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호세아 2,16.17ㄴ-18.21-2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6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17 거기에서 그 여자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응답하리라.
18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21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22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복음 마태오 9,18-26
18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넓고 깊은 강에서 살던 개구리 한 마리가 길을 가던 중에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무더운 날씨에 몹시 목이 말랐기 때문에 우물 속에 풍덩 뛰어들었지요. 그런데 그곳에는 토박이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나그네 개구리는 토박이 개구리에게 자기를 소개했지요.
“저는 아주 큰 강에서 온 개구리입니다.”
그러자 토박이 개구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큰 강? 큰 강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도대체 그게 뭐요?” 라고 묻습니다. 나그네 개구리는 설명을 했지요.
“아하, 그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신은 우물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이 우물은 너무나 자그마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한 번 설명해 볼게요.”
성격 급한 토박이 개구리는 껄껄껄 웃으면서 말합니다.
“이 우물보다 더 큰 게 있다는 소리는 처음이오. 당신이 말하는 그 강은 얼마나 크오? 이 만큼 되오?”
그러면서 우물 안 넓이의 삼분의 일쯤 펄쩍 뛰어 봅니다. 나그네 개구리는 “천만에요.”라고 답했지요. 이번에는 우물 안 넓이의 삼분의 이쯤을 펄쩍 뛰어 보이며 말합니다.
“이 만큼 되오?”
나그네 개구리는 “아무래도 도저히 설명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네요. 그건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요. 아주 넓고 크단 말이오. 아예 경계도 없소.”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토박이 개구리는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당신 미쳤소? 아니면 철학하는 개구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당신은 거짓말쟁이가 분명하오. 여기서 얼른 나가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다니!”
누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일까요? 바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토박이 개구리이겠지요.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있는 나그네 개구리가 바보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네요. 바로 이런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그래서 죽은 아이가 자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역시 주님의 손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분인데, 그래서 사랑으로써 어떻게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신데, 우리들은 그 사랑을 의심하고 판단함으로써 이천년 전에 예수님을 비웃던 이스라엘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그러면서 앞선 이야기에서 등장한 토박이 개구리의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당신 미쳤소?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다니!”
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다가선 회당장,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보여준 혈루증을 앓는 여인. 바로 주님 앞에 철저히 다가서려 했던 사람의 모습이고, 우리 역시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비웃지 맙시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한비아,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중에서)
어느 해 초여름, 비가 왔었는지 춥다고 아무도 강물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꼬마였던 나와 동생은 물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차가울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우리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하신 한마디. '들어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일단 들어가봐서 물이 정말 차가우면 나오면 그만 일것을, 지레 겁먹고 들어가보지도 않는다면 집에 돌아와서 내내 후회할 거란 뜻이었다.'물이 차갑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말이다.
..... 실제로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십중팔구는 허우적거리다 죽는다. 그런데 사람이면 누구나 물에 뜨게 돼 있다고 한다. 이 경우는 순전히 자기가 수영을 못 한다는 '생각'이 일을 그르친 것이다.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원래부터 할 수 있는 일이건만 단지 '난 못해'하는 생각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런 억울한 일을 원천봉쇄하는 주문이 바로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이다.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일단 해보자 하고 덤비면 가속도가 붙고 자신도 모르는 괴력이 나온다. 물론 열심히 해봐도 안되는 일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하고 후회하는 일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은 법이니까.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이고만 있었던 일이 있다면, 지금 한번 해보라. 눈 딱 감고 저질러보라. 될지 안 될지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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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찬미 예수님!! 성지에 태풍 피해 없기를 기도합니다..
새로운 한 주간에도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이 가득한 소식만이 난무? 하는 시간들이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
고맙습니다. 신부님!
믿음으로 시작하는 한 주가 되기를...
모두 태풍피해 없기를 빕니다
신부님, 태풍이 서해안으로 간다네요. 성지에 태풍 피해 없기를 기도드립니다.
나의 생각안에 나의 잣대로만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고것이 정답이고 다른이들은 다 틀린것처럼 생각하며 살때가 많습니다. 각성하며 물러갑니다.
인자하시고 긍휼의 하느님을 뵙니다..샛길로 달리는 우리들의 모습에도 노여움도 벌하심도 없는 오직 자애와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당신의 손길에 찬미와 흠승 드리나이다..알렐루야..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지라도 주님의 손을 잡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더딘 믿음인듯 합니다..당신의 눈과 호흡에 촛점을 맞출 오늘에,,, 당신 숨에 맞쳐질 저의 영이길 소원하며 찬미 드립니다..아멘.
더 넓고 깊은 마음으로 생각하며 살렵니다. 회원님들 모두 오늘 태풍피해가 없으시길.............
찬미 예수님 !! 태풍이 몰려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두렵고 귀찮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태풍에도 하느님의 뜻이 깊숙히 숨어 있다고 합니다. 심연의 바다물을 뒤집어 놔야 기상이변이 생기지 않는다지요. 적조 현상도 없어지고요... 그분의 섭리를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지냅니다. 모든 자연현상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피해를 피해가는 오늘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아 멘
믿음의사람이되고자합니다.늘 나약한믿음으로흔들리는제게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주십시오.성지에 태풍피해없기를 기도드립니다.모두모두 ..요.*^^*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그래서 난 아들이 어렸을 때 'Try' 하고 자주 말했더니 그 아들이 나의 별명을 '트라이'라고 했던 기억을 새롭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전이 없는 삶은 항상 2등 밖에 못할 거에요.
내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일수 없다....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내가 생각하는 틀속에 갇혀지내고 있는 내 자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그래서 부렸던 고집도 그래서 아프게 했을 일들이 떠오르네요...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들이 모두 내가 행했던 일임이 부끄럽습니다..신부님^^..어찌 저의 모르고 지나갈뻔한 일들을 일깨워 주시다니...신부님의 글은 매번 읽을때마다 다른 묵상꺼리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감사의 마음 가득 담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