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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_산행친구들,선암사,송광사,태안사
* 2021년 첫날 3삼순례
* 99/100
순천 선암사
순천 송광사
순천 송광사
"생각이 고요해 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하게 된다. 고요하고 맑은 가운데 밝고 또렷하게 깨어 있으면[覺惺寂寂 ,각성적적] 마치 고요한 새벽이 점점 맑아지고 밝아지면서 마침내 붉은 해가 솟아 오르듯 통연洞然히 밝아질 것이다.
분명히 밝은 정견正見으로 연기관계를 제대로 살피면서 바르게 사유하면[正思惟] 세상의 사리에 통하게 될 것이다." (월간 송광사 2020.12. 남은당 현봉, 조계총림방장)
순천 송광사
"그리하여 아무런 막힘 없이 연기의 관계를 밝게 살펴 어떤 경계를 당하더라도 맑고 고요히 흔들림 없으면 선정과 지혜를 함께 갖추게 되니, 세상의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 세파에 휨쓸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처럼 아무런 걸림 없는 자유인이 될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밝은 지혜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월간 송광사 2020.12.남은당 현봉, 조계총림방장)
곡성 태안사 부근. 대황강(보성강) 출렁다리 ; 2016년 11월 개통.
곡성 태안사 부근
곡성 태안사
태안사 내력
1) 첫 개창 ; 742년 신라 경덕왕 원년, 세 스님이 세움.
2) 9산선문중 동리산파 선종사찰로 개창 ; 847년 문성왕 9년, 혜철국사
3) 고려 태조시 광자대사가 대규모로 확장
송광사(고려 중기 독립), 화엄사도 이 절의 말사였다.
4) 처음은 대안사라 칭하다가 조선 후기에 태안사로 개칭.
곡성 태안사
* 동리산 태안사는 통일신라말 9산 선문의 하나.
[참고 9산 선문]
1) 강원도 영월 사자산문, 흥녕사
2) 전북 남원의 실상산문, 실상사
3) 전남 장흥의 가지산문, 보림사
4) 전남 곡성 동리산문, 태안사
5) 강원도 강릉의 사굴산문, 굴산사
6) 충남 보령의 성주산문, 성주사
7) 경북 문경의 희양산문, 봉암사
8) 경남 창원의 봉림산문, 봉림사
9) 황해도 해주의 수미산문, 광조사
순천 선암사 겨울
선암사 입구 승선교 아치 속으로 강선루가 보인다. 이 다리는 1713년 (숙종 39년) 호암대사가 건립하였다.
강선루
삼인당(三印塘) ; 연못에 물은 겨울이라 말랐다. 신라말 도산국사가 설치했다한다. 긴 알 모양 연못 안에 점이 있는 모양이다.
삼인(三印)이란 ?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르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 는것.
선암사
1) 순천시 조계산 선암사는 고려 대각국사 중창의 남방 천태종 종찰.
2) 진입로에는 석조 무지개다리인 승선교가 있다. (보물 제400호) 근처에 강선루(降仙樓)가 있다.
3) 대웅전 ; 순조 때 불타고 중창함. 현판은 장중한 양송(兩宋)체이나 영안 부원군 김조순의 글씨, 김조순이란 이름을 두인(첫머리) 처럼 새겨 무례함을 보임.
대웅전 앞 3층석탑 쌍탑은 신라 후기 양식(보물 제395호)
4) 각황전 ; 신라말 도선국사가 선암사를 남방비보삼암사의 하나로 확장할 때 조성한 철불이 있다. 9세기경 선문을 개시할 때는 반드시 철불을 조성하는 것이 선종 이념이었다.
도선비기에 강조한것 ; ‘一鐵佛, 二寶塔, 三浮屠’ 라고 하였다.
삼암사란 진주 영봉산 용암사, 광양 백계산 운암사, 순천 조계산 선암사
5) 정자각 형태의 원통보전 ; 정조대왕이 이곳에서 후사를 빌어 아들을 얻었다. 곧 순조이다.
