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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8(13:49) from 211.225.193.215 | |
작성자 : 이덕휴 (dhleepaul@hanmail.net) | 조회수 : 45 , 줄수 : 17 |
수업시간에 나는 늘 단 한사람의 관객 만 있어도 가르치는 일을 - 이낭희선생님
낭희선생님은 내 한 분, 누이의 예쁜 둘째 딸이다. 어릴 때부터 예쁘게 자랐는데 커서도
예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그 엄마에 그 딸이다. 누나는 문학도였다고 나는 기억한다.
-dhleepaul
입시로만 배우는 문학은 얼마나 괴롭고 병든 것인가. 눈으로 품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우린 시인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한 사람의 독자가 될 수 있을 거다. 초임시절 나의 문학 수업은 늘 한편의 시와 함께 시작했다. 함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낭송하는 일부터 우리들의 만남을 열어갔다. 잔잔한 이별의 음악이 깔리는 교실에서 우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배우면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이의 그 마음을, ‘만날 때 떠날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만날 것을 믿노라’며 애틋한 고백을 흘리는 목소리에 뭉클했고, 김춘수의 ‘꽃’을 배우며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어했다. 늘 먼저 취하고 먼저 눈물 흘리는 나를 보면서 학생들은 무명의 배우가 밤새도록 준비한 시나리오를 마음껏 쏟아낼 수 있도록 함께 울고 함께 웃어주는 가장 멋진 관객들이 되어주었다. 수업시간에 나는 늘 단 한사람의 관객만 있어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흘리곤 했지만, 이미 학생들은 부족한 나를 채우고도 남는 훌륭한 관객들이었다. 그렇게 애틋한 나눔의 수업시간, 많은 추억의 이야기들이 흰눈처럼 가슴에 소복소복 쌓여갔다. 가슴과 가슴이 만나 나눈 문학 이야기들은 늘 그 향기가 깊어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곤 했다. 교문을 나서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서조차 그 향기는 가슴 한 구석을 맴돌며 한참 동안을 웃음짓게 했다. 바보처럼…… 어느 날부터였을까. 더 오래 두고 간직하고 싶어서, 너무 귀한 감동이어서 ‘날아가버릴까, 잊혀질까’하는 생각에 그 시간 교감했던 따뜻한 살아 있는 문학 이야기들을 글로 습관처럼 남겨두었다. 그러다 보니 그 내용이 한권의 책을 쓸만한 분량이 되었다. 드디어 교사가 되고 10년이 되던 어느 해 눈부신 5월의 어떤 날, 수업 시간 일구어낸 꽃밭, 우리들이 나눈 문학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내 앞에 놓여졌다. 『0교시 문학시간』 내 생애 첫 번째 책이다. 출처: 이낭희의 문학산책여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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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시인의 사회’ 키팅을 꿈꾸었던 시골학교 문학선생님의 이야기 | |
이낭희 (경기 문산여자고등학교 교사) | |
길 위에 묵묵히 뿌리내리고 선 나무 한 그루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어지곤 한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다. 비바람도 불었겠지요. 눈보라도 쳤을 테지요.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한 곳에 뿌리내리고 서서, 심지 굳게 제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워낸 모습이 눈물겹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가슴속에 아름다운 영상을 품는 사람, 가슴속에 샘물처럼 흐르는 명작이 많아야 멋진 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시골학교의 무명 교사, 그 한 곳에서 둥지 틀고, 울고 웃으며 꾸려본 나의 지난 날들을 꺼내보면서, 또다시 지금 내가 선 이 자리가 주는 눈물겨운 선물, 그 고운 풀향기에 취해본다. |
키팅을 꿈꾸었던 시골학교 문학 선생님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처럼, 멋진 문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살아 있는 감성으로 아이들의 눈과 가슴을 열어주고 싶은 황홀한 꿈을 꾸었던 그 시절이 있었다. 어떤 영화관이었을까. 맨 앞자리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학생들과 하나되어 나누는 키팅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오래도록 영화관을 못 일어서고 눈물을 훔친 그때가 있었다.
아직 차가운 꽃샘추위가 떠나지 않았던 3월이었다. 처음 발을 딛은 낯선 교정, 이리저리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한쪽에서 ‘에그머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람 많이 불던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국화꽃 묶음이 그만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정성스럽게 신문지로 돌돌 말아서 교무실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내가 이곳 학교에 와서 만난 최초의 학부모였다. 먼 발치에 서서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의 시골학교 교사 생활의 그림을 그려보고 혼자 웃음지었다.
국어 선생님보다 문학 선생님을 사랑하는 나는 문학을 삶처럼 즐기고 싶었다. 학생들보다 먼저 감성에 취하는 나를 보면서, 많은 학생들은 때론 웃고, 때론 울면서 어느덧 함께 눈시울을 적실 때가 많았다. 몇 평도 안 되는 교실이지만, 이보다 큰 우주는 없을 것이다. 참으로 비좁은 교실, 그러나 이곳에서 학생들과 감동의 눈물을 나누는 이토록 멋지고 황홀한 체험을 내가 또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순수를 품고 있는 그들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멋진 선물을 또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 한 편의 글을 읽다가 우린 약속이나 한 듯 상기되어 눈믈짓곤 했다. 돌아보면 나의 감성은 이곳에 머물면서 키워진 열매로군. 학교주변에 자리한 숲과, 자연만큼이나 순수한 아이들의 눈맞춤이 교단에 선 나를 마치 마법의 성에 이끌린 사람처럼 취하게 한다.
