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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말씀/딤후 2:1-13
요절/딤후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사도바울은 우리 신자를 군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군인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국가를 침략하려는 자나, 국가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자와 싸우는 용사입니다. 우리 신자도 군인과 유사성이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유지 확장 시키기 위해 사단과 싸우는 군사입니다. 일반적으로 싸움은 부정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싸워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꼭 싸워야할 싸움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과 싸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단과 싸우는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번 교회로 들어오는 길이 막힌 문제로 많은 사람과 싸웠습니다. 저는 교회로 오는 길을 막은 자를 형사 고소하고 싸웠습니다. 구청과 동사무소 직원이 무사안일하다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길을 막은 자도 우리 교회의 불법 건축물인 화장실과 광고판을 고소하여 벌금을 이백만원 정도 물고 교회의 여러 가지를 헐어야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싸움을 싸우다가 거의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겪으며 아주 귀중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내가 싸워야하는 것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사단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전에 이층을 올릴 때도 우리는 공유지인 옆집이 도장을 할 수 없어서 작은 일층 홀에서 예배드리며 큰 방에서 우리 집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때 사람과 싸우지 않고 답답하여 한맺힌 기도만 하였습니다. 이년을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옆집 아주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게 하시고 이층을 올리게 하셨습니다. 아주머니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문제를 겪으며 겉으로 나서지 않고 더욱 부르짖어 기도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를 깨닫고 나는 고소를 취하하고 그 집도 민원을 취하하여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도로 영적인 싸움을 싸울 때입니다. 옆집 건축주 류근준씨가 열심히 싸우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싸움을 잘하는 좋은 군사란 어떤 군사일까요?
제일장 좋은 군사는 강해야 합니다.
좋은 군사는 강한 군사입니다. 강한 군사란 어떤 역경, 고난 속에서도 적과 싸우며 살아남는 군사입니다. 적과 싸워서 이기는 군대입니다. 전에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들은 10월 달에 산 속에서 전 한국군의 추격을 받으면서도 한 달이나 도피하다가 살아서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우리 나라의 U.D.T나 특전사 요원들도 바다나 산이나 어느 곳에 떨어뜨려 놓아도 칼한 자루만 있으면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먹고 살아남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강한 군사입니다. 복음의 일꾼도 강해야 합니다. 약한 사람은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한 형제는 먹고 살기 위해서 주일날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그는 주일날 예배를 꼭 드려야한다는 말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린 신앙입니다. 작은 고난에서도 신앙이 길대처럼 흔들립니다. 그러나 강한 군사는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흔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련을 통하여 믿음이 더욱 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욕을 하더라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축복과 은혜가 와도 교만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강한 군사는 기드온 삼백 용사와 같은 사람입니다. 기드온 삼백 용사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은 두려워하는 자들은 다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강한 사람은 폭풍이 불고 파도가 쳐서 죽음의 위험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정이 파탄나고 시험에 실패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드온 삼백용사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목마름에 자신의 무릎을 꿇고 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꼿꼿이 서러 물을 마셨습니다. 육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람이 강한 군사입니다. 수면욕을 극복하고 새벽기도에 나오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먹는 것을 절제하여 최경외 목자님처럼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강해야합니다. 강하고 담대해야 복음의 원수들인 사단과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강해야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의 유혹을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강해야 어떤 핍박이나 고난이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강해야 불신과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강해야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보약을 먹어야합니까? 당장 가서 역기를 들어야 합니까? 번지점프를 해야합니까? 물론 육신도 강해야 합니다. 담력도 키워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만 강하고 영적으로 약하면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 영적 군사들은 어떻게 영적으로 강해질 수 있을까요?
