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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유고 제1권 / 시(詩) 오언(五言) 고시(古詩) 율시(律詩) 절구(絶句) 집고(集古) ○칠언(七言) 고시(古詩) 율시(律詩) 절구(絶句) 회문(回文) 집고(集古)
〈김장군전〉의 뒤에 제하다 3수○신유년(1621, 광해군13) 〔題金將軍傳後 三首○辛酉〕 김 장군 응하(金將軍應河)가 정령(井嶺)의 전역에서 전사하자, 명나라 조정에서 그에게 요동백(遼東伯)을 추증하였다.
유하장군을 그대여 얘기하지 마오 / 柳下將軍君莫說
나의 슬픔 또다시 북받쳐 오르니까 / 說來令我有餘哀
사당에 올릴 한 잔 술이 없진 않소만 / 尋祠一酹非無酒
오랑캐 머리 찍어 술잔 만들지 못하였소 / 未斫胡頭作飮杯
유하의 웅용(雄勇)한 풍도를 쉽게 말들 하지만 / 柳下雄風人謾說
당시 마음속의 일을 누가 알기나 할까 / 當時心事孰知哉
간뇌도지(肝腦塗地)해도 손은 칼을 굳게 쥐고 / 肝塗尙握煌煌刃
뼈는 썩어도 얼굴은 여전히 노기를 띠었어라 / 骨朽猶存勃勃顋
항복한 두 원수 응징하지 못해 한이 남았다만 / 遺恨未殲降兩帥
오랑캐 괴수를 금세 칠 듯 위엄이 넘치도다 / 餘威擬擊虜渠魁
영령은 정녕 천호의 별 되어 떠났으리니 / 英靈定作天弧去
산도 강도 아니고 우레도 아니리라 / 不是山河不是雷
내가 전에 추성에서 귀양살이할 때 / 纍人昔在古楸城
금성의 정공이 부사(府使)로 있었는데 / 錦城鄭公莅其府
높은 의기 발휘하여 나를 후하게 대우하며 / 鄭公高義向我厚
연석(宴席)에서 팔을 잡고 술단지 기울였지 / 把臂華筵倒甁甒
술이 얼근해지면 왕왕 나라를 걱정하며 / 飮酣往往憂國語
인재를 언급하고 문무를 두루 논했는데 / 語及人材歷文武
공이 말하기를 “나의 벗 응하는 / 公言吾友有應河
충지와 의용이 고금에 으뜸이라 / 忠智義勇驅今古
노부가 감복하는 일이 별로 없는데 / 老夫於人少所服
우리 김후를 볼 때마다 망연자실한다”고 / 每見金侯輒自失
이해에 김후가 융막의 참모로 있으면서 / 是歲金侯佐戎幕
안부 묻는 편지를 내 집에 보냈기에 / 問訊曾到幽人室
그의 얼굴과 용모를 묻고 상상하며 / 詰其顔貌想見之
국가의 간성을 볼 날을 고대했는데 / 矯首佇看干城日
어찌 알았으랴 오늘날 하늘 남쪽 끝에서 / 豈知今日天南頭
그림 속의 유상을 참담히 보게 될 줄을 / 卷中慘憺瞻遺像
전도 한 번 펼쳐 보며 눈물 한 번 흩뿌리고 / 一披戰圖一揮淚
전기 재차 읽으면서 머리 재차 조아리네 / 再讀傳記再稽顙
사람들은 그대가 죽을 곳 얻었다며 영예로 알지마는 / 人皆榮子死得所
나는 공이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노라 / 我獨哀公時不偶
산천의 험하고 평탄함도 분간하지 못한 채 / 不識山川險易
천리 먼 지역을 습격하고 백리를 달려갔으니 / 千里襲人百里趨
지모 없는 중국 장수야 꾸짖을 것도 없지마는 / 天將寡謀何足咎
유독 답견의 편사를 손을 내저어 / 獨揮踏繭偏師
팔만의 철부도에게 던져 주다니 / 投畀八萬鐵浮圖
원융의 머리를 먼저 베지 못함이 한이로다 / 恨不先斬元戎首
당일 옥장의 조무래기 두 놈이 / 玉帳當日二小豎
지레 겁먹고 항복한 것은 말하기도 추하도다 / 望風解甲言之醜
공은 두 장수의 심보를 훤히 알았을 터이니 / 以公之明料二帥
비장(裨將)으로 참전한 것이 어찌 그의 뜻이리오 / 與作偏裨豈其志
처음에 어찌하여 한사코 사양하지 않고 / 始也曷不以死辭
끝내 헛되이 죽을 곳에 몸을 던졌는가 하면 / 畢竟投身徒死地
동방예의지국의 풍도를 보존하려 함이요 / 要存東土禮義風
임금에게 보국의 뜻을 사뢰려 함이었네 / 要白吾王報國意
나는 공이 죽기로 나무에 기대어 적을 사살한 것을 기리지 않고 / 我不愛公抵死倚樹射强胡
나는 공이 죽어서도 손에서 칼을 놓지 않은 것을 기리지 않으며 / 我不愛公死後手中劍不置
나는 공이 귀한 집 딸을 취하지 않은 것을 기리고 / 我愛公嘗不卜貴家女
나는 공이 황문의 사자에게 아첨하지 않은 것을 기린다오 / 我愛公嘗不媚黃門使
평생에 이해를 따지는 마음이 없었으니 / 平生苟無利害心
환난에 임하여 의열의 일이 어찌 어려우랴 / 臨難何難義烈事
공과 같은 분에게 곤외의 일을 위임하고 / 若使如公制閫外
십만의 용사를 내주어 지휘하게 하였다면 / 付與十萬豼貅任指揮
이목이 흉노를 격퇴한 일은 말할 것도 없고 / 李牧擊走凶奴不足道
