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일 하늘언어공동체
1부 하늘언어교회
본문 마태복음 23장 23절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제목: 이분법에서 삼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 중에 이분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분법은 대상을 둘로 나누는 범주화의 방법입니다.
하늘과 땅, 빛과 어둠, 선과 악, 우리와 저들 이렇게 세상을 둘로 나누고 한쪽만 가치 있고 다른쪽은 무가치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분법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사고방식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쪽은 전부 선하고 타인들은 전부 악하다고 보는 식으로 신상을 흑과 백으로 양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법을 흑백사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분법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싶은 대로 왜곡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진리와 거짓을 혼동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분법은 논리와 사고의 오류 중 아주 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은 이분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쾌락주의 등이 모두 이분법의 오류에 속합니다. 황금만능주의에서는 오직 돈만이 가치 있고 그 외에는 다 쓸데없다고 봅니다. 외모지상주의에서는 외모만을 중시하고 정신적인 것은 싸그리 무시합니다.
쾌락주의자들은 쾌락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분법에 따라 살아갈 경우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자명한 일입니다. 돈의 노예로 사는 사람은 정작 그 돈을 올바로 사용할 줄 모르고 모으기만 하다가 인생을 마칩니다.
외모지상주의 때문에 끊임없이 성형수술을 하다가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기도 합니다. 쾌락주의자는 알콜과 흡연 등 온갖 것에 중독되어 살다가 중병으로 죽어 가게 됩니다.
이런 이분법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문제가 심각한데도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모르는 이분법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종교에 대한 이분법이 그것입니다.
종교적 이분법은 자기네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전부 이단이거나 우상이라고 매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극단화될 때 자살테러 등 심각한 폭력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비록 극단적인 테러 행위는 자행하지 않는 이들도 자기 우월주의에 도취되어 남들은 전부 어둠의 자식으로 치부하는 극단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자기들만이 진리의 종교이고 다른 종교는 어둠의 세력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교파와 교단으로 갈라져 자기들만이 옳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분법들은 성경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해석했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율법과 복음을 둘 다 주셨는데 사람들이 율법주의와 복음주의로 갈라집니다.
하나님은 믿음과 행위를 둘 다 명하셨는데 사람들이 믿음주의자와 행위주의자로 갈라져서 서로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이분법에 갇힌 한 우리는 갈수록 독선이 강해져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확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분법에 머물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분법을 넘어서 삼분법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분법을 다른 말로 바꾸면 만만주의 또는 냐냐주의라고 합니다. 이것만이 진리라고 하거나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중 하나를 강요하는 것이 만만주의와 냐냐주의입니다.
반면에 성서적 삼분법은 도도주의 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둘 다 또는 셋 다 포괄하는 것이 바로 성서적 삼분법입니다.
믿음만이나 행위만을 양자택일하는 것이 만만주의라면 도도주의는 믿음도 행위도 모두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를 가도 이분법만 가르칩니다. 삼분법을 가르치는 것은 책으로는 만날 수 있지만 교회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거의 만나본 기억이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분법에 따라 좋고 나쁜 교회를 판가름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는 나쁘니 개신교가 옳다, 개신교는 나쁘니 가톨릭이 옳다, 이 교회는 잘못되었으니 저 교회를 다녀야겠다!
그러나 막상 그 교파, 교회에 다녀보면 역시나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교회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완전한 교회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게 됩니다.
세상은 이분법을 강요하지만 성경은 삼분법을 가르칩니다. 세상은 이곳 아니면 저곳에 가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이곳도 저곳도 완전하지 못하니 제3의 길인 하늘나라를 지향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이 성서의 삼분법에 따르면 신앙 스타일도 한 유형에 안주하기보다는 셋 이상의 다른 유형을 통해 배워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한 교회를 다니면서 그 교회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 교회에서 반지성주의 성향이 강해서 하나님이 주신 지적 능력을 억압한다면 지적인 신앙에 열려 있는 온라인교회나 신앙도서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둘을 조화시킨 제3의 길을 지향하는 것이 신앙을 균형있게 발달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모든 한계를 넘어서 완전한 하늘나라를 사모하고 지향하는 신앙을 키워 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종교만으로는 성서의 통합적인 진리를 소화할 수 없습니다. 성서에는 신앙도 있고 사회 정의도 있고, 깊은 지혜를 추구하는 고차원의 철학도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 인문학, 과학 이렇게 세 가지의 영역을 통합적으로 섭렵을 해야 보편적 진리를 배워 갈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신학, 사회복지학, 상담학 등 3가지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언어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늘언어공동체는 삼분법 원리에 따라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진리체계를 구축해 가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며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소식
1. 하늘지형제의 소중한 십일조
하늘지형제님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받은 첫 월급의 십일조를 우리교회에 봉헌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순수하고 귀한 청년인지 이 시대에 보기드문 영혼의 맑음을 가진 형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무한한 가호와 영혼육 전인의 옥토에 강복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형제에 대한 깊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시 한편을 올려드립니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 하이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그다지도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은
나의 가슴 속까지 스며드누나
하나님이 너를 언제나 이대로
밝고 곱고 귀엽도록 지켜 주시길
네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나는 빌고만 싶어지누나
2. 가정교회를 학교와 센터에 적용
우리교회는 가정교회 즉 가정을 교회로 보는 교회입니다.
만일 이런 가정교회 개념을 학교와 센터에 적용한다면 가정학교, 가정센터라는 개념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공동체는 가정교회, 가정학교, 가정센터 이렇게 세 가지 분야를 포괄하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3. 조율공동체
삼분법 다음에는 조율이란 개념을 공동체에 적용하는 것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다음주에는 하늘언어공동체라는 이름 대신 조율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메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2부 하늘언어학교
1. 가정학교의 개념
가정교회가 가능하다면 가정학교도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학자로서 교육과 훈련을 받았으면서도 제가 활동할 기반을 갖춘 학교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소외감을 느껴 왔습니다.
이렇게 제가 활동할 학교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제가 살아가는 이 가정을 학교이며 연구실로 여기고 부단한 학문 연마와 배움에 정진하겠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개념을 생각해본 것입니다.
2. 하나님 이름에 대한 삼분법의 적용
성서에는 하나님 이름이 70여개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압축되어 야웨계열, 엘로힘계열, 아도나이 등 3개 가량의 명칭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말로도 하나님을 최소 3가지 이상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 하느님, 하늘님 이렇게 세 가지 명칭이 모두 가능합니다.
다 같은 이름인데도 교파별로 하나님 이름을 이분법하여 누구는 하느님만, 누구는 하나님만 고집하는 것은 만만주의에 고착된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에 도도주의 즉 삼분법을 적용하면 하나님도, 하느님도, 하늘님도 모두 가능합니다.
3부 하늘언어센터
가정교회를 센터에 적용하면 가정센터가 됩니다.
저는 사회복지사 자격이 있으므로 자립생활센터를 차려서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능숙한 통역자와 지지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여의치 못하기에 가정센터라는 개념을 설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1인기업이나 1인 단체라는 개념도 인터넷에 확산되고 있으니 1인센터라는 개념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가정센터나 1인센터의 센터장이라고 자칭해도 무방합니다.
비록 시스템을 구현할 여건은 안되지만 개념적으로 가정센터와 1인센터를 전제하는 이유는 어떤 단체나 센터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단독으로 하면서 제가 구상한 통합적 공동체의 청사진을 그려나가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