1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감당해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피를 온전히 흘리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사람이 강해집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강해집니다. 구원의 은혜가 분명한 사람은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남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이 남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헤는 부활의 은혜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지금도 이곳에 살아계십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 편이 되어 싸워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반드시 상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을 때 강해질 수 있습니다. 강해서 어떤 고난이라고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단의 공격도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연약한 자였습니다. 얼마나 연약한지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에수님을 만나고도 물고기 잡으러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죄악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에 살아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때 그는 강한 자로 변했습니다. 감옥에 가두어도, 채찍으로 때려도 감사하며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피도 눈물도 없는 강한 독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죄인의 우두머리인 자신을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리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도로 삼으신 은혜를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욱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거의 죽은 것 같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성 밖에 내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자 다시 자신을 돌로친 루스드라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행 14:19-21) 현재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그는 춥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는 외롭고 슬픈 생각으로 인해 마음이 연약해져 슬픈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연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전노장 같이 강했습니다. 그는 강한 자가 되어 연약한 디모데에게 강한 자가 되라고 명령합니다 .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눈감으면 코베가는 세상입니다. 살벌한 생존 경쟁의 사회입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양을 치며 사명인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편이 되어 도우시는 것을 믿을 때 이 모든 것을 넉넉히 할 수 있습니다.
제이장 충성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2)
명장 밑에 졸장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명장은 명장을 양성합니다. 우리가 훌륭한 명장이 되어 훌륭한 명장을 양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명장 또 다른 명장을 재생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여기서 복음이 4단계로 전파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받은 복음을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충성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은 계승되어 나가게 됩니다. 이는 마치 성화의 횃불이 성화주자들의 손과 손을 통해 전해져서 성화가 올림픽 광장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성화가 전달되는 거룩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화주자는 빨리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꺼뜨리지 않고 다음 주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복음의 성화를 다른 제자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성화를 전달하는 복음의 주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횃불을 꺼뜨리지 않고 한 사람의 제자에게 전달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양성을 하는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배웁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와 충성된 사람과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에게, 충성된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는 말씀은 다른 제자를 양성하는 제자 양성가가 되기까지 키우라는 말입니다. 복음은 제자 양성을 통해서 전파됩니다.
제자양성이 하나님의 역사 원칙입니다. 제자 양성은 본래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아브라함 한 사람을 25년동안 충성된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이, 이삭을 통해 야곱이 야곱을 통해 12아들이 성장하고,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이루어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세계만민에게 복음이 전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은 베드로 한 사람을 충성된 사람으로 키우셨고 베드로는 마가를 충성된 사람으로 키웠고 마가는 또 다른 충성된 사람을 키웠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복음 역사가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서 제자양성을 해야합니다 저는 천안에 와서 일년 동안 12베드로 12마리아 양성을 기도제목으로 삼았습니다.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키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후에 남은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 아브라함목자 한사람을 영접하고 섬겼을 때 제자들이 서게 도우셨습니다. 서브라함 목자님은 허준석 목자를 세우고 허준석 목자는 또 송기석 목자를 돕고 있습니다. 저는 임마가 목자를 돕고 임마가 목자는 남다윗 목자를 도왔습니다. 남다윗 목자는 또 한 사람을 도와야합니다. 학생회에 서준용 목동과 장기혁 형제와 박지혜 자매가 성장할 때 우리 학생회가 든든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관악삼부도 지금 사학년인 한 자매의 성장을 통해서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제삼장 고난을 사랑해야 합니다. (3)
3절을 보십시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는 고난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서 고난은 훈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훈련 받을 때 흘린 땀 한 방울은 전쟁에서 피 한 방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훈련을 많이 받은 군사일수록,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 군인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습니다. 훈련을 통해 연약함과 안일한 습관을 극복합니다.
