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젠가 바둑TV 스페셜로 보았던 페어바둑 이젠 자주 접하고 있다.
작년 한국리그 포스트시즌에 도입되어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이번 2005 농협 한국리그에서는 시범경기를 통해 즐거운 바둑을 즐기며
각팀선수들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양박으로 불리는 박영훈 박정상의 신성건설팀을 최철한 안조영의 보해팀이 꺾은 건 조금 의외였다. 그런 보해팀을 유창혁 원성진의 파크랜드가 이겼고 결승에서는 조한승 이영구의 넷마블팀까지 이기며 파크랜드는 시범경기 우승을 차지했다.
보해팀이 준결승에서 안조영이 빠지고 4장 진동규가 최철한과 팀을 이룬 것은 의외였었다. 시범경기니까 다양한 선수들을 소개하겠다는 전략 ? 그렇다면 결승은 최철한 루이팀이 나오는 걸까, 기대하기도 했었다.
보해팀 안조영이 팀 출전 선수를 결정했다고 하는데, 과연 4장 진동규가 통할 수 있을까, 상대는 강적 유창혁 원성진 조가 아닌가. 혹시나 8강전에서 안조영 본인이 최철한과 팀웍을 이루는데 힘겨움은 없었을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진동규는 잘 두어주었다.
최종국면까지 잘 두어나가 승리를 목전에 두던 보해는 결국 최종끝내기 국면에서 묘수를 터트린 유창혁으로 인해 패배를 안아야만 했었다. 그런데, 마음을 졸이게한 부분이 있었으니, 1장 최철한과 4장 진동규는 서로 번트작전을 남발한다 싶을 정도로 시간연장책을 자주 사용했다는 것.
1장이 4장에게 수를 양보한다 ? 이런 국면에서 진정 번트작전이었을까, 아님 자신이 두고픈 수가 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시간연장책을 쓴 것일까, 이점이 매우 어려웠었다. 같은 팀의 눈만 마주쳐도 반칙으로 지적받을 수 있는 이런 페어바둑의 어려움이 실감났다.
대학시절 재미로 페어바둑을 둬봤었고, 또 인터넷 카페바둑대회에서 경험을 해봤었다. 강자보다는 하수의 실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했었다는 경험. 그래서 오랄을 금지할 수밖에 없는 룰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웬지 어떤 답답함이랄까 아쉬움이 없지 않다. 오랄이 적당히 있었으면 어떤 대국이 될까 궁금해졌다.
사실 기원에서의 페어바둑은 완전한 오랄금지원칙은 지켜지기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오랄을 애용하는 기원에서는 오랄 없는 바둑은 수담의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맹신이 어느 정도는 적용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적당한 오랄은 음식의 양념격으로 이해를 해주는 측면이 있었고, 그래서 더 재밌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내 대학시절 그리고 사회시절의 기원은, 오랄이 맹렬한 기원이었다. 상대 약올리기, 딴청 피우기 등은 약과였고 즐거울 때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이니, 바둑의 재미를 위해 오랄을 했던가, 오랄의 재미를 찾기 위해 기원을 왔던가 ? ^^
그래서 생각건대, 팀원경기이기에 비슷한 실력의 팀들이 대결을 한다면 오랄을 허용할 순 없을까 ? 그렇다면 더 재밌는 광경들을 연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다시 한번 더 생각건대, 양팀이 허락한다면 오랄을 허용하는 대국이 더 즐거울 수 있고 편안할 수 있겠다 싶어진다.
대국 중에 그런 장면이 있었다. 유창혁이 강수를 터트리며 상대 대마를 몰살시키겠다는 각오를 드러낼 때 팀원 원성진의 눈을 쳐다보았다. 프로이기에 그 국면의 그수가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 수 있었겠지만, 그 눈짓은 하나의 오랄성일 수도 있었으리.
이런 장면에서 반칙을 판정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그 판단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차하는 순간 반칙패를 선언당하면, 너무 황당하고 허무하지 않을까 ? 그렇기에 적당한 오랄성이 인정된다면 어떠할지. 대국팀원들이 경기 전에 그 올랄 수준을 결정하면 어떠할지.
나는 대국을 보면서, 가상의 게임을 상상하고 있었다. 과거 대학시절의 페어바둑을 경험삼아. 여기 대충의 사례를 적어보고 그 경기의 재미와 가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적당한 아마추어들의 경기. (팀원은 가나팀과 다라팀)
가 (강한 눈팅 날리며) '얌마, 그게 뭔 수여 ? 패착 둬버렸냐 ? '
나: (엥 실수였나, 머리 긁적 긁적) ' 내 실력이 그렇지 뭐. 잘 마무리 해봐여'
가: (으미 속탄거.) '라가 잘 둬버리면 이 바둑 끝장이랑께. ' (그러면서도 눈치 채일까봐 심호흡 하면서 자신만만의 표정 연출한다.)
