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기념관

서울 도봉구 도봉로 123길 33-6번지(쌍문동)에 있는 '함석헌 기념관'을 잠시 둘러 봤습니다.
웬만한 국민들은 그 이름을 자주 들어서 모두들 잘 아시는 함석헌 선생(1901-1989)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고 '사상계'를 통해서 민중을 깨우치며, 구화 학교를 세우는 등
늘 옳은 목소리를 내고 바른 길을 살다가신 종교인이며, 인권·민중운동가입니다.

함석헌기념관은 함석헌 선생이 1983년부터 1989년 작고할 때까지 말년에 7년간 머물렀던 차남 함우용씨의 집으로 도봉구는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시비 15억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2013년부터 기념관 건립을 시작해서 2015년 9월 3일 개관식을 했다고 합니다.


1901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나신 함석헌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광복 후에는 고향에 진주한 소련군에 저항했으며, 월남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맞서며 바른 길에 평생을 몸 바치셨습니다.
'한국의 간디'라고 불린 비폭력평화주의자, 교육자, 언론인, 사상가, 종교인으로서 당대의 사표가 된 인물이 바로 함석헌 선생(1901~1989)이신데 가정 주택을 개량해서 만든 기념관이라 좁기는 했지만 선생님에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도록 아기자기하게 만들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함석헌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다하여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눈감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마음에 부치는 노래
함석헌
세상이 거친 바다라도
그 위에 비치는 별이 떠 있느니라
까불리는 조각배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눈 떠 바라보기를 잊지 마라
역사가 썩어진 흙탕이라도
그 밑에 기름진 맛이 들었느니라
딩구는 한 떨기 꽃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뿌리 박길 잊지 마라
인생이 가시밭이라도
그 속에 으늑한 구석이 있느니라
쫓겨가는 참새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사랑의 보금자리 짓기를 잊지 마라.
삶이 봄 풀에 꿈이라도
그 끝에 맑은 구슬이 맺히느리라
지나가는 나비 같은 내 마음아
너는 거기서도 영원의 향기 마시기를 잊지 마라


산
함석헌
나는 그대를 나무랐소이다
물어도 대답도 않는다 나무랐소이다
그대겐 묵묵히 서 있음이 도리어 대답인 걸
나는 모르고 나무랐소이다.
나는 그대를 비웃었소이다
끄들어도 꼼짝도 못한다 비웃었소이다
그대겐 죽은 듯이 앉았음이 도리어 표정인 걸
나는 모르고 비웃었소이다.
나는 그대를 의심했소이다
무릎에 올라가도 안아도 안 준다 의심했소이다
그대겐 내버려둠이 도리어 감춰줌인 걸
나는 모르고 의심했소이다.
크신 그대
높으신 그대
무거운 그대
은근한 그대
나를 그대처럼 만드소서!
그대와 마주앉게 하소서!
그대 속에 눕게 하소서!

얼굴
함석헌
우리가 세상에 뭐하려고 왔나?
얼굴 하나 볼라고 왔지
세상에 나돌아다니는 찌그러진 얼굴
근심 많은 얼굴
남을 괴롭히는 얼굴
별의별 얼굴이 다 있는데
참 평화로운 얼굴은 볼 수가 없구나
그 얼굴만 보면 세상을 잊고
그 얼굴만 보면 나를 잊고
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밥을 먹었는지 아니 먹었는지 모르는 얼굴
그 얼굴만 대하면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
그 얼굴만 대하면 가슴이 큰 바다 같애
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맘 파도처럼 일어나고
가슴이 그저 시원한
그저 마주앉아 바라만 보고 싶은
참 아름다운 얼굴은 없단 말이냐?

진리
함석헌
진리는 슬퍼,
파랗게 슬퍼.
분주한 일 다 마치고
떠들던 손님 다 보내고
사람이 다 자고
새도 자고 쥐도 죽은 밤
티끌이 다 가라앉고
구름 다 달아나고
높이 드러나는 파란하늘
깜박깜박하는 파란 별
아슬하게 올려다볼 때 같이,
진리의 얼굴 마주 대하면
파랗게 슬퍼.
진리는 슬퍼,
파랗게 슬퍼.
엉클어진 넝쿨 다 헤치고
우는 시냇물 그대로 남겨두고
험한 골짜기를 건너
위태로운 바위를 더듬어
무르익은 산과를 내버리고
어지러이 피는 꽃밭도 뒤에 두고
나무도 없고 풀도 없는 높은 봉에
하늘 쓰고 돌 위에 앉아
포구의 그림자도 없이
망망하게 열린 파아란 바다
끝없이 일고 꺼지는 파란 물결
아득하게 바라볼 때 같이,
진리의 눈동자 건너다보면
파랗게 슬퍼

