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보았다.
뮤지컬 영화 한 편 보는데 벼르기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안쓰러워 눈물 나지만 어쩌랴, 이런 것도 인생인 것을.
지난 목요일 no show로 생돈 2만 원을 날렸다. 날밤 깐 여파로 깜박 잠든 탓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은 현장 구매를 결정, 해 떨어지자 필기도구만 준비해 바로 출발.
올 9월 개관한 불당 씨네큐.
신도시 상업지역 내 코딱지만 한 건물에 들어선 미니 개봉관이다. 지하 출입구가 좁아 애 먹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편하게 주차했다. 티켓 부스에 가보니 이해가 갔다. 개/존/완 썰렁! 우려가 현실이 됐다. 출발 전 확인으론 4매의 예약 티켓이 발행되었다. 6관 입구에서 마주친 남녀 한 쌍이 2차 미접종으로 퇴짜를 맞았고, 나머지 2장은 목요일의 나처럼 노-쇼다. 결국 단독 관람이다.
제법 예습을 하고 갔다.
예습 전엔 <팬텀>이 <오페라의 유령(이하 ‘오유’로 줄임)>의 아류인 줄 알았다. 아휴, 민망~
헌데 공부해보니 원작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아무튼 예전에 보았던 슈마허 감독의 영화 <오유>의 감흥을 되살리며
원작에 대한 인터넷 자료를 뒤져보고,
초연 25주년 기념 로얄 알버트홀 <오유> 영상을 2번 보고,
2021년 <팬텀>의 시츠프로브 영상과 개별 넘버 짤을 공부하고 갔다.
예습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원작 <오유>
가스통 르루(1868-1927)의 신문 연재소설. 1909-1910 2년간 ‘골르와’에 연재했다. 배경은 프랑스의 오페라 극장이고, 주요 등장인물은 에릭, 크리스틴, 라울, 다로가, 카를로타 5인이다.
극장주의 퇴임식과 환영식을 겸하는 공연이 벌어지는 중에 무대 감독이 목 맨 시체로 발견된다. 소란의 와중에도 크리스틴 다에(이하 ‘크리스틴’)는 성공적인 데뷔를 마치고, 극장을 후원하고 있는 소꿉친구 라울 드 샤니(이하 ‘라울’) 자작과 상봉한다. 크리스틴은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음악의 천사가 사실은 끔찍한 외모의 소유자이며, 어쩔 수 없이 그를 사랑한다고 라울에게 털어놓는데 이를 숨어있는 에릭이 듣는다.
한편 2명의 새 극장주는 전임자가 전하는 유령 얘기를 흘려듣고, 극장의 디바 카를로타는 신출내기 크리스틴을 견제한다. 에릭은 크리스틴에게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협박한다. 카를로타의 음모로 곤경에 빠진 크리스틴은 결혼을 수락하는 의미로 반지를 낀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라울과 다로가는 익사 위험에 처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에릭이 다로가를 찾아가 자신은 곧 죽을 운명이고, 크리스틴과 라울은 새로운 삶을 살 것이라 말한다. 며칠 후 신문을 통해 에릭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소설은 끝이 난다.
뮤지컬 <오유>
앤드루 로이드 웨버(이하 ‘웨버’)에 의해 1986년 런던에서 초연. 국내 초연은 2001년이다.
‘The music of the night’ ‘Think of me’ ‘All I ask of you’ 등의 넘버들은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하다. 마이클 크로퍼드가 팬텀 역으로 올리비에/토니상을 수상했고, 초연 당시 웨버의 부인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사라 브라이트만이 크리스틴 역을 맡아 스타 반열에 올랐다. 2장으로 제작된 공식 앨범엔 20여 넘버가 담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kZpvaRWak64
내용과 캐릭이 원작과 흡사하다.
다만, 원작에서 비중이 있었던 신비주의 캐릭 다로가는 생략되었다.
뮤지컬 <팬텀>
<나인>의 극작가 아서 코핏과 <나인> <타이타닉>의 작곡가 모리 예스톤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작품 구상은 <오유>에 앞섰으나, 제작과정이 늘어져 초연은 <오유>에 뒤졌다. 1991년 휴스턴에서 초연되었고, 국내 초연은 2015년이다. 공식 음반에는 17개 넘버가 담겼다.
c.f 1983년 연출가 홀더가 코핏/예스톤에게 <오유>를 뮤지컬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곧장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1984년 Variety란 잡지에 웨버의 <오유> 제작 발표가 나고, 1986년 초연으로 대박을 쳤다. <팬텀>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닭.쫓.개 꼴이 돼버린 셈이다.
내용과 캐릭이 원작에 비해 많이 각색되었다.
<오유>와 비교해 굵직한 것만 소개하면
<오유>엔 없었으나, <팬텀>에선 에릭의 유년 시절이 소개되고 부/모가 등장한다.
<오유> 라울의 자리를, <팬텀>에선 샹동 백작이 차지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오유> 카를로타는 프리마돈나, <팬텀> 카를로타는 극장주의 음치 마누라다.
<오유> 에릭과 카를로타는 실종/몰락, <팬텀>에선 둘 다 사망이다.
<오유> 마담 지리와 크리스틴의 친구 맥, <팬텀>에선 없다.
이하는 <팬텀> 후기
일반 영화가 아닌 뮤지컬 영화, 그것도 내가 유일하게 팬-카페에 가입한 소프라노가 주연을 맡은 작품. 더군다나 문자로 감상의 흔적이 남을 작품이라 생각이 많았다.
