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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관수록(古士觀樹錄)―3- 은행나무(杏子木)
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 시작된다. 오늘 아침 뉴스는 설악산 중턱까지 가을이 내려오셨단다. 서울 중부권에는 예년과 같이 이달 하순 쯤 절정에 이르고 이어서 아랫녘으로 내장산을 거처 지리산 자락 그리고 바다를 건너뛰어 제주도로 이어지는 자연의 심오한 채식 조화가 이 땅에 전개된다.
단풍하면 울긋불긋 불타는 듯 한 붉은 색을 먼저 생각하는 이가 많겠지만 붉은 색 말고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데서 우리 마음을 안온하고 지난날을 회상하게 하는 것은 역시 노란색 단풍이다.
노랗게 단풍 드는 나무는 생강나무, 포플러, 잎깔나무, 아까시나무,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노란 단풍의 진수는 말할 것 없이 은행나무 단풍이다. 이제 며칠만 더 기다리면 우리 사는 동네 가까이서 저 노란 물결을 싫건 보고 느끼게 될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날의 추억에 잠길 것이고 흘러가는 세월의 무상도 함께 느낄 것이 틀림없다.
은행나무는 우선 어느 나무에도 비교가 되지 않게 오래 사는 나무다. 전국에 있는 이름 그대로 노거수를 조사한 산림청. 문화재청 보고에는 줄잡아 800여 그루 유명세 타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우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만 해도 22그루, 북한에도 18그루의 은행나무가 지정돼 있다. 은행나무의 나이 200살-300살 정도는 어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청소년 부류에 든다. 적어도 은행나무가 명성을 얻자면 400살 이상을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은행나무가 2억 -2억 오천여 년 전 페름기, 주리아기의 거대한 공용이 지구의 주인 노릇하고 있을 당시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른 나무이니 그 세월이 아득하고 놀랍다. 하긴 히로시마 원폭투하 원점에서 800m 떨어져 있던 은행나무가 그 무서운 방사능을 이기고 다른 생명들 전멸상태에서 그만이 유독 이듬해 새싹을 튀었다는 강인함을 보인 나무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래서 은행나무는 더 외로운 나무이다.
소빙하기를 거치면서 살기위해 더운 시기에 버틸 수 있는 유전인자를 자절 하듯 도태 시켰고, 더운 세월을 버티기 위해서 추위를 이길 수 있는 DNA를 버려야 했었다. 그래서 급기야 사람이 돌보지 않는 은행나무는 지금 이 땅에 살수 없는 나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은행은 자생지가 없는 나무이고 그것뿐만 아니라 은행나무는 이웃사촌, 사돈의 팔촌이 없는 오로지 1목 1과 1속 1종으로 외롭게 살아남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오랜 풍진세상을 살다보니 온몸에 상처와 고독이 많다.
우리 인간도 이제 막 100세 장수시대에 들어섰다고들 호들갑을 떨고 있다.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닌 것은, “장수가 축복만이 아니라”는 사실. 연일 신문 방송 사회면에 게제 되는 서글프고 슬픈 현상은 속 썩고 상처 난 은행나무를 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서부터 신작로가 생기고 이에 따라 가로수를 심었다. 하긴 조선 초기 태종 때부터 이정표로 오리마다 오리나무 한 그루를, 이십 리 간격으로 스무나무. 십 오리마다 히어리(시오리)나무를 심었다고 하나 그렇게 넓이 실시한 것 같지는 않고 , 길이 크고 넓든지 작은 오솔길이든지 드믄 드믄 오가는 이 다리 쉼 할 만한 곳에 정자나무와 마을 랜드 마크로 장수하는 나무들를 심어 동네사람들이 정성으로 큰 나무로 자라나서 거기에 전설과 사람 사는 정을 달았던 것이다. 본격적인 길 소통시대에는 버드나무와 미루나무(포플러)가 가로수 원조이었다. 그러다가 이 나무들이 외래 종 해충인 미국흰불나방의 피해가 극심해지자 때맞추어 들어온 푸라타나스, 버짐나무가 그늘 좋고 빨리 자라 인기를 얻어 번창해갔다. 하나 이 나무의 꽃가루와 솜털, 잎 뒤의 잔 먼지가 기관지에 해롭고 알레르기의 원인이 된다는 소문 때문에 점점 버림을 받고 급기야 은행나무가 가로수의 대표 수종으로 등장한다. 우선 서울시내에만 해도 2014년 현재, 가로수 총 28만4000 그루 중에 은행나무가 11만4000그루로 전체 가로수의 40.1%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가로수 은행나무가 2014년 여름을 지나오면서 심한 가뭄과 무더위에 의해서 철 이른 단풍, 즉 황화현상으로 2400그루가 말라가고 있어서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다.
