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답은 아름다운 응답이다. ‘상대의 시나 노래에 응하여 시나 노래로 대답’하는 화답(和答). 그만큼 깊은 호응의 마음이 담겨서 전해왔다. 그렇다고 화답을 시나 노래에만 쓴 것은 아니었으니 그와 비슷한 응답의 비유에도 화답을 쓰곤 했다. 이를테면 어떤 부름이나 요청에 대한 아름다운 대답의 방식으로.
화성 축성 후 시편에도 화답의 방식이 많이 보인다. 혜경궁 홍씨 회갑연 때 정조가 내린 시에 흔쾌히 화답한 정약용의 시가 있고, 채제공 시에 화답임을 밝힌 정조의 시도 있다. 그즈음 한시에서는 서로 화답하던 전통이 있었는데 화성 관련 시편에도 꽤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누군가 운(韻)을 띄우면 그 운자를 넣어 시를 쓰고 나누던 한시의 세계에서는 화답이 흔했던 일이다. 시적 숙련은 물론 어휘나 전고(‘用事’, 고사를 인용하며 시에 깊이와 넓이를 만든 기법)를 자연스럽게 쓰는 인문적 소양이 풍부해야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높은 세계이긴 했다.
그런데 화답은 시나 노래 외에도 예술의 여러 방식으로 가능하다. 그 중 화성에 대한 화답에 착안하면 다양한 방식의 예술적 호응을 볼 수 있다. 화성이 말없이 운을 띄운 것으로 보면, 시로 응하는 화답은 지금도 여전히 많다. 그런 사례로 수원화성테마 시조집 『물고을 꽃성』을 들 수 있겠다.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회원들이 수원과 화성을 주제로 그동안 자신이 보고 찾고 읽고 느낀 것들을 형상화한 시조모음집이다. 편편이 수원화성을 직접 찾아 걷고 살핀 걸음걸음에서 나온 것이지만, 멀리서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거닐고 느끼며 쓴 시편도 꽤 있다. 모두 자기 식의 화답을 물고을 꽃성에 피우고 달았으니, 가히 물고을 꽃성에 대한 화답시집이 아니겠는가.
『물고을 꽃성』은 정조인문예술재단 지원에 힘입어 출간한 뜻깊은 시조묶음이다. 전국의 시인들이 수원화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엮음집이다. 먼저 학술세미나에서 정조의 여민정신이 시대정신과 함께 현대시조에 구현되는 양상을 살폈지만, 작품에서는 그것이 더 다채롭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무엇보다 많이 보여준 것은 정조의 효심에서 비롯된 축성 철학이며 화성에 구현된 아름다움에 대한 시적 해석이고 형상화였다. 물고을의 역사니 나혜석 같은 인물을 향한 관심도 있었지만, 수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꽃성 화성이었고 그 매력이 압도적이었던 까닭일 것이다.
『물고을 꽃성』을 계기로 확인한 것은 전국 시인들 중에 수원화성을 다녀간 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수원화성이 그만큼 우리 지역의 문화적 매력을 높이고 방문을 당기는 요소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시적 방문의 형상화 후에 다시 보는 수원화성은 더 많은 작품을 견인할 것이다. 수원화성의 여러 개성적인 시설이며 역사 이면의 깊이 읽기가 새롭게 시적 자극을 불러낼 것이다. 더욱이 ‘웅장하고 미려한 것도 족히 적의 기상을 빼앗는 길이다[雄麗奪氣], 고금의 아름다운 것을 화성에 모두 갖추도록 하라[古今美制]’는 정조의 명이 어떻게 실현됐는지 구체적으로 살폈으니 수원화성 미학의 내면화도 더 깊어질 법하다. 그런 점에서도 『물고을 꽃성』으로 수원화성을 빛낸 기억은 물론 시적 방문의 추억이 더 그윽해질 것이다.
정조가 내려다본다면 이 또한 흐뭇한 일이 아닐런가. 축성 당시 정조의 아름다운 명령이 화답 시집으로도 실현되었으니 즐거운 화답이다. 정조의 아름다운 명령에 담긴 미학과 철학은 길게 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거듭 핀다. 무릇 세계유산이 애초의 목적을 능가하며 시간이 갈수록 문화 예술적 아우라를 높여가는 특유의 힘이다. 아름다운 명령이 훗날에도 아름다운 화답으로 구현되듯.
글쓴이 : 정수자시인
주요약력
(재)정조인문예술재단 이사. 1984년 세종숭모제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등단. 시조시인.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시집
『파도의 일과』, 『그을린 입술』, 『비의 후문』, 『탐하다』, 『허공 우물』, 『저녁의 뒷모습』, 『저물녘 길을 떠나다』 등.
연구서
『한국 현대시의 고전적 미의식 연구』 외에 공저 『한국 현대 시인론』, 『올해의 좋은 시조』 등.
수상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등.