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야! 나다.”“야~아? 뉘셔?”“나야, 나 재*이.”“오메! 이것이 먼일이다냐 이.환쟁이 이놈이 안 죽고 전화를 다 해야.” 일주일 뒤에 친구는 어디 한군데 상하기는커녕금방 베레모를 벗은 노병처럼 짱짱한 몸으로 포항에서한걸음에 날아왔고, 우리는 반세기만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세월이 가져오는 똥배는커녕 군살 하나 없는 핸섬한 친구는,마치 손 둘 만을 만든 신을 원망이라도 하듯이 옷가방과라면박스와 통발이 든 큰 박스까지 들고 왔다.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해 먹던 반세기 너머 기억을재현하려고, 세월 이쪽 끝에 선 두 늙은이는 금방 박스에서꺼낸 따끈한 통발을 들고 흰 터럭을 날리면서 저수지로 달렸다.
저수지와 그곳으로 가는 길은 예전과 다르지 않건만,그 길을 달리는 사람은 몰라보도록 변해 있었다. 유년 시절에는 노루처럼 냅다 뛰었고 이제는 연골이 닳아서비걱거리는 다리 대신 바스크로 달린다는 것만 다를 뿐,개구쟁이 둘이 노인 탈을 쓰고 달리고 있다는 걸 누가눈치를 채겠는가. 서로가 너무 오랜 세월을 다른 곳만을 바라본 탓으로둘을 이어줄 <잃어버린 세월의 연결고리>가 필요했고통발에게 그 역을 떠넘기려는 요량이었다. 둘은, 통발이 그 시절로 데려다 줄 타임머신이라도 되듯이경건한 마음으로 간 고등어라는 용왕님 선물까지 넣어서푸른 물에 집어넣는 행사를 치렀다. 다음 날 통발을 꺼내보니 매운탕용 피라미는 없고 뜬금없는새우가 양은 막걸리 잔 하나 가득 채울 만큼 들어있었다.친구가 반색을 하며 라면을 끓이잔다.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개와 늑대의 시간대에 맞추어 통발 새우라면으로흘러버린 세월을 소주잔으로 퍼 올리는데 방정맞게시리친구 전화가 울렸다. 급한 일이라면서- 친구는 떠났다.돌아온다는 다짐을 하면서- ** 돌아 올 친구에게- 이번에는 꼭 매운탕을 끓여주려는 마음을통발 속에 담아 <새로운 미끼로 교체> 다시 저수지 속으로밀어 넣은 그 밤, 비가 억수로 내렸다. 통발은 끈긴 봉돌처럼 그렇게 저수지 깊게 잠겨 버렸다. “허, 이런 낭패가 있나. 장마가 끝나면 수면은 더 오를 터.친구도 가고 그가 구해온 소중한 통발까지 잃어버렸어.” <이놈의 통발이 유년 시절로 되돌려놓기는커녕 나를 더욱늙게 하누 만> 혀를 차며 돌아 선 것이 한 달 전 쯤 된다. 어제는 마을 형이 치는 벌통을 돌아보려고 저수지옆을 지나는데 수면이 생각보다 많이 내려가 있었다. 부리나케 통발 놓은 곳으로 달렸다.한길 아래쯤에서 하얀 통발 끈이 어른거렸다.친구가 구해온 통발을 건질 수 있겠다는 반가움에매미처럼 탈각하고 반짝이는 윤슬 속으로 풍덩 몸을 던졌다. 그렇게 통발은 물위로 오르고 행여나 하고 들여다본 통발 속에는 메기 한 마리가 꿈틀거렸다. “하하! 이것 봐라. 수확이 있네. 그런데 한 마리 가지고 뭘 한다?<박종원 레시피 모음>을 뒤져도 답이 없겠는데 쩝”그렇게 입맛을다시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통발 옆에 다른 줄 하나가 보였다. “어, 이거 뭐지?”가만히 당겼다. 다른 통발이 딸려 나왔다. 금방 찢어질 정도로 굉장히 오래된 통발이었는데 안에서 꿈틀거리는것이 있었다. 메기였다. 그것도 자그마치 두 마리씩이나. 거기에통통하게 배가 부른 빠가사리 (동자개)도 보였다.
“호好로다! 이정도면 매운탕 감으로 부족하지 않겠구나.냉동실에 보관한 새우도 있겠다. 이제 친구만 오면 된다.”통발과 고기를 들고 저수지 둑으로 올라섰다가 우뚝 서고 말았다. “가만! 지금 상황이 고사성어 새옹지마하고 뭐가 다르지?” 통발이 저수지 푸른 물속으로 잠겨 버렸을 때/중국 변방 노인 말이 달아나 버리는 것과 같아서 나는 한탄을 했고/ 도망갔던 노인의 말이 한필의 준마를 데리고 온 그 순간이/우리 통발이 물속에서 굴러다니는 다른 통발과 연결 해준 것과 겹쳤으며/ 통발 속에 든 고기는 /준마를 데려온 노인의 암말이 새끼를 낳아서 함께 온 경우라고 빗댄다면/ 그렇다면, 이제 내 앞에 남은 것, 즉 마저 돌아올 것들은 그 무엇일까? 고사에 따르면, 다음 차례는 변방 노인 아들이준마를 타다가 낙마해서 다리가 부러지는 순서 일게고/ 말에서 떨어진 아들은 절름발이가 되어서 전쟁에 나가지않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해피엔딩이 있기는 한다마는/ 나는 다리가 부러지는 것도 싫고, 전쟁 또한 더욱 원치 않으니<지금, 이쯤에서 진도가 멈추면 안 될까.> 노인의 아들 발이 부러지지 않으려면 과거로 되돌아가서준마가 노인네 말을 따라 집에 오지 않게 막아야 하고, 준마가등장하지 않으려면 노인 암말도 집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할 터. 내가 지금 새옹지마라는 고사를 역사에서 지우고 있구나. 그것도 수천 년 전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삭제하려면,사마천도 만나서 그가 사기를 기록하지 못하도록 즉 궁형에처하지 않도록 손을 써야 할 터인데 그럼 궁형을 내린무제(武帝)도 만나야 하잖은가? 이거 보통일이 아니로구나.지구를 반대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어렵겠다. 가만, 그렇게 시간을 되돌려서 새옹지마 고사가 지워 진다면,우리 쪽도 온전하지 못 할 텐데. 그럼 이것 또한 지워지지 않을까. 첫째 통발들이 없어져야 하겠고, 통 발들을 지워 버리려면통발을 들고 온 멋진 친구도 오시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짧은 순간들의 소중한 기억도 사라지겠구나.반세기만의 재회도 없었던 것이 되어서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인간사 모두가 그렇게 한탄할 것도 없고, 또한 환호작약 할 일도아니라는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메기 세 마리와동자개 한 마리를 들고 월출산 앞에 나는 서있다. 단념했던 통발을 찾았고 남의 통발과 고기는 용왕님의 선물이라고 환호 하다가 미망이라는 망망대해에 빠져버린 나를 건지려고친구가 달려올 것 같아 당산나무 아래로 목을 길게 뽑았다.
<아래 통발이 새옹지마 준마>
출처: 5670 삶의 길목에서 원문보기 글쓴이: 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