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북 진안 운장산 (1,126m)
피암목재 (운장산 휴게소) - 활목재 이정표 - 삼거리 이정표 - 서봉 (칠성대) - 운장산 정상 - 삼장봉 - 삼거리 이정표 - 내처사동 주차장 (5시간 산행)
얼마전 제주도에 사는 지인 한 분이 엿새 연속으로 눈이 온 제주 소식을 전하며 올 겨울 같은 추위는 평생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는 마치 강원도에 사는 기분이라 하였는데, 사람들은 러시아 겨울보다 추운 날씨라며 위로해 주었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지만 맹추위 앞에 몸도 마음도 게을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슬며시 게으름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몸을 실었더니 어느새 2월의 중앙역이다. 이 당연한 흐름에도 실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1월을 성큼 보내고 2월도 이만큼이나 와 있으니 불현듯 기다려지는 것이 구체화된다. 아직 가망없이 얼었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먼저 불어오는 것이 봄바람 아니던가. 겨울 덕분에 나태하던 일상도 서서히 본 궤도에 오르기 위해 몸을 조련할 시기다. 그동안 묵혀두었던 먼지를 털듯 일상은 가볍게 지나고 무슨 대단한 일을 모색하듯 산을 찾아나서는 일. 겨울 눈산을 찾는 일이 눈먼 자의 일상회복이길 빌며 간신히 찾아 들었다.
몇 해 전 겨울 장안산 (2015년 2월 산행)에서 당했던 오른쪽 뺨의 고행을 생각하면 '무진장'방면의 산행은 지극히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그날 이후 혹한의 날씨에 손과 발 시린 것이야 놀랄 축도 아니라는 해괴한 자신감도 생겼지만, 끝없이 펼쳐진 고원의 칼바람을 오롯이 맞아야 했던 오른 뺨의 기억은 그대로 맨살에 새겨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소백산 칼바람을 최악이라 말들 하지만, (소백산 최악의 날씨도 경험한 마당에) 내게는 장안산 추위가 제일 무섭다.
흔히 쓰는 겨울 추위에 대한 비유로 '동장군'이란 말이 있다. 사전 역시 "겨울 장군이라는 뜻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식이 아닌 일본식 표기이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원정을 떠났을 때 혹독한 추위와 눈사태로 인해 전쟁에서 패배한 유래(영어명 'general frost')를 지닌 것으로, 일본의 학자들이 쓴 것을 우리가 그대로 수입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나저나 아픈 기억 각인한 몸으로 다시 눈산을 찾아드는 인간의 정신세계는 어떻게 불려야 할까. 해마다 겨울이면 귀때기를 때리던 칼바람 기억 아직도 생생한데, 잊었다는 듯 용기를 내는 거 보면 내가 바로 그 동장군 아닌가 한다.
키 작은 조릿대 무성한 눈발에 무리지어 섰다. 산 초입의 오르막에 헉헉거리면서도 발 아래 눈을 깔고 선 이상 편할 리 없다. 그때마다 이 작은 댓잎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산죽끼리 모여 무리를 이루니 손끝마다 시린 지문이 새겨진 듯하다. 이 겨울을 버티기 좋은 적당한 키, 엉클어지고 설키는 사이에도 소리를 새긴 푸른 잎이 스사사사 스사사사 ............ 거칠게 분탕질한 바람이 한바탕 불어오는 것까지 놓치지 않게 한다. 산길에서 조릿대 역할이란 이 낱낱의 바람을 막아주는 일일까. 바람만 가득 찼던 장안산엔 이 조릿대가 없었는데, 운장산 길섶마다엔 최선을 다해 제 몸을 흔드는 조릿대가 대신 뺨을 맞고 있었다.
나 어릴 때 엄마는 불린 쌀을 안친 후 항상 조리로 쌀을 일었다. 쌀을 잘 이는 며느리가 손끝 야문 대접을 받던 시절, 설이 다가오면 복조리 장수는 목청껏 복조리를 팔았다. 조리로 쌀을 떠서 이듯 복도 그렇게 떠서 안으라고 섣달 그믐밤이면 집집마다 복조리가 내걸렸다.
이 조릿대를 숭숭 엮어서 만든 조리는 쌀을 흔들어 안칠 때 제격이었지만, 지금은 겨우 장식으로나 명맥을 이을까. 산에 지천인 조릿대 보니 설이 문득 가까워 온 것을 피부로 느낀다. 조금씩 멀어진 풍속화 속에서 "복조리 사려~~."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중간 중간 강렬한 바람이 눈을 날려 보냈다. 눈 앞에 갑작스런 은세계가 펼쳐지다가도 한 풀 죽은 척 이내 잠잠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발 아래 뽀드득 소리에 청각을 맡겼지만, 눈바람이 불어오면 청각은 시각에 사로잡혔다. 하얀 눈가루가 차갑게 얼굴을 때릴 때면 또 다시 장안산 칼바람이 생각났지만, 그때마다 첩첩이 조릿대와 쭉쭉 날씬한 나무들이 그 생각을 차단해주었다.
하늘자락은 그리 쾌청하지 않았지만 희미한 백묵이 번다한 생각의 줄기처럼 그려져 자잘한 운치를 주었다. 운장산은 구름에 가리워진 시간이 길다 해서 붙여졌다는데, 눈발이 날리는 고르지 못한 날씨값을 치르는 느낌이다.
