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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수필 세상
 
 
 
 
 
카페 게시글
수필1 우연히 엿 본 다산의 가계(家系)
청석 임병식 추천 0 조회 119 24.09.01 05:5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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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9.01 06:41

    첫댓글 참으로 좀체 보기 좋은 글입니다. 모처럼 다산 선생의 내면을 發闡하였으니 그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
    미녀를 봐도 호통을 치고 금욕생활이 체질화 된 사람이 살뜰한 잔정에는 어쩔 수 없으니 사람의 本性이지 싶습니다.
    낙수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水滴穿石이 생각남니다. 그 아까운 인재가 화양연화는 정조와의 잠깐 이었으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글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서 누군가에게 기억이 된다는 금과옥조는 두고두고 새겨야 하겠습니다.
    좋은 글 참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 24.09.01 07:39

    새삼스럽게 다산선생의 가계를 들어다보면서 겪었을 고뇌와 고충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기인사로는 선생만큼 불우한 분도 없을듯 합니다. 어려서는 어머니를 여의고 뒤늦게 출사한
    벼슬길은 길지 않았습니다.
    정조임금이 승하하자 천주교도로 몰려 귀양살이 18년을 보내고, 돌아와서 2년후에 부인마져도
    떠나보냈지요.
    자식은 9남매 6남 3녀를 낳아 세명만을 거두고, 며느리도 앞세워 보냈지요.
    가계는 피폐하여 입에 풀칠하기 여려웠습니다.
    그런 저런 것을 떠올리며 한편의 글을 써보았습니다.

  • 24.09.01 15:29

    오랜 귀양살이로 지치고 외로운 남정네의 뒷바라지를 해준 여인과의 인연은 인지상정이지 싶습니다 당시 사대부가 첩을 두는 건 흉이 되지 않았지요 시앗을 용납하지 않은 본처의 처사 또한 나무랄 일이 아니고 보니 세상사가 무심하기만 하네요 첩실이 과수댁이었다지만 본디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추측되는군요 다산의 세세한 일면이 흥미롭습니다

  • 작성자 24.09.02 05:39

    기록에 보면 부인 홍씨는 선생이 해배되어 집에 돌아온 2년 후에 사망했는데, 그때 내치지 않고
    곁에서 살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은 집에 돌아온 후로도 18년을 더 살았는데 홀아비로 16년을 사는 동안 얼마나 불편했을까를
    생각하면 부인이 첩실을 내친 것이 아쉽게 생각됩니다.
    그후로 기록이 없으니 해어진 것이 분명한데 그 첩실 또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 24.09.02 20:47

    무책임한 사대부의 일면이 씁쓸하게 다가오네요 가정사정이야 잘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을 터인데 문전박대하여 쫓아버렸다니 참담하네요
    본처가 반대했더라도 남자 결정에 달린 문제였다는 관점에서 짚어보면 다산의 우유부단 내지는 무책임함이 못내 아쉽군요

  • 작성자 24.09.03 05:34

    소실이 구박받고 내려와 강진에서 산 이후, 다시 만나거나 합가를 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떠나올때 이미 마음을 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도 매몰차게 내쫒은 부인보다는 우유부단하게 행동한 다산의 태도가 아쉬움을 많이 줍니다.
    떠나가는 발길을 그저 지켜만 보다니요.
    그점은 좋게 봐주기가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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