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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7일 언제까지 창고만 지을 것인가? 눅12장13~21절
누구나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권력을 갖는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겉은 화려한데 실속이 없는 속 빈 강정과 같습니다. 미국에서 목회와 공부를 한 뒤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후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편리한 곳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도로, 숙박시설, 통신문화, 자동차, 주거환경은 세계 최고입니다. 그런데 행복지수는 143개 국가 가운데 118위입니다.
예수님께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하소연합니다. 13절에서 “예수님, 정말 억울합니다. 우리 형이 아버지가 주기로 한 재산을 저에게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형을 설득하여 아버지 재산을 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형에게 재산을 빼앗긴 동생이 예수님에게 억울함을 항변합니다. 형은 동생이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분량의 사랑과 돈을 빼앗았습니다. 동생은 그래도 형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꿀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생의 소송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14절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면서 심판자의 위치를 포기하십니다.
예수님은 15절에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고 권면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동생의 분량을 챙긴 형이나 형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으려는 동생을 똑같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를 세우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생명이 충만하여 기뻐하고 감사하고 평화롭게 사는 비결은 돈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기 힘들지요. 하지만 행복은 돈이 많고, 학벌이 좋고, 권력이 높은 것과 전혀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돈의 힘, 권력의 힘, 학벌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가난한 나라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그 나라는 첫 눈이 오는 날이면 일하지 않고, 쉬면서 즐깁니다. 국가 예산의 1/4은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으로 쓰입니다. 부탄 헌법 1조 1항은 ‘국토의 60%는 산림으로 유지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꽃을 사랑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이웃과 관계가 좋아서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위해서 일하고, 그래도 얻지 못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탐심은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누구에게나 살아가는데 필요한 옷과 양식과 집이 필요합니다. 일용할 양식은 대통령의 선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리입니다. 하지만 나한테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남의 행복을 빼앗는 것은 나쁜 짓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사망의 길로 가죠.
예수님은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비유를 들어서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21절에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둔다는 말은 자신이 가진 돈과 권력으로 자기가 좋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다른 사람을 종처럼 부려먹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되면 다른 사람을 억압당하고, 불행해집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사람이 성공하면 나머지 모든 사람이 불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돈으로 주인 되면 행복할 것이라는 환상은 얼마가지 못해 깨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늘 집에 갇혀 있다가 손자의 손을 잡고 공원을 갈 때 가장 행복하다.”
예수님은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오는지 16~29절의 비유를 통해 가르쳐주십니다. 18절에서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많은 농사를 추수를 한 부자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걱정이 생겼습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잃을 것이 많아서 근심도 많습니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잃을 것이 없어 평안합니다. 부자는 지금까지 사용했던 창고가 비좁았습니다. 창고를 얼마나 크게 지을까 궁리를 하느라고 잠을 자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설계도면을 그리려고 이리저리 찾아다니느라 밥도 굶었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돈으로 창고를 짓는 일꾼들을 종처럼 부렸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없으면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곳간을 크게 지어 사람에게 자신이 주인이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대중들은 이런 부자가 국회의원선거에 나오면 한 표를 던져 줄 겁니다.
우리 동네의 중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아침밥을 먹고 오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엄마가 일하느라고 아침을 해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침밥을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 아이가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는 엄마하고 대화도 많이 하고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내 과외비와 동생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 일 나가시면서 대화할 시간이 없어요.” 우리는 창고 짓기에 바빠서 사랑하면서 행복해야 할 가족을 남남처럼 여깁니다. 언제, 어디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합니까?
우리나라는 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먹고 살기 힘들었고, 부정, 부패가 심해 사람들은 희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를 불러도 ‘꿈같이 헛된 세상 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하려도 헛된 것뿐일세’ 현실 부정적이고 죽어서 갈 천국만 바랐습니다. 지금의 세상 사람들은 부자들을 부러워하여 그들의 흉내를 내느라고 허겁지겁 삽니다. 경제학자 하이에크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의 사치품은 내일의 필수품이 된다.” 광고와 드라마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현혹합니다. “너도 얼마든지 부자들처럼 사치품을 가질 수 있어요.” 대중들은 광고에 현혹당하여 자신도 부자들처럼 돈으로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지배하는 주인행세를 하고 싶어 합니다. 뼈 빠지게 일하거나 땡 빚을 내서라도 부자들이 가진 사치품을 가지려고 아등바등합니다. 누가 아웃도어 등산용품을 입으면 나한테 맞는지 좋은지 생각하지 않고 덩달아 나도 아웃도어를 입어야 합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옆에 있는 친구입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더 큰 창고를 지으려는 욕망에 의해 굴러갑니다.
제임스 트위첼는 “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란 책에서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는 종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 불교, 유교가 아니다. ‘물신이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인은 소비의 민주화를 욕망합니다. 돈으로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자기기분대로 사치품을 사고,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부르려고 합니다.
