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aver.me/F7ITbofi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 부리지 않고
절대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국과 약간의 채소를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계시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못하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시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 시도 좋지만 인생이 무엇인가를 비춰 주는 거울 같은 시를 만나면 반갑다.
외국문학 중에 좋아하는 비중이 낮은 일본의 시인 미야자와 겐지(1896 ~1933)의 <비에도 지지 않고>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일문학 박사인 동갑내기 당고모가 자기 이야기를 대학 문우회 회지에 발표했는데 친구들 반응이 좋고 다니는 일본교회 목사가 일본에서 책을 내면 좋겠다고 권해 책을 낼 계획이라며 이메일로 보내온 원고 중에 이 시가 있었다. 이 시가 좋아 암송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쳤노라고.
'참 좋다'고 할 시를 만나기 쉽지 않은 요즈음이라 좋은 시를 만난 기쁨이 컸다.
비, 바람, 눈, 여름은 우리가 겪는 자연 현상이다. 이 자연 현상의 위협에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살기를 바라는 데서 이 시인이 병약한 몸이 아니었나 짐작해 보게 한다.
'욕심 없이, 절대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이건 부처님 아닌가.
먹는 것은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국, 채소 조금이다. 이렇게 먹고 살 수 있을까? 소식, 즉 탐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과 통한다.
'모든 일에 잇속을 따지지 않고'는 당고모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로 번역했는데 '잇속을 따지지 않는 것'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듯하다. 잇속은 경제적인 손익이고 감정은 정서적인 호불호이니까.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오두막'이다.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아픈 아이에겐 당연히 제 부모가 있을 텐데 돌보아 주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이 시인이 아이를 사랑하는 심성을 가진 동화작가임을 엿볼 수 있다.
'서쪽에 지친 어머니 계시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혼자 농사일을 하는 어머니라면 얼굴은 시커멓게 타고 허리는 굽고 손은 갈퀴 같으리라. 그런 어머니에게 볏단을 날라 주는 일꾼이 와 준다면 얼마나 반가우랴 (벼농사 연구 전문가 다운 시각이다.)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죽음은 모든 사람이 받아 놓고 사는 밥상이고 건강할 때는 죽음 같은 것 두렵지 않다고 당당할 수 있지만 막상 병들어 죽어가는 마당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별일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싸움이나 소송은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경제적인 큰 손해를 볼 때 벌어지는 일이다. 별일 아닐 수가 없지만 어떤 면에서 죽기살기로 다투는 일은 자신과 상대방에게 똑같이 손해와 상처를 남기는 일일 수도 있다. (기를 쓰고 싸우는 여야를 보면 국민들은 그 끝을 모르는 싸움 끝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 한다. 그만두었으면 하는 싸움이 대부분이고 자기 당에 이로운 것만 추구하는 꼴은 너무 추하다.)
동쪽의 병든 아이, 서쪽의 지친 어머니, 남쪽의 죽어가는 사람, 북쪽의 싸우고 소송 거는 사람 모두 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들이다.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에서 시인이 벼농사를 직접 지으며 벼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 벼농사 농군, 학자의 면모가 드러난다. 지금 우리는 남녘에 가뭄이 심해 저수지물까지 말랐다는 뉴스를 보면서 안타깝다고 느끼긴 하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칭찬도 받지 못하고/미움을 받지 않는/그러한 사람이/나는 되고 싶다.'
시인은 많은 동화와 시를 썼지만 살아서 팔린 작품은 한 편이고 원고료는 5엔을 받은 게 전부였다 하니 우리가 좋아하는 화가 고흐가 살아서 판 작품이 한두 점 뿐이었다는 걸 떠올리게 한다. 서른일곱의 짧은 삶도. 사후에 빛을 본 작품들이 많다는 건 드물고 다행한 일이다.
우리가 보고 기억하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라니......
이 시인이 고향에서 벼농사를 지으면서 농민들에게 봉사한 삶. 집안은 가난하지 않았는데 그런 삶을 산 게 불교의 영향이라는 걸 미루어 볼 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시인은 충분히 자기가 되고 싶었던 '그러한 사람'으로 산 듯하다. 자연에 순응하며 이웃에 봉사한 삶. 튼튼한 몸을 꿈꿨음에도 병마에 시달리면서 그 길을 끝까지 갔다는 것은 여간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시인이 그려 보인 '그러한 사람'의 초상화 앞에 자신의 초상화을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모두 내가 되고 싶은 '그러한 사람'을 이 새해 초에 그려보고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집중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본다.
( 로사가 사 준1642쪽이나 되는 <하이데거 극장 1.2>를 읽으며 어느 분이 '피아니스트 할머니 될래.'라고 한 것을 본따 '철학하는 할머니 될래.'라고 해보는 것만으로 철학자가 된 양 의기양양해진다.
생각잖이 선물 받은 '토끼 머그 - 나전칠기 스타일' 맘에 꼭 드는 까만 컵에 차를 마시는 것도 새해 선물로 너무 좋은 것인데 이것이 책값이 고가이니 그쪽에서 주는 것인 줄 알았는데 센스 있는 우리 로사가 엄마를 생각하며 골라 보낸 것이라 하니 철학을 하고 싶었던 젊은 날의 꿈을 되찾게 해 주는 책과 토끼 머그 컵이 더욱 나를 황홀케 한다. 고흐 달력과 함께. )
철학도 해야 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 곧 삶이요 철학이니.
나 여기 살아 있다
너도 살아 있다
우리 모두 살아 있다.
존재 존재 존재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장한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