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
- 수필가 주현중 -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아직 꽃소식이 없다. 어느덧 춘분春分도 지났건만 들과 산에는 여적 푸름의 기미조차도 보이질 않는다. 혼자만의 기후일까! 작년 이맘 땐 도로변의 가로수에서 꽃망울이 돋았던 것 같은데 웬 일인지 겨울인 듯 봄인 듯 감각을 무디게 한다. 대문 밖과 안의 기온이 달랐는지 봄꽃을 기다리는 내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손바닥만한 콘크리트마당의 라인을 따라 처마 밑에 외롭게 덩그러니 놓여진 화분엔 산골마을에서 캐어다 심은 산나물이 넓은 산야에서 피던 자신의 처지가 무료했던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이라도 건넬 참인지 아기손바닥만한 얼굴을 뾰족이 내민다.
☞ 사진출처 : 야후 뉴스
산이라고 할 것 까진 없지만, 내가 사는 곳 서울 강북구 미아4동 골목길에 나가면 먼 듯, 가까운 듯 아스라이 보이는 ‘드림랜드’, 무지갯빛 꽃망울은 피우지 않았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면 어깨는 축축 늘어지고 두 눈꺼풀엔 돌이라도 매달린 듯 천근만근이다.
주말마다 겨울의 흔적들을 지우려고 큰맘 먹고 팔을 걷어붙이지만 고작 서 너 가지 지우고는 너부러지기를 몇 차례! ‘오늘은 다 지워야지.’중얼거리며 소매를 걷어붙인다. 겨우내 입었던 정장, 투박한 잠바, 목도리, 등등 겨울입성入城들을 정리하고 나니 허리가 쇠사슬에 조여드는 듯이 불편하다. 등 굽은 촌로처럼 허리를 툭툭 치면 나도 모르게 ‘휴!’일성이 터져 나온다.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고 하늘 한 번 올려보곤 이내 돌아서서 겨우 내내 덮었던 이불 빨래를 해야겠다며 서둘렀으나, 세탁기엔 들어가지도 않는다. 들어간다고 해도 세탁기에 돌리면 냄새는 제거 되지만 사면 귀서리마다 절어 붙은 거무죽죽한 얼룩은 ‘락스’를 풀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안 되겠다 싶어 세탁기에 집어넣었던 이불을 도로 꺼내어 커다란 플라스틱 다라에 물을 받고 하이타이를 풀고 ‘락스’를 푼 다음 한두 시간 족히 이불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서재, 침실, 주방 겸 거실을 차례대로 돌아가며 털고 쓸고 닦고 이불장, 옷장, 도서열람꽂이=(중형 책꽂이), 기타 전자기기 등을 위치 변경한 후 방향제까지 뿌리고 나니 두 눈에선 별이 보이다 못해 눈앞에서 뱅뱅 돈다.
☞ 사진출처 : 야후 뉴스
담배 한 개비피를 더 피워 물고 욕실로 들어가서 플라스틱 다라에 담가 둔 이불을 보니 제법 불려 이불의 부피가 작은 산처럼 솟았다. 군대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반바지로 가라 입고 불려 진 이불을 지근지근 밟고 있자니 불현듯 어릴 적 시절이 떠올랐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에서 중학시절을 보냈는데, 그 해가 1980년 초기였다. 당시만 해도 현대식 주택은 ‘가뭄에 콩 나듯이’보였고, 다수의 집들이 돌담장, 흙벽, 스레트나 함석지붕이 대부분이었다. 기와로 지붕을 이은 집은 좀 산다는 집들이었고, 대부분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 고작 지붕개량을 하였을 뿐이었다.