***
함석헌(咸錫憲) 연보
• 1901. 3. 13.平北 龍川郡 府羅面 元城洞 출생
• 1906.사립 기독교 德一小學校 입학
• 1916.양시 공립 보통학교 졸업
• 1916. 4.관립 평양고등보통학교 입학(8회)
• 1919. 3.1. 3년 재학중 숭실학교 교사로 있었던 일가인 함석은의 영향으로 3.1운동 참가 후 2년간 학업 중단
• 1921.함석규 목사 권유로 오산학교 3학년으로 편입-조형균 장로 주선으로.
• 1923.오산학교 졸업
• 1924. 4.東京高等師範學校 文科一部에 입학
• 1925.내촌감삼(內村鑑三) 문하생 6명 '조선성서연구회' 결성 (김교신,함석헌,송두용,정상훈,양인성,류석동.)
• 1928. 3.東京高等師範學校 졸업
• 1928. 4.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歷史와 修身을 가르치신다
• 1934.2-1935.12성서조선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연재
• 1940. 3.평양 松山農事學院 인수 (김 혁선생으로부터)
• 1940. 8.계우회 사건으로 김 혁선생이 동경에서 체포, 이 일로인해 평양 대동경찰서에 1년간 구치되다
• 1940. 11. 5.아버지 함형택 별세 (김교신, 송두용 두분이 대신 상주가 되다)
• 1942. 5.聖書朝鮮 사건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미결수로 1년간 복역. 수형번호1588번
• 1945. 11.23.평북자치위원회 문교부장 - 신의주 학생사건-소련군 사령부에 체포 50일간 구금
• 1946. 12.27.소련군에 의해 피검되어 1개월간 옥고 치르다
• 1957.씨알농장 시작( 천안시 봉명동 1만평 농장을 정만수장로가 기증) 홍명순 김종태; 씨알의 소리 114호
• 1958. 8.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사상계)-글로 인해 서대문 형무소에 20일간 구금
• 1961. 7「5·16을 어떻게 볼까」사상계에 발표
• 1962. 2. 9.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3개월간 미국여행. 10개월간 퀘이커학교에서 공부
• 1963. 6.23.서독에서 안병무 선생과 함께 계시다 여행 중단 귀국(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
• 1970. 4.19 '씨알의 소리' 창간호 발간
• 1970. 5.29. '씨알의 소리' 인가취소로 법정투쟁(이병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 1971. 7. 6.대법원 재판장 김치걸, 사광욱, 홍남표, 김영제, 양병호 판사에 의하여 문공부의 상고를 기각, "씨알의소리 등록을 취소한 처분은 위법부당하다고 한 원판결의 결과에는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판시, 본지의 승소판결을 확정하다.
• 1973. 7-8씨알농장을 정리하여 모산의 구화 고등 공민학교를 시작하다.(장준하선생과 몇분의 도움으로)
• 1974. 11.27윤보선, 김대중과 함께 민주회복국민회의 동참 시국선언
• 1976. 3. 26 3. 1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되다.
• 1978. 5. 8부인 황득순(77세) 별세
• 1979. 3. 4.윤보선선생 댁에서 김대중 씨와 함께 기자회견, 3. 1절 성명 발표.
• 1979 . 3. 5.미국 퀘이커봉사회 바바라 바우만여사가 내한, 함선생님 노벨평화상 추천서 전달하다
• 1979. 8. 11.퀘이커 세계대회 참석차 출국(스위스행)
• 1979. 10.26.미국 오하이오주 컬럼부스에서 박정희 저격사건을 듣다.
• 1979. 11.15여행 일정을 중지하고 귀국
• 1980. 5. 16.창간 10주년기념 제주강연(연사: 함선생님, 서남동 교수, 장소:제주학생회관)을 마치고 제주 숙소에서 5. 17 확대 계엄령을 맞다. 여기서 서남동 교수 5. 17자정,미리 대기하고 있던 정보원들에 의해 연행되다.
• 1980. 7.30 '씨알의 소리' 계엄 당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폐간 당하다
• 1985.미국 방문 퀘이커 세계협회 멕시코 종교대회 참석. 카나다 방문(10월) 두 번째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 1987. 1. "새해 머리에 국민에게 드리는 글" 장공 김재준선생과 함께
• 1987. 7.13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췌장, 담낭, 십이지장 종양부위 절제수술 4시간 받으시다.)
• 1987.10.12.제 1회 인촌상 수상 (동아일보사)
• 1987. 12.22 5공정권 말기 민주화의 열기 속에 언기법(言其法)이 폐기되고, 언론출판의 자유가 이루어질 희망가운데 씨알의 소리 복간신청을 문공부에 내다. 씨알의 소리 문화공보부에 복간 신청
• 1988. 9.12 24회 서울 올림픽. 서울 올림픽 평화대회 위원장으로서 서울평화선언 제창
• 1988.12. 22씨알의 소리 복간 신청 7개월만에 정기 간행물 등록증 교부 받아, 폐간 조치 당한지 8년만에 다시 복간되다.
• 1989. 2. 4. 1989. 2. 4.05시 25분 88세 32105일 서울대학병원 12층 108호실에서 서거하시다
• 1989. 2. 8.함선생님, 오산학교 강당에서 오산학교장으로 장례식 거행하다(2천여 조문객 참석)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 마차산 자락에 묻히시다
• 2006. 10. 19.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 329번에 안장되심.
**** 이상 ****
첫댓글 아우님 덕분에 함석헌의 선생의 격정적이고 감동적인 삶을 잠시 둘러봅니다.
감사합니다.
역서 선배님에 발태죽얼 뵝께
찰로 방갑구만이람짜
오눌날 우리나라 기독교가
자기네 교세 뿔리기
자기네 교회 키우기에만 급급함시로
어려움에 처한 양들을 보살필라고넌
시늉만 해쌍께 개독교란 소리럴 듣는 가운데
평생얼 진정한 기독교인이로 실천함시로
살다 가신 함석헌 선생에 태죽이 거가 잔 남어 있드구만이람짜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