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7. 주일예배설교
로마서 12장 3절
착각에서 벗어나는 믿음을 권함
■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것을 사실과는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착각에 빠진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안타깝지만,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특히 상대가 나보다 힘센 경우라면, 더욱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합니다. 대들다가는 후환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런 착각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착각의 당사자가 나라면 보통 심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닫기가 쉽지 않으니, 누군가의 훈계가 들이닥치지 않으면, 자기 착각의 늪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신앙의 문제에 있어 착각의 상태에 빠지면, 그 어떤 경우들보다 더욱 곤란해지고 난감해집니다. 신앙을 무시하는 신념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념이 신앙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신념은 신앙을 휘두르고 난동을 부리는 폭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런 착각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매우 험악합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신앙이 아닌 착각에 빠진 한 경우를 봅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무엇보다, 우리 신앙의 핵심을 짚는 매우 중요한 본질입니다. 그렇기에 이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 본질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면, 우리의 신앙은 신념에 휘둘리는 일도, 착각에 빠지는 일도 없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본문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로마서의 필자는 바울입니다. 그는 본문의 말씀을 자신이 받은 은혜에 힘입어 전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전하는 대상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포함해 로마서를 읽는 모든 독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점에서 정리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야 다음 독해 스텝으로 넘어가기가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은혜를 받았다고 은혜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은혜를 받았다고 아무에게나 말씀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착각으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의 “너희”는 바울에게 특별히 맡기신 대상을 일컫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를 개척한 사명자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를 집필하라는 지시에 따라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자신에게 맡기신 자들을 대상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결코 막무가내로 전하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자로서, 자신에게 맡기신 성도들만을 대상으로, 이 말씀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결코 하나님이 정하신 도리를 넘지 않은 태도였습니다. 자신의 입장과 정해진 범위 안에서 취한 태도였습니다. 착각에 빠진 신념에 의한 행동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바른 태도의 바울은 구체적인 권면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권면을 내놓기 전에 자신의 성도들에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주지시킵니다. ‘여러분은 순전히 은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바울이 고백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라는 신앙고백에 함께 담겨있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은혜에 힘입어 사는 존재이듯, 성도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주지시킨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분과 저도 함께 포함됩니다. ‘여러분은 순전히 은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 이렇게 우리가 전적으로 은혜를 힘입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난 후, 매우 중요한 권면을 내놓습니다. 본문인 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두 가지 권면입니다. 하나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입니다. 또 하나는,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권면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입니다. 이 권면은 “그 이상의 생각”이 핵심어입니다. “그 이상의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생각에는 정해진 한계라는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정해진 한계 그 이상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 정해진 한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자신이 엄청난 파워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에 대해, 제동을 건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핑계로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러한 태도는 은혜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선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은혜를 받은 이후, 이것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힘으로 은혜를 갖게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남발하게 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고”는 마구잡이로 행동합니다.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제동을 건 것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
은혜는 영원히 선물입니다. 물론 내게 주신 것은 맞습니다. 그렇지만 은혜는 영원히 선물입니다. 내게 주신 것이지만, 내 소유물로 여겨서는 안 되는 선물입니다. 내가 쓰는 것이지만, 함부로 쓰면 안 되는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마땅히 생각할 생각 안에서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 생각은 ‘거룩’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모두 거룩의 용도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이 용도를 벗어나는 것은 모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 또는 받는 선물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몸과 마음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재물입니다. 그리고 가족을 포함해 모든 관계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도 포함하는 모든 관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거룩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마땅히 생각할 그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권면은,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입니다. 이 두 번째 권면은 독립된 권면이지만, 앞의 권면과 이어지는 권면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해야 하는 생각을 권면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해야 하는 ‘그 생각’은 무엇일까요? 우선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의 “지혜롭게”는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이 의미가 내 믿음의 분량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큰 믿음을 생각하느냐가 아닙니다. 강조하건대, 나에 의해 조절 가능하고 조정 가능한 내 믿음의 분량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생각은, 내 믿음의 크기로 하는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으로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내 믿음의 주체는 나인 듯하지만, 내가 아닙니다. 믿음의 분량을 정하는 주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닙니다.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 또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을 해석하는 태도가 저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믿음을 적게 받은 것 같다’, 혹은 ‘나는 저 사람보다 믿음을 크게 받은 것 같다’는 등의 개인적 판단이 가져올 수 있는 오해나 문제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판단이 오해이거나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판단은 ‘내가 하나님께 뭔가 좋은 것을 해드리고 있기에, 저 사람보다 큰 믿음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로, ‘내가 하나님께 뭔가 좋은 것을 해드리지 못하고 있기에, 저 사람보다 작은 믿음을 받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런 식의 판단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판단입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은혜와 믿음을 전적으로 공적 또는 공로에 기대어 판단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한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니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은혜와 믿음을 선물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께 뭔가 좋은 것을 해드리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가져다주십니다. 몸과 마음과 생각, 그리고 시간과 재물, 그리고 가족과 이웃과 자연을 포함한 모든 관계를 기본으로 온갖 좋은 것을 가져다주지 않으십니까?
그렇습니다. 내 수고, 내 공적이 좋은 것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가져다주실 뿐입니다.
이에 우리가 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주목할 때에야,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고 계신 일에 주목할 때에야, 우리는 자신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주목한다면, 우리는 결코 자신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이 아닌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하고 있는 일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결코 자신을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서 날아가 버리기 시작합니다. 봐주시느라 어느 정도 머물러 계시기는 하겠으나, 결코 오래 머무르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은혜가 떠나버린 사람들은 악을 쓰고, 술수를 부리는 것입니다. 여전히 은혜가 머물어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고 있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거룩한 긴장감을 놓치지 마십시오. 혹시 내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확인하십시오.
하나님께 뭔가 좋은 것을 해드리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늘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주목하지 않고 나를 주목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목하지 않고, 내가 주님을 위해 하는 일에 주목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늘 확인해야 합니다. 이는 착각을 방어하는 영적 민감성입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착각에서 온 신념은 무서운 불신앙입니다. 신앙을 망치는 주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착각과 신념의 제거를 위한 영적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은혜 가운데 살고 있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이 귀한 은혜를 어느 한순간도 놓치지 마시기를 권합니다. 무엇보다도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결코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매 순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