6) 만세루의 육조고사 현판 ; 서포 김만중의 부친으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익겸의 글씨
만세루의 육조고사 현판 ; 서포 김만중의 부친으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익겸의 글씨
승선교와 강선루
동심의 세계로~
순천 송광사 겨울
* 松廣 이름 구전 ; 松은 파자하면 十八公이다. 장차 十八公이 배출 되어, 廣 ; 불법광포佛法廣布, 불법을 널리 전한다는 의미라 한다.
▣ 조계산 松廣寺(북서쪽), 仙巖寺(동쪽) 일원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송광사 안길 100)
* 조계산은 호남 정맥의 명산
* 조계산 옛 명칭; 송광사 뒷산은 송광산, 선암사 뒤 장군봉(884m)은 청량산
* 조계산에는 비룡폭포, 감초암폭포가 있다.
*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선사가 창건, 보조국사를 비롯한 한 16국사를 배출함.
국보 제314호 송광사화엄경변상도
임경당(별칭 육감정), 마음을 냇물에 비쳐본다는 의미.
삼청교(三淸橋) ; 사찰 입구 다리 ;
'1) 물 맑고 2) 바람 맑고 3) 달 맑다' 하여 붙여진 이름. 송광사 8경중 하나.
* 삼청교 위 누각을 우화각(羽化閣)이라고 한다. 송나라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에 쓴 대로 날개 돋쳐 날아오르는 신선이 되는 기분이라는 의미.
* 우화각 우측, 개울의 상류쪽 이층누각은 침계루(枕溪樓 ; 시내를 베고 있는 누각)
* 우화각 좌측, 하류쪽의 누각을 임경당 또는 육감정(臨鏡堂, 六鑑亭) . 육감은 六根 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고요히 하여 지혜롭게 마음을 비춰 본다는 것. 임경당이란 거울같은 물가에 임한 집이란 뜻.
일주문 지나면 송광사에만 있는 한 칸짜리 작은 전각 두 채가 있다.
* 하나는 척주각 하나는 세월각이다. 재를 지내러 오는 죽은 영가(靈駕)를 목욕시키는 곳.
* 척주각(滌珠閣 ; 구슬을 씻기는 곳)은 남자 영가 목욕소,
* 세월각(洗月閣 ; 달을 씻기는 곳)은 여자 영가 목욕소.
고향수枯香樹 ; 말라 버린 향나무.
*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 지팡이가 자란 나무이며, 입적하자 향나무도 죽었으며, 보조국사가 환생하여 송광사에 오시면, 다시 잎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한다.
배롱나무 나목에 달린 겨울 연등이 꽃 같다.
한붕화상 글 씌어진 우물, 어디에도 내력은 없다.
* 화상은 불교교단에서 가르침을 내려주는 교사.
* 법호 한붕화상이 만든 우물로 생각함이 좋을 듯. 아마도 중창불사시 뛰어난 건축기술을 가진 스님으로 짐작됨.
* 식수로 부적합하니, 접수처 앞 생수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 1983년 중창, 평면은 亞자형
* 삼세여래와 4대보살을 새로 조성 봉안
- 삼세여래 ; 연등불(=과거불), 석가여래(=현세불), 미륵불(=미래불)
- 현재불인 석가모니가 과거 전생에 연등불로부터 수기를 받아 부처님이 되셨다는 것.
- 수기授記 ; 수없이 많은 생 동안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장차 부처님이 되리라고 약속을 주는 것.
* 석가모니 부처님은 또 미륵불 에게 '56억7천만년 후 미래불이 될 것' 수기를 주셨음을 의미한다.
* 4대보살 ;
-지혜 제일의 문수보살, 신행 제일의 보현보살.
-관음보살은 자비의 화신, 이승의 고난을 구제하고자 하는 서원을 세운 분.
-지장보살은 대원본존大願本尊으로 저승 지옥중생 구원을 서원하신 분.