오르막이 가파를 때면 하얀 설국의 매력에 잠시 취하기 좋다. 나뭇가지 끝이 물속 산호초처럼 하늘거리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유영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 이 지점에서의 산호놀이가 끝나고 나면 더 이상의 바닷속 같은 설경은 나타나지 않으니, 오르막 휴식 겸 적당한 포토타임을 누리면 좋을 것이다.
이제 1분 뒤면 나는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보게 되겠지. 가파른 오르막 끝에 무대가 설치된 것을 보는 순간, 오르막에 대한 내 탐구심이 발동되고 말았다. 저 너머엔 틀림없이 장쾌한 산하가 흐르고 태양은 구름 사이를 시원하게 비집고 나오겠지..... 그 생각으로 카메라를 열었을 때 그만 뒷줄의 원성을 듣고 말았다. 하긴, 막바지 오르막 구간에서 누군가 지체하면 그처럼 얄미울까. 내가 눈치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구나.... 평소 남을 의식해서 하고 싶던 말도 삼갈 때 많았는데, 하필 남을 의식하지 못한 순간 누군가로부터 대단한 권리를 빼앗은 꼴이 되고 말았다. 조금은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목소리에 보이는 인격, 말투에서 느껴지는 됨됨이가 있지 않던가. 그보다 먼저 져야 할 순간의 빠른 포기를 배웠으니 괜찮았다.
다만, 손 곱아 가면서 카메라 여닫을 때 내가 본 것은 오르막 너머에서 펼쳐질 드넓은 풍광이었지만, 그가 본 것은 제 앞의 5초를 방해한 어느 여자일 뿐이었으니, 상상력에선 그리 나쁘지 않은, 순간의 게임이었다.
서봉에서 바라본 칠성대 끝자락. 상처투성이 얼굴처럼 부풀어오른 두툼한 바위 끝에 누군가는 서 있어야 이야기가 완성될 것이다. 타이밍이 좋았다. 가령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이거나 무위자연, 무념무상의 경지.... 등등. 실로 한 편의 대서사시는 아니어도 자연 앞에 선 인간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니지 않던가. 그러나.....
카메라를 꺼내기 무섭게 돌아서 버린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강렬하게 부르짖는 내면의 외침을 정녕 듣지 못하였을까. 외면하고 돌아서는 것은 인간의 특기이자 무기이다.
결국 인간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산을 오르지만, 영원히 해답을 찾지 못하는 관계에 놓인다. 해답을 얻고자 산을 찾는 인간만이 불로불사하는 자연에서 아주 작은 힌트를 구할 뿐, 이 관계는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남산돌이 님이 산행대장을 맡은 후로 내 고민의 몫이 생겨났다. 사람이 적으면 머릿속 떠오르는 지인들을 검색했고, 먹거리를 걱정하면 맛집을 검색했다. 내 것인 듯 아닌 듯 긴장의 몫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무언가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오르면 그 가족 또한 어깨 위에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지게 되는 현상을, 서봉 한 자락에서 몰래 담아본다.
서봉에서 운장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목이 눈길에 환한 민낯을 빛냈다. 시간대를 달밤으로 만들고 싶은 길목이 참하게도 생겼다.
점심은 마땅한 자리를 물색하지 못하고 결국 길섶의 한 자락을 붙잡았다. 새벽잠이 없어서 모두의 밥과 국을 준비할 수 있다는 흔쾌한 이우순 회장님의 보시 덕분에 빈 보온 도시락 하나에 산에서 먹으면 맛날 반찬 하나면 그만이다. 이 꿀맛 같은 밥은 그러나 추위가 가장 무서운 적이다. 서둘러 도시락 자리를 치우고 나면 그때부터 온 몸이 냉장고화 된다. 커피 한잔으로도 풀리지 않는 떨림을 안고 서서히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지는 증세도 새겨가며 하산을 재촉해야 한다. 산에서 덜덜 떠는 체질은 서서히 고질병 같다.
운장대 정상에서 동봉 가는 방향은 너무나 불친절하다. 바닥돌은 두껍게 언 얼음과 한 덩어리로 맺혀 아예 빙판길이다. 아이젠을 강조하고도 남은 길이 이어졌지만, 내리막길에서 고생담이 많은 나로서는 아이젠을 신은 것도 느끼지 못한다. 만성이 된 겁쟁이 심리다. 미끄럽고 불안한 길은 심리적으로 위축감을 불러오고 턱은 덜덜 떨려온다. 결국 모든 사진은 차단하기로 하고 내리막길에 집중하기로 한다. 인생은 원래 내리막길에서 조심해야 한다는, 그 흔한 말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확인하고 있었다.
결국 3시 하산 완료와 함께 한 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모든 사람들이 평창에 모인 우리 선수들마냥 눈산행에도 선수 티가 났다. 너무 일찍 결승점을 통과한 사람들이 새로운 경주로 이어 달리기를 한다. 긴장 없이 바라보고 응원 같은 박장대소가 난무하는 속에 산행의 고단함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올림픽을 즐길 때. 긴장하며 응원하는 잠못 이루는 즐거움이 평창 하늘에 펼쳐질 것이다. 예전에는 평창 하면 봉평 메밀꽃이 제일 먼저였는데, 이제 평창은 올림픽을 떼놓고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고장이 되었다. 진안에는 마이산만 있는 줄 알았는데, 구름이 오래 걸려 눈발도 쉬어가는 운장산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