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모르면 생존경쟁, 알면 공부.
인생이란 ‘응아!’ 하고 고고성을 울리며 나왔을 때에
이미 예고 없는 사형 선고를 받는 가운데 일생을
꿈속의 일처럼 살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또는 잠깐 이승에 소풍 나왔다가 가는 것과 같다.
우리의 육신·재산·권력·명예라는 게 본래 실체가 없어서 허망한데,
찰나 동안 살면서 가지고 갈 수도 없는 것을 놓고
서로 빼앗고 싸우고 울고불고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미 죽을 숙명을 안고 태어난다.
마치 사형이 확정된 죄수와 같다.
그러나 자기의 인생을 제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다만 나는 내 인생을 몇 십 년 동안 관리할 뿐이라고
확철하게 안다면 마음은 생사의 걸림에서 벗어나 편안해질 것이다.
우리는 한 철 살다 가는 나그네이다.
그러한 나그네 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하느냐,
평등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매사를 내 탓으로 돌리며
넓은 아량과 지혜를 가진 인간으로 사느냐,
아니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야 하겠다는
모진 마음으로 나가느냐 각자 판단해 볼 일이다.
다만 한 철 나기 위해 이 세상에 와서
이 도리를 알지 못하고 간다면 언제 다시 와서
실현할 수 있을지 도저히 기약할 길이 아득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인간이란 지구 안에서도 그렇지만 대천세계를 합친 자리에서 보면
티끌처럼 보잘것없다.
그럼에도 티끌 같은 존재가 티끌 같은 일을 가지고
옳으니 그르니 왈가왈부하며 화목하지 못한다.
그러니 공부한다 하기 이전에 말 한마디라도
오순도순 곱게 해야 하고 일을 해도 융화를 도모해야 하고
서로 마음을 거슬리지 말아야 하겠지만
몸 떨어지면 그뿐이니 어느 때 삶의 의미를 알게 되겠는가.
사람은 꿈이 꿈인 줄 모르는 까닭에 혹은 기뻐하고, 혹은 괴로워한다.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 쾌락의 꿈과 고통의 꿈에서 깨어나
크게 한 번 껄껄 웃고 명철한 눈으로 이 세계의 참모습을 보며 살아야 한다.
‘이 즐거운 세상, 수단 방법 가릴 것 없이 편케 살면
그뿐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 하나 편한 것으로 영원한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일시적인 향락이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우리의 삶은 이 생에서 끝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나 혼자만이 몰래 하는 일까지도 업이 되어
내게 되돌아온다는 법칙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몸은 조만간 쓰러져 흩어질 것인데
자기를 어떻게 영원하다 하는가 라고 하겠지만
나름대로 모습을 바꿔 옮길 뿐이지 죽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유하건대 애벌레들이 고치를 틀고 들어앉았다가
나방의 모습으로 화하여 공중을 나르는 것과 같다.
우리의 삶은 그러기에 생동력 있게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의 최대 문제는 지금 우리 인간이 사는 이 세계에서
위 차원으로 올라서느냐, 아니면 다시 지금의 차원을 되풀이 하느냐,
아니면 아래 차원으로 떨어지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 해답은 각자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참 나를 깨달으면 영원히 밝은 세계를 보게 된다.
도대체 사람으로 태어나서 억만의 부를 쌓고,
까마득하게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존경을 받은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기껏해야 백 년도 못사는 인생,
그렇게 집착하며 구하던 것들도 일단 병들어 죽게 될 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청산유수 같던 언변도 일단 몸을 여의면 아무 소용이 없고
다른 유위법적인 보람도 무의미해진다.
그런 것을 바라고 마음 닦는 것은 정녕코 아니다.
고작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위대했던 아무개’라는 소리가
전해진다 한들 뿌리 없는 일이니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자기의 참 주인과의 해후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나은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는 데 급급해서 공부할 겨를이 없다고 말한다.
그 시간에 물건 하나라도 더 파는 게 중하다는 식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공부를 한다면서 마치 부업하듯이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토록 바삐 살면서도 여전히 인생살이가 힘겹다고 한다.
지금 현실의 환난과 고통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공부할 사이가 어디 있겠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환난과 고통이 모두 나로부터 나온 것이니
나온 곳에다 되 맡겨야 녹아내리지
그렇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변해서 돌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환난도 고통도 다 공부의 재료인 것이요,
생활이 그대로 이 공부라 하는 것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된 덕분에 현대인들은 예전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현대인들은 그 여분의 시간을 어디에,
무엇하는 데 쓰고 있는가? 이렇게 살기 좋은 노른자위 안에서
이 노른자위 공부를 못한다면 어떻게 하느냐.
수행은 만 가지 맛이 나는 과일이요 만 가지 향기가 나는 꽃이다.
그리고 수행자들은 그런 과일을 키우는 농부요,
그런 꽃을 재배하는 정원사라 할 수 있다.
모든 생산 중에서 가장 맛이 나고 해볼 만한 생산,
모든 농사 중에서도 가장 보람있는 농사가 바로 수행이다.
그리고 그 농사는 다른 모든 일상생활을 버리고서 하는 것이 아니다.
생업을 그대로 가지면서도 누구나 마음을 닦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오히려 생업이야말로 마음을 제대로 닦을 수 있는 연마제인 것이다.
인생이란 모르면 생존 경쟁이지만 알고 보면 공부이다.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