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 게시판에 올라온 영진위 정책연구실 김혜준님의 글입니다. 공식입장이 아닌 개인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아래 내용*************
올린이 : 위원회정책연구실 김혜준
날짜 : 2001-03-28
내용 : 현장 영화인의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생각
1. 현장 영화인들이 처한 노동환경의 열악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신 분
이 많습니다. 비정규직(근로기준법에 의한 '단기간근로자') 즉 작품당 계
약이 일반적인 방식이고, 심지어 직종별 도급 책임자와 묶어서 팀으로 계
약하는 경우도 많은 영화분야의 고용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매
우 절실한 과제임이 분명합니다. 포괄적으로 말해서 '한국영화 제작시스
템 개선'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는 이 과제에 대한 영화계의 다양한 접근
이 시도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집
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에 참여하는 모든 인력들의 권익을 제대
로 보장하는 실질적인 고민과 토론이 꾸준하게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지
요. 1997년에는 대기업 투자담당자·프로듀서·주연배우·스탭·연구자 등
이 한 자리에 모여 제작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을 열기도 했습니다. 널
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몇몇 영화인과 영화사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1999년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만, '영화인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시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민
과 노력이 축적된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작가협회·
영화감독협회·영화인회의 등에서 '표준계약제'나 '저작권 집중관리제' 등
을 제안했고, 이와 관련된 기초작업이 상당 수준으로 진척되고 있다고 알
고 있습니다. 노동 환경 개선의 다른 한 축이라 할 제작자나 프로듀서들
의 고민과 노력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접근의 방향에는 차
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기본 입장에는 별다
른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현장 영화인들
이 느끼는 문제의식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나오게 되는 배경에는, 우선 영화인들의 달라진 권리의식, 그리고
<쉬리>나 <공동경비구역>과 같이 흥행 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소수의 작
품이 나오면서 깊어진 다수 영화인의 상대적 박탈감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
각합니다. 불합리함에 대한 고발, 격정적인 울분의 토로, 전향적인 제안
등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는 영화인들의 의견을 보면서 다음 몇 가지 사항
에 대한 고민과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울
러 이와 같은 사항을 더 상세하게 정리하고, 나아가 실현 가능한 대안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가진 모든 영화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할 것입니다.
1) 어떤 영화인이 가족·친지 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상적인 생
활인 또는 사회인의 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조건
2) 한 편의 영화에 참여하는 영화인 각자의 책임·의무·권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조건
3) 제작시스템 개선을 위한 제작단계별, 일정별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4) 제작비 규모, 제작기간, 개인별 기여도 등 변수 측정과 계약조건 산정
의 합리적 방안
5) '동인제 제작', '노무출자' 등 현장 영화인의 책임과 권한을 키우는
방안
6) 개인 또는 직능집단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조직화의 방법
7)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협의 틀은 어떤 것일 수 있나?
8) 한국영화 제작 활성화와 부가수익 극대화의 방안
9) 현존하는 직능단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
10) 영화인 노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자료 조사와 추진 주체 규합
3. '한국영화 진흥 발전'을 고유 임무로 하고 있는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영화인 여러분들께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받아들이고 관련 과제를 푸는 일
에 성의를 갖고 임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해
영화인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1) 우선, 영화와 관련된 모든 사안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위원회의 역할
을 강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산업과 관련하여 발생하
는 사안은 우선 그 산업을 이끌어가는 해당 주체(영화 노동자, 프로듀서,
투자자, 배급사)들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옳고, 위원회는 필요할 경우 부
분적인 지원이나 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한국영화와 관련
된 일을 하는 개인 또는 집단에게는 각자가 책임져야 할 역할이나 합당한
몫이 있는 것이고, 위원회 또한 그 몫을 담당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
작지원은 물론이고, 영화현장의 노동환경 개선에 관한 사안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위원회의 역할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2) 영화현장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
고 있는 노조 설립(건설)이라는 과제는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관계법
에 직접적인 근거를 두고 있는 사안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어디까지나
영화진흥법은 간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위원회에는 민주노총 소속
의 '영화진흥위원회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원회 소
속 직원들이 노동자 신분인 자신들의 권익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동
조합을 만든 것이지요. 따라서 위원회의 임직원은 영화진흥법이 부여한 임
무에 대해서는 동일한 입장을 취해야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해서
는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다른 신분이 되어 노동관계법의 규정을 받으며 협
상을 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중층적일 수 있는 영화인 노조설립과 운영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인 노조 설립에 대해 위원회가 먼저 나서서 어떤 역할을 할 수는 없습니
다. 영화인들 스스로가 주체적인 노력을 시작한 후에 위원회에 대해 어떤
요청을 한다면, 그 때 비로소 위원회의 입장을 정해서 도움을 드리는 것
이 순서겠지요. 위원회는 노동조합의 전 단계라 할 수 있는 영화인 직능
단체의 활동을 지원할 의무가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만약 영화
인 노조가 만들어진다면 그 노조도 중요한 영화단체로 인정받게 되겠지
요. 분명한 것은 지원의 대상이 되는 객관적 실체로서의 '주체'가 있어야
하고, 그 주체의 구체적인 '요청'이 있어야 지원의 요건이 충족된다는 점
입니다.
3) 그렇다고 위원회가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전까지는 뒷짐지고 있겠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위원회는 영화계 나아가 영화 노동자의 권익을 보
호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반드시 해야지요. 또 영화인 여러
분께서 권익보호를 위해 내놓으시는 여러 대안 중에서 위원회가 직간접적으
로 할 수 있는 사업을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겠지요.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위원회는 한국 영화계가 환경개선을 위해 내놓고 있는 각종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연구와 대안 마련도 진행시키
고 있습니다. 저작권 확보를 위한 사업을 돕고 있고, '표준계약제'에 대해
서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토대로 어떤 경우는 위원회
가 직접 나서는 수도 있겠고, 어떤 경우는 표나지 않게 도움을 드리는데
그치는 일도 있을 겁니다. 변호사, 노무사 등 전문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도 있을 겁니다. 잘 판단해서 가장 적절한 역할을 맡겠다는 말씀입니다.
4.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지요. 영화계와 위원회를 향해 좋은 제안을 해주
십시오. 그 제안은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위원회는 그 제안을 널리 알리
고, 대화의 장을 마련해 드리고, 영화계의 의견을 구하고,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부정적인 사례를 폭로하고 공격하는 일과 함께 모범적인
사례를 알리고 칭찬하는 노력도 이뤄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 편이 더 효
과적인 연대의 방안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안의 성격을 감안하여 '영화인 복지향상을 위한 기초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정책연구실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따라서 위원회의 공식적인 답변이
아닌, 하나의 참고 의견으로 받아들여주십시오. 위원회는 추후 현장환경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영화인 여러분의 요청에 부응
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정책연구실장 김혜준(전화 958-7656)이 의견을 드렸습니다.
****************이상 김혜준님의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