군사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옛날의 방위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바뀌어 군인의 자격도 잃어버렸습니다. 병장도 있고 하사관도 있고 장교도 있습니다. 특공대는 미국의 그린베레, 영국의 코멘도우, 한국의 707특수 임무대대, 북한의 특수팔군단이 있습니다. 좋은 군사는 훈련에 비례합니다. 병이 되려면 6주의 훈련을 받고 장교가 되려면 육사는 4년, 학군단은 2년, 학사장교는 6개월의 훈련을 받고, 특공대원이 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모래 주머니를 차고 산악을 행군하고 혹한기를 견디는 훈련을 합니다. 김신조는 해발 1000m 이상 되는 산에 혼자 들어가 살아남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 훈련을 받는 10만 명의 요원 중 최정예 31명을 모아 124부대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청와대를 공격하였습니다. 이들 훈련 가운데 칼 한 자루 가지고 산속에서 뱀, 쥐등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훈련도 있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남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무적의 용사로 변화됩니다. 이런 고난을 통하여 강인한 군인정신이 생깁니다. 영적인 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이 없으면 싸움은 그만두고 자기의 죄악된 본성 하나 다스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훈련 받은 사람은 본성이 변화되어 쓸모 있는 사람이 됩니다.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disciple, 제자란 단어는 훈련이라는 discipline에서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훈련만 받으면 좋은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훈련은 유익하고 좋은 것입니다. 또 많이 훈련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좋은 제자, 더 좋은 군사로 빚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에 내가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훈련만 받으면 변화될 수 있고, 또 좋은 제자가 될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일반 군인은 군에 입대해야하니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나 장교는 자원하여 장교가 되고 자원하여 훈련을 받습니다. 우리 크리스찬은 장교와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자원하여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자원함으로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법을 지키며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특히 극기 훈련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더 연습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에 10분을 더 하라." 우리가 잘 아는 박찬호 선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훌륭한 투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피나는 훈련을 통해서였습니다. 황영조 선수가 88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훈련을 많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을 수양회에 귤과 감과 사과를 갖다 놓으면 귤만 먹습니다. 사과를 까는 고난을 받기 싫어 사과를 먹지 않습니다. 우리는 귤대신 감을 먹어야합니다. 매일 양식을 쓰는 훈련, 새벽기도하는 훈련, 소감 쓰는 훈련, 기도하는 훈련을 받아야합니다.
또한 고난은 죽음을 각오하는 담대한 자세를 말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生則必死요 死則必生 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고,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산다는 말입니다. 군인이 죽기를 각오할 때 용감한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군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좋은 군사입니다. 사도바울도 지하 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매이는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디모데도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사도 바울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찰스 스터드는 "우리는 해가 갈수록 더욱 열정적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열정적이 되고 더욱 고난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4절에서 군인들이 받는 일반적인 고난을 말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니라" 군인들은 신검을 받은 후 영장에 따라서 군에 입대합니다. 군에 입대하면 군인끼리 공동생활을 하며, 자유가 없습니다. 머리깍는 것, 옷입는 것, 신발 신는 것에도 자유가 없습니다. 자신이 원한다고, 군대 밖으로 나가면 탈영입니다. 군인은 사생활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이는 군사로 모집한 국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 입대하면 모든 것을 국가나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군에 입대하면 자신의 몸조차도 국가의 물건 곧 관물이라고 합니다. 군인은 자신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군인 생활의 가장 큰 고난은 바로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자유를 반납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인은 자유를 주님께 반납해야합니다. 우리는 과거 스스로 원하는 데로 다녔으나 이제는 주님의 뜻을 따라 다녀야 합니다. 집에 다녀오는 것, 옷 입는 것, 머리 깍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자기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앞세워야 합니다. 자기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야 합니다. 이는 영적인 군사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우리는 이런 고난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여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세상의 친구들보다 주안에서 동역자를 더 사랑합니다. 학과공부나 직장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앞세웁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의 명령이면 무엇이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주님께 자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좋은 군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군사에 비유하여 영적싸움을 이야기 하다가 경기와 농사에 비유하여 말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경기하는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세계 대구 육상경기에서 우사인 볼트는 출발 규칙을 위반하여 백미터 달리기에서 탈락하였습니다. 벤존슨이 88 올림픽에서 100m세계 신기록을 깨고 인간 마하라고 했지만 약물복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메달을 박탈 당하고 비참한 자가 되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지름길로 빠지면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권투선수가 권투하다가 발로 차면 쉽게 이길 수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반칙패로 참피언 벨트를 맬 수 없습니다. 경기하는 자는 규칙을 지키며 경기를 해야 합니다.
