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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주변 사람들이 "생각 좀 하고 살아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직장이나 병영생활중에 선임자들이 후임자들을 훈계할 때 인용했던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한다.
1) "생각 없이 살지 말라"는 의미.
예) 도시철도를 환승할 때, 저의 경험이다. 출발지는 벡스코역이고, 목적지가 양정역이다.
2호선 벡스코역에서 승차하여 수영역에서 하차해서 3호선으로 환승했다.
3호선을 타고 연산동역에서 하차해서 1호선으로 환승해야 한다.
연산동역에서 전동차문이 열리는 순간, 제가 아무 생각없이 일단의 승객 무리를 따라 가다 보니
노포행 열차 승차장으로 간 적이 있었다.
반대편으로 가는 철도 승차장에 도착한 것이다.
생각 없이 걷다보니 엉뚱한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2) "달리 생각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 마라이 공업주식회사 창업주인 야마다 아키오의 <생각 좀 하고 살자>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업이 소비자와 종사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역발상의 생각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구태 의연한 생각 즉 늘 해오던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생각 좀 하고 살아라"는 말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한다.
"생각 없이 살지 말라" "구태어연한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으로 살아라"
이 말을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해 보자.
성경 구절 중에 이 말과 가장 유사한 구절은 어떤 구절일까? 생각해 보니, 딱히 떠오르는 구절이 없다.
고민이 된다. 쉽게 생각 나지 않는다.
J. B. 필립스라는 신학자가 우리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그는 로마서 12:2절을 추천한다.
한 번 찾아서 읽어보자. 익히 알고 있는 구절이다.
그는 로마서 12:2절을 다음과 같이 의역했다.
"너희는 이 생각을 본받지 말고 오직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어떻습니까? 무리없는 의역 같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을 했다.
"세상이 우리를 세상의 생각 속으로 집어 넣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아주 적절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유진 피터슨이 편집한 <메시지>라는 성경책을 익히 알고 계실 것이다.
이 책은 극히 작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현대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한 성경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서는 로마서 12:2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세상 문화에 너무 잘 순응하여 아무 생각 없이 동화되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이 역시 아주 멋진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문화를 접할때마다 그냥 그 문화를 받아들이지 말고 생각을 좀 해 보라는 의미이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가 성경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성도들은 성경적으로 생각할려고 몸부림을 쳐야 한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세상적인 생각이 성도들의 생각을 삼켜버린다.
즉 성도들이 항상 성경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적인 생각에 당한다.
요즘 우리 성도들이 사순절 신약성경 통독 중이다.
성경 통독의 목적 중 한 가지는 우리가 성경적인 생각을 갖는데 있다.
단순히 성경을 1독했다는 사실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성경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경책을 통독해야 한다.
이렇게 읽어야, 우리는 성경 통독을 통해 성경적인 생각을 학습하게 되고 기존의 성경적인 생각을 강화시키게 된다.
성경적인 생각이 바로 예수님의 생각이고, 우리가 예수님의 생각을 하게 되면 예수님 처럼 살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각으로 세상적인 생각을 삼켜버려야 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도 성경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경책을 읽게 되면, 천번을 읽어도 아니 만번을 읽어도 예수님의 생각을 학습하지 못한다.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예수복음 선교회(일명, JMS) 교주 정명석을 생각해 보라.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그는 성경책을 천 번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악마의 생각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도출된 것일까요?
그는 성경을 읽을 때 세상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 주변에도 이런 분들이 있다. 가끔 만날 때마다 자신은 올해 성경책을 몇 독 했다고 자랑한다.
제가 확인해보려고 그의 가방속에 담겨져 있는 그 분의 성경책을 직접보니, 너덜너덜했다.
그리고 온갖 색상의 볼펜으로 구절 구절 마다 줄 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의 말과 생각에는 세상적인 생각으로 충만(?)하다.
이유? 그 분은 세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경책을 읽었던 것이다.
자기생각에 몰입해서 성경책을 읽으면 자기생각이 강화된다.
