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 비인과적 연기 : 우연의 인연(8)
‘오직 마음이 있을 뿐이지 대상은 없다(唯識無境)’는 명제는 유식학이 아니라도 자명(自明)한 것입니다. 이 마음을 떠나 대상과 현상과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도 동일한 뜻입니다. 그렇기에 이 마음이 본심이 아니라면 자신 앞에 현전(現前)하는 필연과 우연이 진실한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우연으로 표현되는 필연의 인과까지 무시하고 자신과 공동체에 망조가 들게 합니다.
자신 앞에 나타나는 대상·현상·세계의 대부분은 우연으로 보이는 것들입니다. 이 압도적 우연의 인연 즉 비인과적 연기를 해석하고 응대할 줄 아는 이가 안목이 밝은 지혜의 각자(覺者)입니다. 이것은 본심으로 가능합니다. 평상심, 청정심, 무심, 불심은 본심을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로 시작합니다. 나는 본심이어야 합니다.
[보충]
* 밀교에서 일체 현상을 당체법문으로 보고 해석하여 응대하려는 것은 우연으로 표현되는 필연의 인과를 중시하는 수행법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본심진언(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합니다. 본심진언을 염송하면서도 우연과 필연의 인과를 모른다면 그 염송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