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도 바뀌어야 한다
가을이면 집안이나 사무실 또는 자동차에 잘 익은 모과 한두 덩이쯤 두고 싶어 한다. 가을 한 때일망정 애지중지 사랑받는다. 그 모과가 때로는 향긋한 모과차로 변신하고 감칠맛 나는 좋은 술로 발효되기도 한다. 모과는 썩어가며 더 진한 가을의 향기를 풍긴다. 황금빛 샛노란 모과가 온몸 까맣게 변하면 향기는 다 빠져나가고 덩그런 숯덩이가 남아 볼썽사납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금빛 한 덩이 모과는 간 곳이 없다. 그 자리에 꼴도 보기 싫은 저것이 애지중지하던 모과라니 믿기지 않을 만큼 흉측스럽다. 모과는 다른 것들이 썩어가며 고약한 냄새를 내뱉는 것과는 다르다. 가을날 모과는 향기가 넘쳐 싱싱할 때와 향기를 다 뿜어내고 난 뒷모습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것이 모과의 겉과 속인지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옛 속담에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키고, 생선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라고 하였다. 재래 토종 모과는 몸뚱이가 울퉁불퉁한데다 군데군데 썩어 못생긴 것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요즘은 개량되어 겉이 매끈매끈하면서 제법 잘 생겼다. 그러나 과일로 먹기에는 여전히 너무 떫고 시기만 하여 도리질한다. 한약재나 술을 빚고 차 끓이면 다른 맛으로 일품이다.
이쯤 되면 모과가 못생겨서 과일 망신시킨다는 말은 아무래도 더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아주 약삭빠른 요즈음 속담은 모르는 척 시침 떼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지나간 말이니 알아서 사용하라고 하는 것 같다. 한때 하나의 격언이고 상징적 비유로 되새겨보라는 경종일 수 있다. 이처럼 좀은 유치하기 짝 없고 너무 남루한 것이 많다.
왜 그런 속담이 생겨났는지 의문까지 들어 새삼 되돌아볼 시점이지 싶다. 속담으로 통할 정도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전해오면서 순순히 받아들였던 말이기도 하다. 이제 속담도 새롭게 정리하고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간은 당연하였지만 급격한 사회변화의 물결에 고쳐져야 하거나 없어져야 할 속담인데 곳곳에서 그대로 남아 멋쩍게 한다.
“우물에 가 숭늉 찾는다.” 요즈음 떠먹을 우물이 있기나 하고, 숭늉 맛을 알기나 하는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 지금이 농경시대인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마이카시대다. 누가 그 먼 길을 걸어 다니랴. 입줄에 곧잘 오르내렸던 속담 몇 개를 들춰 보았다. 속담에서 낙후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속담도 변하고 바뀌어야 할 시대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속담이라고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다듬어졌어도 그 시대상이 다분히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시대는 바뀌었는데 그냥 남아있다. 한 번 생기면 좀처럼 버릴 줄 모른다. 세월이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바뀌게 한 것이다. 외적인 것만 아닌 내면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함께 바뀌어야 어울려 부족함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변화가 심한 때일수록 더 그렇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요즘은 일 년 아닌 몇 달, 심지어는 밤사이 눈이 온 천지를 하얗게 뒤덮듯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것 같기도 하다. 불과 며칠 한눈팔다 낯선 세상 같아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아무리 옛것이 좋아도 도저히 몸에 맞지 않는 걸 걸치고 다닐 수는 없다. 속담이라고 이제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다. 자칫 우스운 꼴이 될 수도 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 범을 만날 수나 있나. 그림에서 보든지 어쩌다 동물원에서나 볼까. 범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만나 봤어야 무서운 줄 알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떡 줄 사람에게는 묻지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농경시대의 전설 같은 이야기로 이제는 처음 듣는 낯선 말이 되었다.
요즘 들어 새삼스럽게 맞지 않는 속담이 거슬린다. 안 쓰면 그만이라고 쉽게 넘겨버리지만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고치거나 바꿀 것은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물쭈물 넘어가다가 어느 날 문들 눈에 띄면서 씁쓸하게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하였다. 백세 시대로 “세 살 버릇 백까지 간다”라고 하든지 죽을 때까지 간다고 하면 어떨지 싶다.
“될 성싶은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라고 한다. 요즈음은 공부를 많이 해도 혼자 모든 것을 잘할 수 없는 시대다. 무엇이든 하나만 잘해도 무턱대고 남 남부러워할 일 없게 되었다. 떡잎은 다소 부실해도 얼마든지 앞날은 달라질 수 있어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떡잎은 부족해도 크거나 작게 될지는 아무도 확답할 수 없으므로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값이면 좋은 게 좋다. 좋은 말이 듣기에 좋다. 진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가능한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이고 희망이 담기면 더 좋을 것이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속담이나 늘어놓는 것 자체가 좀은 어색하고 꼰대 같은 짓이다. 속담도 버릴 것은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버리며 고치거나 바꿀 것은 망설이지 말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