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더위가 한 풀 꺾이는 중인 요즘입니다. 처서도 지났지만, 아직은 좀 덥네요.
하지만 곧 가을이 되겠죠.
그럼 책 추천 시작하겠습니다.
요새 제 소확행을 책임지고 있는 밀리의 서재에서 본 작품입니다.
도서명: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2권
저자: 보니 가머스
* 이 도서는 밀리의 서재에서 독서한 작품입니다.
* 소개글 서평
편집디자인부 점역 팀장님의 추천으로 이 책을 들게 되었다. 1950~1960년대 여성 화학자가 주인공이란다. 여성 인권 같은 게 미발달한 당시 사회에서 여성 과학자 또는 여자 화학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주인공의 분투기이자 당당한 인생 여정이라고, 주인공이 너무 당당해서 읽는 독자가 재미있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소위 걸 크러시인가?
책의 제목은 《레슨 인 케미스트리》이고, 총 2권이다. 출처는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이다.
👩🔬🧬 👩🔬🧪 👩🔬⚗️
《레슨 인 케미스트리》 - 여성 화학자, 가장 여성적인 영역 요리에서 화학을 강변하다!
소설의 시작은 뭔가 엄청 분주한 여자의 아침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새벽 일찍 일어나 요리를 한다. 딸아이의 도시락을 싸며 당부하는 내용, 또는 격려하는 내용을 담은 메모를 도시락에 동봉한다. 그 후 방송국으로 가 TV 유명 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촬영을 준비한다. 하얀 가운을 펄럭이며 지적인 과학의 영역에서 당당하게!
👩🔬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조트, 과학계에 몸담은 여성 화학자이다. 그리고 과학계뿐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 불합리, 비논리에 맞서 자신의 영역과 지분과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화학 수업 기초편 같은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요리 그 이상의 것, 화학 그 너머의 것을 강연한다.
소설 1권에서는 과학계에 몸담은 화학자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분투와 비커 소유권 문제로 인연이 닿은 영혼의 짝 캘빈 에번스와의 사랑, 딸아이 매들린(서류상으로는 매드)의 육아 문제 등을 다룬다.
동시에 그녀가 어떻게 현재의 TV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식사’의 진행을 맡게 되었는지 그 과정도 이야기한다. 🥧🍽️
소설 2권에서는 엘리자베스 조트가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을 빙자한 화학 수업 기초편이 불러온 어마어마한 ‘나비효과’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지만, 엘리자베스는 과학자로서 자신의 방식대로 프로그램을 이끌어간다. 그녀는 결코 남성이 요구하는 가정적인 이상형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 주머니가 많고 은근 몸매를 강조하는 여성적인 원피스 No! 그녀는 바지를 입고 실험용 가운을 걸친다.
🧫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주방용 소품 No! 그녀는 공간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그런 소품은 죄다 방청객에게 기부했다.
어디 동화책 삽화에나 있을 법한 인위적인 가정 주방 세트장 No! 그녀는 논리적인 현실에 발딛고 산다. 그래서 섬유질 풍부한 코끼리 응가 사진이나 독버섯 자료 등 논리와 과학에 근거한 자료를 활용한다. 🐘💩
엘리자베스는 요리는 화학이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거나 농담도 하지 않는다. 진지한 과학 실험처럼 설명한다. 그리고 언제나 프로그램 말미에 이렇게 덧붙인다.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요즘이라면 또 몰라, 당시는 1950~1960년대가 아닌가.
엄마가 아닌 여자이며 개인인 내가, 나로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몸소 실행하는 건 또 어떻겠는가.
👩🦯 개인적으로 엘리자베스가 요리 방송을 맡은 전개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요리는 고래로부터 여성적인 영역의 대명사처럼 취급되어 온 경향이 있다. 베이킹과 더불어 여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수단이랄까?
어떻게 보면 감성적이고 여자다움의 상징인 분야를 통해 남성적이고 이성적인 화학을 강연한다는 부분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반전 매력 같은 게 있어서 좋았다. 이 대목은 작가가 약간 의도적으로 이런 요리 영역을 선정한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 👩🔬🔬 👩🔬🧬
인생의 화학식 나 = 화학할 가능성 = 화학 = 변화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미국’이라고 하면 선진국 이미지가 강하다. 뭔가 더 발전되었을 것 같고, 사상이나 문화나 인식 같은 것도 동시대 다른 나라보다 약간 앞섰을 것 같은 이미지랄까? 🌎
그러나 1950~1960년대 미국은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 고정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사소하게는 분홍은 여자 색이요, 파랑은 남자 색이라는 웬 인격체 아닌 색깔에 성별을 부여하는 풍토부터 경찰은 남자아이 역할, 여자아이는 보호를 받는 역할 등 놀이에서까지 직업과 역할에 성별 제한을 두었다. 미국이 이랬는데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 한국은 그 시기가 밀가루 원조를 받던 때였다. 6․25 전쟁 여파를 겨우 어떻게든 수습할까 말까 하던 시기, 3․15 부정선거 등으로 인해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당시 우리나라 여건상 여성 인권이니 직업의 남녀 차별이니 하는 주제가 나올 때는 아니긴 하다. 소위 먹고살기만도 바쁜 시대였으니까.
내가 미국 역사는 잘 모른다. 그런데 아무래도 1960년대 미국은 한창 사회적인 과도기를 겪고 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깨인 여성들이 진출하던 중반기 같은 거.
각설하고, 이런 판국이니 여자 과학자 엘리자베스 조트의 인생이 사이다스러울 리 만무하다.