입시로만 배우는 문학은 얼마나 괴롭고 병든 것인가. 눈으로 품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우린 시인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한 사람의 독자가 될 수 있을 거다. 초임시절 나의 문학 수업은 늘 한편의 시와 함께 시작했다. 함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낭송하는 일부터 우리들의 만남을 열어갔다. 잔잔한 이별의 음악이 깔리는 교실에서 우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배우면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이의 그 마음을, ‘만날 때 떠날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만날 것을 믿노라’며 애틋한 고백을 흘리는 목소리에 뭉클했고, 김춘수의 ‘꽃’을 배우며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어했다. 늘 먼저 취하고 먼저 눈물 흘리는 나를 보면서 학생들은 무명의 배우가 밤새도록 준비한 시나리오를 마음껏 쏟아낼 수 있도록 함께 울고 함께 웃어주는 가장 멋진 관객들이 되어주었다.
수업시간에 나는 늘 단 한사람의 관객만 있어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흘리곤 했지만, 이미 학생들은 부족한 나를 채우고도 남는 훌륭한 관객들이었다. 그렇게 애틋한 나눔의 수업시간, 많은 추억의 이야기들이 흰눈처럼 가슴에 소복소복 쌓여갔다. 가슴과 가슴이 만나 나눈 문학 이야기들은 늘 그 향기가 깊어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곤 했다. 교문을 나서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서조차 그 향기는 가슴 한 구석을 맴돌며 한참 동안을 웃음짓게 했다. 바보처럼……
어느 날부터였을까. 더 오래 두고 간직하고 싶어서, 너무 귀한 감동이어서 ‘날아가버릴까, 잊혀질까’하는 생각에 그 시간 교감했던 따뜻한 살아 있는 문학 이야기들을 글로 습관처럼 남겨두었다. 그러다 보니 그 내용이 한권의 책을 쓸만한 분량이 되었다. 드디어 교사가 되고 10년이 되던 어느 해 눈부신 5월의 어떤 날, 수업 시간 일구어낸 꽃밭, 우리들이 나눈 문학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내 앞에 놓여졌다. 『0교시 문학시간』 내 생애 첫 번째 책이다.
고교생 문학 입문서로 만들어진 이 책은 문학 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가꾸려고 노력한 시골학교 무명교사의 작은 땀방울들이 가꾸어낸 꽃밭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작은 열매였지만, 그 향기는 꽤 깊게 오래도록 은은하게 남았다. 그날 이후 내가 이루어낸 크고 작은 결실의 가장 큰 힘은 그 한 권의 책으로부터 흘러나왔으니까.
살아 있는 문학 교실을 위한 둥지 틀기
늘 내가 주인공이었던 수업에 취하던 어느 날인가부터 나는 수업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교사가 이끌어가는 문학 수업에서 학생들 스스로 참여하고 학생들 스스로 열어보는 문학 수업을 꿈꿀 수 없을까. 작은 교실이지만 그 우주 속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 자신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 안의 작은 바람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힘은 점차 이상적인 수업 모형에 대한 일종의 믿음으로 구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정적인 문학 교실을 좀더 역동적인 수업 환경으로 바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교과서를 버리고, 내가 만든 문학 입문서를 수업 지도안으로 재편하여, 방법을 배우는 문학 수업을 열어보았다. 입시 교육에 찌들어 있는 학교 현장, 교과서가 신격화되어 있는 수업 장면을 생각하면 참으로 힘든 선택이었지만 도전이 즐거워서 학생들과 함께 일구어가는 수업이 유쾌해서 그저 시작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처음 들려준 이야기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처럼 ‘교과서를 버려라’였다. 지금도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하던 학생들의 눈빛이 눈앞에 선하다. 그러나 교사의 새로운 모험과 도전 없이는 교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즐거운 항해를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는 파닥거리는 물고기들의 생명 넘치는 시선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바다를 꿈꿀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즐거움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더 멋진 항해를 위해 아낌없이 힘을 쏟아도 좋을 일이었다.
“고기 낚는 법을 알려주마, 고기는 여러분이 낚아라”였다.
기존의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수업을 탈피하여 방법을 찾아보고, 이 방법을 통해 시감상에 적용해보는 시 수업을 열어본 것이다. 내가 방법을 알려주면 학생들은 작품에 적용해보고, 이를 다시 모둠별로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작품 감상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시적인 장치, 소설적인 장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생활 속에 배어 있는 문학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그 이야기는 전략적으로 짜여진 문학 장치와 연결되고, 다시 작품 속에서 밀도있게 만나보는 수업 장면으로 이어졌다. 물론 교사가 준비한 그 시간의 완벽한 시나리오 속에서 학생들은 능숙한 배우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해당 수업 시간을 통해 계속 보완되었고 다듬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은 더 완벽한 수업 모형으로 살아있는 문학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수업의 한 장면을 들여다본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오늘 나의 마음은 한없이 울적합니다. 이럴 때 눈을 들어 책상을 보면, 한 권의 시집이 한 편의 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요. 깊은 밤 하염없이 내리는 눈길, 눈 위에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시의 집을 두드립니다. 누군가는 있는 듯한데, 도무지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지요. 독자인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야지요. 그리고 시의 집 빈방에 홀로 앉아 울고 있는 그, 흐느끼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속삭임을 들어보아야지요.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는 그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가슴속 눈물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 그러나 그와 나는 안타깝게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듣기만 할 뿐.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시의 집을 돌아서노라면 나의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가벼워집니다. 그의 눈물은 사실 내 안에도 들어 있는 눈물이었거든요.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고백을 듣는 것이지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눈물과 만나는 것입니다. 시적 화자에게 말걸기, 시인에게 말걸기는 우리들을 멋진 독자로 이끌어줍니다. 자 그러면 시적 화자를 어떻게 만날까요. 시적 화자는 누구인가요, 시적 화자는 어디에 있나요, 시적 화자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왜 그렇게 하고 있나요, 시적 화자의 목소리로 지금 심정을 이야기해보세요. 작품 속에서 시적 화자에게 말걸기를 시도하면서 학생들은 풍성한 시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거예요.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적 화자에게 말걸기를 시작해 봅시다.”
