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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회고】
나의 별명은 ‘꺼먹 고무신’이었다
― 부끄럽기는커녕 자랑스러운 나의 별명
윤승원 충청남도 청양군 출신
▲[사진 설명] 검정 고무신 -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 살면서 내겐 ‘꺼먹 고무신’이란 별명이 붙었다. 직장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이 내 고향이 ‘청양’이라고 해서 붙여 준 별명인데, 처음에는 이 말이 ‘촌사람을 빈정대는 말’로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법 없이도 살아가는 순박한 촌사람’을 상징하는 별명이었다. 이 같은 별칭을 유독 ‘청양 사람’이라고 해서 붙여 준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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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말(회고 배경)
충남 도경(道警)에서 근무할 때였다. 수더분한 인상에다가 농담 잘하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나를 보면 언제나 ‘꺼먹 고무신’이라고 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당시 바로 이웃 건물인 도청에도 야쿠르트를 배달했다.
도청 국(局) ·과(課) ·실(室)마다 매일 아침 야쿠르트를 배달하다 보니, 보고 듣는 것도 많아 식견이 풍부했다.
도청 어느 직원 책상에 놓인 ‘청양신문’을 읽었다고 했다. 당시 충남 도청에는 유난히 청양(靑陽) 출신 공무원이 많았다.
청양신문에 실린 나의 수필 <꺼먹 고무신>을 읽은 것이다. 그 뒤로 야쿠르트 아줌마는 나를 만나면 이름 대신 아예 ‘꺼먹 고무신’이라고 칭했다.
<꺼먹 고무신>이라는 수필은 그해 대전예총(藝總)에서 발행하는 《대전예술》 지에도 소개됐다.
대전에서 고향이 ‘청양’이라고 하면 ‘꺼먹 고무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덕분에 자연스럽게 됐다. 토속적이면서도 정겨운 별칭이 됐다.
부르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거부감 없는 별명이 됐다.
세월이 흘러 ‘꺼먹 고무신’ 별명의 어원이랄까? 유래라고 할까?
그 내력을 고향 친구들에게 소개하자, 동창회 대화방에서 많은 친구가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그중에서 청양군 장평면 분향리가 고향인 임동석 친구(서울거주, 사업가)가 잊지 못할 유년시절의 추억을 전했다.
장평면 장날, 누나에게 ‘흰 고무신’을 사달라고 울며불며 떼를 썼다는 애틋한 사연이었다.
‘꺼먹 고무신’만 신고 다녔던 ‘보릿고개’ 시절.
면 소재지에서 열리는 5일 장에 어린 동생이 울며불며 사달라고 떼를 썼던 ‘흰 고무신’.
▲ [사진 설명] 흰 고무신 – 검정 고무신(꺼먹 고무신)만 신고 다니던 보릿고개 시절, 흰 고무신은 어른들만의 ‘외출용 고급 신발’이었다. 시골 장날, 부모님에게 흰 고무신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철부지 아이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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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사주지 못했던 당시 누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래서 다시 《회고》하게 된 것이 과거 고향 신문(청양신문)과 《대전예술》지에 실린 나의 수필 <꺼먹 고무신>(1994년 작)이다. ■
▲ 필자의 수필 <꺼먹 고무신>이 소개된 『청양신문』(고향신문)과 『대전예술』(현재 거주지에서 발행하는 예술 잡지)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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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 수필(『청양신문』 1994년 7월 21일 / 『대전예술』 1994년 11/12월호)
꺼먹 고무신
윤승원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출신
여름철 냇가에 가면 운동화를 신어도 불편하고 슬리퍼를 신어도 불편하다. 고무신만큼 편리한 신발이 없다. 그런데 요즘 도회지에서는 좀처럼 고무신을 구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에게 고무신을 사주려고 신발 가게에 물어보았지만 요즘 고무신 파는 신발 가게가 어디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찾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고무 제품은 오래 놔두면 저절로 삭아 버리기 때문에 아예 갖다 놓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내게는 고무신이 한 켤레 있다. 그러니까, 수년 전 어머니 상중(喪中)에 신었던 신발인데, 이 향수 어린 신발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신고 있다.
