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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13장 1-2절 바다에서 나온 한 짐승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다고 12장 마지막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 12장 1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그런데 이 싸움 역시 여자의 남은 자손들에게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12장 10-1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 17절의 말씀에 등장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과 11절에 등장하는 우리 형제들은 동일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일한 여자의 남은 자손들이나 우리 형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 인해 승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승리는 육신의 승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육신은 죽임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킴으로써 거두어들인 영혼의 승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다니엘서의 말씀을 들으실 때 역시 들었던 말씀입니다. 다니엘서 12장 7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진다는 것은 결국 성도들이 그 악한 세대 속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증인의 순교와 같으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승리는 죽기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영적인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17절에서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증거”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은 11절의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과 동일한 것이고, 17절의 “예수의 증거”는 11절의 “어린 양의 피”와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자손들이나 우리 형제들이나 동일한 사람들이고 승리의 열쇠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자의 자손이며 우리의 형제들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하나님께 이 계시를 받을 때도 육지에서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땅 속 묘지인 카타콤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거나, 아니면 믿음을 지키다가 잡혀가서 감옥에 갇혀 있거나, 고문을 받고 있거나, 짐승의 밥이 되거나, 화형을 당하는 등의 갖가지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고문을 이기지 못해서 예수님을 믿는 배반자들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믿음의 승리자들에게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증거를 가지고 믿음을 지키며 자신의 몸들을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죽기까지 믿으면서 믿음을 지키는 그 일이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될 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받아 적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자손은 초대교회의 유대인들이 먼저 예수님께 받아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하나가 된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여자의 자손으로써 용과 상대하여 진리의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용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싸울 때와 여자인 이스라엘과 싸울 때와 여자의 자손인 교회와 싸울 때와의 싸움 대상과 방식이 다릅니다. 예수님과 싸울 때는 탄생하지 못하게 막았고 탄생했을 때는 악한 헤롯왕을 통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난 후에는 40일의 금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시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이기시자 이제는 예수님의 사역하시는 내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과 율법사들등의 종교지도자들을 통해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번도 마귀의 시험에 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간계를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마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자 마귀는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시험할 수도 없었고 공격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새롭게 교회를 세우게 될 제자들에게 구약에 예언된 복음의 내용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후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자 용인 마귀는먼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스라엘을 통해 교회를 박해 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용이라는 말이 아니라 용이 이스라엘을 통해 교회를 박해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박해를 받은 후 흩어지자 용은 이스라엘 나라를 멸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박해받는 교회를 일차적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유대인들을 로마의 강력한 힘과 잔인함에 의해 강제적으로 유럽과 소아시아 지역 곳곳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유대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인데 그들이 한군데 모여있으면 완전히 멸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을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의 안전한 처소로 예비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유럽과 소아시아 지역 곳곳에 흩어 놓으심으로써 비록 살아가는 곳에서 어려움은 크지만 안전하게 보호하셨습니다.
그것이 1945년까지 나치독일에 의해 600만명이나 되는 인원이 대대적으로 살육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피하게 하시고 숨겨주시고 국제연합의 전쟁참여와 더불어 전쟁을 종식시키셨습니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은 시온 운동을 일으켰고 이 운동은 나라를 되찾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이 끝난 1945년 9월부터 1948년 5월까지 다시 한 곳으로 모으셔서 건국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 갔다가 여기 저기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는 예루살렘과 유대땅으로 돌아왔지만 자기가 살던 곳에 그냥 남아 있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던 것처럼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 나라에 정착해서 사는 유대인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제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그 외에 많은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도 나라가 전쟁이 있거나 위기에 처하면 나몰라라 하지 않고 언제나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도 자기들이 언제나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용인 마귀는 처음에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교회를 공격하게 하다가 이제는 권력자인 로마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극심한 박해를 하였습니다. 마귀는 유대인들은 육신적으로 멸망시키려고 했지만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는 죽임과 이단과 각종 거짓된 이론으로 공격했습니다. 마귀는 영적인 미혹과 갖은 박해를 통해 교회를 끊임없이 공격했습니다.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고, 마귀는 그 교회들을 파괴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마귀는 교회를 없애기 위해 국가 권력을 이용했고,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교회에 들여보내서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였습니다. 그 일을 할 짐승이 바로 13장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귀가 한 사람을 죽이면 수십명 수백명을 구원하셨고, 한 교회를 없애면 수십, 수백 교회를 세워나가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피로 영적으로 무장한 여자의 자손들의 군대를 대적하기 위해 용이 사용하기 위해 세운 이 짐승에 대하여 뭐라고 설명하는 지를 봅시다. 우리 요한계시록 13장 1-2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이 말씀을 해석하기 전에 먼저 마지막 때 일어날 일을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몇 백년 전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던 다니엘의 예언서를 먼저 읽어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였다고 다니엘 7장 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본 꿈과 환상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바다로 몰려 들어갔습니다. 다니엘 7장 2-3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요한계시록 7장 1절을 보면 이 바람에 대하여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하고 계십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소규모의 전쟁은 있었지만 큰 전쟁은 없는 평화가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계속된 것입니다.
여기서 요한계시록의 이 바람은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어떤 큰 일을 의미합니다. 전쟁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한 전 세계적인 부흥을 이야기할 때도 바람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혁명을 이야기하거나, 대대적인 유행을 말하기도 하고, 또 큰 사상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풍조라고 표현합니다. 또 경제적인 부흥의 때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이런 바람들은 매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한 번씩 일어납니다.