수업 시간 나눈 전략은, 다시 학생들 스스로의 힘으로 작품 분석을 하는 방법이 된다. 스스로 만들어보는 시 해설집, 소설 해설집이 탄생되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시집, 내가 만드는 소설집이 그것이었다. 1년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힘으로 만든 시 해설집, 소설 해설집의 열매를 거두었다. 고기를 낚는 법을 배운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멋진 사공이 되어 자신만의 문학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창조적인 독자로 탄생하기까지, 알을 깨는 아픔으로
1318창작지도사이트 http://www.nanghee.com/로 발돋움
학생들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는 문학 교육, 스스로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었으나, 어느덧 자연스럽게 감상 교육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으로 창조적인 독자로 작품과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려면, 스스로 작품을 창작해보는 체험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수동적인 감상에서 적극적인 창조자로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창작 교육에 대한 불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입시교육에 찌들린 교실 환경에서 좀더 건강하게 문학을 뿌리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그 고민 끝에 찾아낸 답이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창작 교육의 불씨를 지펴보는 것이었다. 문학 감상 교육이 문학 창작 교육과 만날 때,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숭의여자대학에서 문예창작지도 교사상을 받으면서 창작 교육에 대한 실천적인 의지를 구체화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창작 지도의 효용성을 처음으로 검증받은 기회였으니 말이다. 수업 시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웹저작 도구인 나모를 배워서, 2000년 5월에 웹상에 본격적인 1318창작지도사이트를 열었다.
http://www.nanghee.com/ 현장교사로서는 처음으로 각종 대학백일장 실시간 정보와 함께 사이버공간에서 학생 대상 본격 시 창작 교육을 열면서, 순수한 문예 창작 지도와 특기 적성 교육이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인 현실적인 대학 문예특기자 전형에 대비할 수 있는 창작 지도를 모범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문예특기자 전형으로 열매맺은 사이버에서 만난 제자들
현재 4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나의 문학 감상 창작 사이트에는 대략 4천여 편의 고교생 습작품이 올려져 있으니, 매년 천여 편 이상이 올려지는 것이다. 돌아보면 창작의 뜰에서 가꾸어낸 열매들이 제법 많아졌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사춘기 시절, 시로서 일기에 담듯 애틋한 고민을 실어보냈고, 그들과의 감성적인 교감을 통해 그들 스스로 삶을 더욱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짧고도 긴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또한 습작을 해온 많은 학생들이 현재 각 대학의 문예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하여 국문과, 문창과에서 창작의 의지를 더욱 더 불태우고 있다. 대학생이 된 그들은 나의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창작 커뮤니티에 실명 창작실을 두고 후배들과 창작을 통한 이야기들을 계속 나누고 있다.
http://www.nanghee.com/(이낭희의 산책 문학 여행)은 고교생들을 위한 본격 문학 감상 창작 공간으로, 특히 1318창작마당에서는 전국 단위의 학생들이 지역을 초월해서 서로가 아낌없이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시로 그들이 가진 삶의 무게와 고뇌와 눈물을 노래한다. 휴전선이 내다보이는 경기도 최북단에서 바다가 보이는 교실까지, 제주의 섬을 가진 최남단 학생까지, 창작에 뜻을 둔 많은 학생들이 저마다의 체험과 감성을 불어넣은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죽은시인의 사회’ 키팅을 꿈꾸었던 시골학교 문학선생님의 이야기 | |||||||||||||||||
이낭희 (경기 문산여자고등학교 교사) | |||||||||||||||||
길 위에 묵묵히 뿌리내리고 선 나무 한 그루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어지곤 한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다. 비바람도 불었겠지요. 눈보라도 쳤을 테지요.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한 곳에 뿌리내리고 서서, 심지 굳게 제 잎을 만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키워낸 모습이 눈물겹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가슴속에 아름다운 영상을 품는 사람, 가슴속에 샘물처럼 흐르는 명작이 많아야 멋진 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시골학교의 무명 교사, 그 한 곳에서 둥지 틀고, 울고 웃으며 꾸려본 나의 지난 날들을 꺼내보면서, 또다시 지금 내가 선 이 자리가 주는 눈물겨운 선물, 그 고운 풀향기에 취해본다. 키팅을 꿈꾸었던 시골학교 문학 선생님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처럼, 멋진 문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살아 있는 감성으로 아이들의 눈과 가슴을 열어주고 싶은 황홀한 꿈을 꾸었던 그 시절이 있었다. 어떤 영화관이었을까. 맨 앞자리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학생들과 하나되어 나누는 키팅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오래도록 영화관을 못 일어서고 눈물을 훔친 그때가 있었다. 아직 차가운 꽃샘추위가 떠나지 않았던 3월이었다. 