하나님 생각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생각이 강화된다.
다시 말하자면 생각 없이 성경책을 읽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 좋은 예가 본문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무주택자인 아담과 하와를 위해 무상으로 고급임대주택을 공급해주었다.
주소지는 에덴이고, 그 주택은 "가든"이라는 브랜드이다(창2:8)
어느 날 아담과 하와 커플이 집 주변을 산책 하고 있었다.
뱀이라는 동물이 이들에게 접근했다. 이 동물은 아주 치밀한 동물이었다.
"가장 간교하니라"(1)
"subtil"(KJV)? "치밀한" "영리한"
그 당시, 동물중에 뱀은 가장 치밀한 동물이었다.
그러니깐, 뱀이 우연히 아담과 하와 커플을 만난 것이 아니다.
뱀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후에 주도 면밀하게 이들에게 접근한 것이다.
이단이 이런 방식으로 활동한다.
대형마트에서 우연히 만난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오래전부터 노리고 있었던 거죠
뱀이 자신의 생각을 하와에게 전달했다. 뱀이 하와를 말로 선동한다(1)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던데 그것이 정말이냐?"(공동번역본)
뱀이 하와로 하여금 자신이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선동했다(1)
반 친구가 장난으로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너희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던데" 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하지 않던 이 친구는 친구의 말 때문에 애꿋은 아버지를 의심하게 된다.
이렇게 뱀은 왜곡된 말씀으로 하와의 의심을 부추긴다(2:16-17, 3:1)
결국, 두 사람은 그 유혹에 넘어간다. 선동 당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들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했었다.
하지만 이 커플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뱀의 말만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뱀의 말만 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더라면 이런 불행이 닥쳐겠는가?
함석헌 선생은 가난 중에 가장 큰 가난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단다.
성경적로 풀이하자면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죄이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하지 않으므로 죄를 짓게 되었다.
이들이 생각하지 않으므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
우리 주변에는 뱀이 많다. 좋은 분들도 많이 있지만, 직장에도 사회에도 뱀들이 우리를 치밀하게 노리고 있다.
맹목적이라는 말이 있다. "맹목"? (사전적 의미)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는 눈"
눈은 있지만 앞을 볼수 없다는 의미.
두 친구가 서점에 들렀다. 한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구입하기 위해서 들렀다.
다른 친구는 자신의 친구가 서점에 간다고 해서 그냥 따라왔다.
두 사람이 서점을 둘러 보았다.
책을 구입하기 위해 서점을 들른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 생각을 하면서 서점을 둘러본다.
그래서 나중에 그는 어떤 책이 어디쯤 있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 따라 서점에 들른 친구는 아무 생각없이 서점을 둘러 보았기에, 어떤 책이 어디쯤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맹목이다.
생각하지 않는 눈이 바로 맹복이다.
맹목은 눈이 없어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눈은 있지만 생각없이 보기에 보지 못하는 눈을 말한다.
우리 신앙도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적인 신앙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이 맹목적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생각을 하며 예수를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없이 예수를 믿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바로 이단이 그렇다. 이단에 빠진 자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의 집회 장소에 가 보면 소위 똑똑한 사람, 명문대 출신자들이 부지기수다.
이들이 이단에 빠진 이유는?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묵상은? 생각하는 행위를 말한다.
묵상은 세상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성도들이 수 많은 매체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과거에는 TV방송국이 두 세개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채널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방송국이 존재하고, 거기다 개인 방송까지 활동하고 있다.
수많은 매체에서 전해주는 정보의 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수 많은 매체에서 우리에게 많은 정보들이 우리의 생각을 두드린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제가 지난 수요일에 차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성도님들이 다른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를 자주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다른 교회 목회자들의 설교를 듣습니만만 성도들은 가려서 들어야 합니다.
생각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정보들이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오기 전에, 즉 우리가 이런 정보들을 받아들여야 할지 거부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없이 받아들이면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속에 세상의 생각 속에 잠식 당한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죄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맹신자와 광신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생각없이 살지말고, 생각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