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눈
마6:22-23, 눅10:21-24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육체에 있어서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적 측면, 영적인 측면에서도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개최되는 볼로냐 아동도서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책 전시회입니다. 2013년 대회에서 입상한‘눈’(이보나 흐리엘레프스카)이라는 동화입니다.
“눈은 우리에게 얼마나 값진 선물일까? 눈은 매일 우리를 이끌어, 눈은 위험을 발견하고 우리를 구해 주기도 해. 우리는 눈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볼 수 없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지. 어떤 이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해”
“어떤 이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해”
이 어린이의 한마디가, 우리의 가슴을 한방 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눈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여러분은 잘 보는 눈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느날 고양이 푸쉬가 런던을 방문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습니다. 루이스라는 고양이가 푸쉬에게 묻습니다.“푸쉬야, 어디갔다왔니?,”“나는 여왕 폐하를 만나기 위하여 런던 왕궁에 갔다 오는 길이야.”,“푸쉬야 거기서 뭘 보았니?”“아! 나는 거기서 여왕이 앉아있는 왕좌 밑에 생쥐가 있는 것을 보았어.”
눈이 있으나, 볼 것은 못보는 눈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눈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제가 강원도 영월에서 목회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택 난방이 연탄 보일러였습니다. 연탄보일러는 12시간마다 탄을 갈아줘야했는데, 제가 구정 명절때라 며칠 사택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연탄이 꺼지면 겨울에 동파가 오기에 연탄을 갈아줄 교인이 필요했는데, 어떤 분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시각 장애자였기 때문입니다. 연탄 갈아본 분들을 아실 것입니다. 연탄 갈기의 핵심은 연탄구멍을 잘 맞추어서 공기가 잘 통화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자 분이 손을 드시니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믿고 맡겼고, 명절 후에 돌아와보니, 연탄을 잘 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여쭤보니 나무꼬챙이로 찔러보면서 구멍을 맞추셨더군요. 그분은 비록 눈이 안보이셨지만, 마음과 지혜는 눈뜬 사람보다 월등하셨던 것입니다.
본문에“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했습니다.
우리는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도 런던 왕국에서 생쥐만 보고 오는 인생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정말 봐야 할 것을 보는 아름다운 눈이 될 것인지 결단해야 합니다. 그를 위하여 다음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멀리 보는 눈이어야 합니다.
복된 눈은 멀리 볼 줄 아는 눈입니다. 눈앞의 것만 보고 무슨 일을 결단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벧후1:9에서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遠視)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멀리 볼 줄 모르는 근시안은 어떤 의미에서 소경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여리고성의 전투는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승리의 전쟁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기적이었고, 놀라운 일이었는데,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의 패배를 경험해야 했고, 가족이, 친구가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바로 아간이라는 사람의 범죄행위였습니다. 아간의 눈에는 은덩어리와 금덩어리, 그리고 시날산의 고급 외투만 보았지 죄의 댓가가 얼마나 크게 올지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눈 앞에 것에 매여서는 안됩니다.
지금 만족하고 좋으십니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한 현재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 또한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어, 성경의 언어는 미래 지향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현재만 바라보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답고 복된 눈은 멀리 보는 눈입니다. 지금의 어려움보다, 더크신 하나님의 계획을 봐야 합니다.
미래를 향하여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창13:10-11을 보면, 아브라함과 룻이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갑니다. 롯이 떠난 후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그냥 머물러 살았으나 롯은 요단 들녘에 있는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다가 소돔 가까이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아브람과 롯이 서로 헤어져 살게 된 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셨습니다.