농부는 부지런히 수고해야 곡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땅은 진실합니다. 곡식은 농부가 때를 따라 씨를 뿌리고 김을 매주고 거름을 주고 새를 쫓아 주며 가꿀 때 가을에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쌀이란 한자로 米인데 八十八의 합성어입니다. 이는 쌀이 나오기까지 팔 십 팔 번의 손이 간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농부도 훈련과 고난과 열심을 통해서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농부는 여름에 해수욕이나 등산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군사도 지켜야 할 규칙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순종의 규칙 감사의 규칙 사랑의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규칙을 지켜야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없습니다. 좁은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은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렵고, 힘들어도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때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18세기 유명한 조지 휫필드는 과로로 말년에 더 설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그에게 설교를 그만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녹이 슬어서 없어지는 것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낫습니다." 그는 설교하다가 그날 새벽 4시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홍콩UBF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1986년 김 안젤라 선교사님이 캠퍼스에 가셔서 복음을 절대적인 자세로 전할 때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불신자인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고난을 이해하시고 몇 명의 목자들을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녀는 매우 열심히 헌신적으로 일하여 머리에 있는 액낭을 제거하기 위해 뇌수술을 3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녀는 잠잘 때마다 토하고 많은 약을 복용하였습니다. 지난해 그녀는 매우 아팠습니다. 그때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그래서 그녀는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는 약을 더 이상 먹지않고 새벽기도에 자신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녀는 순교정신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홍콩대학 캠퍼스에서 죽으리라" 그때,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녀를 치유하셨습니다. 한 알의 썩는 밀알로서 죽으리라는 결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많은 홍콩목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들 모두 이분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사랑합니다. 그녀는 홍콩 ubf의 영적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제사장 부활의 상급을 바라보아야 합니다.(7-13)
디모데는 목자 사도 바울의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데 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바울은 현재 죄인처럼 쇠사슬에 매여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택하신 성도들을 위하여 고난을 참고 있습니다. 그는 주와 함께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매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담장 너머에까지 넘어가 시위대를 변화시키고 로마를 변화시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택하신 자들이 구원받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고,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 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승리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많이 받고 말씀을 가르쳤을 때 말씀이 시위대 안에 전파되었습니다. 시위대들이 궁궐로 돌아가자 로마 궁궐까지 복음화되었습니다. 로마전체가 변화되었습니다.
10-1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니. 미쁘다 이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여기서 함께 라는 단어가 세번 나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왕노릇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면 영광도 반드시 함께 얻습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힘써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실치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신실하신 분이십니다.(13) 예수님은 한번 주신다고 약속하시면 반드시 주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자에게 반드시 영광을 주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바울이 고난을 받았을 때 세계선교의 개척자로 쓰임받았습니다. 신약의 3/2가 바울의 서신으로 이루어져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울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에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불가리아 강제임스 선교사님은 논산 군수가 꿈이었습니다. 그는 볼리비아 대사관 직원으로 볼리비아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주일예배 메시지를 19년동안 절대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일요일에 생기는 대사관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번 데사관에서 반성문을 쓰고 경고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다니엘과 같이 사자 굴에 들어가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불가리아 대통령의 친구요 통역관으로 높여주셨습니다. 그 아내는 불가리아 대학의 교수로 세워주셨습니다. 그 딸 강캐시를 반기문을 잇는 차세대 글로벌 리더가 되었습니다 (동영상종로1 사진에) 서아브라함 목자님은 센터 옆의 쪽방에서 사시며 양들은 70평 아파트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자녀들을 돈이 없어 학원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 서다윗을 모의고사에서 천안고 일등으로 전국 143등으로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관악 삼부는 독자를 잃은 변다니엘목자님과 남편을 잃은 조재은 사모님이 절대신앙으로 고난을 받았을 때 학생회 역사를 크게 축복하여주셨습니다 제가 천안 역사를 섬기며 고난을 받았을 때 많은 승리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저는 율법적인 생활을 버리고 은혜를 배웠습니다. 은혜는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는 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라는 이름으로 현실과 타협을 많이 했습니다. 현실과 타협하자 많은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 제가 이를 회개하였습니다. 제가 절대 신앙을 갖고 작년 연말부터 믿음으로 살았을 때 하나님은 많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제가 아브라함처럼 절대신앙으로 고난을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 강해야합니다. 충성된 사람을 세워야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사랑해야합니다. 좀더 고난의 길을 가야합니다. 부활의 상급을 보아야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사랑하는 좋은 군사가 되어 하나님의 상급을 풍성히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딤후 2장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작성자 onoingod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 2:3-4)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신분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이 신분에 대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복음에 사로잡혀 사탄마귀를 대적해 싸우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의 공격을 파쇄하며 죄와 사망의 포로된 자들을 적극적으로 구출해내며 영적인 특공대로서 사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그런 모습,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으로 승리하는 그런 멋진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참으로 통쾌하고 매력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에 대해 디모데에게 나눠주는 말씀은 내가 생각하는 개념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고난을 받는 삶이며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자이며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치열한 전투에 투입되는 사람들이 군사인데 '싸운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고, 그다지 끌리지 않는.. 다소 수동적으로 보이는 삶의 모습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영적 전투는 내 맘대로 혈기부리며 싸우는 싸움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나를 군사로 모집하신 주님은 사랑으로 싸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 고난을 받으라.