모든 면모에서 그녀가 유능한 화학적 재능을 가졌다는 게 드러난다. 화학적으로 사고한다든가, 요리, 조정 스포츠 등 일상의 다양한 문제와 화학을 결부시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든가.
그 과정이 약간 코믹하기도 하고, 유머러스해서 얼핏 보면 소설은 상당히 유쾌하게 보인다. 물론 깊게 봐도 소설 곳곳에 유쾌함이 가득하다. 유명 과학자이자 엘리자베스의 사랑 캘빈, 이웃 아주머니 헤리엇, 모전여전이 인물화된 것 같은 아이 매들린, 그리고 약방의 감초 같은 전직 폭발물 탐지견 훈련생 6시 30분 등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 모두 상당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특성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인물은 단연 엘리자베스 조트이다. 그녀의 개성은 소설 내내 독자를 매혹시킨다.
하지만 앞서 나는 적었다. 여자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의 인생이 마냥 유쾌 상쾌 통쾌하지만은 않다고. 사이다는 무슨, 그녀의 인생 여정은 밤고구마를 수시로 물없이 씹어 삼켜야 하는 일들 투성이었다. 엘리자베스의 세상은 불합리와 부조리와 비논리로 가득하다. 가장 이성적이고 지성적일 듯한 과학계마저도.
그녀는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경력은 성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정말이지 지속적으로 방해받는다. 능력이 있음에도 승진할 수 없었고, 상급자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빼앗기기도 했다. 심지어 대학 시절에는 지도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그 당시 엘리자베스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불건전한 행실을 가진 것으로 취급당했다는 부분이다. 그 지도교수가 처벌받기는커녕 되려 엘리자베스만 학교에서 쫓겨났다. 이 대목에서 당시 사회가 아무리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 해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다 해도, 이건 너무 아니지 않나 싶었다.
👩🦯 그 지도교수와 경찰 등 소설에 등장한 남자들 뒤통수를 점필로 확 찍어버리고 싶었다. 참고로 2권에서는 방송국 총괄과 잡지 편집장의 뒤통수를 점자도서 책등으로 후려치고 싶었다.
당연하지만, 소설에 그런 재활용 불가 불연소 쓰레기 같은 남자들만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남녀를 나누는 건 이 소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취지에 맞지 않는다. ‘사람’이라고 정정하겠다. 엘리자베스가 마중물처럼 앞서 나가는 역할이라면, 그녀의 화학 수업으로 인해 야간 수업을 끊거나 의대에 입학하거나 하는 등 변화하는 여자들, 자신이 잘못된 가치관에 갇혔음을 깨닫고 사회를 바로잡으려는 기자나 PD 월터, 그녀를 지지하는 산부인과 의사나 목사와 변호사, 초반 엘리자베스와 대립했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고쳐먹은 연구소 인사 담당자 등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다수가 아닌 점은 퍽 안타까웠다. 그래도 우리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당당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간다. 그녀를 못마땅해하며 괴롭히는 남자들이 ‘왜 안 울지?’라고 여기거나 말거나, 엘리자베스는 신경 끄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캘빈을 사랑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캘빈과의 결혼이 아닌, 그와의 동거를 선택한다. 사랑의 최종 종착지가 결혼일 필요는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에스터 레더버그’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에스터는 미국의 미생물학자이자 세균 유전학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의 아내라는 이유로 교수 제의는커녕 본인의 성취가 남편 덕택이라고 여겨졌다. 엘리자베스는 과학자로서 인정받길 원했고, 당시 사회 풍조상 캘빈과 결혼하면 그녀는 그의 아내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결혼과는 다른 방식으로 함께하길 선택한 것이다. 👩🔬
또는 이런 것이다. 그녀는 방송에서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종교적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문화가 단단하게 뿌리내렸던 모양이다. 그 발언으로 인해 폭탄 테러가 일어날 뻔도 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편이 아니었던 세상에 대해 자기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모습에 사회는, 사람들은 차츰 용기를 내 변호하기 시작했다. 소설 끝에서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위해 마지막 요리 프로그램을 마치며 말한다.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레슨 인 케미스트리(Lesson's in Chemistry)》라는 소설 제목은 ‘화학 수업’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그 화학(Chemistry)은 요리 영역에 침투해 여성적인, 여성다움의 벽을 용해시키고,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라는 격려를 선사했다.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남자든 여자든 다 떠나 사람인 우리는 누구나 화학을 할 수 있다고. 화학의 본질은 변화하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변화할 수 있노라고.
그녀의 화학 수업 기초편이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화학식이기도 하다.
물론 결말이 좀 판타지스럽긴 하다. 아니, 전개에서도 좀 판타지적인 면이 있다. 이 세상에 6시 30분 같은 개는 없을 것이고, 남편의 어머니가 재벌일 확률은 0에 수렴하며, TV 요리 프로그램에서 지루하고 따분하고 어려운 화학이 등장했다가는 딱 망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허구의 인물이라 해도 그 삶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같은 사람에게 판타지 같은 결말이 주어져도 되지 않나 싶어진다. 저렇게 노력하는데, 하늘이든 작가든 뭐든, 마법 같은 행운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는가.
결론은 이것이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엘리자베스 조트의 인생 여정 화학 수업을 강추한다는 거!
PS. 이제 원래 읽기로 한 책 <종소리> 읽어야겠다. 엘리자베스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 책부터 완독했지만, 원래 목적은 시리즈 3편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