'아브람아,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찬찬히 둘러보아라. 네가 지금 둘러보고 있는 땅을 내가 모두 너와 너희 후손에게 주겠다. 앞으로 영원토록 이 땅이 너희의 차지가 될 것이다.‘(창13:14-15)
롯은 현재를 택해 요단 동쪽으로 갔다가, 전재산을 잃고 아내를 잃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선택하고 미래를 선택했더니,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저는 아보츠포드 좋은교회를 개척할 때에도, 벤츄라교회를 올 때도 현재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교회 렌트비가 없으면, 내가 굶더라고 내면 될 것이고, 어려움이 있다면, 어려움 때문에 저를 부르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장의 현실을 따져보기 보다는, 저는 일단 해보는 스타일입니다. 해봐야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언제가 그렇게 인도하셨고, 그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주가 많거나 능력이 많은 목사가 아닙니다. 그저 주님이 원하실 때에, 그것이 좋던지 나쁘던지, 힘들던지 어렵던지, 조건과 상관없이 순종으로 믿고 견디고 버티는 목회를 했습니다. 현재보다 미래를 마음에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두 눈도, 두 눈을 이끄는 생각도, 미래적 존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내세를 보는 눈이어야 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받게 되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내세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는 물질적인 세계와 썩어질 육신의 쾌락에만 도취되어 내세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살다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았지만, 나사로는 비록 몸에 헌데를 앓으며 부잣집 대문간에서 얻어먹고 살았으나 내세를 바라고 천국을 준비하며 살다가 영생 복락을 누린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눅 16:19-31).
음부에 떨어진 부자가 "나는 어차피 이곳에 왔지만 내 집에 다섯 형제가 있는데 나사로를 우리 집에 보내서 그들에게 증거하여 그들이 나 있는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고 아브라함에게 애원했으나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현세만 보고 내세를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사람은 비참한 인생이요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내세가 있는 것입니다.
3.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집시다.
① 거듭나야 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어떻게 거듭납니까?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해야 됩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한 그 순간부터 구원받으며 차츰차츰 영의 눈이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엡1장에서 사도 바울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②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빛이 있어야 사물을 보는 것 같이 영의 세계를 보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영의 세계를 보는 눈입니다. 믿음이 성장할수록 영의 눈도 점점 더 밝아집니다. 그리고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보고, 현세만 아니라 내세까지 보게 되며, 말로 표현은 할 수 없지만 만져본 것 이상으로 깨닫고 알게 됩니다.
③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깊이 회개하고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영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얀 수염이 달리고 백발이 휘날리는 것 같은, 그런 모양의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아닙니다. 심령이 깨끗해지고 높은 수준에 올라갈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어떤 것을 기뻐하시고 어떤 것을 미워하시는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단순한 눈'(single eye)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의 목표와 대상(one object)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 다른 것을 믿거나 의지하는 두 가지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뜻이요, ㉯명확하다(clear) 는 뜻입니다. 곧 목표를 명확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외식과 위선이 없다는 뜻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이중인격자나 위선자는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단순하고 깨끗하고 거짓과 위선이 없어야 그만큼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볼 것을 바로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더욱 영의 세계는 직관적(intuitional)이고 영감적(inspirational)이고 묵시적(rove-lational) 이기 때문에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겉만 보고 결단을 내리고 섣불리 일을 하다가는 언제나 마귀에게 속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양봉하는 사람은 아카시아나무와 메밀꽃을 볼 때 겉을 보는 동시에 그 속에 꿀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를 봅니다. 이와 같이 보이는 대로 행치 않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속을 보는 눈을 가지고 믿음으로 행동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했습니다. 겉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속을 보는 눈을 가집시다.
④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라는 말씀을 하시고, 또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뒤에, 곧이어 이 눈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또 이어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경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을 버릴수록 마음 눈의 비늘이 벗겨지며 밝아집니다.
탐심이 가득한 마음은 볼 것을 바로 볼 수 없으며 가치판단이나 선악의 판단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의 눈이 땅에 쌓아둔 재물을 향할 때 그 마음은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외경 토빗편 4장 7절에 "영의 눈을 건전히 하는 법은 후하게 구제하는 것이라"란 말도 있습니다. 탐심이 생길 때 사기꾼에게 속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당장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거기에 목숨을 걸고 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영계를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