* 문수 보현은 석가모니불의 좌우협시보살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은 연등불과 미륵불의 좌우에 배치하였다.
삼일암 ; 제9대 국사인 담당국사가 이 곳 물을 마시고 3일만에 오도悟道하였다 하여 삼일암이라 한다. 낡아서 보수를 계획하고 있다.(좌측)
삼일암은 방장의 거처.
* 왼쪽 높은 언덕위 명당자리에 보조국사 지눌의 사리탑이 있다.
" 삼일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의 먼지와 같다."
관음보살전
비사리구시,
큰 행사 때 밥을 담는 밥통. 쌀 7가마, 4,000명 분 밥을 담을 수있었다 한다.
* 재미있는 해인사와 송광사 스님들 허풍 전설
해인사는 밥솥이 크고, 송광사는 해우소가 깊다는 것.
해인사 스님 ; "동짓날 팥죽을 쑤는 데 나룻배를 타고 젓는다."
송광사 스님 ; "아침에 누고 온 변이 아직 바닥에 닿지 않았을 것."
원감국사 시
날마다 산을 봐도 볼수록 더욱 좋고
물소리 노상 들어도 들을수록 좋다.
저절로 귀와 눈 밝게 트이니
소리와 빛 가운데 평안이 있네.
여기 저기 분재를 많이 두었다.
겨울 송광사 피라칸사스 열매
무무문 앞으로 한 스님이 지나간다. 효봉스님 영각앞에 있다.
* 효봉의 법호법명은 효봉학눌
금강산에서 출가한 효봉의 원래 법호는 운봉이었으나, 송광사에 와서 고봉화상으로부터 몽중 설법을 듣고 효봉으로 바꿨다. 스스로 법명은 학눌(지눌을 스승으로 한다)로 정하였다.
* 효봉은 구산수련(1909~1983)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효봉과 구산이 둘다 송광사 방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불교 두 개의 기둥같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월간 송광사지 2020년 12월호 이일야 <엣세이 효봉> 에서 松廣의 松자는 十八公이라했는데, 이미 16국사가 나왔고, 다시 송광사가 배출한 효봉, 구산이 나와 18공이 완성됐다고 규정하였다.
* 효봉스님은 송광사에 주석하시다가 1945년 해방 후 왜색풍조를 새롭게 정화하고자 해인사가 총림으로 재편되면서 해인사 초대 방장으로 효봉스님이 추대되었다. 효봉스님은 거기 가서 활약하다가 입적하셨다.
* 해인사로 가실 때 남긴 시
송광사로 온지 어느덧 십년
옛 어른들 품에서 편히 쉬었네.
무슨 인연으로 조계산을 떠나는가
인간과 천상의 큰 복전 이루기 위함이네.
* 팔만대장경을 지킨 효봉 방장
해인사가 6.25 때 인민군에 점령돼, 총부리 앞에서 해인사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인민군이 퇴각할 때 팔만대장경 장경각을 불태우려 하였다. 효봉이 민족문화유산 지키려 결사반대하자, 인민위원회에 붙였다. 5명의 인민위원이 투표를 하였는데, 2 : 2 였다. 효봉이 반대표를 던져 지켜졌다.
그리고 당시 공군 대령이었던 김영환 장군은 인민군을 소탕하고자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팔만대장경을 지키려고 해인사가 아닌 그 뒷산을 폭격하였다. (해인사 초입에 김영환 장군 공적비가 있다) 팔만대장경은 아슬아슬하게 효봉스님과 김영환 장군에 의하여 지켜진 것이다.
송광사 겨울 산수유 열매
겨울 산수유 열매
겨울 산수유 열매
보조국사 지눌의 부도
승보종찰의 터전을 닦은 이는 불일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다.
지눌 대사의 부도(승탑), 1210년 열반
시호 : 불일 보조국사 / 탑호 ; 감로탑
▣ 보조국사 지눌
* 홀연히 깨닫고 나서 그 깨달음의 경지를 잃지 않도록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와
* 선정禪定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하였다.