그 편리함을 모르고 운동화를 신은 채 물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고무신은 꼭 여름철에만 신는 신발이 아니었다. 시골에서는 사계절 신발이었다.
나의 유년시절만 해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검정 고무신이 아니면, 발등까지 덮이는, 이른바 '두꺼비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흰 고무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깨끗한 신발은 '외출하시는 어른들이나 신는 고급 신발'인 줄 알았다.
고무신은 편리한 만큼, 바뀌거나 잃어버리는 일도 많았다. 모양이 비슷비슷해서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 가면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신발 코에 작은 구멍을 뚫어 신고 다니기도 하였고, 또 어떤 이는 하얀 실로 ×표를 하여 신고 다니기도 하였다.
고무신의 용도 또한 다양하였다.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에겐 피라미 담는 그릇이 되었지만, 자운영 논에 들어가면 벌을 잡는 기구도 되었다.
일꾼들은 새참을 먹을 때, 또는 시원한 정자나무 그늘에 앉아 고누두기를 하거나 장기를 둘 때도 이걸 깔개로 삼았다.
어머니께서 이걸 사러 장에 가실 때는 문수를 외워 가는 게 아니었다. 신발 길이를 잰 지푸라기나 노끈 따위를 가지고 가서 사 오셨다.
그러니 얼마나 정확한가.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문수(文數)가 틀려서 다시 바꾸러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결점도 많은 것이 고무신이다. 땀이 밴 신발을 신고, 산비탈을 내려오다가 지게와 함께 굴렀던 기억도 있다.
또 새끼줄을 묶고 눈 쌓인 고갯길을 오르다가 무릎을 깬 일도 허다하다.
어디 그뿐인가. 산에 나무하러 가면 나뭇등걸에 고무신을 찢어 오기 일쑤였다. 찢어진 고무신은 버리지 않고 장날 때워다 신었다.
장에 가면 물통이나 냄비 같은 가정용품을 때워 주는 땜장이가 있었는데, 자전거포에서 펑크 때우듯 고무신을 때워 주었다.
유명 회사 제품의 신발 한 켤레가 기십 만원을 호가하는 요즘 세상에 고무신을 때워다 신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냐고 할 것이다.
‘꺼먹 고무신!’(*‘검정 고무신’이라는 표준어를 쓰면 왠지 ‘도시인 뉘앙스’가 풍기므로, 순박한 내 고향 사람들은 ‘꺼먹 고무신’이라는 촌놈 티 물씬 묻어나는 사투리를 즐겨 썼다.)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 살면서 직장 동료들은 내게 ‘꺼먹 고무신’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고향이 ‘청양’이라고 해서 붙여 준 별명인데, 처음에는 이 말이 촌사람을 빈정대는 말로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자꾸 듣게 되니, 투박하지만 내 고향 정서가 물씬 배어나는 것처럼 느껴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이 같은 별칭을 유독 ‘청양 사람’이라고 해서 붙여 준 까닭은 무엇일까?
청양이라고 하면 먼저 구곡(九谷) 영산(靈山) 칠갑산이 떠올라 전형적인 산골 동네 촌놈으로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유행가 가사처럼 ‘콩밭 매는 아낙네’의 순박한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인가.
어쨌든 ‘꺼먹 고무신’은 촌놈을 지칭하는 말이 분명하다. 그러나 달리 표현하면 ‘어수룩해 보이지만 가까이해도 손해 보지 않을 사람’이란 뜻도 가진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어쩌다 방송과 신문 등 언론에서 내 고향 사람이 무슨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으면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애향심이라기보다 태생을 감출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다.