처음 발을 딛은 낯선 교정, 이리저리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데, 한쪽에서 ‘에그머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람 많이 불던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국화꽃 묶음이 그만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정성스럽게 신문지로 돌돌 말아서 교무실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내가 이곳 학교에 와서 만난 최초의 학부모였다. 먼 발치에 서서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의 시골학교 교사 생활의 그림을 그려보고 혼자 웃음지었다. 국어 선생님보다 문학 선생님을 사랑하는 나는 문학을 삶처럼 즐기고 싶었다. 학생들보다 먼저 감성에 취하는 나를 보면서, 많은 학생들은 때론 웃고, 때론 울면서 어느덧 함께 눈시울을 적실 때가 많았다. 몇 평도 안 되는 교실이지만, 이보다 큰 우주는 없을 것이다. 참으로 비좁은 교실, 그러나 이곳에서 학생들과 감동의 눈물을 나누는 이토록 멋지고 황홀한 체험을 내가 또 어디서 할 수 있을까. 순수를 품고 있는 그들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 인간으로 태어나 이런 멋진 선물을 또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 한 편의 글을 읽다가 우린 약속이나 한 듯 상기되어 눈믈짓곤 했다. 돌아보면 나의 감성은 이곳에 머물면서 키워진 열매로군. 학교주변에 자리한 숲과, 자연만큼이나 순수한 아이들의 눈맞춤이 교단에 선 나를 마치 마법의 성에 이끌린 사람처럼 취하게 한다. 입시로만 배우는 문학은 얼마나 괴롭고 병든 것인가. 눈으로 품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우린 시인과 동행하는 아름다운 한 사람의 독자가 될 수 있을 거다. 초임시절 나의 문학 수업은 늘 한편의 시와 함께 시작했다. 함께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낭송하는 일부터 우리들의 만남을 열어갔다. 잔잔한 이별의 음악이 깔리는 교실에서 우린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배우면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내는 이의 그 마음을, ‘만날 때 떠날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만날 것을 믿노라’며 애틋한 고백을 흘리는 목소리에 뭉클했고, 김춘수의 ‘꽃’을 배우며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어했다. 늘 먼저 취하고 먼저 눈물 흘리는 나를 보면서 학생들은 무명의 배우가 밤새도록 준비한 시나리오를 마음껏 쏟아낼 수 있도록 함께 울고 함께 웃어주는 가장 멋진 관객들이 되어주었다. 수업시간에 나는 늘 단 한사람의 관객만 있어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흘리곤 했지만, 이미 학생들은 부족한 나를 채우고도 남는 훌륭한 관객들이었다. 그렇게 애틋한 나눔의 수업시간, 많은 추억의 이야기들이 흰눈처럼 가슴에 소복소복 쌓여갔다. 가슴과 가슴이 만나 나눈 문학 이야기들은 늘 그 향기가 깊어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곤 했다. 교문을 나서고 집으로 향하는 퇴근길에서조차 그 향기는 가슴 한 구석을 맴돌며 한참 동안을 웃음짓게 했다. 바보처럼…… 어느 날부터였을까. 더 오래 두고 간직하고 싶어서, 너무 귀한 감동이어서 ‘날아가버릴까, 잊혀질까’하는 생각에 그 시간 교감했던 따뜻한 살아 있는 문학 이야기들을 글로 습관처럼 남겨두었다. 그러다 보니 그 내용이 한권의 책을 쓸만한 분량이 되었다. 드디어 교사가 되고 10년이 되던 어느 해 눈부신 5월의 어떤 날, 수업 시간 일구어낸 꽃밭, 우리들이 나눈 문학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내 앞에 놓여졌다. 『0교시 문학시간』 내 생애 첫 번째 책이다. 고교생 문학 입문서로 만들어진 이 책은 문학 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가꾸려고 노력한 시골학교 무명교사의 작은 땀방울들이 가꾸어낸 꽃밭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작은 열매였지만, 그 향기는 꽤 깊게 오래도록 은은하게 남았다. 그날 이후 내가 이루어낸 크고 작은 결실의 가장 큰 힘은 그 한 권의 책으로부터 흘러나왔으니까. 살아 있는 문학 교실을 위한 둥지 틀기 늘 내가 주인공이었던 수업에 취하던 어느 날인가부터 나는 수업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교사가 이끌어가는 문학 수업에서 학생들 스스로 참여하고 학생들 스스로 열어보는 문학 수업을 꿈꿀 수 없을까. 작은 교실이지만 그 우주 속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 자신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 안의 작은 바람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힘은 점차 이상적인 수업 모형에 대한 일종의 믿음으로 구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정적인 문학 교실을 좀더 역동적인 수업 환경으로 바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교과서를 버리고, 내가 만든 문학 입문서를 수업 지도안으로 재편하여, 방법을 배우는 문학 수업을 열어보았다. 입시 교육에 찌들어 있는 학교 현장, 교과서가 신격화되어 있는 수업 장면을 생각하면 참으로 힘든 선택이었지만 도전이 즐거워서 학생들과 함께 일구어가는 수업이 유쾌해서 그저 시작했다. 내가 학생들에게 처음 들려준 이야기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처럼 ‘교과서를 버려라’였다. 지금도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하던 학생들의 눈빛이 눈앞에 선하다. 그러나 교사의 새로운 모험과 도전 없이는 교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즐거운 항해를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는 파닥거리는 물고기들의 생명 넘치는 시선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을까. 그들이 바다를 꿈꿀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즐거움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더 멋진 항해를 위해 아낌없이 힘을 쏟아도 좋을 일이었다. “고기 낚는 법을 알려주마, 고기는 여러분이 낚아라”였다. 