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향수가 서린 부산 범일동 ! 세월이 흘렀건만 아기 그때 그모습이 남아 있는곳이 많다. 장동건,유오성,서태화,정운택이 검은 교복을 입고 옆구리에 가방을 끼고 신나게 달리던 육교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어 향수를 자아낸다.
그때는 교통부에서 철길 넘어 지인의 집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이 육교가 유용하게 사용되던 길이 였다.
영화 친구 덕분에 이 육교가 "친구육교"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된것이다.
범일동 친구육교는 영화 "친구"를 보지 않으신 분은 그 육교를 봐도 아무른 느낌을 가질수 없는 단순한 철로 위의 육교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영화를 보신분은 70-80년대의 생활상을 회상하며 30-4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갈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범일동에는 피란민 수용소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수용소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판자촌을 형성하고 살았다.
그 대표적인 곳이벽화로 유명한 안창마을 이다. 범일동 친구육교 가까운곳에 안창마을이 있는 것은 그때부터 빈촌으로 살았던 것이다.
지금은 판자촌도 거의 사라지고 피란민 수용소도 없지만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육교와 철길이 남아있다.
옛날 보림극장터에는 누리마트라가 자리잡고있다. 그 시절 보림극장은 범일동의 중심지 였으며 인근 삼화고무 종업원들이 많이 애용하던 극장이였다.
범일동 로타리에 가면 ?날의 향수를 느낄수 있는 곳이라 간혹 지나가도 이제 그 향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돈 중 영화 친구가 방영되어 이곳이 다시 여행객들이 둘러 보는 곳이 되고 있다.
범일동에는 부산진시장, 평화시장,자유시장,남문시장 등 도매시장이 있어 서부 경남이나 동부경남에서 옷가지등 물건을 사러오는 사람들이 지금껏 붐비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한곳이다.
범일동 여행길은 시내버스 17번,67번,88번,103번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도보여행을 해야 한다.
보림극장 앞 →( 건너 보림극장옆 할매국밥) →친구육교 → (범일동 매떡) →장동건 전봇대 →( 시장구경) →자성대공원 → 자성대 →우주석 → 영가대 →최영장군사당 → 미싱골목 → 좌천동골목 으로 코스를 잡으면 3시간정도 소요 될것이다.
만약 할매국밥이나 범일동 매떡집에서 식사를 하고 시장구경을 겸한다면 그시간은 별도로 추가 시간으로 계산해야 할것이다.
범일동 친구육교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육교라고 생각하고 걸어보자. 영화 친구에서 패싸움을 하고도 퇴학을 면한 동수 (장동건)와 친구들이 기쁜 마음을 억 누를수 없어 신나게 육교위를 달리는 장면이 이곳이다.
영화를 개입시키지 않으면 , 사람이 지나디니는 육교일뿐이다. 아직 ?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들이 철길 가에 있다. 육교위에서 주변 동네를 보며 시간여행을 가져 보자. 과거로....
육교를 지나면 현대백화점 옆으로 계속 나오면 백화점 정문에 다다른다. 행여 원조 범일동 매떡을 맛보고 가실려면 , 그길에서 도로 건너 서면방향으로 곧장가면 황실예식장 건물이 보인다. 예식장 건물 뒤에 유명한 매운떡볶이집이 있습니다.
매워서 얼얼한 기분으로 아래로 내려오면 서 국제호텔 방향을 찾으세요.
한참을 아래로 내려오시면 국제호텔이 나옵니다. 초행길에는 찾기가 좀 어러울것 같네요.
지나는 사람에게 뭇는것이 상책이겠죠. 대부분의 부산 사람이면 알것 입니다.
이곳도 영화 <친구>와 관련된 전봇대이니 영화를 기억 못하면 무의미한 장소가 될것 입니다.
무뚝뚝한 모습으로 서있는전봇대 하나가 있습니다. 이전봇대가 장동건 전봇대 입니다.
영화에서 장동건이 칼에 찔리며 부산 사투리로"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를 말하며 죽은 곳으로 간판은 국제호텔 앞에 위치해있고 , 전봇대는 건너편 만물수퍼 앞 커피자판기 앞에 웃뚝서있는 전봇대가 장동건 전봇대인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
장동건 전봇대를 보고 이제 임진왜란의 흔적이 남아있는 자성대를 가다가 미싱골목을 한번둘러 보자.
60-70년대 범일도에는 삼화고무 등 방직공장도 많았다 자연적으로 이런공장에서는 미싱이 필요 했을것이다. 그땐 우리나라 부라더미싱이 나오기 전이니 일제가 판을 치던 시절인가 싶다.
일제 싱거미싱 한대 있는 집은 요즘 외제차 한대 있는것 만큼 부자이고 구히게 였으며, 이웃의 부러움의 대상 이기도 하던 시절이있었다.
그 골목이 현대화 되었지 만 미싱기계들이 집합되어 있는 상점들이 있는 골목이다.
사진에 있는 미싱은 100년 된 미싱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진으로 담아왔다.
자성대 공원은 남포동이나 영도 등에서 동래나 해운대를 가다보면 도로변에 위치하여 보고 다니는 곳이다. 지금남아 있는 성지는 임진왜란인 1593년에 일본군ㅇ; 주둔하면서 쌓은 왜성이다. 임진왜란때 일본군 지휘소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왜장 이름을 따서 고니시성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성지는 2단이며 성벽의 높이는 1.5 - 10m이다, 왜성 모습 그대로이다. 지금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고 조용하여 인근 주민들의 산책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성 정상에 있는 장대로 진남대라고 한다. 말그대로 남문이었다는 뜻이다. 팔작지붕에 현판은 남쪽을 향해 달려있다. 건물의 북쩍편에 넓은 공터가 있는데... 사진의 앞에 서있는 비석은 임진왜란때 명나라에서 원병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왔다가 귀화하여 천씨의 시조가 된 충장공 천만리 장군의 유적비가 서있으니 꼭 봐야죠.
부산진 지성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돌기둥으로 건물 앞에 세워져있다. 돌기둥에는 < 남요인후 서문쇄약>이라는글귀가 새겨져있다. 뜻인즉, 이곳은 나라의 목에 해당되는 남쪽 국경이라 서문은 나라의 자물쇠 같다. 라는 뜻이다. 석축의 좌측은 높이 272m , 폭 46-94cm , 우측은 277m, 폭 62-71cm이다. l
영가대는 도로변에 세워져있다. 1617년 오윤겸이 처음 영가대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이후 통신사 일행이 출발하여 돌아오던 장소이다. 일본으로 건너가기전 무사 항해를 위해 해신제를 지내기도 했던 장소로 1910년 일본인들이 경부선 철도부설과 항만 매립공사롤 소실 된것을 90년만에 복원하였다.
최영장군 사당이 이곳에 있다. 최영장군 하면 떠오르는말이 < 헝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 많으 들었죠? 왜구섬멸을 위해 이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한다 그래서 사당을 짖고 매년제를 지내고있다 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느 좌천동골목, 50년전통을 자랑하는 좌천동 가구 거리 뒷편에 50년 고된 세월을 간직한 동네가있다. 지하철 좌천동 역 2번출에서 ?동넬로 들어가는 작은 굴다리가 있다 이꼿으로 들어가면 50년 전 마을과 만날수있다.
좌천동 골목을 한바뀌돌고 가구거리로 나와 좌천동역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면 되는 코스이다. 시간이 남는다면 인근 암창마을 벽화를 보시던가 문현동 안동네 벽화를 구경하러 가셔도 좋습니다. |
출처: 혜천의 바람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흔적
첫댓글 어릴적 뛰어 놀던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