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淸白吏)와 염근리(廉勤吏)ㆍ염직리(廉職吏)
【청선고(淸選考)ㆍ대동장고(大東掌攷)ㆍ전고대방(典故大方)ㆍ朝鮮王朝實錄】
청렴결백(淸廉潔白)한 관리(官吏)
대통령을 괴물 만드는 유명무실 인사청문회의 파행(跛行)을 보며 정리해본다.
廉職吏와 淸白吏는 "청렴결백한 관리로 녹선(錄選)된 인물"이다.
"청렴ㆍ근검(勤儉)ㆍ도덕(道德)ㆍ경효(敬孝)ㆍ인의(仁義)" 등의 덕목(德目)과
"관직 수행능력"을 겸비한 이상적 관료(官僚)상이었다.
▲ ㆍ官吏 : 관리자(官)와 실무자(吏)
ㆍ錄選 : 추천을 받아 뽑음.
ㆍ염직리는 살아서 뽑힌 사람이고, 청백리는 사후(死後)에 추서된 사람이다.
그런데도 대다수가 청백리와 달리 염근리, 염직리는 금시초문(今時初聞)이라 한다
ㆍ이름과 달리 실무자(吏)보다 관리직 고관대작(高官大爵) 官들이 많이 선정되었다.
ㆍ대한민국 정부까지도 염근리, 염직리도 "무조건 청백리"라 한다.
그 대응어(對應語)는 아주 많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예기(禮記) 단궁기(檀弓記)】
가혹한 법이나 세금 징수(苛斂誅求)는 사나운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Tyranny is more fierce than the tiger.)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다는 가렴주구(苛斂誅求), 간서활리(姦胥猾吏), 묵리(墨吏),
장리(贓吏), 탐관오리(貪官汚吏), 탐리활서(貪吏猾胥), 호익리(虎翼吏) 등.
▲ 가렴주구(苛斂誅求)
-苛斂【구당서(舊唐書) 목종기(穆宗紀)】: 세원(稅源)불구 시도 때도 없이 징수하는 세금.
-誅求【춘추좌씨전(左傳) 양공(襄公)三十一年】: 정당한 법적 근거 없는 징구(徵求).
그 녹선(錄選)은 의정부(議政府)에서 임금의 재가(裁可)를 받아 하였다.
추천은 의정부ㆍ육조(六曹)의 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 수장(首長)이 하였다 한다.
조선후기에는 비변사(備邊司)에서 담당하였다.
그 시작은 한(漢)나라 때(168년)부터
한(漢)은 몇몇 천자(天子)끼리 용호상박(龍虎相搏)한 춘추(春秋)시대와
춘추시대에 자멸(自滅)한 天子가 되기 위해 제후(諸侯)ㆍ대부(大夫)들이
군웅할거(群雄割據)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끝내고
수립된 명실상부한 중원(中原)의 일통(一統)국가였다.
따라서 국가체제와 기강을 확립하고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 염리를 선발하여
표창(表彰)하고ㆍ곡식과 비단으로 보상(襃賞)하였음은 이해가 된다.
청렴결백한 선비에게는 벼슬을 내렸다고도 한다.
요즘 용어로 특별채용이다.
𦩻鮮(조선)과 高麗(고려ㆍ고리)
조선왕조(王朝)에도 217명 또는 186의 염직리와 청백리가 있었다 한다.
태조 때 안성(安星) 등 5인을 청백리로 뽑은 이래
태종 때 8인, 세종 때 15, 세조 때 8, 성종 때 20, 중종 때 34, 명종 때 45,
선조 - 26, 인조 - 13, 숙종 - 22, 경종 - 6, 영조 때 9, 정조 - 2, 순조 - 4인 등
모두 217인을 청백리 혹은 염근리로 선발하였다 한다.
