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1열왕 10,1-10; 마르 7,14-23 / 2022.2.9.;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이기우 신부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조각이며, 죄는 스스로 하느님께서 주신 양심에 비추어 판단하지 못하고 마귀의 유혹에 빠져 마음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에 사로잡힌 결과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지혜를 받고도 죄에 빠졌고(느헤 13,26), 바리사이들 역시 율법을 통해 지혜를 얻기는커녕 예수님 앞에서 그 제자들이 조상들의 전통을 어긴다고 대놓고 비난하였습니다(마르 7,5).
멀리 남방에서부터 찾아와서 지혜를 청할 만큼 솔로몬은 지혜로 나라를 다스렸으나, 그 스바의 여왕이 선물한 금과 향료로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궁정생활을 누리며 이웃 나라에서 불러들인 여자들과 방탕한 생활을 하던 끝에 그 여자들의 신까지 숭배하게 되면서, 지혜는 사라지고 하느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1열왕 11,1-13). 바리사이들의 율법 학자들은 솔로몬이 하느님께 겸손할 때에는 지혜로울 수 있었지만,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에는 그 지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라마저 망가뜨리고 말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자신들이 받았던 존경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던 바리사이들은 그 무렵부터 그분의 일행을 쫓아다니며 감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광경을 적발해냈습니다(마르 7,1-2). 이는 바리사이들과 특히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십계명을 주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구두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이 구두 율법을 조상들의 전통이라고 내세웠는데, 이에 따르면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하고, 장터에서 돌아온 후에는 몸까지 씻고 나서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마르 7,3-4). 사막의 날씨에서 사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위생상의 상식을 종교적인 규정으로 포장하여 지키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단한 죄를 고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제자들이 율법을 위반했다면서 예수님께 엄중하게 항의하였던 것입니다(마르 7,5).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율법을 어기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가장하는 위선자들이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율법의 정신인 하느님 말씀은 무시하면서, 자신들이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놓은 조상들의 전통을 앞세워 경건한 척 하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네들의 위선을 계기로 삼아 제자들과 군중에게 죄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양심과 이를 밝혀주는 신앙으로 살아가면 지혜롭게 살 수 있고 진리이신 하느님을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귀가 부추기는 욕망의 유혹에 휘둘리면 사람을 더럽히는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그리고 어리석음 등 예수님께서 열거하신 죄의 목록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던 죄들이었습니다. 스스로 경건한 척 위선을 부리던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나 심지어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군중들조차도 이 죄들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한 두 사람이 들여온 죄는 순식간에 이웃에게 퍼져서 온 사회를 더럽힙니다.
신군부가 1980년 5월 광주를 디딤돌 삼아 집권하고 나서 내세운 구호가 ‘정의사회구현’이었고, 한동안 파출소마다 이를 적은 간판이 내걸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시민들이 하도 돌을 던지니까 그 간판 위에 철망을 덮씌우기까지 했었습니다.
그 이후 신군부는 여론을 잠재워 보겠다고 언론에 돈다발로 재갈을 물렸고 그래서 돈 방석에 앉은 언론이 지금에 와서는 스스로 기득권을 휘두르는 카르텔에 편입되어 버려서 진실을 외면하고 강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지면과 화면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에 3백 명 넘는 국민이 익사했는데도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뻔뻔스럽게 보도하여 국민을 속인 언론인들은 기자 쓰레기라는 뜻으로 ‘기레기 집단’이라는 오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언론 가지고 안 통하면 검찰을 부립니다. ‘상식과 공정’으로 국민의 정의를 지켜야 할 검찰은 편의에 따라서 기소하여 명성을 얻고 나면 역시 편의에 따라 불기소하여 거액을 챙기는 범죄 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검찰까지도 역부족이면 이번에는 법원이 동원됩니다. 무죄로 판결된 같은 죄목의 송사를 아무런 새로운 증거도 없이 유죄로 판결하는 일이 대한민국 법원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명예는 판사 스스로 땅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이렇듯 진실이 외면당하고, 상식과 공정이 조롱당하며, 헌법과 양심이 쓰레기로 전락한 작금의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의식은 온통 죄로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우상숭배로 바꿔치기했다가 나라를 망친 솔로몬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공자의 나라가 되겠다고 중국을 빼닮은 소중화로 자처하던 정치집단이 조선 후기의 조정과 노론을 위시한 유림들이었습니다만, 이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주자학 논리로 단죄하면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한 나라의 인재들을 백 년 박해로 죽여 버린 결과로 나라가 기울다가 아주 망해버렸던 어리석음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요한 17,17.복음환호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