또 한 가지 지금 서울 중구를 비롯하여 강남의 이름 있는 새로 지은 아파트 그리고 초대형 사옥 등등의 조경 사업에, 전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은행은 도외시 되고 국내 어느 산등성이 계곡에서 강제 구인하다시피 해서 모셔온 낙랑장송들이 가로와 정원의 주인으로 대체되어가는 현상이 실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은행나무는 단풍은 좋으나 그 열매의 심한 악취 때문이다. 하긴 한때 은행나무를 유실수로 심을 것을 권장한 적도 있다. 왜 은행 열매에서 그토록 역한 냄새를 풍길까? 다 생존전략이다. 색 좋고 여문 열매가 맛과 냄새마저 좋으면 야생 조수가 아삭아삭 씹어 씨앗을 망치게 되니 아예 범접 못하게 지독한 냄새로 무장하는 나무 나름의 오랜 지혜의 산물이다.
<가을 들어 은행털이가 늘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전에는 자주 본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순진한 소시민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일도 있었다. 은행 강도라니?―, 그 때는 은행 알이 냄새가 좀 나더라도 조금만 수고 하면 천식 등 몸에 좋다는 이유 때문에 남몰래 열심히 털고 부지런히 주워 모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아니다. 길거리를 지저분하게 하고 지날 때마다 은행 알을 밟아 역한 냄새가 신발에 묻으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악취 때문에 잦은 민원의 대상이 된다. 아시다시피 은행나무는 암수가 서로 다른 나무이다. 지금이야 산림과학원에서 은행잎을 이용한 DNA 성감별법으로 어린나무도 성을 알아낼 수 있으나 전에는 구별법의 설은 많았지만 실제로는 심어놓고 10년 정도 기다리다가 열매 달린 여부를 보고 암수를 맞추는 방법 밖에 없었다. 간혹 암꽃 핀 나무에 5월초 일일이 화학약품을 뿌려 암꽃이 성숙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실행 불가했다.
또 다른 문제하나는 이 가을에 떨어진 가로수의 은행 알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이다. 결론은 중금속 허용량이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르다. 그러니 일단 자동차길 가로수 은행열매는 안 먹는 게 안전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서울 시내 가로수 은행나무 11만 4000그루 중에 2만 8000그루가 암나무 이니 네 구루 중에 하나가 암나무인 샘인데 교체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 뻔하다.
** 은행나무의 상징성에대하여
은행나무를 자기 고장 혹은 시도 상징 식물로 내세우는 곳이 많다, 우선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큰 시도 기념물로 지정한 곳이 28군데나 된다. ( 토오쿄도 상징목이 은행이다.) 더구나 한국의 향교. 서원, 사찰 등에 은행나무가 많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은행나무가 살아있는 화석으로 은행나무의 유일성과 영원성을 본받고자하는 마음의 발로로 본다. 거듭 말하지만 은행나무는 방계후손이 없고 유학의 근본인 경(敬)공부를 통한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 자신의 본질을 밝기기 위한 학문)의 실천의 표상으로 생각한 까닭이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그래서 원산지 중국보다 우리나라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전국에 많이 산재해서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것이다.
우선 지명에서 살펴보자. <은행동>이란 마을 이름은 대전, 성남. 경기도 시흥 등지에 있고 <은행리>는 충북 옥천 군서면, 충주 남일면에 있으며 <행정리(杏亭里)>란 지명은 13곳, <행정동(杏亭洞)>은 전국 1130여 곳이나 된다. 이 행(杏)자 붙은 지명은 거의 커다란 은행나무 정자가 있고 또 현재는 없으나 전에는 분명 있었을 것으로 확인된다. 그만큼 전국 어디 어느 마을에도 은행나무가 우리 삶과 가까이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은행나무가 거기 있게 된 전설도 어느 덕크신 스님이나 지나가던 분이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게 살아서 오늘의 명목 거수가 된 전설이 가장 많다.
** 은행나무의 풀리지 않은 두 가지 문제점
우선 중국 노나라 공자님이 그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그 장소가 은행나무(杏子木)아래인가 살구나무(杏)아래인가.
