하였다.18)
3.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는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에 강조점을 두셨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또한 가르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받은 자들의 큰 무리 속으로 인도하신다고 했으니-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통치력이 미치는 영역이며 예수님께서는 이 영역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르셨다. 이 하나님의 나라(현재는 교회에서 볼 수 있음) 안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랑의 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윤리 규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며 모든 인류를 구원할 구원의 역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를 유대인에게만 주신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누구든지 “열매를 맺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마21:43 참고 마20:1-16; 22:2-14; 25:1-30).19)
초기의 기독교 복음 전도자들은 마지막 때에 관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특히 강조하였는데, 이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그 시대가 바로 마지막 때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로마제국의 변두리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 잃어버린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한다는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20)
Ⅳ. 나가는 말
지금까지 신약성서의 교회관과 핵심적 교리를 고찰하면서 교회의 정체성과 기독교의 유일성에 대한 탐구를 해왔다. 덧붙여 말하자면, 교회의 정체성은 단지 구속사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지도 원리에 순종해야하는 것과 그리스도에 속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존재(롬1:6)로서의 주님과의 관계성 유지, ‘새 이스라엘’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인 삶이 요구되는 교회의 지체라는 사실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예배와 선교를 통하여 교회의 정체성이 확연히 드러났다. 모이는 교회로서의 예배와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선교적 삶이 증거 되는 공동체였다.
기독교와 기독교 주변의 교리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걸맞게 드러난다. 기독교의 유일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성육신: 신성/인성)의 유일성과 그 사역(구속적 사건으로서 십자가의 고난, 부활, 재림이 유일)을 통하여 드러났다. 그 차이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위대한 종교지도자들은 “내가 깨달은 바에 의하면 그것이 진리다. 그것을 따르라.”고 말한다. 반면에 예수님은 “내가 진리니 나를 따르라”고 선포하신다.21)
교회의 정체성과 의무와 역할은 문화적 제한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초문화적 진리라는 사실과 함께 왜곡된 문화의 방향을 선도해야할 책임이 교회에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한다. 문화변혁은 선교가 전제되어야 하고, 선교는 문화변혁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을 초대교회의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발견하게 된다. 문화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드러내는 행위로서, 이 모든 활동을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말해볼 때, 그 운동의 역동성의 원천은 우리가 유일하신 분이라고 믿는 분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시요, 주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된다. 그의 교회는 언제나 그분의 지도 원리에 순종하고 헌신함으로써 성령 안에서 그분의 유일성, 기독교의 유일성을 능력 있게 선포하여야 한다.
[참고문헌]
1. 국내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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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이란 무엇인가」. 서울: 두란노, 2003.
2. 번역 단행본
벨, Jr. 앨버트. A. 「신약 시대의 사회와 문화」. 오광만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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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F. F. 「신약사」. 나용화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 「초대교회역사」. 서영일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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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퍼, 존 .「여호와를 기뻐하라」. 김기찬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8.
스토트, 존. R. W. 「기독교의 기본진리」. 황을호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3.
-------------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정옥배 역. 서울: IVP,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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