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50)
보호자의 고통
박 모 씨는 50대 후반 남성으로 작은 공장을 운영했다. 걸을 때 바로 걷지 못하고 사선으로 걷는다고 주변사람들이 말을 하여 2016년 부산의 모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뇌종양을 진단받았다. 종양이 두 개나 되고 수술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으며 재발 가능성이 높아 병원에서는 수술을 만류했다. 암 진단을 받으면, 물에 빠져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이 되기 때문에 이분은 서울로 가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재발을 계속하여 3번이나 뇌수술을 받게 되었고 편마비(반신불수)가 심해졌다. 재작년 검사를 하니 뇌종양이 더 커져 있었다. 보호자인 아내는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고 본원에 입원시켰다.
몇 달간은 큰 증상 없이 지내다가 작년(2022년) 봄부터 우측 눈 주위가 붓기 시작했다. 부기가 점점 커져 걱정이 되어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보호자에게 연락하니
“원장님, 지난 8년 동안 큰 병원에서 수없이 검사를 했고 수술도 수없이 했는데 하나도 낫지 않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진단한 부산의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해도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술을 만류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말을 들었어야 했던 것을 듣지 않아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서울의 유명 병원에서는 고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돈은 돈대로 들고 환자는 하나도 낫지 않은 채 골병만 들었습니다. 저도 하루하루 겨우 벌어 남편 병원비를 대고 있는데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고 큰 병원에는 이제 원망스러워 갈 수가 없습니다. 아마 뇌종양이 점점 더 커져 그 압력으로 눈이 붓는 것 같은데 진통제를 주든지 원장님이 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를 다해주십시오.”
보호자의 말을 들어보니 8년이나 남편을 모시고 서울로 다니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고 더 이상 어떤 권유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병원에서 단지 고통을 덜어주는 치료를 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뇌종양이 악화되면 뇌 안에 압력이 높아져 경련 발작이 생기는데 그간 큰 경련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7월이 되니 환자가 의식이 혼미하여 면회 온 보호자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8월이 되니 식사를 못하여 수액을 투여했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코를 통하여 위장에까지 튜브를 넣어 영양을 공급하는 콧줄영양(비위관영양)을 보호자에게 권유하니 “그것 연명치료밖에 더 됩니까? 고통만 주니 하지 마십시오”하고 거부했다. 하지만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을 그냥 굶겨 죽일 수는 없지 않느냐고 설득하니, 마지못해 콧줄영양공급을 승낙하였다. 환자는 의식은 거의 없지만 산소마스크를 쓰고 콧줄영양을 받아가며 하루하루를 연명하였다. 곁에서 지켜보는 의사도 고통스러웠다. 회복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지도 않으면서 고통만 받으며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본인도, 가족도, 의료진도 힘든 시간이었다.
9월 말에 휴가를 떠나게 되어 이 환자 상태를 동료 의사에게 상세히 설명하며 인계하였다.
‘하느님, 이 환자와 보호자가 너무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이분을 거두어 가시려면 제발 제 휴가기간 중에 데리고 가주십시오. 이분의 고통스러운 임종을 제발 보지 않게 해주십시오.’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걸으며 무거운 마음을 벗어놓고 며칠 동안 마음 편하게 휴가를 보냈다. 휴가 후 복귀해 보니 이분이 산소마스크에 의존한 채 아직도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날 야간 당직을 했는데 이분은 밤 12시경 사망하여 필자가 눈을 감겨주어야 했다.
뇌종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열 달이나 지켜보는 것도 너무 고통스럽고 안타깝고 슬펐다. 이런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치는 상황을 자주 겪기 때문에 요양병원 의료진 중에는 우울증을 얻어 병원을 떠나는 사람도 종종 있다.
환자가 사망하여 보호자에게 연락하니 아내와 딸이 도착했다. 너무 오랫동안 병구완에 지쳤던가? 두 사람은 울지도 않고 눈시울도 적시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간소히 장례를 치를 거라고 말했다. 8년간의 뇌종양 투병이 끝나고 끝없이 길었던 가족들의 견딜 수 없었던 고통도 막을 내렸다.
이런 막막한 환자를 대하다 보면 의료진도 고통을 받고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고통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도 그 아픔의 강도를 알 수가 없고 고통을 공감할 수도 없다. 가족들도 아파보지 않으면 안타깝게만 생각하지 고통을 잘 모른다. 그래서 섭섭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종종 아픈 환자를 둔 가족도 환자 못지않은 큰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다. 환자도 위로받아야 하지만 가족도 위로받아야 한다.
요즘은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이 가장 큰 불행이다.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그래야 누구의 짐이 되지 않는다. 건강이 돈보다 중요할 때가 많다. 돈 벌려다 건강을 잃으면 여태 번 돈보다 더 많은 병원비가 들어간다. 젊을 때부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건강을 지키며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