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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6 : 21 - 28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 시몬에게 ‘베드로’라(18) 하시고 곧 바로 ‘사탄’(23)이라고 하셨습니다. 시몬 한 사람을 베드로와 사탄으로 불렀습니다. 그것도 여러 날을 지나서가 아니라 불과 몇 분 사이에, 자리도 바꾸지 않은 바로 그 자리에서, 극단적인 의미를 가진 두 이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란 뜻이요 ‘사탄’은 악마의 괴수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요, 대적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는 부름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시몬입니다. 이 시몬을 두고 베드로라 부르시고 잠시 후에는 사탄이라고 불렀습니다. ‘너는 베드로다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시고 이제 그 말씀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베드로도 되고 사탄도 됩니다. 베드로라고 불리워지고, 사탄으로도 불리워집니다. 천사도 되고 사탄도 됩니다. 이것은 결코 이중이 아닙니다. 양면도 아닙니다. 두 얼굴도 아닙니다. 손바닥을 뒤집어 손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한 사람의 비참한 모습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거울을 보고 나는 누구인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 입니까? 사탄 입니까? 천사로 향하고 있습니까? 악마에 의해 끌려가고 있습니까? 도대체 어느 쪽입니까? 베드가 되었다가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베드로가 되기도 하고 사탄이 되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베드로’라고 불렀습니다. 신앙고백하는 그 인격, 그 신앙고백으로 사는 인간, 그를 향해 베드로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요, 이것이 교회의 지체이며 곧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고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와 같은 깨달음은 너 자신이나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네게 알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셔서 예수님을 아는 자가 베드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소통이 있는 자를 베드로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이 소통이 되는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있고 성경을 읽으면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려오는 그런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고 하나님과 만남의 관계를 지니고 사는 그런 사람을 베드로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진정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입니다.
그러나 이 베드로가 변하여 사탄의 꾀임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생각과 행동이 사탄의 주도하에 끌려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탄의 주도에 끌려가는 인간이 사탄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고백과 전혀 다른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을 ‘사탄’이라고 불렀습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그런 사람이 ‘사탄’입니다. 양심도 겸손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사람을 가리켜 사탄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는 열 두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입니다.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베드로라고 부르시더니, 이제는 여지없이 사탄이라고 부르십니다. 그것도 불과 잠깐 사이에서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년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고, 말씀을 들었으며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는 사탄적인 것이 있었고 악마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사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서 죽게 된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자기의 본래의 모습이 불쑥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서 자기의 진실이 노출됩니다. 그래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을 붙잡고 향변(간하다;꾸짖다)하였습니다. 숨겨진 본색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은 ‘사탄’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절정이요, 어쩌면 예수님께서 제자를 교육하셨다고 한다면 여기까지 교육하셨고, 이제 그 교육의 절정에 왔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족하게 여기시고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르쳐 주시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그 고백에 따라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비로서 나타내시니’(21)라는 말씀은 신앙 고백을 한 제자들에게 이제 자신의 구원 사역에 관한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모르는 신앙, 십자가의 신비와 부활의 능력, 그 깊은 뜻을 모르는 신앙은 감상적인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은 미신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주여 그리마옵소서’라고 향변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게 된 것은 예수님을 끔찍이 위한다고 한 말이라고 봅니다. 진정 예수님을 사랑해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없는 사랑! 십자가를 모르는 사랑! 단순히 감상적인 눈물로 사로잡은 사랑은 참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고난을 모르는 사랑, 희생을 생각하지 않는 사랑, 그것은 이름뿐입니다. 거짓된 사랑입니다.
성도는 어떤 사건이든지 종교(신앙)적으로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내가 십자가를 져야 겠다’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신앙적으로 이해했다면 ‘예 그렇습니까?’하고 일단 받아들이고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왜 지셔야만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신앙적 바른 이해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신앙적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보여 집니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핍박하는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장로들이 말렸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은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노라’(행21:13)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신앙적으로 이해를 한 장로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어다’ 하고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을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이해를 했더라면 베드로가 그러한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다는 것을 이해하였더라면 엄청난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중심으로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최고에 달해 있고 유대인의 왕과 메시야로 기대되는 순간에 죽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십자가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의 충성심을 과시를 한 것입니다. ‘이 일이 결코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23)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전에는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던 그 예수님이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말씀은 ‘세우리라’, ‘넘어지게 하는 자’란 말씀입니다. ‘베드로’란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시며 ‘사탄’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는 자가 베드로이라면, 교회를 넘어지게 하는 자가 사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교회를 세우는 자일 때는 베드로가 되는 것이고, 교회를 넘어지게 하는 자일 때는 사탄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교회를 세우는 자입니까? 아니면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 어떻게 보실 것 같습니까? 가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저래서야 되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사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여러분은 교회를 세우는 베드로라고 하실까요? 넘어지게 하는 사탄이라고 하실까요?
이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은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4,25)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죽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죽어야 다시 산다’는 진리입니다.
착한 일에도 십자가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십자가도 있고, 희생도 있고, 썩어지는 밀알이 있고야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생명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추상적이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십자가는 분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구체적인 십자가를 요구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원하는 삶을 산다면 그는 오히려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 버린바 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역설은 현세적인 평안과 안전만을 위해 몰두하는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위로의 말씀이 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야 주님의 지신 십자가를 알게 됩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의로운 희생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주어진 십자가가 있습니다. 내 몫에 태인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이제 그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뒤에 부활의 능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라고 하였습니다. 죽어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는 이것은 곧 부활의 능력이 바로 십자가 뒤에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부활의 능력도 없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십자가는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로 져야 합니다. 그리고 내 십자가를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질 때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입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도 모를 뿐 아니라 내게 주어진 십자가의 의미 역시 모릅니다.
고난 없는 영광만을 바라는 것은 곧 사탄입니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주님의 십자가를 알게 됩니다. 내가 죽어야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런데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내가 하므로서 하나님께서 영광이 되고 교회를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진 십자가로 통해서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나의 신앙적인 고백은 아무것도 아닌 죽은 고백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됩니다.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27). 우리 신앙의 최종적인 목적은 인자가 오는 그 날입니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 날에 행한 대로 갚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말씀보다 이 말씀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그 날에 오늘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던 모든 것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세우는 반석, 베드로입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지기를 싫어하는 사탄입니까? 바라고 원하옵는 것은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베드로가 되십시오. 그래서 주님 오시는 그날에 영광스러운 주님을 맞이하는 주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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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설교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과 동행합시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갑사합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신앙적으로 이해를 해야
그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보여 진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