기존의 규격화되고 정형화된 수업을 탈피하여 방법을 찾아보고, 이 방법을 통해 시감상에 적용해보는 시 수업을 열어본 것이다. 내가 방법을 알려주면 학생들은 작품에 적용해보고, 이를 다시 모둠별로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작품 감상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시적인 장치, 소설적인 장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생활 속에 배어 있는 문학 이야기에서 출발해서, 그 이야기는 전략적으로 짜여진 문학 장치와 연결되고, 다시 작품 속에서 밀도있게 만나보는 수업 장면으로 이어졌다. 물론 교사가 준비한 그 시간의 완벽한 시나리오 속에서 학생들은 능숙한 배우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나리오는 해당 수업 시간을 통해 계속 보완되었고 다듬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은 더 완벽한 수업 모형으로 살아있는 문학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수업의 한 장면을 들여다본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오늘 나의 마음은 한없이 울적합니다. 이럴 때 눈을 들어 책상을 보면, 한 권의 시집이 한 편의 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요. 깊은 밤 하염없이 내리는 눈길, 눈 위에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시의 집을 두드립니다. 누군가는 있는 듯한데, 도무지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지요. 독자인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야지요. 그리고 시의 집 빈방에 홀로 앉아 울고 있는 그, 흐느끼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속삭임을 들어보아야지요.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는 그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가슴속 눈물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일. 그러나 그와 나는 안타깝게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듣기만 할 뿐.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시의 집을 돌아서노라면 나의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가벼워집니다. 그의 눈물은 사실 내 안에도 들어 있는 눈물이었거든요.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고백을 듣는 것이지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눈물과 만나는 것입니다. 시적 화자에게 말걸기, 시인에게 말걸기는 우리들을 멋진 독자로 이끌어줍니다. 자 그러면 시적 화자를 어떻게 만날까요. 시적 화자는 누구인가요, 시적 화자는 어디에 있나요, 시적 화자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왜 그렇게 하고 있나요, 시적 화자의 목소리로 지금 심정을 이야기해보세요. 작품 속에서 시적 화자에게 말걸기를 시도하면서 학생들은 풍성한 시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 거예요.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시적 화자에게 말걸기를 시작해 봅시다.” 수업 시간 나눈 전략은, 다시 학생들 스스로의 힘으로 작품 분석을 하는 방법이 된다. 스스로 만들어보는 시 해설집, 소설 해설집이 탄생되는 것이다. 내가 만드는 시집, 내가 만드는 소설집이 그것이었다. 1년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힘으로 만든 시 해설집, 소설 해설집의 열매를 거두었다. 고기를 낚는 법을 배운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멋진 사공이 되어 자신만의 문학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창조적인 독자로 탄생하기까지, 알을 깨는 아픔으로 1318창작지도사이트 http://www.nanghee.com/로 발돋움 학생들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는 문학 교육, 스스로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었으나, 어느덧 자연스럽게 감상 교육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으로 창조적인 독자로 작품과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려면, 스스로 작품을 창작해보는 체험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수동적인 감상에서 적극적인 창조자로의 변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창작 교육에 대한 불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입시교육에 찌들린 교실 환경에서 좀더 건강하게 문학을 뿌리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그 고민 끝에 찾아낸 답이 있었다. 사이버 공간에서 창작 교육의 불씨를 지펴보는 것이었다. 문학 감상 교육이 문학 창작 교육과 만날 때,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숭의여자대학에서 문예창작지도 교사상을 받으면서 창작 교육에 대한 실천적인 의지를 구체화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나의 창작 지도의 효용성을 처음으로 검증받은 기회였으니 말이다. 수업 시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웹저작 도구인 나모를 배워서, 2000년 5월에 웹상에 본격적인 1318창작지도사이트를 열었다. http://www.nanghee.com/ 현장교사로서는 처음으로 각종 대학백일장 실시간 정보와 함께 사이버공간에서 학생 대상 본격 시 창작 교육을 열면서, 순수한 문예 창작 지도와 특기 적성 교육이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인 현실적인 대학 문예특기자 전형에 대비할 수 있는 창작 지도를 모범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문예특기자 전형으로 열매맺은 사이버에서 만난 제자들 현재 4년째 운영해오고 있는 나의 문학 감상 창작 사이트에는 대략 4천여 편의 고교생 습작품이 올려져 있으니, 매년 천여 편 이상이 올려지는 것이다. 