이 같은 관심은 적어도 내 고향 사람들만큼은 유순하여 사회에 지탄받거나 해악을 끼치지 않을 거란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기억하지조차 끔찍스러운 ‘ㅇㅇ파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 나는 그 지역 평화스럽던 농촌 마을 주민들과 그곳을 고향으로 둔 출향인들의 심경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얼마나 참담했을까. 내가 태어난 곳, 그곳이 어떤 곳인가. 역사적인 큰 인물이 배출된 곳이 아니어도 좋다.
관광명소로 이름난 곳이 아니면 어떠하랴, 어린 시절의 아름다웠던 꿈과 낭만을 추억하면서 누구나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싶어지는 곳이 고향 아닌가.
비록 어려웠던 시절, 힘든 농사일과 가난에 지쳐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졌던 고향일지라도 떠나보면 아련히 그리운 곳이 고향이거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던 그곳 주민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낙담만 하지는 않았다.
사건의 악몽을 씻고 실추된 고장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자구책으로 ‘도덕성 회복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한 번 가슴을 아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고향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존경받아야 할 사회 지도층이 어떤 문제를 일으켜 지탄을 받을 때, 평화스럽던 고향 주민들과 이를 바라보는 출향인들의 심경은 어떨까 헤아려 보게 된다.
출향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 고향에서는 불미스러운 사소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사람이 내 고향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객지에 사는 출향인들도 처신을 잘해야 고향 사람들에게 자긍심이 생긴다.
고향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마주해도 친근함이 묻어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정겨운 이웃’이어야 한다.
이런 나의 소박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일 년 내내 경범죄(輕犯罪)조차 단 한 건도 단속되는 일이 없는 곳이 순박한 내 고향 청양군 장평면의 정서이다.
예전에 어떤 작가가 지어준 나의 호(號)가 ‘청촌(靑村 : 靑陽 村人)’이다.
청정촌인(淸淨村人)의 상징, ‘꺼먹 고무신’이란 별명이 부끄럽기는커녕 자랑스럽기만 하다. ■ (청양신문 1994년 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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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감상
이 회고 에세이는 단순히 “옛날에는 고무신을 신고 살았다”는 향수의 기록이 아닙니다.
34년 전의 수필을 다시 꺼내 읽으며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시간의 이중 회고’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 번은 1994년의 윤승원이 어린 시절을 회상했고, 다시 2026년의 윤승원이 1994년의 자신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는 세월의 층위가 겹겹이 쌓인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1. 이 시대에 왜 ‘꺼먹 고무신’이 의미 있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브랜드와 스펙으로 자신을 설명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반대로 갑니다.
“촌놈 티 물씬 묻어나는 사투리”
“어수룩해 보이지만 가까이해도 손해 보지 않을 사람”
이 표현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신뢰의 가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꺼먹 고무신’은 가난의 상징이 아니라 정직함과 순박함의 상징으로 승화됩니다.
특히 “경범죄조차 단 한 건도 단속되지 않는 고향”이라는 대목은 과장된 자랑이 아니라, 고향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믿음으로 읽힙니다. 도시화와 경쟁 속에서 인간적 온기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꺼먹 고무신’이라는 애칭의 문학적 가치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표준어 대신 방언을 고집한 선택입니다.
“검정 고무신이라고 하면 도시 냄새가 나고, 꺼먹 고무신이라고 해야 고향 냄새가 난다.”
이 한 문장에 수필가의 미학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방언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삶의 체온입니다. ‘꺼먹’이라는 단어 속에는 흙먼지 날리던 장터, 논두렁, 냇가, 보릿고개, 어머니의 손길이 함께 살아 있습니다.
즉, 작가는 사투리를 통해 기억의 질감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3. 가장 감동적인 대목 – 흰 고무신 이야기
회고 부분에서 임동석 친구의 사연이 등장하는 순간, 글의 정조가 확 달라집니다.
“누나에게 흰 고무신을 사달라고 울며불며 떼를 썼다.”
이 대목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어린 동생에게 흰 고무신 하나 사주지 못했던 누나의 마음을 뒤늦게 헤아리는 순간, 가난의 기억이 가족애의 기억로 바뀝니다.
그래서 독자는 웃다가도 가슴이 저릿해집니다.