‘25주년 <오유>만큼 느낄 수 있을까, 실망하고 오는 건 아닐까’
‘임선혜 sop. 출연작에 대해 따따부따 하는 게 주제넘은 건 아닐까’
‘국뽕 빼고, 임뽕 빼고... 보편/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무 생각 없이 호강만 하고 가자!
겨우 마음을 다잡으니 객석조명이 꺼지며 Overture 위로 크레디트가 새겨진다.
멜로디~ 멜로디~
첫 넘버는 당연히 사랑스러운 임선혜 sop.의 목소리다. 잔영으로 남은 25주년 <오유>의 화려한 오케스트라/무대장치를 애써 지우자, 맹랑&발랄한 크리스틴의 모습에 서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단독 관람이라 거침없이 폰-셔터를 누르고 있었는데, 씨네큐 알바 님에게 딱 걸렸다. '아실 만한 분이...' 한소리 들었다.)
규현-에릭.
아이돌로 출발, 이젠 관록 있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는데... 오늘은 어째 불안한 느낌이다. 중저음에선 편안하고 안정적이지만, 고음으로 향할 때 꼭 바이브레이션을 동반한다. 장단을 논하긴 어려운 문제이나, 개인적 취향으론 단번에 치고 나가는 걸 선호하는 입장이라 ㅠ.ㅠ 규현 팬들의 돌팔매가 날아오려나
익숙한 넘버 ‘Home(내 고향)’을 지나 ‘The music lessons’에 이르자 크리스틴/에릭의 눈빛에 다시 불안해진다. <오유>에선 키스신이 있었는데 설마...
다행스럽게도 미수에 그쳤다. <팬텀>이 논-레플리카(대본/연출/소품 등에 있어 오리지널에서 자유로운) 뮤지컬이라는 점과 크리스틴의 입술을 아껴주신 프로듀서/감독님들께 감사!
개별 넘버로써의 압권은 역시 ‘The Bistro(비스트로)’.
거만한 욕심쟁이 카를로타의 뒤치다꺼리를 벗어나 드디어 빛을 발하는 새로운 디바.
‘나, 이런 사람이야’
크리스틴-선혜가 고음악으로 유럽을 평정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객석이 아닌 뮤지컬 공연장이었더라면 박수로 인해 다음 진도를 못 나갔을 듯.
7분 인터미션 후의 바람잡이는 김주원 발레리나.
에릭의 엄마 벨라도바는 미혼모, 김주원 교수는 전성기에 준하는 기교(아다지오)를 선보이며 분위기를 신파로 이끈다. 연사로 나선 에릭의 아버지- 불륜남 카리에르 역엔 윤영석 배우. 잠긴 목소리로 기억을 더듬으며 청승의 신파에 궁상을 더한다. 개인적으론 신파가 다소 과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다.
눈물샘이 터진 대목은 ‘Finale: You are my music’
벨라도바가 숨을 거두는 장면부터 눌러둔 감정이 크리스틴의 눈물 한 방울에 결국 터져버렸다. 뮤지컬은 종합예술. 노래뿐 아니라 연기도 필수다. 임뽕 빼고 얘기하자면, 초반의 임선혜 sop.는 표정이 좀 아쉬웠다. (감독의 요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추어 느낌이 살짝 묻어났다. 그런데 1막 ‘비스트로’를 기점으로 몰입하더니 2막에선 메소드 그 자체가 됐다. 그러니 에릭을 부여안고 슬퍼하는 크리스틴 앞에서 어찌 참을 수 있으리. 막판에 터진 게 그나마 다행!
현장 공연을 놓친 아쉬움을 달래준 뮤지컬 영화.
2021년 12월의 첫 월요일이 행복해졌다. 후기를 빌어 <팬텀> 관계자 제위께 지극한 감사의 염을 전해 올린다. 또한 금번 EMK 영상에서 만나지 못한 출연진과도 조만간 현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첫댓글 우와 단독관람
미국에서도 상영함 좋겠어요
비행기 타고 오시면
영화 티켓은 제가 끊어드리겠습니닷!
단독관람..영화관 독차지~😁
덕분에 무쟈게 편안했지요. 영화관 알바 님에게 쿠사리 먹은 것만 빼곤.
@낭만배달부 왠 쿠사리요??
허.... 부럽. 혼자라니...
우리 동네는 상영하는 곳이 없는 듯 합니다...
원정이라도 가셔요~~못보신다니 안타까워요...
잘봤습니다:3
임뽕빼고...ㅋㅋ 여기서 말씀하시기 어려운 얘기까지~ 솔직후기 감사합니다~ 100% 만족이란 없더라구요..(공연장에서의 캐스팅도 마찬가지구요)
박제되는 영상물이라 현장의 배우들 애드립이 빠지고 너무 노멀해져서 그건 좀 아쉽죠. 썬크리는 초반엔 시골뜨기 초짜라 연기나 노래가 수줍수줍. . 설정일겁니다. /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이혼하고도 사라 브라잇만을 나의 뮤즈라고 부르더군요. 오유가 그녀를 메인롤로 쓰기위해 만든 작품이라는 말이.있을정도로. . 그녀의 독보적인 존재감!
사실 제작은 카메룬 매킨토시가 다 한겁니다. (오유,레미제라블,캣츠,미스사이공. .) 뮤지컬계의 마이다스의 손,
개인적으로는.선혜님은 팬텀보다는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이 어땠을까. . 싶고 또 담에는 엘리자베스의 엘리자벳 역이 어떨까. . 본인께선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의 클레오파트라 역을 해보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하셨는데. . 잘.어울리실듯 싶어요. (여리여리 남주에 따라가는역할보다 강단있는 여주인공 원탑의 역할이.더 잘어울리실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