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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술 토머슨은 저자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명명한 개념예술로, 더 이상 쓸모가 없지만 건축물이나 길바닥에 보존된 구조물을 가리킵니다.
초예술 토머슨의 조건 - 무용성, 건축성, 보존성, 비의도성, 심미성
1. (무용성, 건축성, 보존성) 더 이상 쓸모가 없지만 건축물이나 길바닥에 보존되어 그 환경의 일부로 보존된 구조물이나 그 흔적. 지어진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만, 기능을 잃어 쓸모가 없어진 것
2. (초예술, 비의도성, 심미성) 그 자체로 예술을 초월하는 예술.먼저 그 물체를 앞에 두었을 때 가슴이 떨려야 한다. 어떤 도구도, 부동산도, 예술도 아니어서 결국 초예술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되어야 제대로 된 방식이다
존재가 마치 예술 같으면서도 예술에 해당하지 않으며, 비실용성에 있어서 예술보다 더 예술 같은 물체를 초예술(超芸術)이라 제창했다.
초예술의 특징은 초예술을 만들려는 의도로 만드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초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초예술 중에서도 특히 인간이 만든 건물, 구조체, 시설 등 부동산에 속하는 것을 토머슨이라고 부른다.
예시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는 계단
기능이 없는 난간
벽에 박혀 있는 쓸모없는 문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는 다리 일부
무용 차양, 고소(高所) 문.
이 개념은 현대 예술, 건축 비평, 도시 탐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창의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도시에 부착되어 아름답게 보존되는 무용의 장물
‘초예술 토머슨’이라는 유령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에 유령이 나온다. 이 책 『초예술 토머슨』의 제목은 그 유령에 저자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붙인 이름이다. 그저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만 가능한 ‘순수 계단’, 열 수 없도록 꼼꼼히 막힌 채 존재하는 ‘무용 문’, 문도 창문도 없는 벽에 홀로 남은 ‘차양’, 아무도 출입하지 못할 높이에 달린 ‘고소 문’……. 하나같이 부동산에 부착되어 있고,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고, 쓸모없다.
“분명하게 이야기하겠다. 이것은 ‘초예술!’이라는 것이다.” 모든 물건이 유용한 것과 쓰레기라는 2대 진영으로 나뉜 세상에서, 저자를 포함한 각지의 토머슨을 관측하는 사람들 ‘토머스니언’은 둘 중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못한,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내 보고한다. 그들의 기록을 통해 ‘초예술 토머슨’의 전모가 낱낱이 밝혀진다.
출판사 서평
거리 산책에 새로운 즐거움을, 표현의 세계에는 신선한 충격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초예술 토머슨’은 저자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명명한 개념예술이다. 더 이상 쓸모가 없지만 건축물에, 또는 길바닥에 부착되어 그 환경의 일부로 보존된 구조물이나 그 흔적으로, 그 자체로 예술을 초월하는 예술이라며 ‘초예술’이라고 선언했다.
- ‘토머슨’은 한 야구 선수의 이름에서 따왔다. 고액 연봉을 받으며 입단했지만 헛스윙만 이어가며 끊임없이 삼진을 쌓는데, 구단에서는 “돈까지 들여가면서 정성스럽게 보존”하는 모습이 살아 있는 초예술이라는 이유로.
-일상 속에서 무심히 지나칠 만한 것, 그늘져 어두운 곳에 있는 것, 애써 가려 놓은 것,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위화감을 자아내 눈에 띈 것, 그런 궁상맞은 구석이 있는 것들을 굳이 주목한다.
순수계단
토머슨 제1호는 요쓰야의 순수계단인데 진짜 계단이다.원래 계단은 어딘가로 통하고 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그러나 순수계단은 오르고 내릴 수만 있고 어디로 통하지는 않는 계단이다. 그런 계단이 잘 보존되어 있다.실용이 아니라 무용을 찾아내 초예술로 만들어 방송에까지 소개되어 일본 전역에서 토머슨을 발견하여 사진을 공유하고 사연을 받아서 책까지 나오게 된 점이 놀랍다. 저자는 토머슨을 강의하고 마지막 강의에는 버스를 빌려 도쿄의 토머슨 명소를 순례했다고 한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진지함이다. 일본에서 발견되어 일본의 토머슨에는 깊은 멋이 있으며 절절한 세월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저자를 보며 뭔가 알듯말듯한 일본스러움이 느껴졌다.
