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풍산악회 일본 대마도 유명산(아리아케산) 등정
2026년 5월 16일~18일
개풍군민회(회장 윤일현)는 일본 대마도 유명산 등반을 위해 출발하는 고기항 개풍산악회장에게 일영 그린랜드에서 군민회 임원들인 김문수 전 군민회장, 김상중 전 명예군수, 이준용 도 운영위원께서 참여한 가운데 금 일봉을 전달하는 행사를 갖었다.
개풍산악회(회장 고기항)는 2026년 5월 16일~5월18일까지 회원 23명은 2박3일 일본 대마도 유명산 (아리아케산 해발 558m로 ) 산행을 마치고 18일 귀국 하였다
☞ 대마도 유명산(아리아케산)
해발 558m로 대마도에서 가장 큰 산으로 소개되며, 이즈하라 시내에서 비교적 정비된 산행로로 접근하기 좋습니다. 후기 기준으로 정상까지 약 2.8 ~ 2.9km(왕복 5.6 ~ 6.0km)로 소요되며, 초보자 기준 3시간 내외로 소요됩니다
한국 전망대
대마도 (對馬島, 쓰시마 섬)
일본 나가사키 현(長崎縣)에 속한 섬으로 역사적으로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었던 지역. 섬 면적은 총 695.74㎢.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거제도의 1.8배 정도다. 인구는 2020년기준 28,502명이다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대한해협에 위치한 섬이다. 대마도(對馬島, 쓰시마 섬)는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중계자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하며 한일 양측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조선 초기 대마도는 인구가 적은데다가 농사에 적합한 토지도 없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따라서 대마도의 주민들은 교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갖춰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내륙에서는 전란이 거듭되면서 교역 여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과의 관계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막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해상 세력과 전쟁에서 패전한 장수와 병력들이 대마도 일대에 모이게 되었다. 이들은 교역만으로는 충분한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14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인근 지역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왜구 활동이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고려와 조선, 원(元)과 명(明)의 해안 지역을 침입하고 약탈하면서 많은 피해를 주었다.
왜구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던 고려와 조선은 화약 무기를 개발하고 해안 방어 체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줄이고자 했다. 그리고 고려 말기였던 1389년(창왕 1)부터 1419년(세종 1)까지 3차례에 걸쳐 대마도 정벌을 단행했다. 고려와 조선의 정벌을 통해 대마도의 왜구는 세력이 크게 꺾이게 되었다. 하지만 정벌 이후에도 대마도의 입장에서 조선은 중요한 교역 대상이었기 때문에 조선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후 조선과 일본의 외교 관계에서 대마도는 항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양측의 중계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다. 섬 면적은 총 695.74㎢.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거제도의 1.8배 정도다. 원래 하나의 큰 섬이었으나 1672년 에도시대 때 오후나코시 운하, 1900년 메이지시대 때 만제키 운하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면서 3개의 큰 섬으로 분리됐다고 한다. 섬의 대부분이 고도 400m가 넘는 산지라서 마을은 해안 지대를 둘러가며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다. 개발을 한다거나 농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토지가 많지 않아 부산광역시와 비슷한 크기에도 인구는 2만8000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석유나 가스 같은 자원이 펑펑 나오는 것도 아니니 일본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그저 그런 촌동네다. 현재는 관광업이 번성해 주로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고, 일본 본토, 중국 등에서도 관광하러 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