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해 / 이혁진 / 민음사
한 공간에 다른 신분의 사람들이 있다. 그 공간은 돈을 다루는 은행이다. 다른 신분은 부리는 자와 부림을 당하는 자가 있으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으나 소속은 다른 사람들, 은행원과 청원 경찰. 같은 소속이나 신분이 다른 사람, 정직원과 계약직. 그리고 서로 다른 성별, 남과 여. 청원경찰은 경찰이 되기를 꿈꾸고, 계약직은 정직이 되기를 원하고, 정직은 자기가 가진 것을 모른 채 그 공간에서 좀 더 놓은 곳으로 오르기를 원한다. 그리고 직장 내의 결혼 적령기 남녀 사이에 있을 법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만은 아닌 소설이다.
셸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The Missing Piece Meets the Big O, 1981년)"을 떠올려본다. 나만을 생각하면 채울 수 없는 나. 상대방만을 생각해도 채울 수 없는 나. 그 비밀이 크다고 말한 성경을 들이대지 않더라고 인간에게 가장 큰 숙제인 나와 사랑의 문제를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한 소설이라는 생각이다. 다른 각도로 보면 그냥 삼각 또는 사각 관계 멜로 소설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불꽃을 교환하고 미친 듯이 사랑이 빠지는 소설류는 있지만, 시간의 배열에 따라 마치 포드시스템에 올려져 차례가 오면 조립되는 어떤 물건처럼 때가 되어 각자에게 맞는 짝을 찾아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인간의 경우 사회에서 주어지는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린다. 그렇다고 나의 의지가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를 떠나 완전하게 독립했다고 생각하는 인간은 자기에게 맞는 짝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에게 맞는 짝을 내가 찾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내 주변의 후보군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자. 그리고 그 사랑을 유지하고 지켜가는 것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더 진짜 "사랑"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주요 주인공의 마음의 흐름은 "미경 -> 상수 -> 수영 -> 종현"이지만 상수는 미경과 수영은 종현과 짝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관계에서 서로는 사랑을 원했지만 모두 사랑만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 어떤 것의 대체물이기도 했고, 미래에 대한 보험이기도 했으며, 도피처이었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해피 앤딩이라고 해야 할까? 서로를 사랑의 방향이 서로를 향하지 않은 4명의 주인공은 각기 자기의 길을 선택한다. 남녀의 결혼을 전제로 하는 사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란 말하는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고, 그 정의가 삶에 적용될 때는 또 다르다.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사랑이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 아닐까? 종교에서 말하는 전능자인 신과 사람의 관계에서 신의 사랑도 철저하게 둘과의 문제이지 모든 인류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듯이········.
소설 제목 "사랑의 이해"에서 이해를 표지에 理解와 利害, 두 한자어를 친절하게 적어 두었다.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랑이란 이미 오염된 단어이다.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 아니, 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 행복이라는 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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