다니엘서에서는 하늘의 바람이 바다로 불었고 바람을 받은 바다에서 네 짐승이 나왔는데 매우 포악한 짐승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꿈과 환상으로 본 바다로 분 하늘의 네 바람은 세계의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전쟁을 몰고오는 큰 나라들의 등장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짐승들은 워낙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다니엘은 그 나라들을 볼 때 사자같은 나라, 곰같은 나라, 표범같은 나라. 또 흉폭한 짐승같은 나라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 나라들로 인해 수많은 나라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사자 같은 나라는 바벨론을 말하고 있고, 곰같은 나라는 메데와 바사제국을 가리키며, 표범같은 짐승은 알렉산더가 이끄는 헬라제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짐승에 대하여 다니엘 7장 7절에서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다니엘서에 나오는 이 짐승은 일곱 산으로 애워쌓인 로마제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의 머리에 열 뿔이 나옵니다.
그에 반하여 요한계시록 13장 1-2절에서 짐승의 생김새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런데 이 짐승은 요한계시록 12장 3절에 나오는 용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그런데 용과 달리 이 짐승은 머리에 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머리는 역사 속에 등장한 강력한 나라들입니다. 앗수르,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그리고 헬라의 알렉산더대왕의 뒤를 이은 네명의 장수들이 나누어가진 땅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가 있었습니다. 로마 이후에도 역시 여러 나라들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콘스탄틴 황제의 로마를 기독교의 국가로 선포했을 때부터 일어난 카톨릭은 각 나라의 왕권도 강하게 흔들정도 였습니다. 그것이 중세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르네상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권력은 점차적으로 분산이 되었습니다.
뒤에 요한계시록 17장에 가면 이 일곱 머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러 갈 때 가나안에는 일곱 개의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헷족속, 기르가스족속, 아모리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족속, 히위족속, 여부스 족속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온 가나안 땅에 퍼져서 각자의 통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공동의 적인 이스라엘을 만났을 때 서로 힘을 합쳐서 싸웠습니다.
헷은 “두려움”과 “공포”라는 뜻이 있습니다. 기르가스는 “진흙속에 거하는”이라는 뜻입니다. “혼란”과 “혼돈” 다시 말하면 “무질서”를 뜻하는 말입니다. 아모리는 “자랑”과 “교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낮은 자존감”, “저주”의 뜻이 있습니다. 브리스는 “신경질”, “미움”의 뜻이 있습니다. 히위는 “오락”, “향락”, “쾌락주의”의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룹스는 이것은 “짖밟다” 혹은 “거부”라는 뜻이 있습니다. “억압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이 세상 나라의 통치를 일곱 족속의 이름들에 들어있는 일곱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는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것이고, 둘째는 혼란스럽게 만들고, 셋째는 자기들이 잘한 것을 크게 과대선전하며, 넷째는 상실감을 헛된 것으로 눈을 돌리게 하며, 다섯째는 서로를 경쟁시키며 미워하게 만들게 하고. 여섯째는 쾌락에 빠뜨리고, 일곱째는 억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방식이며 사탄이 부리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셨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이 일곱가지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이름들입니다. 그것이 세상 통치방법의 기초입니다. 이것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제외한 이 세상 나라들이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이 신성모독하는 죄악된 수법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누구냐 하면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신성모독적인 일들이 적그리스도에게서 종합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수법이 너무나 교묘해서 사람의 지식과 이성만 가지고는 그 거짓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적그리스도는 그런 교묘함으로 교회를 공격하게 될 때 온 세상이 동조하면서 악을 행하게 되는 데 그 때에는 집안 식구들까지도 원수노릇을 할 것이라는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일곱 머리에는 열 개의 뿔이 있습니다. 대부분 뿔은 권세나 능력을 나타내는 데 이것은 이 불의한 세상의 체계위에 세워진 세상의 국가들을 의미하고 그 뿔들 위에 왕관이 씌워졌다는 것은 각 나라의 통치자들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통치자들은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첫째 인을 떼실 때 등장했던 흰 못을 입고 활을 들었으며 이겼고 또 이기려고 하는 통치자들일 것입니다.
그 뿔이 열 개인 것은 열 개의 나라라는 의미보다는 세상의 많은 나라들로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제연합 같은 나라들의 연합체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들을 총체적으로 다스리는 적그리스도는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2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생긴 것은 표범같이 보입니다. 날렵하다는 의미와 얼룩덜룩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지를 종잡을 수가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참된 모습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은 곰의 발 같습니다. 그만큼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지세력이 그만큼 확고하다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탁월한 연설능력과 언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말에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마치 히틀러가 몇 년안에 독일의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했을 때 처음에는 독일사람들이 반신반의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대로 이루어지자 거의 모든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 열광해서 히틀러가 시키는 대로 다했습니다.
타고난 말재주와 사탄이 준 권세로 인해 사람들 위에 부각되고 사람들은 열광하면서 그를 추앙하는데 거기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그의 권세를 절대적이 됩니다. 마치 한 나라를 힘과 권세와 교묘한 술수로 다스리는 황제의 모습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땅에서 누가 그를 거역할 수가 있으며 또 그를 믿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기초는 거짓의 아비인 용, 곧 마귀에 의해 세워진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게 그의 거짓을 꿰뚫어보는 진리의 눈을 갖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다 속이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진리의 용사들은 자신이 따르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속했으므로 인해 쉽게 적그리스도의 불의를 알게 됩니다.
그의 탁월한 능력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복종시키지만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의해 그 사람의 감춰진 속모습을 보고 그를 지지하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그리스인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이 그리스도인들을 피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여러분들이 만나는 모든 악한 상황에서도 여러분들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설사 육신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힐 지라도 음부의 권세도, 사망도 여러분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십시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승리가 바로 여러분들의 승리임을 확인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