이정이 힐리를 사로잡은 일도 기대할 만한데 / 李靖襲擒頡利其庶幾
머리에 굴레 씌우고 다리에 밧줄 얽어맨 채 / 頭有韁繫脚索縻
범옷 입은 사슴 새끼에게 지시받게 하였도다 / 稟撝於麛而虎衣
공에게 만고의 공훈을 성취하게는 하지 않고 / 使公不能成就萬古勳
공에게 단지 만고의 명성만 성취하게 하다니 / 使公只能成就萬古名
하늘이 왜 인재는 안 아끼면서 인명에는 인색한지 / 天胡不嗇人才嗇人命
생각하는 중에 온갖 감회와 한스러움이 몰려오네 / 思之中有百感千恨幷
아 / 嗚呼
후세에 어찌 또 김응하가 없겠으며 / 後來豈無金應河
후세에 어찌 또 강홍립이 없겠는가 / 後來豈無姜弘立
아 / 嗚呼
나는 분간해 뽑는 법을 알고 있나니 / 我有揀選法
대궐 문 두드려 내 말을 매고 싶구나 / 欲叩天門我馬縶
정공(鄭公)의 이름은 여린(如麟)이다. 조무래기 두 놈〔二小豎〕은 강홍립(姜弘立)과 김경서(金慶瑞)이다.
[주-D001] 유하장군(柳下將軍) : 김응하(金應河, 1580~1619)를 가리킨다. 김응하는 광해군 때의 무신으로, 자(字)는 경희(景羲)이며, 고려(高麗)의 명장(名將)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다. 경원 판관(慶源判官), 삼수 군수(三水郡守), 북우후(北虞候) 등을 지냈다. 1618년(광해군10)에 명나라가 후금(後金)을 치면서 조선에 원병을 청하자, 이듬해 2월에 도원수 강홍립(姜弘立)과 부원수 김경서(金景瑞)를 따라 좌영장(左營將)으로 출정했다. 이해 3월 심하(深河)의 전역(戰役)에서 유정(劉綎)이 이끈 명군(明軍)이 대패하고 조선의 원군도 후금 군대에 항복했을 때, 홀로 3천 명의 휘하 군사를 이끌고 수만 명의 적군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다가 중과부적으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1620년에 명나라 신종(神宗)이 그를 요동백(遼東伯)에 봉하고 그의 처자에게 백금(百金)을 하사하였으며, 조선에서도 그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충무(忠武)의 시호(諡號)를 내렸다. 당시 일군(一軍)이 모두 전몰(戰歿)한 상황에서 김응하가 말에서 내려 버드나무 밑〔柳下〕에 몸을 기대고 활을 쏘아 적을 사살하다가 화살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칼을 빼 들고 적을 무수히 격살(擊殺)하였는데, 그가 전사한 뒤에 적들이 버드나무 밑의 장군이 가장 웅용(雄勇)하여 범접할 수 없었다면서 유하장군이라고 찬양하였다고 한다. 그의 전기에 대해서는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실린 각종 일화를 비롯하여, 조경(趙絅)의 《용주유고(龍洲遺稿)》 권19 〈증영의정김장군신도비명(贈領議政金將軍神道碑銘)〉, 홍세태(洪世泰)의 《유하집(柳下集)》 권9 〈김장군전(金將軍傳)〉, 이재(李栽)의 《밀암집(密菴集)》 권16 〈김장군응하전(金將軍應河傳)〉 등을 통하여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주-D002] 오랑캐 …… 못하였소 : 참고로 전국 시대 조 양자(趙襄子)가 지백(智伯)을 멸망시킨 뒤에 그의 머리를 음기(飮器) 즉 술 마시는 그릇으로 삼았던 고사와 흉노(匈奴)가 월지왕(月氏王)의 머리를 음기로 삼았던 고사가 전한다.[주-D003] 간뇌도지(肝腦塗地)해도 …… 띠었어라 : 후금(後金)의 노추(奴酋)가 명군(明軍)과 조선군의 시신을 수습할 때에, 이미 여러 날이 지나서 시체가 모두 문드러졌는데도, 유독 버드나무 아래의 김응하의 시신만은 얼굴에 노기를 띠며 살아 있는 것 같았으며, 손에 칼을 굳게 쥐고 있어서 빼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주-D004] 항복한 두 원수 :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姜弘立)과 부원수(副元帥) 김경서(金景瑞)를 말한다. 심하(深河)의 전역(戰役)에 1만 3천의 군대를 이끌고 출정했다가, 전세(戰勢)가 불리해지자 휘하 전군(全軍)을 이끌고 후금(後金)에 항복하였다.[주-D005] 천호(天弧) : 병란(兵亂)에 관한 일을 주관한다고 칭해지는 별 이름이다. 호시(弧矢)라고도 한다.