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만리장성<萬里長城/Great Wall>
중국이 북방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에 대비하여 벽돌 벽으로 쌓아 올린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중국이 북쪽 국경을 요새화하기 위해 세워진 축조물이다.
중국 한족(漢族)이 경계하던 북쪽 변방족은 몽골(蒙古), 거란(契丹), 여진(女眞), 말갈(靺鞨), 위구르(维吾尔) 등 대 초원에 거주하던 부족들이었고, 그 밖에도 동쪽, 서쪽, 남쪽의 소수민족을 합치면 55개 소수민족이 거주하는데 중국 한족(漢族)은 이들 이민족(異民族)을 모두 야만인(野蠻人)으로 치부했다.
동이(東夷/동쪽 오랑캐), 서융(西戎/서쪽 오랑캐), 남만(南蠻/남쪽 오랑캐), 북적(北狄/북쪽 오랑캐)라 불렀는데 모두 오랑캐, 즉 미개민족이라는 의미이다. 현재 중국의 민족을 구성을 보면 한족이 92%, 55개 소수민족이 8%라고 한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草芥)로구나~ ’ *초개(草芥)-지푸라기
우리도 중국 북방민족(몽골, 여진)을 오랑캐로 불렀으니 재미있다. 중국 한족은 당연히 우리 조선족도 오랑캐였을텐데... ㅎ
만리장성의 건설은 기원전 8세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부터 시작되어 명(明)나라 시기인 1368년에서 1644년 사이에 대부분 완공되었다고 하며, 총연장 길이는 6,300km 정도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500m를 1리(里)라고 한다니 리(里)로 따지면 장장 1만 2천 6백 리로, 사실 1만 리가 넘는 길이(長)이다.
우리나라는 400m를 1리(里 )라 하니 1만 6천 리의 길이(長)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만리장성이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냥 장성(長城)이라 부르고 영어로는 ‘그레이트 월(Great Wall)’이라고 한다니 ‘위대한 담(울타리)’ 정도로 해석될까?
만리장성의 시작은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으로 불리던, 동북쪽 요령성(遼寧省)과 허베이성(河北省)의 경계지역에 있는 국경 관문인 산하이관(山海關)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쪽은 옛 실크로드(Silk Road)의 주요 길목이었던 깐수성(甘肅省) 자위관(嘉峪關)까지 이어진다.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가장 가까운 만리장성은 1시간 거리의 팔달령 장성(八达岭长城)인데 이 팔달령 장성은 베이징에서 변방으로 나가고 들어오고 관문(關門)이라 할 수 있다.
팔달령에는 장성 박물관이 있는데 엄청난 관광객들이 항상 북적이고, 장성 위를 오르면 어디까지 갔다 오려는지 하염없이 장성 위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1990년 이곳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달(月)에서 지구를 보면 인간이 만든 구조물로는 유일하게 이 만리장성이 보인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2003년 10월 발사된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를 타고 지구궤도를 선회하던 양리웨이(楊利偉)는 ‘만리장성이 보이지 않는다.’ 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리장성은 인류가 축조한 가장 거대한 축조물임에는 틀림이 없고, 지금은 많이 없어진 부분도 있지만, 그 총 길이는 지구 한 바퀴의 1/7 정도이며, 주로 흙(흙벽돌)으로 축조되었는데 돌도 많이 사용되어 사용된 돌만으로 이집트 기자(Giza)의 대피라미드를 30개나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구전설화(口傳說話)>
옛날 진시황 때 한 처녀가 결혼하였는데 신랑이 만리장성을 쌓으러 가게 되자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젊은 신랑은 머슴에게 마님을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그런데 머슴이 보니 색시가 너무 예뻐서 색시에게 신랑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자신과 같이 살자면서 자꾸 조르자 색시는 신랑에게 옷을 전해 주고 온다는 약속을 하면 하룻밤을 같이 자겠다고 하였다.
머슴이 얼씨구나 약속을 하자 색시는 머슴과 하룻밤을 자고는 신랑의 옷과 편지를 머슴에게 주었다.
이 옷만 주고 오면 색시와 살게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난 머슴은 부지런히 만리장성 쌓는 곳으로 갔다. 옷을 받아든 신랑이 편지를 펼치니 거기에는 ‘편지를 보거든 옷을 갈아입고 머슴을 거기에 대신 두고 속히 오라.’고 씌어 있었다. 신랑은 냉큼 머슴을 그곳에 두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리하여 생긴 말이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인데 이런 속담설화가 과연 사실일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