당시 중학시절을 보내며 살던 집도 사방이 흙벽이었다. 시멘트벽은 페인트칠만 하면 되었지만, 흙벽으로 된 집은 봄단장 한다는 게 그리 간단치 않는 일이다. 보통 산에서 채취하는 ‘황토흙’에다 볏짚을 어린아이 중지中止만 하게 작두에다 썰어서 물을 붙고 골고루 섞어야 하는데 모래에 시멘트 섞듯이 수월하다면 좋으련만 볏짚을 섞은 ‘황토흙’은 너무 차진 나머지 삽으로는 골고루 섞이질 않는다. 세척제에 불려 진 이불 빨래를 하듯 바짓가랑이를 동동 걷어붙이고 족히 3~40분 정도는 지근지근 밟아 주어야 되는 일이다.
☞ 사진출처 : 야후 뉴스
어릴 적 ‘황토흙’ 밟듯이 30여분 동안 지근지근 밟은 이불을 내려다보니 코 흘리게 적 비누거품 놀이하던 생각이 불쑥 나기도 하였다. 이러저러한 어린 시절, 군대시절을 떠올리며 이불 빨래를 마무리하고 서녘하늘을 바라보니 어느덧 태양은 산 고개를 넘었는지, 빌딩숲에 숨어버렸는지 사위는 어둑어둑해지고 뱃가죽은 등짝에 바짝 붙은 듯 허기짐이 몰려 현기증이 일었다.
학창시절부터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느끼는 것이 있다. ‘가사노동’이 음식 만드는 일이 전부는 아니다. 내가 봄맞이 준비를 하듯, 끝도 없이 날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실직을 하거나, 취학준비를 하거나, 아니면 밤낮으로 가족을 위해 ‘가사노동’으로 봉사하는 여인 대신 1년에 단 일주일이라도‘가사노동’을 경험해 본 남자라면 여인의 ‘블랙커피 사랑’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며, ‘가사노동’이 여인의 의무사항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절대적인 봉사정신인 것을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
☞ 사진출처 : 야후 뉴스
☞ 사진출처 : 야후 뉴스
시대가 많이 달라졌음에도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각가지 형태의 가족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면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다. 가족의 윤택한 생활을 위해 돈 벌어 준다는 유세를 앞세워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내 뱉는 남자들의 말,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집구석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뭐했어?”이다. 물론, 각박하고 살벌한 돈벌이 시장에서 겪는 남자들의 피곤함을 왜 모르겠는가? 나도 불알 달린 남자이다. 같은 남자로서 이와 같은 말을 하면 동성으로서의 이질감이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남자들만 돈벌이를 하는가 말이다.
현시대를 가리켜 ‘남녀평등사회’라고 하질 않은가? 놀고먹어도 하루 세 끼니 굶지 않을 부유층들이야 파출부나 가정부를 두면 그만이겠지만 다수의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많은 가정들은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물론, 가세가 어려워 ‘맞벌이’를 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고, 각자 자기만의 여가의 생활을 하기 위해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 쓰겠다는 현실적이며 현명한 현상이다.
아직까지도 남성은 남성이고, 여성은 여성이라는 사고가 깊게 박혀 있는 듯하다. 더러는 남녀가 동등하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는 위계位階가 무너진다는 원시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남녀평등사회’가 위계位階를 짓밟는 것은 아니질 않겠는가? “네가 할 일 따로 있고, 내가 할 일 따로 있어!”라고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하려 든다면 그 누가 그대를 보고 ‘21세기형 신지식문화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물음을 그대 스스로 돌아보고 답을 찾기를 바래본다.
첫댓글 ㅎㅎ 가사노동 해 보지 않은 남성들은 그게 얼마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인지 모를거에요. 죽송시인님은 잘 아시죠? 저는 남편과 모든 일을 함께 해요.남편도 남자 일, 여자 일 구분 짓지 않지요.
그래야지요. 여자 없다고 밥 한 끼 해 먹을 줄 모르는 남성들은 밥 먹을 자격 없습니다. 결혼이란 동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업자의 입장에서 한쪽의 희생만 바란다면 파산에 이르게 되겠지요. 앞치마 두른다고 채면 깍이는 일이 아닐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