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띠 오이디푸스의 신화학>에서 또 옮겨본다.
1
반고 신체의 변화 신화소는 이른바 거인신체화생 모티프로서 천지개벽 단계에 이어 인간과 만물을 빚어내는 창조의 마지막 과정에 해당한다. 거인 반고의 죽음, 그리고 그 사체가 각기 변화하여 온갖 자연물과 인간이 된다는 신화 내용은 인도 신화에서의 뿌르샤, 바빌로니아 신화에서의 티아마트, 북유럽 신화에서의 이미르 등 우주적 존재의 신체화생 모티프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에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신체하생 모티프가 '최초의 살해'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반고 신화는 자연사(自然死)를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중국의 서사전통에서 반고의 죽음 모티프와 상응하는 설화를 찾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96쪽)
-이 점이 매우 흥미롭다. 반고 신화는 살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사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것을 동양 사람의 꿈 장면으로 가지고 오면 이런 이야기도 가능할 것이다. 서양사람들은 아버지를 죽이는 꿈을 꾸면 아버지로부터 분리된 자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매우 의미있는 꿈, 심리적인 독립을 의미하는 꿈으로 해석을 한다.
-그러나 동양의 문화적인 바탕에서 저러한 신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버지를 죽이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무조건 그러한 심리적인 독립만을 의미하는 걸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입장에서도 볼 수 있지만, 동양 사람들은 아버지가 눈이 멀어서 자연스럽게 기능을 하지 못해 자식이 독립을 하는 장면으로도 넘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신화적인 다양한 차이는 요즘 우리들에게는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가 있다. 이제는 동서양이 문화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양쪽의 문화적인 영향이 내면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날 것이다. 제도에도 양쪽의 문화적인 영향이 그래도 중복되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 바탕도 달라지는 것이다.
2
예컨데 장자 응제왕 편에는 남해의 숙과 북해의 홀이 중앙의 벗 혼돈을 위해 7개의 구멍을 뚫어주었더니 혼돈이 죽고 말았다는 우화가 있다.
이 우화와 반고 신화의 우주론적 상관성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일이지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변형문화적 기원을 갖는 초기 도가문헌 속에서의 '최초의 살해' 모티프 흔적이다. 아마도 서방에서 중국의 남방 이민족에게 전래되었을 반고신화의 신체화생 이야기 역시 초기 기록자인 한족 지식인에 의해 은혜되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반고신화의 4개 신화소는 세계의 허다한 창조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혼돈, 우주적 거인, 천지개벽, 신체화생 등의 모티프와 그대로 상응하여 반고신화가 창조신화의 일반적인 의미 범주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표준적인 내용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에서 분절적으로 이해되었던 4개 신화소의 의미를 계기적인 관계로 통합하여 반고 신화를 태초의 '신성한 역사'로 간주할 때 혼돈에서 만물창조에 이르는 창세의 전과정은 시간과 공간의 질적 변환을 경험하는, 터너의 이른바 임계적 상황의 연속체로 읽힌다.
임계적 상황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지만 역동성과 변화의 기운이 넘치는 순간이다. 그것은 무정형의 혼돈이 거인 반고로 육화되고, 공간이 불할되면서 천지가 개벽되고, 반고가 해체되면서 만물이 탄생되는, 파괴와 창조가 짝패처럼 수행되는 창세의 매단계의 상황이다.(97쪽)
-여기서 흥미로운 개념은 임계적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보통 신화나 민담에서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짠하고 개구리가 왕자로 변하곤 한다. 이런 어떤 절정의 순간에 다다르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임계적 상황을 그야말로 가장 잘 활용하는 이야기가 바로 설화라 할 수 있겠다.
-사실은 판타지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신화나 민담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임계 상황을 멋지게 이용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단지 구조적으로 모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임계 상황은 저럴 수 밖에 없는 어떤 시공간의 에너지의 폭발과 같은 상황으로 이해를 해도 좋겠다.
3
우리의 정신 깊숙이 각인된 바로 이 파괴와 창조의 드라마로부터 무극이자 태극이 양의를 낳고, 다시 양의에서 오행이 나와 만물이 비롯된다는 우주생성 도식이 고안된다.
그러나 반고 신화를 우주론적인 차원에서만 읽는 것은 신화가 지닌 다층적 의미를 몰각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범박하게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의 이행과정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구조적인 관계로 읽을 수도 있고, 융을 따르면 혼동과 동일시되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분화된 의식의 세계로 나가는 이른바 개성화 과정에서의 무의식과 의식의 구조적인 관계로 읽을 수도 있으며, 다시 라깡 식으로는 혼돈으로 표상되는 상상계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지배하는 질서잡힌 상징계로의 지향과정에서의 타자와 주체의 구조적인 관계로 읽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태초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라는 언명을 긍정한다면 반고 신화가 갖는 의미의층위는 훨씬 더 다양해질 것이다. (97~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