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드디어 법을 펴게되시다.
一日은 思惟하되 時當弘法이라 不可終遯하고
遂出至-廣州法性寺하니 値印宗法師-講涅槃經이니라
時에 有風吹幡動이라
一僧云風動하고 一僧云幡動하며 議論不已하기에
能進曰하되 不是風動이며 不是幡動이요
仁者心動하니 一衆駭然이거늘
印宗이 延至上席하여 徵詰奧義하나
見能-言簡理當-不由文子하고
宗云하되 行者는 定非常人이니
久聞黃梅衣法南來하더니 莫是行者否인가
能曰하되 不敢이오하니 宗이 於是에 執弟子禮하여
告請-傳來衣鉢-出示大衆하고 宗復問曰하되 黃梅付囑이
如何指授니까하여 能曰하되 指授卽無라 唯論見性하고
不論禪定解脫이요 宗曰하되 何不論禪定解脫이니까
曰謂爲是二法이라 不是佛法이니 佛法은 是不二之法이니라
宗又問하되 如何是佛法-不二之法이니까 能曰하되
法師가 講涅槃經하여 明見佛性이 是佛法不二之法이니
如涅槃經에 高貴德王菩薩이 白佛言하되
犯四重禁과 作五逆罪 及一闡提等이 當斷善根-佛性否니까
佛言하시되 善根有二하니 一者常이요
二者無常이니 佛性은 非常非無常이니
是故로 不斷이 名爲不二며 一者善이요 二者-不善이니
佛性은 非善非不善이니 是名不二라하시니
蘊之與界를 凡夫見二이나 智者는 了達其性無二하나니
無二之性이 卽是佛性이니라
印宗聞說하고 歡喜合掌言하되 某甲講經은 猶如瓦礫이요
仁者論義는 猶如眞金이니다
於是하여 爲能剃髮하고 願事爲師하여
能遂於菩提樹下에 開東山法門하도다.
하루는 깊이 생각하기를
'법을 펼(넓힐)때가 됐다.
마침내 도피하지 않겠노라'하고
나아가 드디어 광주 법성사에 이르르니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는 것이었느니라.
그때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지라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하고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여
토론이 그치지 않기에
혜능이
나아가 말하기를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당신네(僧者)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요'
하니
온 대중이 놀래거늘
인종법사가
상석으로 맞아 깊은 뜻을 추궁해 물었으나
말이 간략하고 이치가 합당하고
문자에 말미암음이 아닌
(글을 읽어 알음알이로 아는 것으로
말 재주나 부리는 것이 아님)
능을
보고 인종이 이르기를
'행자는 결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니
오래 전부터 들리기에는
황매의 옷과 법이 남방으로 왔다 하더니
혹시(莫是)행자가 아닌가?' 하여
혜능이
이르기를 '감당하기 어렵소이다
(그렇소)' 하니
인종이 이에 제자의 예를 갖추어서
전해온 의발을 대중에 꺼내서 보여주기를
사뢰어 청하고,
인종이 다시 일러 묻기를
'황매의 부촉이 어떠한 가르침이었나이까?'
하여
혜능이 이르기를
'가르쳐 준 것은 곧 없으니
오직 제 성품 보는 것만 말씀(論)할 뿐
선정과 해탈을 논하지 않았소이다' 하니
인종이
이르기를 '어찌하여 선정과 해탈을
말씀하지 않나이까?'
'(그렇게되면) 두가지 법(相見)이 되어서
불법이 아니니 불법은 바로(是) 둘아닌
법(실상이 진공인 진리)이로소이다'
인종이 또 묻기를
'어떠한 불법이 둘이 아닌 법이나이까?'
하여
능이
이르기를 '법사가 열반경을 강설하여
밝게 불성을 보는 것이
이 불법이 둘 아닌 법이니
저 열반경에 고귀덕왕 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리기를
'네가지
크게 금하는 무거운 계율을 범한 이와
오역죄를 지은 이와 일천제등은
선근과 불성이 마땅히 끊어진 것이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밝혀 말씀하시기를
'선근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항상함이요
둘은
항상하지 아니함이니(無常)
불성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니
이러하므로 끊어지지 않음을
이름하여 둘이 아니라 하며,
하나는 선함이요
둘은 선하지 아니함이니
불성은 선함도 아니요
선하지 않음도 아니니
이것을 이름하여
둘이 아니라' 하셨으니
五온과 더불어 18계를
범부는 둘로 보나
지혜가 있는 자는
그 성품이 둘이 없음을 요달
(밝게 깨달아 앎) 하나니
둘 없는 성품이 곧 이 불성이올시다'
인종이
이 말을 듣고 기뻐서 합장하고
말하기를
'이 사람이(某甲) 경을 강설한다는 것은
깨어진 기왓장과 같은 것이고
인자의 말씀하신 뜻은
마치 순금과 같사옵니다' 하였노라.