일본의 현대미술가 아카세가와 겐페이(1937~2014)는 이런 것들에 ‘토머슨’이란 이름을 붙이고, 여기에서 ‘초예술’이란 개념을 끌어냈다. 우리가 사는 ‘당연한 세계’는 쓰임 있는 존재만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폐기한다. 그런데 그게 “‘부동산적 물건’이라면 손쉽게 폐기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세계의 한쪽 구석에 남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을 넘어서는 예술, ‘초예술’이 아니겠냐는 제안이다. 토머슨과 초예술은 1982년 잡지 기고로 알려졌고, ‘토머스니언’을 자처하는 독자들이 도시 곳곳의 토머슨들을 찾아내 ‘보고’하는 등 널리 관심을 끌었다. 토머슨이란 이름은, 높은 연봉을 받지만 헛방망이질만 하며 벤치를 지켰던 메이저리그 출신 야구선수 게리 토머슨으로부터 따왔다.
사진 속 굴뚝은 재개발 지역의 목욕탕 철거 과정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토머슨이다. 굴뚝을 들여다보기 위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토마스니언은 무의미해 보이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듯하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 _ 장 그르니에
예술이 아닌 초예술
무용의 순수계단, 무용의 고소문, 무용의 손잡이
토머슨 관측은 제가 사는 동네를 재확인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매일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처음 발견하는 모습이 많아 놀라웠습니다. (p.71)
전부 하나같이 "저건 저기 왜 있는거지?" 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 자리에서 도무지 쓸모가 없는 물건들.
"그런 의미로 말하자면 예술이라는 것은 도움이 되는 유용한 물품이다.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도 예술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초예술은 예술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 전방위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물품이다." _ 153p
다들 왜 '초예술' 토머슨 이라고 하는지 아셨는지 ? '전방위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에서 나는 왜 웃음이 나왔을까.
이걸 없애버리고 싶지 않으신지? 그렇다면 당신은 무용물 추방욕이 있으십니다.
"무용한 삼각지대를 이대로 방치해 두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과도한 '무용물 추방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용물 추방욕은 실제로는 삼각지대를 모두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싶었겠지요." _ 181p
'무용물 추방욕'이란 자본주의가 더 강화시킨 욕구가 아닐까. 물론 인간에게 필요없는 것을 모두 끌어안고 사는 욕구보다는 그 좋은 '효율'을 위해 버리는 욕구가 발달해왔을 터, 하지만 자본주의가 점점 더 강해지고 이제는 모두들 과도한 '무용물 추방욕'게 사로잡혀 있다. 쓸모 없는 인간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심지어 스스로까지 그렇게 옥죄는 것이다 !! 또한 무용물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자본주의에 절여진 인간은 그것 마저 거슬려하기 때문에 '방해'라고까지 느낀다
조건에 맞아도 가슴이 떨리지 않으면 안돼.
길거리에 있는 초예술 토머슨의 제보를 받는 겐페이 옹. 토머슨 개념이 인기를 끌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토머슨이 맞나요? 물어오기 시작한다.
"역시 이게 없으면 안 된다. 가슴 떨림. 최근 여기에서 토머슨 보고를 받으며 가슴 떨림이 결여된 물건이 많다고 생각했다. 사진 몇 장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면 역시 대부분 토머슨적 조건을 어느 정도는 충족한다. 그래서 "아, 그렇군요." 하면서 별수 없이 호응하지만, 몇 번을 봐도 전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 이건 곤란하다. 기본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초예술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성립할 다양한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조건에 부합한다고해서 모두 초예술로 합격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그렇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초예술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그 물체를 앞에 두었을 때 가슴이 떨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고찰해 가면서 어떤 도구도, 부동산도, 예술도 아니어서 결국 초예술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되어야 제대로 된 방식이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가슴 떨림도 감동도 아무것도 없는데 조건에는 맞으니까 이것은 초예술이라며 좋아하는 뇌신경이라니 ..." _ 199p
겐페이 옹은 토머슨의 개념이 퍼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제도화되는 것을 지루해하기 시작한다. 가슴 떨림이 본질이라는 말이 좋다.
발견도 재능이다.
"토머슨은 끊임없이 발견만 하는 일인데 발견에도 재능이 있고 개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_ 309p
똑같은 걸 두고도 발견하는 사람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 또한 발견해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과 표현하지 않는 것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자기 딴에서 이건 아니라고 가능성을 배제해버리면 말짱 꽝인 것이다. 사진을 찍는 일과 비슷하다. 겐페이 옹의 "노상관찰학입문"이라는 책도 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길에 흔하게 널린 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찬미언니가 생각나서 찍어 보내줬던 책.