라: (심사숙고하면서) ' 흠, 기회는 기회 같은디, 결단을 내길까 말까 ' '앗, 가가 자신만만한 눈치이네. 아무래도 결단은 성급하겠지.'
라는 결국 강수를 터트리지 못하고 대충 받아줬다.
다: (눈이 튀어나올 듯 노려보면서) " 야이 바보야. 끊어버렸어야지. 그걸 왜 봐줘 ?"
라: (당황, 미안 ) "처음엔 그러려고 했는데, 가가 자신만만해 하던데.
다: "어이구 눈치 없는 놈아, 처음에 얼마나 당황해했는지 못봤어 ?
리: 수읽기 하느라고 못봤어여. 결단을 내릴까 망설일때는 그냥 자신만만해 하던데.
다: 아이구 미치겠다. 너가 그러고도 아마 3단이라고 공공 ?
가: 키키키... 뭐 하수들이 그렇지 뭐. 크크크....
나: 헤구...다행이다. 그런데 왜 다형은 코치 안해줬어요.
다: 너무 황당해서 잠시 좀 검토했지. 말을 안해도 그런 수도 못보나 ?
라: 미안해 형. 앞으론 두기전에 형 눈치 꼭 보고 둘께용. 용서해줘용....
두 번째 케이스론 연인들이 팀을 이룬 경우를 상상해보자. 나와 라가 여자하수라 가정.
나: 어머머, 자기야 자기야...우리팀 너무 잘 두고 있다 그지 ??
가: 험험... 뭐 우리야 궁합이 죽이잖아.
라: 웃기셔들 정말. 언제는 침대 테크닉 없다고 말들도 많더만.
다: 그려 그려, 궁합이야 우리가 환상이지 뭐. 쟤들은 조루파잖여. 장기전에 약해요.
라: 크크... 그치 그치 ? 뭐 선작 50가자 필패라는 말이 왜 있겠어. 먼저 뜨거워진 냄비 먼저 식는 말도 있더만. 우리팀 파이팅~~
다: 고롬 고럼... 희진이 말 죽인다야.
라: 그런데 우리팀 어디에 집 짓지 ?
다: 뭐 죽인 돌 아깝잖아. 시비 걸어서 고기값 받아내야지.
나: 웃기셔들. 바둑이 안되니까 말로 해보시겠다 ? 우리가 그렇게 말랑말랑해보이남 ?
가: 냅둬라. 바둑 지고 억울해서 침대에서 무슨 쌈 벌일지 상상이나 하자구.
라: 웃겨 정말, 반칙해서 3집 공제하고 순번 어겨 겨우 수상전 이겼다고 기고만장하시네요 ?
다: 재들 이제 한번밖에 기회가 없지 ? 그럼 우리도 또 싸움을 거는 거야. 그러면 재들은 반칙할 기회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니 ? 반칙3번이면 반칙패인데...
라: 캬캬... 좋은 작전이다 자기야. 마구마구 강수를 둬버리는 거야.
나가 수읽기를 하고 있는데, 가가 나의 허벅지를 자극해왔다. 와우...수읽기도 안되는데, 왜 야릇하게 해서 정신집중을 방해하는 거야 ?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네. 거참, 그건 패스사인이잖어. 번트자리가 어디지.. ?
한참 후, 다라팀은 마구마구 강수를 연발하며 도전했고, 우세한 가나팀은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지만 다라팀은 위기를 극복하고 대마에 한가닥 희망을 안았다. 대마 수상전이 걸리고 승부패가 발생했는데, 허 이거참 가나팀은 이제 패감이 없네... 미티....미티...
중요한 것은, 페어의 묘미는 적당한 오랄일 수도 있다는 것.
어느 정도, 어느 선상까지 오랄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그 묘미와 재미가 좌우되지 않을까 ?
가장 심한 경우는 이런 경우도 있겠다. 특히 팀원의 실력이 비슷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는 케이스.
즉, 모든 오랄을 허용한다. 귀속말, 직접 말, 눈짓, 몸짓 등. 심지어 순번까지도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한 사람의 실력이 미세하게나마 낫다고 판단되면 한사람이 계속 둬나갈 수도 있는 것.
하나, 한 명이 모든 수읽기를 하고 가장 좋은 수들을 둘 수 있을까.
이럴 때 같은 팀 하수의 귀속말은 그야말로 좋은 코치일 수도 있는 것.
물론 상대가 먼저 눈치 채면.... ?
첫댓글 굉장히 참신하고 신선한 아이디어인것 같습니다. 정식대국보다는 이벤트성 대국에서 한번 시도해 볼만한 의견이네요. 대국을 두시는 분도. 관전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재미있게 즐기실수 있을것 같은데요. 산책시간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전 사실, 5명 정도의 팀대결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언제 기회되면 글 드릴게요. 97년 한국기원에 건의했고, 바둑TV스페셜에도 시도를 했습니다만, 진정 최강의 바둑을 보고픈 마음으로 특이한 팀대결 글...다음에 드리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