돌아보면 창작의 뜰에서 가꾸어낸 열매들이 제법 많아졌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사춘기 시절, 시로서 일기에 담듯 애틋한 고민을 실어보냈고, 그들과의 감성적인 교감을 통해 그들 스스로 삶을 더욱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짧고도 긴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또한 습작을 해온 많은 학생들이 현재 각 대학의 문예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하여 국문과, 문창과에서 창작의 의지를 더욱 더 불태우고 있다. 대학생이 된 그들은 나의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창작 커뮤니티에 실명 창작실을 두고 후배들과 창작을 통한 이야기들을 계속 나누고 있다. http://www.nanghee.com/(이낭희의 산책 문학 여행)은 고교생들을 위한 본격 문학 감상 창작 공간으로, 특히 1318창작마당에서는 전국 단위의 학생들이 지역을 초월해서 서로가 아낌없이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시로 그들이 가진 삶의 무게와 고뇌와 눈물을 노래한다. 휴전선이 내다보이는 경기도 최북단에서 바다가 보이는 교실까지, 제주의 섬을 가진 최남단 학생까지, 창작에 뜻을 둔 많은 학생들이 저마다의 체험과 감성을 불어넣은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1318창작시집 전자책 『들꽃향기』 출간 교실에서의 창작 교육이 웹으로 이동하면서 나의 창작사이트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문예 창작에 대한 적극적인 동기부여를 하는 모범적인 사례로 운영이 되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글쓰기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창작의 주체가 되는 체험을 하고, 지역적인 한계를 초월해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특히 지역의 사투리, 문화 등을 공유하면서 스스로 문학적 안목과 자질을 쌓아가는 교육적 효과가 가시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밀실 속에 감추어진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어 보여주는 과정 속에서 정신적인 치유는 물론 건강한 자아를 세우고, 사물에 좀더 깊이있는 성찰의 태도를 배우는 즐거운 시 창작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는 1318창작마당을 통해 나누었던 학생들의 창작물과 나의 작품평을 실은 1318창작시집 『들꽃향기』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어 온라인 창작교육의 작은 결실을 이루기도 했다. “이곳은 사이버 공간에서 1318들을 만나 창작 지도를 했던 발자국들을 따라가본 뜰입니다. 또 하나의 교실에서 나눈 우리들의 창작의 꿈은 시를 쓰는 학생들이나, 시에 눈맞춤해준 저에게나 참으로 가슴설레는 산책이 아닐 수 없었지요. 1318들의 눈에 들어온 그들만의 세상, 그들만의 향기를 만나면서 저는 또 한 사람의 문학소녀가 되어 그들이 만들어주는 향기로운 숲을 거닐곤 하였답니다. 한 편 한 편 모두 저에겐 보석 같은 작품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하게 선명하게 제 가슴속 빈방에 찾아들었던 순수 학생 시들을 올려봅니다. 미래에 시인을 꿈꾸는 학생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이미 시인의 눈을 가지고 있고, 시인의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시인들이었습니다.” -1318창작시집『들꽃향기』엮은이 후기 매월 한겨레신문 글쓰기 지도 활동 현장교사로서, 이른바 내가 시도하고 있는 교육은 감수성 언어 교육이다. 논리적인 언어에 익숙해진 학생들의 언어와 가슴을 어루만지는 감성, 감수성 교육이다. 내면적인 감성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배설을 유도하고, 지지하고 격려하고, 그 속에서 언어적인 훈련을 병행하는 이 창작 지도 방법이 현장교사로서의 모범적인 글쓰기 지도사례로 평가받으면서, 한겨레신문 글쓰기교실에 매월 1318창작마당 나의 사이트에서 지킴이 추천시로 올려진 작품이 게재되고 있다. 그 몇 작품을 감상해보자. 작품1> 아버지가 흔들립니다 - 박지훈 아버지가 흔들립니다 아버지는 열 시가 되면 학교에 오십니다. 우리 차는 아니지만 회사 1톤 트럭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했는데 교통 어중간하고 밤길 험하다며 말하지 않아도 도착해 있습니다. 오늘은 열 시가 되어도 트럭이 없습니다. 휴대폰으로 연락했더니 아버지는 교문 옆에서 떨리는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한잔했습니다. 오직 자식 둘만 바라보는 아버지가 독한 술을 한잔했습니다. 누구와 마셨나 했더니 “마음이 괴로워 혼자 뭇다.” 아버지 눈은 구슬피 달빛을 흘립니다. 술에 취했는지 괴로움에 취했는지 팔짱끼고 있는 아버지가 나를 잡고 흔들립니다. ♠산책 아버지와 아들의 눈물겨운 삶의 향기 지훈님의 습작시 ‘아버지가 흔들립니다’를 보았습니다. 님이 흘리고간 발자국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다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이 어떻게 저만의 것일 수 있을까요. 1톤 트럭 회사차를 교문 앞에 세우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오늘은 맨몸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술에 취한 아버지도 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는 님의 눈에도 구슬 같은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흔들리는 아버지가 외롭지 않은신 것은, 아버지를 위해 어깨 내어드릴 수 있는 님의 따뜻한 가슴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한 사람 한 사람, 아버지와 님이 만들어가는 삶의 향기가 눈물겹습니다. 너무도 진실한 고백! 오랜만에 흘려보았군요. 눈물을……고맙습니다. 