앞에서도 말 했듯이 유학의 교육기관 중 지금의 사교육에 해당되는 서원이나 공교육에 해당되는 향교 이 두 기관 어딜 가나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는 공자님 행적을 따른 것이고 이 자리가 진정 살구나무인가 은행나무인가는 추측으로만 남았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나무가 아닐 것인가 하는 설만 있을 뿐, 스스로 답을 찾아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은행나무가 주는 두 번째 문제
은행나무는 활엽수인가 침엽수 인가? 하는 논란인데, 인문학자들은 전후 사정 제하고 잎이 넓으니까 활엽수라고 하고, 식물학자들은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니까 겉씨식물의 특성은 침엽수 이니 침엽수가 확실하다고 주장 한다
그래서 아예 어떤 학지들은 은행나뭇과의 침엽도 활엽도 아닌 은행잎 식물이라고도 하자고 한다. 유의 할 것은 생물, 생태, 과학 시험이라면 침엽수라 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 은행나무의 성전환?
생리 의학의 발달로 사람도 소위 트래스젠더(transgender) 성공에 관한 보도를 본다. 그런데 암수가 다른 나무도 성전환 한다는 기록이 있다. 분명 은행나무는 암수가 다른 식물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성전환 전설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는 세 그루가 있다. 우서 서울 명륜동 문묘의 명륜당 마당의 은행나무가 그렇다. 이 나무는 중종14년 (1519) 때 대사성 윤탁이 심은 나무로 약 500살이 예측되는 나무인데, 원래는 암나무로 가을에 열매에서 고약한 냄새가 심히 나고 인근 마을 아이들이 은행 알 주우려는 소동에 유생들 공부가 방해되어 도사를 불러 재를 지내고 수나무로 변환해 달라는 소원을 빌어 이 소원이 이뤄져 그 후 수나무로 이태까지 살아왔단 이야기 이다.
이와 비슷한 전설로 강화도 전등사 절 앞뜰에 있는 은행도 원래 암나무로 나라에서 하도 많은 은행 알을 강제 할당 공출을 요구해서 스님들이 턱없이 모자라는 은행 알 모으려 이웃마을로 가서 불공드릴 시간이 없자 다른 절 유명스님을 모셔와 기도해서 암나무로 성전환 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오고. 세 번 째 강릉 장덕리 은행나무도 앞의 것과 비슷한 전설이 있다. 순전히 나 혼자 생각인데 나무가 늙어감에 생식능력이 사그라져 열매가 안 달리니 사람은 성전환 했다고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왜 암나무만 수나무로 전환됐을까 하는 점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하나 더. 오래된 은행나무 아랫둥치에는 유주(乳柱)라고 하는 일종의 혹이 달리는데 어떤 이는 이를 나무고드름이라고도 한다. 대체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이것은 일종의 공기 흡수하는 기능을 하는 데 이것이 젖(乳房)모양을 하고 있어서 유주(乳柱)라고 하고, 애기 못 낳는 여자나 젖이 부족한 사람이 이를 만지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이 있다. 의외로 이 유주(乳柱)가 생기는 나무는 암나무가 아닌 수나무에만 생긴다는 점이다. 일본 같은 습기가 많은 기후대에는 유주가 더 많이 생긴다고 한다.
** 광화문 앞 세종로 거리의 그 황홀하던 은행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몇 해 전만 하드라도 광화문 앞 세종로 거리에는 은행나무가 늘어서서 서울의 가을을 흠뻑 황금색 정서에 젖게 했었다. 그 은행나무는 지금의 광장 조성사업에 밀려 중앙분리대에서 정부종합청사 앞 인도로 밀려났고 은행나무들은 이식한지 3년이 지났는데도 뿌리를 아직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비실거리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50년 -100년 정도가 된 비교적 젊은 은행나무는 광화문 세종로의 상징 이였다. 2008년 지금의 저 잔디광장을 조성할 당시 정부청사 앞으로 14그루, 시민열린마당 쪽 15그루를 7억이란 사업비를 드려 옮겨 심었는데. 29 그루 중 3구루가 영양 결핍으로 황화현상이 나타나 영양주사를 맞고 있는 중이다. 이 광장조성 사업시행 여부 여론조사에서 시민 90%가 나무이전을 반대했으나 결국 이렇게 된 것이다.