공간이 죽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토머슨이라는 건 거의 섬뜩하다. 대부분 세상의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으므로 토머슨을 발견하는 일은 사체를 발굴하는 일과 같다. 가끔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유는 거기에 영적인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물의 영혼이랄까, 공간의 영혼이다. 공간도 살아 있어 인간의 의해 생존한다. 인간이 숨을 불어넣은 공간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러니 살아 있던 공간이 죽는 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공간의 영혼도 그 장소에서 발생되기를 기다린다."_ 321p
"도시는 그 안쪽에 쌓이는 뒤틀린 토머슨을 끌어안는다.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이 대자연 안으로 질퍽질퍽 빠져들어 간다. 도시라는 물건은 대자연에 인류가 발생시킨 일시적 현상이며, 언젠가는 붕괴해 다시 대자연 속에 묻힌다." _ 371p
이 책의 1부 다섯번째 글의 제목은 <빌딩에 잠기는 거리>이다. 구시가지가 철거되고 새로운 고층빌딩이 점차 몰려온다. 뭔가 정말 등골이 서늘해졌다. 며칠전에도 이런 풍경을 봤었던 것 같다. 특히 한국은 옛건물을 전부 허물어 버린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일본도 이랬었다니 .. 프랑스는 옛날 건물이 정말 많다고 들었는데. 사용하기 불편해도 계속 옛건물을 유지보수해서 쓴다고 말이다. 난 물질적인 무언가가 불편하고 고장나면 새 것을 사는 것보단 웬만하면 유지보수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뭐 물론 정신개조도 다 새로 할 순 없고 하나 하나 고치는 거겠지만 말이다.
하늘에서부터 위협해 오는 빌딩.
관찰 보고는 세상을 바꾼다.
"관찰 보고는 아무래도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할 수밖에 없으므로 관찰하는 그 자체가 대상물에 영향을 끼쳐 변화를 불러온다는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관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또한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방향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따라서 그 부분은 관찰자의 도덕성에 맡기고 영향력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_ 500p
분명 노상관찰학이 세간에 인정을 받는 방식에는 괄목할 만한 점이 있다. 학문적으로 본다면 세간의 인정을 받고 도움이 되는 물건을 배제했다는 면에서 흥미롭지만, 인정을 받고 안 받고는 이 관찰학의 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세간에서 인정을 받았으니 거기에 새로운 문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는 세상의 경제 원리와 교차하는 형태의 새로운 가치관의 문제로, 사람들은 그 가치관을 지근 거리에서 느끼며 모험심을 끌어들인다. 이는 당연히 문자적 논리가 아직 불분명한데도 석연치 않다고 여긴다면 지적 미숙의 비애다. (pp.502~503)
우리는 이제 겨우 일부분만 보았을 뿐이다. 다시 어딘가에서 터무니없이 엄청난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p.518)
"예상하기는 했지만, 노상관찰학 물건에도 일정한 패턴이 거의 다 나와 노상관찰학 정리장이 정돈되었다. 앞으로는 채집한 물건이 정리장 어딘가에 차곡차곡 들어갈 것이다. 이제는 안구에 칼을 대 시야가 넓어지는 듯한 첫 체험의 아찔한 흥분은 느낄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니 이 정리장에 들어가지 못할 미지의 물건을 발견하는 일도 정말로 어려워졌다. 우리가 해온 일이지만,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해왔다. 이렇게 정리장이 채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관찰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었을까? (중략) 바로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우리는 자연이 부여해준 호기심에 몸을 맡기고 물건을 발견해왔다. 자연이란 그런 것이다. 호기심 표출을 꺼리며 아무것도 접하지 않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는 어차피 자연 앞에 반드시 무릎을 꿇을 텐데. 그렇게 될 바에는 자연을 꾀어내 시시덕거리는 게 더 재미있다. 유쾌하다. 토머슨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발굴했다. 정리장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알 바 아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일부분만 보았을 뿐이다. 다시 어딘가에서 터무니없이 엄청난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 첫 체험을 동경한다. 그 아찔함을 사랑한다. 그런데 그걸 계산해서 노리면 빗나간다. 미리 준비해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있는 곳에 빛은 비추지 않는다. 너무 지루해 호기심이 외톨이가 되고 근육이 모두 제 할 일을 하러 떠난 사이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빛이 비추어 넘친다." _ 519p
"지금까지 세상은 인류가 돌덩이를 쥐고 도구로 사용해 온 이래 물건은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 두 종류밖에 없다고 굳건하게 믿어왔다. 도움이 되는 것은 반드시 이름이 있었다. 그것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게 되면 이름은 사라지고 싸잡아서 쓰레기 취급되었다. 즉 세상은 유용한 것과 쓰레기, 2대 진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_ 54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