* 고려 무신정권기 희종은 지눌을 스승으로 섬겼다. 송광산 길상사를 <조계산 수선사>로 이름을 바꾸어 어필사액을 내렸다.
▣ 진각국사 혜심(1178~1234) 때는 최우의 두 아들 만종, 만전를 출가시켜 제자로 받아들였다. 각각 진주 단속사와 능주 쌍봉사의 주지로 갔다. 만전은 환속하여 최씨 정권 3대 계승자인 최항이 되었다.
▣ 조선시대 선교양종으로 통폐합 되면서 9산 선문이 조계종으로 통합되었다. 이 때 무학대사와 제자 고봉화상이 통합에 기여했으며, 각각 송광사 주지로 가기도 했다.
▣ 왜란 후 서산대사 중심으로 조계 일종으로 재통합되는 과정에서 조계종찰인 송광사는 승보종찰 지위가 더 굳어졌고, 서산대사(1520~1604) 법제인 부휴선사(1543~1615)가 중창하였다.
곡성 태안사 겨울
섬진강의 지류인 대황강 위의 다리(인도교)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 유적 용산재
* 용산재 ; 고려 태조 왕건의 개국공신인 신숭겸 장군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다. 평산신씨 시조 신숭겸이 곡성, 이곳 태생이라니~ 감짝 놀랐다.
* 申崇謙(?~ 927)
본관 평산. 초명 능산, 고려 태조시 무장. 추증된 벼슬 太史, 시호는 장절壯節
태사 개국공신 장절공, 태조 사당에 배향됨.
* 동국여지승람 ; "전라도 곡성현 출신"
* 고려사 열전 ; "광해주(춘천)인. 묘는 춘천에 있다."
* 평산(황해도) 본관은 또 뭔가?
* 종합해 보면 ; 태어난 곳은 곡성, 나중에 춘천으로 옮겨 살았으며. 본명은 능산인데. 태조 왕건을 도와 개국공신이 되었고, 공산동수에서 왕대신 목숨을 바친 충신이었다.
* 평산에서 申씨 성을 하사받아 본관으로 삼았고, 평산 신씨 시조가 되었다,
* 공산동수 ; 대구 공산동수에서 후백제 견훤군에 포위 된 채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여, 태조 왕건의 위급을 구했다.
태안사 입구에 충혼탑과 시설이 있다.
태안사 입구에 능파각. 교량이면서 정자를 지나서 성황당같은 돌무더기를 또 지나간다.
능파각 ; . 신라 문성왕 12년(850) 혜철 스님이 만들고, 조선 영조 때 복원했다. 차를 타고 오면 잘 느끼지 못하지만, 진입도로 능파각까지 올라오는 동안 여러 개의 다리가 있다.
* 귀래교歸來橋 ;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면 돌아가라.
* 정심교淨心橋 ; 마음을 씻으라.
* 반야교般若橋 ; 깨달음을 얻으라.
* 해탈교解脫橋 ; 번뇌망상을 벗어 던져라.
* 능파각 ; 凌波란 미인의 가볍고 우아한 걸음걸이를 일컫는다. (절 경내에서는 조용히 사뿐사뿐 다니라는 거네.)
태안사에 대바라가 있네. 직경이 92cm 특별한 의식이 아니면 사용하기 힘든 큰 것이다. 두 짝을 끈으로 매달아 놓고 쳤을 것이다.
* 1454년 단종 2년, 효령대군이 시주하여 만들어졌다는 명문이 있어서 이 때 태안사와 효령대군(태종의 둘째아들, 세종대왕 형님) 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있다. 효령대군의 원찰(원당)이었던 셈이다.
* 원당완문願堂完文(원당임을 증명하는 서류)문서도 보존되어있다. 이 덕택으로 조선 후기 사찰과 승려에 부과되던 공물이나 역으로부터 면제받는데 도움이 되었다.
태안사를 소개하는 작품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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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곡성 대황강 다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