작품2> 마지막수업 - 윤희강(경기 안성 죽산종합고등학교 3학년) 시골 똥 냄새가 좋아 여적지 눌러 있었다는 우리 할배 선생님 오늘 아침 마지막 수업 그 진한 똥내 교실에 옛날이야 할배 수업시간 눈 빠지고 팔 빠지게 필기 수업 국어 수업 말 많던 그 옛날이야 생생한 젊은 선생들처럼 따끈한 프린트 돌리고 밑줄 긋는 수업이면 손도 덜 아프련만, 공부도 아파야 공부라며 할배 시간 교실바닥 허연 서릿발이 나리고 삼십년 백묵 잡은 손가락 안으로 굽어진 세월은 내려오는 교단 인생 잡아끄는 눈망울들 등 돌린 필기가 계속된다 쉬는 시간이 끝나도 지우고 지우고 다시 쓰는 할배의 마지막 수업 엘리제를 위하여 온 학교를 떠나가도 평생 평교사로 남은 할배의 오래 야윈 등골 학교 담장 묵은 수세미처럼 넘지 못하는 키 낮은 정(情) ♠산책 행복한 선물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군요. 마지막 수업이라…. 시 속에서 저는 언제일지 모르는 저의 마지막 수업을 그려보고 있습니다. 떠나는 뒷모습은 누구라도, 애틋한 풍경일 테지만, 한길 참 외롭고 고독하고, 무수하게 절망했을 시간. 그럼에도 한 송이 꽃향기 피우려고 젊은 땀을 흘리셨을 노선생님이 지나오신 향기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답니다. 마지막 연은 그 선생님의 삶에 따뜻하게 손내밀 줄 아는 아름다운 가슴을 만나기에 충분합니다. 사람살이의 향기는 이렇듯, 서로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가만히 속삭여주고 따뜻한 손 내밀어주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 길 위에 머문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그 향기는 오래도록 남아 서로의 가슴에 그리움의 꽃을 피울 테지요. 선생님과 제자가 만나 나눈 이야기는 오래도록 서로의 발자국 위에 머물 거예요. 이 시를 보면서 저는 문득 선생님의 자리에 대해 생각해보고, 참 행복한 한 사람이 되었답니다. 작품3> 만원 한 장 - 박세희 (전남 목포 영흥고등학교 2학년) 성탄절이라며 엄마가 놓고 간 만원 한 장 늦잠 후에야 비로소 본다 누이는 지오디라는 녀석들 TV에 나온 것마다 다시 봐야 한다며 녹화 테이프를 사러 비디오 가게에 100m 마라토너처럼 뛰어 가고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나는 만원 지폐 한 장 본다 이 구겨진 만원 한 장 잠든 머리맡에 사알짝 놓아두고 휴일에도 일 나갔을 엄마의 미안한 손 그 눈 나는 잠시 만원짜리 하나 주머니에 넣다가 아니다, 아니다 고개를 몇 번이고 저은 후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구석구석 두리번거리다 장롱 속 엄마의 낡은 지갑 안에 처음처럼 넣어 놓았다 ♠산책 ‘만원 한 장의 눈물’이 주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감동 행이 더할수록, 나도 모르게 이 시는 도대체 어떻게 끝이 날까 궁금해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답니다. 마음이 너무 곱고 예뻐서요. 곁에서 어머니의 힘겨운 삶을 나누고 덜어 드리려는 마음이 학생의 가슴 속에 차곡차곡 참으로 건강하게 배어 있는 것을 봅니다. 만원짜리 지폐를 들고 가졌을 꽤 긴 ‘망설임’이 눈앞에 선하군요. ‘진실한 고백’을 만나면서 나는 학생이 앞으로 걸어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진실’은 아름답지만 간직하긴 쉽지 않지요. 늘 품지 않으면 어느새 훌쩍 날아가버리는 무서운 새이기도 하지요. 진실이 떠나간 뒤에 남겨진 둥지는 참으로 초라한 껍데기일 뿐이지요. 나는 학생이 품고 끌어안는 그 모든 것들이 자칫 우리들이 놓치고 살아가는 참으로 귀한 씨앗들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잃어가는 것이 너무나 많아서, 한없이 작고 초라해지는 우리들이어서, 오늘 나의 창가에 날아든 이 시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군요. 시의 길을 함께 동행하면서 거짓없이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들의 시쓰기는 또 얼마나 행복한 산책일까요. 더욱 아름다운 시쓰기로 발전하길 기대합니다. 나만의 교단 일기장에 남겨진 고백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 행복한 삶을 가꾸려면 가슴속에 아름다운 영상을 많이 품으라고 한다. 삶이 그렇듯, 교사의 자리 또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처럼 풋풋한 학생들을 만나는 우리들은, 지금 이순간 그들과 어떻게 눈맞춤하느냐에 따라 더 향기롭고 더 그윽하고 더 오래도록 남을 은은한 영상들을 품을 수 있으니, 조금 특별한 길 위에 우리들은 서 있는 것이 아닐까. ‘나만의 명작을 그리는’ 일을 즐기기 위해서 나는 ‘나눔’이 아주 귀한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더 알차고 더 풍성한 나눔을 위해서, 교사 스스로 먼저 좋은 길을 찾아보고 걸어보고, 땀흘려본 뒤에 제자들에게 길을 안내할 수 있다면 참 멋진 일이다. 교사의 가슴이 더 넓은 공간으로 향할수록, 교사의 가슴이 더 많은 것을 품을수록 학생들의 눈은 깊어지고 넓어지겠지.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기 위해서, 삶에 지친 모습보다는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는 좋은 선생님의 얼굴과 가슴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한다. 나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영상들, 언제라도 꺼내 보며 풀향기 가득한 날들을 돌아본다. 그날의 일기 1) 2001년 스승의 날! 어떤 교사의 고백 “선생님! 사랑해요. 우린 선생님 사랑하는데…” 그 뒤에 꼬리를 감춘 말은 아마도 “선생님 오늘만은 제발 수업 말아주세요.” 이 한 마디가 아닐까. 또다시 찾아온 스승의 날! 아침부터 출근길 달리는 차 안에서 라디오 볼륨을 크게 만들어 놓고, 스승의 날을 기념하는 멘트에 자연스럽게 귀 기울인다. 제자가 선생님을 사랑해서 결혼하게 되는 드라마의 삽입곡이 흘러나오고, 전국의 곳곳에서 제자가 선생님을 향해, 스승이 제자들을 향해 띄운 핑크빛 연서가 줄을 잇는다. 나 또한 그러한 사연 속에 머물고 있으니, 가슴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 스승의 날!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들어온 것은 빈 책상을 꽉 채운 꽃바구니, 평소에는 먼지만 풀풀나는 자리건만, 오늘 아침엔 상큼한 풀내음이 책 속에도 스며 들고 있는 듯하다. 꽃바구니 사이에 살짝 고개든 쪽지가 끼워 있다. 졸업한 제자 미아가 보낸 너무나 고마운 선물이다. 구조조정될까 걱정했던 이야기들을 나눈 것이 불과 며칠 전이고 보면, 스승의 날 이런 멋진 선물은 무리였을 텐데… 그래서 오히려 이 선물이 더 눈물겨운지도 모른다. 교실에 들어서자, 기다린 듯이, 학생들의 스승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조금 멋쩍게 교실을 한 바퀴 돌고 나는 어색하게 다시 교단에 선다. 오늘은 스승의 날! 칠판에 “낭희언니 사랑해요!”라고 쓴 구절이 참 인상적이다. 