[주-D006] 추성(楸城) : 경원(慶源)의 별칭이다.[주-D007] 금성(錦城) : 나주(羅州)의 별칭이다.[주-D008] 산천의 …… 없지마는 : 중국 장수가 병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후금(後金)의 심하(深河) 부락으로 쳐들어갔다가 참패를 당한 것을 말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이 전사하였다.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이 정(鄭)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건숙(蹇叔)이 “군사를 피곤하게 하면서 먼 나라를 습격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우리 군사는 피곤해서 힘이 다 빠진 반면에, 먼 곳에 있는 나라의 군사들은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니, 실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군사가 취하는 행동을 정나라에서는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 힘을 들이고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배반하는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행군하는 길이 천리나 되니, 누가 이를 보고서 알지 못하겠는가.〔勞師以襲遠 非所聞也 師勞力竭 遠主備之 無乃不可乎 師之所爲 鄭必知之 勤而無所 必有悖心 且行千里 其誰不知〕”라고 말하면서 극력 저지했으나, 이 말을 듣지 않고 공격했다가 크게 패한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僖公32年》 그리고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僖公) 33년 조에 “진백(秦伯)이 정나라를 습격하려고 하자, 백리해(百里奚)와 건숙이 ‘천리 먼 길을 달려가 습격하고서 망하지 않은 경우는 있지 않았다.〔千里而襲人 未有不亡者也〕’라고 간했다.”라는 말이 나온다. 또 《사기(史記)》 권65 〈손자열전(孫子列傳)〉에 “병법에 ‘백리를 급히 달려가 승리를 구하는 경우에는 상장이 꺾이고, 오십 리를 급히 달려가 승리를 구하는 경우에는 군사가 반절밖에 이르지 못한다.’ 하였다.〔兵法 百里而趣利者 蹶上將 五十里而趣利者 軍半至〕”라는 말이 나온다.[주-D009] 유독 …… 한이로다 :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姜弘立)이 고군분투하는 김응하의 분전을 보고도 지원하지 않은 채 후금의 군사에게 전멸당하도록 그대로 놔두었다는 말이다. 답견(踏繭)의 편사(偏師)는 소규모 보병 부대를 말한다. 답견은 누에고치를 밟아서 발이 부르트고 못이 박혔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보병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송(宋)나라 문동(文同)의 〈직부원(織婦怨)〉 첫머리에 “북을 던지느라 두 손은 피곤에 지치고, 누에고치를 밟느라 두 발은 부르트고 못 박혔다.〔擲梭兩手倦 踏繭雙足趼〕”라는 말이 나온다. 《宋詩抄 卷26》 편사는 주력군(主力軍) 이외의 단독 부대를 가리킨다. 철부도(鐵浮圖)는 원래는 금(金)나라의 철갑 군대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후금(後金)의 중무장한 기병을 가리킨다. 《송사(宋史)》 권366 〈유기열전(劉錡列傳)〉에 “올출이 흰 도포 차림에 갑마를 타고서 아병 3천 명을 이끌고 독전하였는데, 그 군대가 모두 철갑을 중하게 착용하였으므로, 철부도라고 불렀다.〔兀朮被白袍 乘甲馬 以牙兵三千督戰 兵皆重鎧甲 號鐵浮圖〕”라는 말이 나온다. 올출(兀朮)은 금(金)나라 태조(太祖)의 넷째 아들인 완안종필(完顔宗弼)의 본명으로, 알철(斡啜) 혹은 알출(斡出)이라고도 한다. 홍세태(洪世泰)의 《유하집(柳下集)》 권9 〈김장군전(金將軍傳)〉에, 명나라의 유격(遊擊) 교일기(喬一琦)가 중영(中營)에서 성벽에 나와 김응하의 전투를 참관하고는 “평지에서 보병으로 철기와 맞서서 이와 같이 싸우다니, 천하의 강군(强軍)이다.