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方便品(33), 부처님이 무자비하다는 대가님들
2-59. 아 침 저 녁 밤 낮 없 이, 그 생 각 만 가 득 할 적 시 방 세 계 범 왕 들 과, 모 든 천 상 제 석 천 들 이 세 간 을 수 호 하 는, 사 천 왕 과 대 자 채 천 천 상 세 계 일 체 중 생, 그 들 권 속 백 천 만 이 합 장 하 고 공 경 하 며, 예 를 갖 춰 모 두 함 께 법 의 수 레 굴 리 소 서, 이 몸 향 해 간 청 했 소
밤 낮 없 이 일 불 승 을, 오 직 찬 탄 일 삼 으 면 고 에 빠 진 모 든 중 생, 이 가 르 침 믿 지 못 해 법 을 깨 고 불 신 하 여, 삼 악 도 에 떨 어 질 새 이 몸 부 처 어 찌 하 여, 불 도 설 법 마 다 하 고 서 둘 러 서 멸 도 하 여, 열 반 들 려 하 겠 는 가 내 스 스 로 이 일 두 고, 깊 이 생 각 하 였 다 오
爾時諸梵王 及諸天帝釋 護世四天王 及大自在天 幷餘諸天衆 眷屬百千萬 恭敬合掌禮 請我轉法輪 我卽自思惟 <若但讚佛乘 衆生沒在苦 不能信是法 破法不信故 墜於三惡道 我寧不說法 疾入於涅槃>
【풀 이】 ●<上求菩提>를 성취한 후, <下化衆生>에 대해 깊이 고민하시는 석가모니부처님께 천상의 모든 중생들이 나서서 가르침을 펼치기를 간절하게 청하니 부처님이 마음을 굳히고 중생제도에 나선다.
●<뗀뿌라>냄새로 뭉개버린 부처님의 결심.
<若但讚佛乘 衆生沒在苦 不能信是法 破法不信故 墜於三惡道 我寧不說法 疾入於涅槃>
<내가 오로지 一佛乘을 찬탄만 하고 있다면, 苦에 빠진 중생들은 이 가르침(法)을 이해하지 못해 믿지 않을 것인 바, 이로 인해 그들은 가르침(法)을 깨고 三惡道에 떨어질 것이 뻔한데, 내 어찌 說法을 하지 아니 하고 서둘러서 涅槃에 들겠는가?>
다시 말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一佛乘을 꼭 설해서 중생들이 三惡道에 떨어지는 대참사를 막고 그들을 제도해야겠다는 부처님의 굳은 결의가 드러나는 부분이고, 그러기 위해 方便說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부처님의 절실한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번역판이 보여주는 심각한 문제점. <저 미련한 중생들은 나의 설법을 믿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은 가르침을 깨고 三惡道에 떨어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냥 내버려두자, 그리고 나는 차라리 서둘러서 열반해야겠다, 고 부처님께서 깊이 생각하셨다>는 것이 대부분의 번역본(한글, 일본어, 영어)에 나타나는 이 구절의 취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다. 중생들이 당하고 있는 불행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며, 그 불행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는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하물며 무수한 중생들이 三惡道에 떨어질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서둘러서 열반으로 들겠다고 마음먹는 부처님을 우리는 상상할 수가 없다. 한 순간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는 부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어느 중생도 그런 사람을 일컬어 부처라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번역판은 왜 이 부분을 엉터리로 번역했는가? <寧>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아래 글자 풀이 참고) 글자의 의미로 보나, 앞뒤 문맥으로 보나, 위의 인용문처럼 번역되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 글자를 잘못 새긴 최초의 책임은 일본의 번역에 있다고 본다. 일본의 오류를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껴 옮긴 우리말 번역본들은 아무 책임도 없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위와 같이 번역한 당사자는 물론, 그대로 베껴 지금까지 써 먹고 있는 분들은 첫째, 이 經을 공부하고 있는 모든 불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고, 둘째, 무책임한 번역을 하고도 지금까지 입을 닫고 있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 가르침을 잘못 전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부처님께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처음에 이와 같은 번역문을 읽고 다음과 같은 불경스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못된 짓만 하는 자식들이 한심하니, 그들을 내팽겨치고 자신들만 잘 살겠다고 먼 곳으로 떠나버리는 부모처럼, 부처님께서도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건가?
*若但讚佛乘 <(일불승을 어떤 방식으로 가르쳐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것을 찬탄만 하고 있다면. (중생들은 결국 이를 믿지 못하고 고통에 빠져 ~할 것이니)> -讚1162 기릴 찬, 고할 찬(알리다) -疾 빨리 질(신속히) *衆生沒在苦 <중생들이 苦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寧366 ①차라리 녕, ②편안할 녕, ③어찌 녕(어찌 ~하랴, 反語) 등 크게 세 가지 의미로 쓰이는 글자다. 여기서는 ③의 의미로 쓰였다.
<寧>이 反語의 의미로 쓰인 용례는 아래와 같이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1. 隨衆生心 應所知量 循業發現 寧有方所(능엄경) 중생의 마음에 따라, 자신이 아는 바에 응해 업에 따라 발현할 것이니,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南懷瑾, 『금강경』p.228)
2. 金剛經에 보이는 <寧>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① 依法出生分, 第 八 若人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所得福德 寧爲多不 ② 無爲福勝分, 第 十一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③ 一切同觀分, 第 十八 須菩提!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 如是(沙)等恒河 是諸恒河所有沙數 佛世界如是 寧爲多不 ④ 一合理相分, 第 三十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寧爲多不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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