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야 말았다> - 나무의 사랑법
커다란 나무를 보면 멈춰 서게 된다. 마을 초입이나 오래된 공원에 있는 어떤 나무는 딱 보기에도 한 사람의 품만으로는 완전히 껴안을 수 없는 몸통을 가지고 계신다. 운이 좋으면 ‘보호수’ 팻말이 나무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게 도와준다. 100년, 200년, 300년을 가늠하며 이 나무가 같은 자리에서 지켜봤을 풍경의 변화를 상상한다. 이제 막 30년 언저리를 살아낸 나는 200년, 300년 세월에서 ‘먼 옛날’과 ‘머언 옛날’의 차이만 발견할 뿐이다. 나무는 어떤 시간 감각을 가지고 계실까? 멈춰 서서 둘러보았던 그 때 그 나무들에게 나는 찰나처럼 지나간 미세한 땅울림 정도였을까? 한 마을의 입구에 서서 주변이 벗겨지고 들춰지고 소란스러움이 사라지는 과정을 우두커니 지켜봤을(아니, 어쩌면 연결망을 총동원해 소란스럽게 불안과 경고의 메세지를 보냈을지도 모를) 나무의 긴 생애를 상상하면, 존경-경이의 마음을 담은 높임말이 절로 나오고야 만다.
두터운 몸통에서부터 해를 향해 위로, 그리고 주위를 살피며 옆으로 뻗어가는 가지의 역동성이 눈에 띄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무가 만든 선은 어떤 굴곡, 꼬임, 굵기, 방향을 가지고 있어도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다. 내 붓이 어디로 향하든, 내 충동이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든 나무와 숲 안에서는 모두 포용된다. 하늘로, 하늘로 자라나는 가지와 깊숙한 곳으로, 더 깊이 뻗어가는 뿌리. 이 둘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성장의 균형을 이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눈에 보이는 저 풍성한 자태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발 밑의 고요한 세상에서 뿌리는 땅을 서서히 움켜쥐고 있겠지. 기둥같은 하나의 몸에서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두 힘. 빛과 어둠, 잎 사이사이를 스치는 바람과 어두운 땅이 머금은 습기, 산비둘기와 청설모와 지렁이. 당신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가지와 뿌리를 뻗는다.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생 자체로 사랑이기 때문에 따로 의도를 덧붙인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 사랑은 뿌리내리는 법을, 품을 내어주는 법을, 선물 받는 법을 잊은, 연결을 잊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당신의 사랑법이 있다면 그건 사랑을 발견하게 하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남아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애착 요소를 찾아내어 당신의 사랑법에 언어의 살을 붙인다. 당신을 앞에 두고 기어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야 만다.
첫댓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상대의 사랑에 살을 붙이는 것이구나 싶어지니 몹시 사랑스럽네요 그 행위 자체도. 나무를 더 노래하고 더 그려주세요. :)
당신은 당신의 생 자체로 사랑이기 때문에 따로 의도를 덧붙인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 사랑은 뿌리내리는 법을, 품을 내어주는 법을, 선물 받는 법을 잊은, 연결을 잊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이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아요. 따뜻한 글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