-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 군사된 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이라 하십니다. 나이어린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받게 되는 자존심이 구겨지는 상황들, 뻔히 알면서도 속아주고 져주고 받아주고 품어줘야 하는 상황들, 쉽고 편하게 갈수도 있지만 그것이 주님의 방법이 아니기에 돌아가더라도 말씀따라 순종해야 하는 상황들, 내 감정을 실어서 시원하게 찔러주고 싶지만 말씀으로 감정을 추스리고 온유하게 격려하며 한번더 안아줘야 하는 상황들... 이 모든 것들이 작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이라 생각합니다.
2.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라.
- 내가 주인된 삶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자기 생활이 무너지지 않도록 행하는 모든 일들에서 손을 떼고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백부장과 같이 상관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 태도... 주님말씀하시면 나아가고 주님 뜻이 아니면 멈추고... 자기 생활에 얽매여 언제나 선택의 상황에서 내 뜻대로 선택하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3.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하라.
- 군사된 삶의 깊은 내면의 동기가 되어야 할 것은, 군사를 모집한 자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태도입니다. (눅 10:20)말씀에 제자들이 전도하러 갔다가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예수님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을 때 주님께서는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귀신들이 항복하는 걸로 기뻐말고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마지막 때에 필요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금 개념을 바로 잡는 소중한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작성자 엘샤다이
딤후 2:1-13 그리스도의 군사
군사라는 말 안에는 복음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다는 비장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4:6).
1. 그리스도의 군사의 자격(1-7)
a. 은혜(1)
은혜가 있어야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됩니다. 군사는 강해야 합니다.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도 주께서 나를 건져 주실 것이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4:17-18)
b. 진리(정통신앙) (2)
예수님을 통해 사도 바울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셨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고 디모데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올바른 진리의 말씀, 정통신앙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리는 우리 신앙의 무기입니다. 진리는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변질되지 않도록 물려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물려주지 않는 것도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진리를 다음 세대에도 맡기는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c. 고난(훈련) (3)
1:8절 참조. 그리스도의 군사로 훈련을 잘 받아야 쓸모있는 군사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스승으로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앞으로 디모데가 스스로 일을 해 나갈 때 거침없이 해 나갈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훈련)을 받는 군사의 태도는,
1) 군인처럼 자기 생활에 얽메이지 말아야 합니다(4).
2) 운동 선수처럼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5). 신앙에서도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신 앙의 규칙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수고하는 농부처럼 더 많이 수고해야 합니다(6).
2. 그리스도의 군사의 목표(8-13)
a. 복음(8)
군인, 운동선수는 뚜렷한 목표가 있습니다. 평소에도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그 목표를 향해 정진해 나갑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우리의 목표는 복음입니다(8).
복음은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두 마디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세 마디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시고(성경대로 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기뻐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고, 복음과 함께라면 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순교할 수 있는 군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b. 구원(10)
택함 받은 자들이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은 참고 고난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목표는 복음을 가지고 죽어가는 영혼들 가운데 택함받은 그들을 복음을 가지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3. 이 목표를 이루는 방법(11-13)
11-13절은 그리스도의 군사가 복음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이루는가에 대해 말씀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군사로서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이루십니다.
우리는 군사로서,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이 소임을 잘 감당해 나가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