〔平地上步戰鐵騎如此 天下勁兵也〕”라고 감탄하면서, 강홍립에게 그를 구원하도록 권하였으나 강홍립이 끝내 병력을 움켜쥐고 꼼짝하지 않자, 교일기가 강홍립에게 배반하려는 뜻이 있음을 알고는 “배반자야, 나는 너에게 붙잡혀서 적에게 넘겨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꾸짖고 한 번 크게 외친 뒤 절벽 아래로 투신해 자결했다는 말이 나온다.[주-D010] 옥장(玉帳)의 …… 놈 : 강홍립과 김경서(金景瑞)를 말한다. 옥장은 옥같이 견고한 장막이라는 뜻으로, 총사령관의 막부를 뜻한다.[주-D011] 공이 …… 것 : 김응하가 경원 판관(慶源判官)으로 부임할 적에 어떤 이가 귀한 집의 딸을 소개하며 첩으로 데리고 가도록 권하자, 김응하가 “우리 집은 가난한데, 그녀는 귀한 집의 딸이다. 아내와 같이 대우한다면 명분이 문란해지니 안 될 일이요, 그렇다고 첩으로 대우한다면 섭섭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첩으로 인하여 귀하게 되는 것은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사양하였다고 한다.[주-D012] 공이 …… 것 : 병조 판서 박승종(朴承宗)이 친상(親喪)을 당하여 고양(高陽)에 장사 지낼 적에, 대내(大內)에서 중사(中使)를 보내어 조의(弔意)를 표했는데, 그때 인척(姻戚)으로 참석한 김응하에게 어떤 이가 “장군은 풍채가 좋으니 중사가 보면 반드시 상에게 보고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중사를 만나 볼 것을 권하자, 김응하가 “뭔가 바라는 마음을 갖고서 환관(宦官)을 만나는 것은 사대부가 할 일이 아니다. 어찌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는가.”라고 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황문(黃門)은 내시(內侍)를 말한다.[주-D013] 곤외(閫外)의 일 : 임금으로부터 정벌(征伐)의 명을 받고 전권(全權)을 행사하는 일을 말한다. 옛날 장군이 출정할 때 임금이 “곤내(閫內)는 내가 통제할 터이니 곤외는 장군이 통제하라.”라고 하면서 수레바퀴를 밀어 주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史記 卷102 馮唐列傳》[주-D014] 이목(李牧)이 …… 일 : 전국 시대 조(趙)나라 명장 이목이 흉노의 10여만 기(騎)를 대파하고 동호(東胡)와 담림(澹林)을 격멸하고 선우(單于)를 축출하여 그 뒤 10여 년 동안 흉노가 감히 조나라 변경을 범하지 못하게 한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81 廉頗閵相如列傳》[주-D015] 이정(李靖)이 …… 일 : 당 태종(唐太宗) 정관(貞觀) 3년(629)에 병부 상서(兵部尙書) 이정이 대주도대총관(代州道大摠管)이 되어 동돌궐(東突厥)의 가한(可汗)인 힐리(頡利)를 정양(定襄)에서 격파하고 대국공(代國公)에 봉해졌다. 이듬해에 힐리가한이 귀부(歸附)하겠다고 청하자, 정양행군총관(定襄行軍摠管)을 보내 맞게 하여 그를 사로잡아 경사(京師)로 압송하였다. 《舊唐書 卷67 李靖列傳》[주-D016] 머리에 …… 하였도다 : 김응하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강홍립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는 말이다. 이 대목은 한유(韓愈)의 시 〈기최이십육입지(寄崔二十六立之)〉의 “어떻게 둥지 속에서 방금 부화한 새 새끼에게, 깃털을 꽂아 주어 하늘을 날게 할 수 있으며, 망아지나 사슴 새끼에게 사나운 발톱을 달아 주고, 맹호의 가죽옷을 빌려 주어 입게 할 수가 있는가. 그대의 머리에는 굴레를 씌우고, 그대의 다리에는 밧줄을 얽어매어, 진흙 구덩이 속에 몸을 빠뜨렸으니, 누가 다시 지시하는 말을 받아들이겠는가.〔安有巢中鷇 揷翅飛天陲 駒麛著爪牙 猛虎借與皮 汝頭有韁繫 汝脚有索縻 陷身泥溝間 誰復稟指撝〕”라는 시구에서 발췌한 것이다. 《韓昌黎集 卷5》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