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2년명(1466, 세조12년) 묘지명 편. 조선고적도보 공주학 아카이브
*사진에는 분명히 成化二十三年下澣 推忠定難 이라고 쓰여있는데 성화2년명(1466, 세조12년)이라니 잘못이다. 사진이 다른 것인가, 오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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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보에는 계룡산 DNA가 있다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님의 스토리 • 3일
일본 국보에는 계룡산 DNA가 있다
계룡산 가마터 일대 수습 성화2년명(1466, 세조12년) 묘지명 편. 조선고적도보 공주학 아카이브
충남 계룡산 학봉리 가마터 발굴에서 확인된 도자기 종류는 다양하다.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 초기의 청자에서 시작되어 조선 초기의 회청사기,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그리고 백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자기가 발견됐다.
15세기 초엽에 세종이 명하여 조사한 자료에는 학봉리에서 ‘중급의 도자기’(品中)가 생산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그 이전부터 활발한 생산 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것은 흔히 ‘계룡산 분청자기’로 부르는 철화분청자기가 이 가마터에서 생산됐다는 점이다. 철화분청자기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사이에 제작된 걸 감안하면, 한국 도자문화가 고려 청자에서 조선 백자시대로 넘어가는 사이의 변동사를 간직한 가마터인 셈이다. 이와 관련, 도자에 새겨지는 그림의 역사에서도 금보다 비싼 청화(靑華, 코발트 안료)의 사용은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세종 대에 금지됐다가, 안료 가격이 낮아진 조선 중기 이후에야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 국보에는 계룡산 DNA가 있다
계룡산 철화분청병
학봉리 가마들 중 재발굴된 5호와 7호 가마에서는 90% 이상이 분청사기다. 물론 백자, 흑유자기, 회청사기 파편 등이 수습되기는 했다. 장식 기법도 다양하여 상감, 박지, 조화, 귀얄, 철화 등의 기법이 복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중 철화기법으로 만든 분청사기가 대단히 독창적이다. 비싼 청화대신 사용된 철채안료가 새로운 한국도자기의 미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학봉리 도자기에 철화안료로 내자시(內資寺), 내섬지(內贍寺), 예빈시(禮賓寺) 등의 관사 이름이 적힌 도자기들이 발견되는데, 이들이 바로 관청에 공납됐음을 보여준다. 흔히 도장을 찍거나 음각으로 관사명을 넣는 것이 일반적인데 학봉리 도자기에는 백토를 칠하고 그 위에 관사명을 흘려 쓴 것도 특징이다.
일본 국보에는 계룡산 DNA가 있다
학봉리 출토 내자시 명 분청사기
철화분청, 500년전 K-컬처의 원조
흥미로운 것은 조선에서는 중품이었던 계룡산 자기들이 이후 일본에서는 명품 대접을 받았다는 점이다. 계룡산 분위기를 이어 받은 차 사발의 경우 일본으로 건너가면 고려다완(高麗磁椀)이라고 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분청자기 종류 다완 중에는 일본 국보로 지정된 것도 있다.
거친 태토로 만든 그릇에 백토를 여러 방식으로 씌우고 다양한 기법으로 문양을 넣은 분청자기에는 한국인의 심성이 맛갈지게 묻어있다. 표면이 우그러진 작은 분청술병을 만지면서 한 도자기 애호가가 ‘사람의 따뜻한 피부 같다’고 감탄하는 걸 본적도 있다. 그만큼 인간적인 도자기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사실 다른 한편으로는 도자기 제작은 대단히 과학적이고 창의적이며 지난한 작업이다. 그래서 과학을 숭상하던 유럽제국들도 근대까지도 도자기를 만들지 못하여 중국 것을 베끼려고 노력했다. 그 때문에 이후 화려한 일본 도자에 매료되기도 했다.
서양이 제작 기법을 알지 못했던 도자 기술이 우리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로 새로운 도자문화 경지에 도달하였다. 당시 우리 선조들의 제작기법에는 장식 기법의 창의성과 함께 ‘빨리 빨리’ 그리고 ‘이러면 어때!’ 등으로 표현되는 한국적 품성이 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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