선생님이 가장 듣고 싶었던 소리라고 누가 썼느냐고 하자, 학생들의 입이 하늘 끝까지 치솟는다. 오늘은 이 언니가 한 마디 하겠노라며, 내가 가진 조금 병적인 국어 선생님, 문학 선생님에 대한 예찬론을 펼쳐보인다. 다시 태어나도 이길을 가겠노라는 말에 오히려 사랑하는 제자들은 더 눈빛 초롱초롱 쳐다보며, 열정에 해준다. 고3인 만큼, 인생을 준비하는 학생들이어서 또 하나의 길을 가고 있는 스승의 이야기는 자못 의미심장하게 들리는가 보다. 끝자락에 준비된 시나리오 대로 선생님의 선물이라며 시 한 편을 선사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어느 날엔가 우리가 함께 했던 날들이 그리울 때, 이 시를 펼쳐보라고… 오전으로 일과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자리를 지키다, 교무실에서 마지막 남은 한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는 선물을 챙겨 학교 주차장으로 나선다. 비가 내린다. 하루종일 흐리더니 실비로 바뀌었다. 푸르게 늘어뜨린 가지 사이에 내리는 빗줄기가 가늘게 보인다. 우산에다 어깨에 가방 메고 한 손에는 꽃바구니를 들고, 이젠 푸른잎으로 무성한 벚나무를 지나 교정을 나선다. 차에 올라서 라디오를 틀었다. ‘언제나 마음은 태양’이라는 영화 속의 삽입곡 ‘To Sir With Love’가 흘러나온다. 기다린 듯이… 차 안이 어느새 바구니에서 흘러나오는 풀잎 향기로 가득하다. 길 위를 달리면서 차창 밖에 흩날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 벅찬 감동에 젖어들고 있다. 가슴 저편에서부터 푸른 물이 들기 시작한다. 선생님의 자리가 얼마나 작고 초라한 나를 아름답게 하는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꽤 괜찮은 나무 그늘이 되어줄 수 있는 이 멋진 행운을 나는, 언제까지나 즐기고 싶다. 언제까지나… 그날의 일기 2) 2002년 스승의 날 5월, 어떤 교사의 고백 오늘 문득 한 학생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저는 그 시를 보면서 저의 마지막 수업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때 저의 모습과 그 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국어 수업 시간에 저는 오늘, 학생들과 시를 나누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수업의 첫걸음을 1318창작마당에서 한 편을 제가 낭송하고, 제가 리플을 단 내용을 읽어주었습니다. 전에 시도했던 적이 있지만, 오늘부터는 수업의 시작을 늘 이렇게 하려고 합니다. 저의 낭송이 끝나자, 학생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감동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입니다. 교사가 교실에서 학생과 하나되어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입니다. 시를 이야기하고, 국어 수업으로 들어가기는 조금 벅찬 일입니다. 학생들의 시는 그들만의 풀향기가 있어서, 저는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설레고 두근거리고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의 느낌에다가 학생들의 느낌까지 더해지니, 참으로 벅찬 순간입니다. 그러나 즐거운 고통(?)을 저는 앞으로 마음껏 즐기려고 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니 말입니다. 5월, 교정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은 너무나 곱습니다. 여기저기 흐르는 푸른물들이 금방이라도 저의 몸에 스며들 듯합니다. 그 향기에 취해서 교정을 걸었습니다. 숲과 함께 걷고, 숲과 함께 생각하고, 숲과 함께 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저는 얼마나 행복한 교사인가요. 그날의 일기 3) 11월 30일 추억으로 남을 제자들에게 보내는 선생님의 편지 고맙습니다. 3학년 11반 교실엔 아르바이트(삼포만두)로 자리가 많이 비었더군요.말만 특강이지, 마지막 수업을 멋지게 나누고 싶었던 님들이지만, 생각처럼 얼굴들을 만날 수는 없었어요. 그러나 어느 곳에선가 땀흘리는 ‘노동’을 시작한 제자들의 모습에 저는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우리들의 마지막 날! 8명이었지만, 빈자리마저도 저는 님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지요. 수업 시간 교실을 뒤집어놓을 정도의 넘치는 유머와, 뒤질세라 이쪽저쪽에서 불쑥불쑥 터져나오던 그 아름다운 일탈의 모습들. 준비 안 된 무대에서 반사된 거울을 이용해 칠판에 만들어진 햇살 조명! 칠판에 씌어지는 명필의 스승이 남긴 한 글자 한 글자에 포커스를 맞추던 님들의 애틋한 정성에 저는 정말 너무 가슴이 뛰어서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너무 행복해서요. 시 감상했던 추억도 저에겐 잊을 수 없는 추억이지요. 제 사이트에서 몇 편의 시를 소개했던 어느 날의 오후 수업. 고3 입시 교실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3학년 11반에서는 가능한 일이었지요. 사이트에서 만난 아름다운 시들을 뽑아 제가 분위기 잡고 읽었지요. 그때 저는 물론 시를 읽고 있었지만, 사실은 님들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답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그 ‘아름다운 고요’를 제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저는 시 한 편으로, 그렇게 멋진 교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제자들 때문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문산읍내에 둥지 틀고 있는 우리들. 이곳에 남기고 있는 저의 추억의 발자국에 가장 소중한 주인공들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곳의 ‘학생들’입니다. 다른 그 무엇이 초라하고 다른 그 무엇이 바로 서 있지 않더라도, 님들로 해서 저는 어떤 선생님들보다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교사가 될 수 있군요. 님들의 앞날에 늘 행운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등록일 : 2004.04.27 08:57:06 I 게시일 : 2004.04.27 08:5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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