** 은행나무의 다른 이름
은행나무는 심은 자의 손자 대에 가서나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하여 공손수(公孫樹), 잎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해서 압각수(鴨脚樹), 압장수(鴨掌樹), 또는 흰색인 까닭에 영안목(靈眼木), 백행(白杏), 백과목(白果木), 불지갑(拂指甲), 행자목(杏子木), 평중목(平仲木) 등의 한자 이름이 있고, 영명으로는 ginkgo 또는 Maidenhair tree(소녀앞가랑머리나무) 혹은 Silver apricot(은색살구)라고 한다.
은행의 만국 공통 공용 학술상 이름 즉 학명은 Ginkgo biloba L로 일본어로 은행(銀杏)을 알파벳 화 할 때 Ginkyo라 할 것을 오기로 Ginkgo로 잘못 기록하여 굳은 것이다. 여기서 금융업의 은행(銀行)의 행(行)은 무슨 뜻일까? 정확히는 금은행(金銀行)의 준말로 行행은 거리에 죽 늘어선 점포(店鋪)를 말하는 것이다. 하여 지금도 남아있는 유한양행. 없어진 신신양행 등의 이름을 간혹 볼 수 있는데. 은행이란 말 뒤에 <턴다> 라는 말이 엄청난 일과 연결되어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다.
누가 내게 이번 가을 은행단풍 절경지 세 곳을 말하라 한다면-
이제 곧 바라던 바라지 않던 우리 가까이 황금색 은행잎 잔치가 전개될 것이다. 삶이 힘들고 고달프고 금년 수확이 좋고 부족하고 간에 그래도 잠시 우리가슴을 환하게 채워줄 자연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일 것이다.
어딜 가나 흔히 만나는 은행의 그 단풍. 덕수궁 안. 서울거리. 이웃한 공원 남산 동쪽 순환길 거기에도 눈부시게 전개 된다. 또 더 있다. 명륜당 안, 저 방학동 연산묘 앞의 노거수 은행나무의 단풍도 좋고, 경복궁 건춘문 안쪽의 은행 단풍도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그러나 내가 그 노란 황금빛 꽃비 아닌 잎비를 맞아본 것 중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천공원 저 안쪽 옛날에는 만이골이라 했는데 그곳에 엄전히 자리한 은행 한그루 그 황금빛을 잊을 수 없고. 저 원주 문막 반계리 들판의 은행나무 빛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더 있다. 안동 임하댐 공사로 수몰 될 것을 살리는데 20여 억을 드린 용계할배 은행나무도 이젠 15m 상식 이주의 몸살을 이겨내고 황금비를 내리니 이 가을 그 아래 가면 분명 황금색 축복을 받으리라. 더 멀리는 해남 녹우당을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에 때맞추어 가볼 일이다. 가면 그 감흥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 용문사 그 어른
나는 서울이란 타향에 내생의 2/3을 살아오면서 내 고향 다음으로 자주 들으는 곳이 양평이란 땅이다. 내 어린 날이 그리우면 양평 <소나기마을>로 간다. 가슴에 한을 남기고간 사람이 그리우면 그 사람 만나려 <두물머리>로 간다. 그리고 평생 땅만 파시고 사시다간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리우면 공짜 전철타고 <용문사 있는 골짝>으로 간다. 가서 우리 할아버지 같은 어르신 저 은행나무님께 “저 어이 하오리까?” 여쭙고 상의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서운한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자본주의 사회라 이해는 가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만 따지는 현대이기는 하지만, 몇 해 전 KBS <대한민국 가치의 대 발견>이란 프로그램에서 용문사 이 어른(은행나무)의 가치를 1조 6,884억 원으로 매긴 것을 봤다. 놀라는 사람 많았지만 저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겨우 겨우!? 나는 결코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존재, 신성이 깃든 나무가 용문사 은행나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없다.
끝으로 베토벤이 남긴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나는 나무보다 더 훌륭한 인간을 만나기 힘들었다. 나무를 보라 !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배우자. 그 꾸준함 , 참을성. 하늘로의 끝없는 발돋움을……”
우리, 이 가을, 저 황금빛 은행나무의 넉넉한 품속에 안겨 위로와 삶의 지혜를 배웠으면 한다. <<끝>>
첫댓글 은행열매에도 암열매와 숫열매가 있어 숫열매로 가로수를 심으면 될까~~^^
저가 읽은바로는 암 열매는 둥글고 수 열매는 각이난다는데 이것은 모두 헛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암열매는 봉선이 하나고 수열매는 세개라고 하던데...그것을 알아낸다면 도움이 될것같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