자료에 따라 청백리와 염근리 분간이 분명치 않은 것도 있고, 명단이 다르기도 하다
비교적 정리가 잘된 조선의 동ㆍ서 양반의 주요 관직 및 선생안(先生案)을 선집한
인명록『청선고(淸選考)』에는 186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 先生案 : 전직자 인적사항 기록
高麗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문명국이었음에도 그 공식기록은 안 보인다.
최석(崔奭)·윤해(尹諧)·최영(崔瑩) 등 청렴하고 절개 있는 사람들을 뽑아
벼슬을 주었다는 비공식 기록이 전해질 뿐이다.
ㆍ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가장 많은 문헌(文獻)을 출간(出刊)하였다.
당시 성균관(成均館) 장서(藏書)가 수 만권(萬卷)이었다 한다.
얼마나 많은 서적(書籍) 수요가 있었던가를 추정(推定)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에 남은 건 극소수일 뿐이다.
ㆍ청자(靑瓷)가 반증(反證)인 끽다(喫茶)왕국이었다.
끽다왕국은 뒤늦게 차(茶) 문화가 발달한 왜(倭)가 고리를 부른 이름이다.
ㆍ꼬레(Corée : 프랑스)로 통했던 무역 강국이었다.
ㆍ무역선(貿易船), 유람선(遊覽船) 선박(船舶) 수출이 가장 많았다.
송(宋)에서도 무역선, 순시선(巡視船) 등 대형선박은 고려에 주문 생산하였다. 등
염직리와 청백리 공식기록도 없고, 그 많은 귀중한 문헌(文獻)이 불태워진 것은
조선의 "고려 역사지우기 삼인방(三仁幇)" 때문이었다.
▲ 고려 역사지우기 삼인방 : 정도전(鄭道傳)ㆍ태종(太宗)ㆍ세종(世宗).
그들은 우리민족 최고의 문명국가 고려를 형편없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고려사(高麗史)를 왜곡하고,
고려에 유리한 문헌과 문물을 모두 분서(焚書) 파기(破棄)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도 신라 중심이 아니고 고려중심이었으면
손보는데 그치지 않고 아주 없애버리고도 남았을 위인들이라 하지 않는가.
대한민국(大𩏑民國)
1981년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과 청렴, 정직한 공직자상을 권장하기 위해
청백리제도를 도입하였다.
대상은 공무원, 국영기업체, 정부투자기관 등 공직자이다.
현직자, 퇴직자, 직급에 관계없다.
다만, "사후(死後)에 추서하는 청백리란 용어 사용은 사려(思慮)부족" 아닌가한다.
첫댓글 <차제에 역사용어를 바르게 인식했으면>
-염직리(廉職吏) : 살아서 청렴결백한 관리로 뽑힌 사람.
-청백리(淸白吏) : 사후(死後)에 추서된 사람.
지금도 친일 매국노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역사교과서 왜곡이 대물림 중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알리기는 빠를수록 좋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과연 우리나라에 청백리가 있을까요?
없다면 우리 백성이 너무 슬프니 아마 어디 있을 것입니다.
눈을 씻고라도 찾아 보아야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오늘날에도 염직리는 아주 많습니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때 이름이 명예로운 꼴찌 판사! 꼴찌검사!
퇴직후에는 유명 로펌에서 수억대를 제시한 변호사 초빙을 마다하고
자기집 앞 골목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수임료가 없는 사람들 돕는 대법관!
이정부 인수시에 국무총리 물망에 오른 세분이 그분들이지만 언론에 몇차례 오르내리고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구요? 그분들 핵심에 모셔놓으면 구린짓을 할 수 없기때문이지요.
사실 우리가 모르는 염직리(廉職吏)가 많지만 그분들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뿐 떠오르지 않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불량하고 쓰레기같은 자들이 큰소리치고 설레발치는 통에
아예 가까이 하지 않고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부정한 짓을 하지 않기 까닭에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밀려나버리지요.
정부 요직에 올곧고 정직한 분들은 올라갈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이나라 입니다.
가슴아픈일입니다.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
돼지(이성계)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이는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