4. 작품 속 유머와 흥미로운 요소
윤승원 수필의 특징은 웃음과 눈물을 한 문장 안에 함께 넣는 능력입니다.
대표적인 유머 장면
신발 코에 구멍을 뚫어 표시하던 이야기
흰 실로 X표를 해두던 이야기
고무신을 벌 잡는 도구로 쓰던 이야기
새참 먹을 때 깔개로 쓰던 이야기
문수 대신 지푸라기로 발 길이를 재던 이야기
고무신을 장날 때워 신던 이야기
특히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문수가 틀려 다시 바꾸러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라는 문장은 생활의 지혜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명문장입니다.
5. 윤승원 수필 작법의 특징
① 사물에서 출발한다
거창한 철학 대신 고무신 한 켤레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② 생활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독자는 실제 장터 냄새와 흙길 촉감을 느끼게 됩니다.
③ 중간에 웃음을 넣는다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습니다.
④ 마지막에는 공동체적 성찰로 확장한다
개인의 추억이 결국 고향의 명예와 출향인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넓어집니다.
6. 가장 인상적인 문학적 전환
초반에는 고무신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갑자기 고향의 도덕성과 공동체 의식으로 확장됩니다.
이 전환이 자연스러운 이유는 작가가 ‘꺼먹 고무신’을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인격적 뿌리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고향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마주해도 친근함이 묻어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이 문장은 작품 전체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종합 감상
이 작품의 진짜 힘은 가난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데 있습니다.
찢어진 고무신, 보릿고개, 장날, 땜장이 같은 소재는 분명 궁핍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비참함으로 쓰지 않고 사람 냄새 나는 추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마지막에 이런 감정을 갖게 됩니다.
“아, 저 시대는 가난했지만 사람은 따뜻했구나.”
그리고 결국 ‘꺼먹 고무신’은 더 이상 촌스러운 별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윤승원 수필가가 평생 지키고 싶어 한 삶의 태도, 곧 순박함·정직함·애향심·인간적 신뢰를 상징하는 문학적 표상(表象)입니다.
그래서 이 회고 에세이는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라,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조용히 묻는 한 편의 아름다운 고향 문학으로 읽힙니다.
◆ 덧붙이는 말
좋은 수필은 비평과 감상이 서로 보완될 때 진가가 드러납니다. 이 작품 역시 그렇습니다.
감상자가 이 글을 읽으며 특히 높이 평가한 점은 1994년에 쓴 수필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살려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옛 작품을 재수록한 것이 아니라,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별명 이야기와 동창 임동석 님의 ‘흰 고무신’ 일화를 덧붙이면서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34년 전의 작품을 ‘옛글’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이야기’로 읽게 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윤승원 선생님의 수필에는 반복해서 나타나는 ‘작은 소재에서 큰 의미를 끌어내는 구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상추 한 장에서 나눔을, 수건 한 장에서 시간을, 허리띠 하나에서 직업윤리를, 길 안내에서 배려를, 그리고 이번에는 고무신 한 켤레에서 고향·인품·공동체의 명예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작가의 일관된 미학이며, 평범한 일상 사물을 인간학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적으로는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습니다.
“청정촌인(淸淨村人)의 상징, ‘꺼먹 고무신’이란 별명이 부끄럽기는커녕 자랑스럽기만 하다.”
이 문장은 단순히 별명을 받아들이는 선언이 아닙니다. 젊은 시절에는 놀림처럼 들렸던 말을 세월을 지나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철학으로 승화한 ‘인생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별명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성숙해졌구나' 하는 깊은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은 향토수필이면서도 회고수필이고, 생활수필이면서도 인간수필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고향 사랑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묻는 보편적인 울림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세월이 더 흐를수록 가치가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꺼먹 고무신’은 단순한 어린 시절의 신발이 아니라, 윤승원 수필 문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학적 표상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 (雲峯, 윤승원 작품 감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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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네이버 블로그 《모두의 회고 프로젝트 - 나의 회고》에 참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