부자는 19절에서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고 환상에 빠졌습니다. 처음엔 부자가 힘들게 얻은 곡식과 물건을 `내 곡식`, `내 물건`이라고 말하면서 알뜰살뜰 모으면 불어나는 재미에 푹 빠졌을 것입니다. 마치 아파트 평수를 조금씩 늘려가고, 아이들 성적이 몇 점씩 올라가는 재미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이 불어나면 “내가 어떻게 해서 모은 재산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옆집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훔쳐 갈까봐 두려워서 담을 높이 쌓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을 것입니다. 부자는 재물이 늘어나고, 창고를 더 크게 지을수록 근심과 걱정이 늘어났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늘 자신을 무시하고 의심하는 부자를 떨어져 나가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부자가 창고를 더 크게 지을수록 마음의 감옥이 더 커졌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애지중지한 재산을 친구로 삼아 지냈습니다.
부자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돈을 모으느라고 창고를 더 크게 짓는 가운데 친구와 생명과 행복을 떠나가고, 남은 것은 고독과 두려움과 염려와 걱정뿐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은 이런 환상을 욕망을 잡으려고 힘든 현실을 견딥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많으면 자신이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삽니다. 그런 환상을 깨면 싫어합니다. 그런 환상을 깨면 돌을 들고 치려고 합니다.
부자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0절에서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도로 찾아가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부자의 일장춘몽은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부자는 필요 이상으로 재산이 많이 가져 더 큰 창고를 짓느라고 고민하고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자신의 환상대로 자신이 가진 재산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는 기쁨을 한 번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돈을 많이 가졌으나 자신의 미래에 필요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돈이 많으면 병원에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작은 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베푸신 은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웨어가 쓴 “죽을 때 후회하는 5가지”는 수 년 간 말기 환자 병동에서 일하면서 죽음의 문턱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수시로 기록한 책입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 다섯 가지 ‘껄껄껄껄걸’한다고 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걸, 일을 좀 더 적게 할 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걸, 친구들과 잘 지낼 걸, 행복을 위해 노력할 걸.” 그렇게 다섯 번을 후회 하다가 마지막 숨을 쉬기 힘들어서 세 번 ‘껄껄껄’ 하고 죽습니다. 죽기 전에 “돈 많이 벌 걸, 성공 할 걸, 공부 많이 할 걸” 후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 인간극장 “걱정 말아요 그대”를 아내가 보고서 줄거리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찬양을 좋아하는 두 청년이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습니다. 안동출신의 서른아홉 살 종기씨는 10개월 전에 아내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은 뒤, 5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종기 씨는 아내가 나을 줄로만 알고, 죽을 때까지 이별의 말 한 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종기씨는 아내가 죽은 뒤 남은 11, 6, 4살의 세 아들을 돌보노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종기씨는 아내에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떠나보냈다는 자책과 상실감으로 무기력감과 함께 우울증이 밀려왔습니다.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살아 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박노해 시인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국 행복이라는 사실이/ 행복은 크고 좋은 집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차림의 만찬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귀히 여기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 소박한 저녁 밥상의 웃음 속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 결국 행복이라는 사실이 / 행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뿐인 길이 아니고 / 행복하다고 애써 느끼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고/ 행복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 다른 이의 행복을 생각할 때 온다는 것이 / 돈과 권력과 미모를 가진 자들에게 / 멋지게 복수하는 최선의 방법은 / 그들보다 더 적은 것으로도 더 많이 즐겁고 / 선함과 정의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라는 사실이 / 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행복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 길에서 / 함께 울고 웃고 분투하는 사람들 가운데 / 흔들리며 피어나는 들꽃이며 바람이며 미소인 것이” 행복하려면 큰 창고, 큰 집, 큰 교회에 다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아 그 속에 있는 사람과 소소한 일에 함께 기뻐하면서 부유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창고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려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믿는 창조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한테 주신 가족, 일용할 양식, 아름다운 자연, 친구들과 자상하고 섬세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놀라운 일을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헛된 욕심에 빠져 자신이 가진 것으로 주인 노릇하려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는데 집착하는 우리들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눈을 들어 핀 꽃을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헛된 욕심에 고정된 눈을 돌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바라볼 때 행복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빌4장 11절에서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감사하는 자족하는 신앙을 가질 때 행복합니다. 그리고 대문호 톨스토이가 말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 지금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일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 지금 함께 하는 사람, 일에 최선을 다해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저는 함께 사는 자녀와 아내, 교우, 이웃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낼 시간이 짧아질 것을 두려워서 함께 밥을 먹으면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함께 대화를 하면서 마지막이란 절박한 심정으로 행복을 느끼려고 합니다. 저는 들 꽃 한 송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여 주신 선물로 생각하여 지기 전에 더 많이 보고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다가가서 오랫동안 유심히 살펴보면서 즐거워합니다. 우리교회가 성북교회와 연합예배와 체육대회, 장미가 핀 우리교회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너무 아름답다고 감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가진 것이 작아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받아 부자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행복 합시다. 행복은 큰 창고에서 나오지 않고 행복을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가정과 교회를 주셨습니다.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나중에 병상에서 후회하지 마시고, 지금 작은 것도 주님의 선물인줄로 알고, 행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