이렇게해서
혜능을 위해 머리를 깎아 주고
(구족계를 받게 함)
스승으로 섬길 것을 원하여
혜능은 드디어 보리수(불지견) 아래
동산법문을 열게 되었도다.
강설:
대사께서는 마침내 법을 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광주 법성사의 인종법사 회상을 갔을 때는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설하고 있었는데,
그때 스님들이 "기가 움직이느냐?
바람이 움직이느냐?" 로
토론이 분분한 것을 보고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하니
대중들이 처음 듣는 말에 크게 놀라
수근거리는 것을 보고
인종법사가 윗자리로 청해서
불법의 깊은 뜻을 물었을 때,
六조의
대답은 명쾌하고 경을 읽어
그 말을 인용하는 말재주가 아니라,
오묘한 심법을 설파하는 것을 보고
五祖로 부터 법과 의발을 전수하여
남쪽으로 온 젊은이가 있다는 소문을
들어왔던 차라
이 이가 곧 그임을 간파하고
조심스레 청하여 증표인 의발을
확인한 뒤
스승으로 모시고 계사들을 주선해
행자로 하여금 구족계를 받게 하고
단하에서 법문을 들으며
六祖大師로 하여금 법을 펴게 하셨으니,
이 인종법사 또한
범상한 인물이 아닌 상근기의 선근이
있는분으로 나중에 六祖로 부처
인가를 받고 법을 잇게된 것이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일체의 주인이
곧 이 본성인 마음이므로
일체의 작용이 이 마음으로 쫓아 남이라,
바람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물체(心)를 따르는 그림자(형상)임을
일러 주신 것이며,
"황매 五祖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가르쳐 준것은 없다"
한 것은 불법은 가르쳐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달해서 증오(깨달음)할뿐이며,
"선정과 해탈을 말씀하지 않는다"
하신 것은
곧 선정 해탈은 차별법으로 교문이고
평등문인
실상으로 보면 불성(法性)은 일체의 근본이요,
일체에 상즉한 것 이므로 둘 아닌(不二)것이요
진공임을 요달하면 선정과 해탈이며
부처도 억지 이름일 뿐인 것임을 알아야 할것이다.
선은
곧 不二의 평등체인 마음을 직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五역죄
(①살생②도둑질③음행④도인이라 속임)와
금계를 범함(①부②모③깨달은 이를 죽임
④승단을 이간하여 싸우게 함
⑤부처님을 해롭게 함:
불법을 비방 또는 삿되게 왜곡)을 지으면
일천제(인과를 믿지 않음: 성불할 인이 없음)가
되어 성불의 因이 끊어져 성불할 수 없다"
한 말씀도 방편인 교설인 것인바,
실상근원인 불성 그 자체는
끊을 선근도 끊을 불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항상함도 항상하지 않음도 없어
더럽고 깨끗하지도(不垢不淨) 않는
진공묘유인 일체가 둘아닌 평등(不二)한 것이다.
따라서
불성은 無常도 항상함도 아닌
참으로 빈(眞空) 것 이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不二라 하는 것이다.
선과 악도
또한 그러하여 차별門으로는 대비하여 교시하나
불성 그자체는
선도 악도 그외 무엇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 없는
진공인 것이므로 不二라 하는 것이다.
五온인
색, 수, 상, 행, 식을 내라 집착하고
6근, 6식, 6경(18경계)을 있음(相)으로
분별하여 둘로 보는 것은
범부의 분별심(집착)이며,
깨달은 이의 반야지혜로
일체를 봄은 쓰임이 있음도
밝게 살펴 분별 할 줄 알되
본성이 공하고 필경 공하므로
둘 없는 진공묘유한 것이 불성이며
법계의성품(法性)인 것을 보는 것이다.
여기서
깨달은 인종법사가
지금까지 글의 굴림을 받아
글자(말)를 쫓아 강의한 것(차별 교설)은
깨진 기왓장(곧 보잘 것 없음)과 같고
六祖의 설하심(心地法門: 直指人心)은
순금(眞)이라고 찬탄하게 된 것이다.
'보리수 아래 동산법문을 열게 되었다'
하는 말 뜻은
보리는 불지견이니
불지견을
하(下)화중생하고자 펴신다는 것이며,
동산법문을 연다는 것은
동산은 5조 홍인 대사로부터 부촉받은
(거슬러 살피면 역대 불조의 전등)
법을 펴기 시작(열게 됨)하게 되었다 하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